남파랑길 37코스(남해 바래길 4코스)-1
다도해에 솟은 고사리 산이 만든 풍경화
몇 년 전만 해도 5월 중순에 피었던 이팝나무 꽃이 올해는 4월 하순에 피었다.
올해 모든 꽃이 평년보다 1주일에서 2주일 이상 빨리 피었다.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봄꽃의 개화시기가 매년 앞당겨지고 있다.
화사한 봄꽃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지만 기후변화로 앞당겨진 개화시기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남해를 관통하는 19번 국도변에 어린 이팝나무 가로수들이 하얗게 꽃을 피웠다. 이팝나무 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배고팠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이밥에 고깃국 먹고 비단옷 입으며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 사는 것이 소원이던 시절이 있었다.
이밥은 ‘이(李)씨의 밥’이란 의미로 조선왕조 시대에는 벼슬을 해야 비로소 이씨인 임금이 내리는 흰쌀밥을 먹을 수 있다 하여
쌀밥을 ‘이밥’이라 했다. 이팝나무는 이밥나무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추정된다. 꽃의 특징이 이밥, 즉 쌀밥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팝나무는 파란 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얀 꽃을 가지마다 소복소복 뒤집어쓰고 있다.
가느다랗게 넷으로 갈라지는 꽃잎 하나하나는 마치 뜸이 잘든 밥알같이 생겼고,
이들이 모여서 이루는 꽃모양은 멀리서 보면 쌀밥을 수북이 담아 놓은 밥그릇을 연상케 한다.
아직 보리는 수확되지 않고 지난해 양식은 거의 떨어진 ‘보릿고개’ 시기를 견뎌야 했던 사람들에게
쌀밥처럼 보이는 이팝나무 꽃이 그나마 위안을 주었다.
오늘은 남해 바래길 4코스를 걷기 위해 남해 창선도로 향한다.
남해 바래길 4코스는 ‘고사리밭길’이라는 별칭이 말해주듯이 주로 고사리밭길을 따라 걸어야한다.
요즘 한창 고사리를 채취하는 기간이라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
예약한 자에 한하여 안내인과 함께 고사리밭길을 통과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도 1주일 전에 예약을 했다.
창선면행정복지센터에 도착하니 우리를 안내할 문화관광해설사가 기다리고 있다.
오늘 함께 걸을 사람은 모두 12명이란다. 예약자 중 우리 일행 8명은 창선면행정복지센터에서 출발하고
나머지 4명은 동대만간이역에서 만난다. 바래길 3코스가 끝났던 창선면행정복지센터 앞 사거리에서
골목길을 따라가니 상추며 마늘이 푸릇푸릇 자라는 밭과 모내기를 기다리는 논이 길손을 맞이한다.
창선도에서 삼천포대교로 이어지는 3번 국도 굴다리를 지나자 동대만간이역이 나온다.
동대만간이역은 기차역이 아니고 관광지원시설이다. 동대만간이역 1층은 특산물판매장, 2층은 식당과 게스트하우스로 이용된다.
주변에는 창선면체육공원과 승마랜드가 있다. 동대만간이역 둘레에는 튤립과 유채꽃이 심어져 있으나 대부분 지고 있는 중이다.
동대만간이역에서 서울과 대구에서 온 부부 2팀이 합류했다. 오늘 참가자 모두가 부부로 이뤄진 셈이다.
나이 들어서 부부가 함께 취미활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우리 부부의 경우 거의 매주 함께 트레킹을 하다 보니 금슬이 좋아지고, 몸과 마음도 건강해지는 것 같다.
우리는 동대만 가장 안쪽 해변 제방을 따라 걷는다.
동대만은 창선도 안쪽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섬을 동부와 서부로 나눈다.
동대만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포근해 보인다. 동대만 북쪽으로 삼천포와 창선도를 잇는 네 개의 교량이
모습을 드러내고, 삼천포대교 뒤로 사천의 진산 와룡산(801m)이 우뚝 서 있다.
동대만 제방 안쪽에는 지난 가을 꽃을 피운 갈대가 아직도 메마른 상태로 그대로 서 있다.
넓고 누런 갈대밭은 새순이 완전히 올라올 때까지 자기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길은 개인집 바깥계단을 통과하기도 한다. 자기 집 계단 이용을 허락해준 집 주인이 고맙다.
동대만 건너 창선도 서부지역의 속금산‧대방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와 산자락 해변에 둥지를 튼 마을들이 정답게 바라보인다.
건너편 산과 마을은 남해 바래길 3코스를 걸으면서 만났던 곳이라 친근하게 다가온다.
동대만 바닷물을 발아래 두고 걷다가 식포마을로 가는 도로를 만난다.
도로에는 이팝나무가 하얗게 꽃을 피워 우리의 마음을 풍성하게 해준다.
잠시 오른쪽 도로를 따라 걷다가 고사리밭길로 통하는 산길로 접어든다.
여기에서 가인마을(세심사)까지 5km 구간은 고사리채취기간인 “2021년 3월 23일부터 6월 30일까지
사전 예약한 사람에 한해서 안내인을 동반한 상태에서 출입이 가능하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경사지를 오르다가 뒤돌아보면 높지 않은 야산 사이에 섬치고는 꽤 넓은 농경지가 자리하고 있다.
고사리농사와 논농사로 청선도 주민들은 다른 농촌에 비하여 풍족한 생활을 하는 편이다.
창선도의 낮은 산 너머로 남해도의 여러 산봉우리들이 첩첩하게 다가온다. 밭가에는 유자나무들도 보인다.
점차 고사리밭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3월 하순부터 고사리 채취가 시작되었으니 벌써 몇 차례 수확을 했다.
고사리를 꺾고 나면 바로 옆에서 다른 고사리들이 땅을 뚫고 올라오기 때문에 보통 4~5일 간격으로 고사리를 채취한단다.
이곳 창선도 고사리밭에서는 3월 하순부터 6월말까지 고사리 수확을 한다.
창선도에서 고사리를 본격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 식포마을 주민 한 분이 자신의 산비탈 밭에 고사리를 재배하면서부터다.
이 분은 원래 감나무를 재배했으나 농약을 자주 쳐야했을 뿐만 아니라 수입도 신통치 않아
농약을 하지 않아도 봄이면 산에서 어김없이 올라오는 고사리를 보고 밭에 고사리를 재배하기 시작했단다.
이후 고사리 재배가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한 다른 주민들이 너도나도 산에 고사리를 재배하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고사리가 창선도 주민의 주요소득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창선도 고사리는 전국 고사리 생산량의 30%를 차지한다.
“고사리 재배로 1억 원 이상 소득을 올리는 가구가 많아요. 도회지로 나간 자녀들이 직장 생활하다가 다시 돌아와
부모님이 했던 고사리 재배를 물려받을 정도입니다. 도시에서 직장생활 할 때보다 훨씬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으니까요.”
바래길 4코스 종점인 적량마을에서 승용차를 주차해둔 창선면행정복지센터까지 택시를 타고 가면서 택시기사에게 들었던 얘기다.
바래길은 고사리밭 사이를 굽이굽이 물 흐르듯 흘러간다. 고사리밭길은 낮은 산 하나를 넘어 식포마을로 이어진다.
옛날에는 초‧중학교를 다니던 학생들이 지금의 고사리밭길을 따라 등‧하교를 했단다.
식포(食浦)마을은 걸인들이 와서 배불리 먹고 간다고 해서 불리어진 이름이다.
마을 이름에서 주민들의 넉넉한 인심이 느껴진다.
식포마을을 지나 다시 고사리밭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산비탈은 드문드문 커다란 나무 한 그루씩 서 있을 뿐
전체가 고사리밭이다. 지난 늦가을 시들고 난 후 겨우내 말라비틀어져 땅에 처진 고사리 줄기 사이로 새순이 올라온다.
메마른 땅을 뚫고 불쑥불쑥 올라온 고사리순은 우리들에게 순환하는 자연의 질서를 느끼게 해준다.
바래길 4코스는 주민들이 고사리를 채취하러 다니며 내놓은 밭길을 따라 이어진다.
식포마을 쪽에서 고사리밭길을 따라 산봉우리 하나를 넘자 천하절경이 나타난다.
붕긋붕긋 솟은 봉우리들은 모두가 고사리밭이고, ‘고사리 산’ 뒤로 다도해가 펼쳐진다.
멀리서 보면 목장 같기도 하고, 대형 고분 같아 보이기도 한다.
붕긋붕긋 솟은 고사리 산은 푸른 바다와 어울리고, 바다에 떠있는 사량도‧수우도‧신수도‧아두섬‧장구섬 같은 크고 작은 섬들이 아기자기하다.
푸른 하늘은 풍경화의 배경이 되어 채색미를 고조시킨다.
바다 건너 와룡산과 삼천포 시내, 삼천포-창선도를 연결하는 창선‧삼천포대교도 아름다운 풍경화 대열에 합류한다.
경남 고성 땅과 통영까지도 화폭에 들어온다.
고사리밭길 능선 서쪽에서는 동대만이 출렁이고, 동대만 건너에서는 창선도 서부지역의 산과 마을이 정겨움을 가져다준다.
고사리밭에는 길이 동맥처럼 이어지고, 중간 중간 서 있는 나무들은 고사리밭을 외롭지 않게 해준다.
고사리밭과 다도해가 아름답게 보이는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미리 예약한 도시락 배달이 왔다.
사전예약을 하면서 점심 도시락까지 같이 주문을 했기 때문이다.
지족리에 있는 식당에서 도시락을 싣고 임도를 따라 산중턱 고사리밭까지 배달을 해준 것이다.
비빔밥에 들어간 고사리, 돌미역, 콩나물을 비롯한 재료들이 대부분 남해에서 생산된 것이라고 하니 더욱 신선하게 느껴진다.
깔판을 깔고 배달된 도시락을 먹고 있으니 마치 소풍 나온 기분이다.
밥 한 술 뜨고 풍경화 한 폭 감상하며 먹는 점심식사는 어떤 진수성찬보다 맛있다.
식사를 마치자 문화관광해설사는 고사리와 조개에 얽힌 재미있는 설화를 들려준다.
“여기에서 자라는 고사리는 저 아래 동대만에서 서식하는 조개를 사랑했지만 만날 수가 없었답니다.
고사리는 산에서 자라고 조개는 바다를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고사리와 조개는 사람들에 의해 채취되어 비빔밥 재료로 만나 사랑을 이룰 수 있었답니다. 믿거나 말거나.”
점심식사를 마친 우리는 다시 고사리밭길을 따라 걷는다. 고사리밭과 다도해 풍경이 아름다워 보이지만,
고사리밭은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가파른 고사리밭에서 고사리를 채취하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이 아찔해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가 먹었던 고사리에는 가파른 경사지에서 고사리를 하나하나 사람 손으로 직접 꺾어야 하는 주민들의 노고가 스며있었던 것이다.
가파른 고사리밭 중턱을 가로질러 길이 놓여 있고, 우리는 이러한 고사리밭길을 따라서 천천히 걷는다.
길 위쪽 고사리는 파란 하늘과 맞닿아 있고, 아래쪽 고사리는 푸른 바다와 마주친다.
고사리밭 아래로 고두마을 가옥들이 삼천포 쪽을 바라보며 둥지를 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