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예언과 예언자
(1) 예언의 의미
이사야서의 첫 구절을 살펴보자.
“하늘아, 들어라! 땅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아들들을 기르고 키웠더니 그들은 도리어 나를 거역하였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제 주인이 놓아준 구유를 알건만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이사 1,2-3).
이사야 예언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일반적인 ‘예언’의 의미를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대한 예고 혹은 예측’으로 이해하고 이 구절을 읽는 독자라면 적잖이 당황할 것이다. 이 구절은 미래가 아닌 현재에 대한 질책과 심판의 말씀으로 들려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언서는 질책이나 심판의 말씀으로만 구성되었을까?
이사야서의 또 다른 구절이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7,14). 이 구절은 우리에게 익숙한 임마누엘 탄생 예고이다. 이 말씀은 현재가 아닌 아기의 탄생, 곧 다가올 일에 대해 예고한다. 이 점에서 현재 상황에 대한 질책의 목소리가 담긴 1,2-3과 다르다. 이처럼 예언서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앞으로 다가올 일들의 예고도 함께 들어 있다.
이 두 구절은 ‘예언’이 지닌 참된 의미를 알려준다. 1,2-3의 말씀은 “주님께서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선포되는 말씀이 예언자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이 선포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언’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맡기신 말씀, 곧 ‘예언(豫言)’이다. 이처럼 ‘예언’이라는 어휘에는 하느님께서 예언자에게 선포하도록 맡기신 말씀과,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대한 말씀이라는 의미가 모두 담겨 있다.
(2) 예언자
하느님께서 맡기신 말씀을 선포하며, 아울러 다가올 일들을 예고하는 인물이 바로 예언자다. 구약성경은 예언자를 다양한 표현으로 지칭하고 그들의 역할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예언자와 관련된 호칭은 크게 세 부분으로 살펴볼 수 있다.
① 나비(נביא)
예언자를 지칭하는 표현 가운데 히브리어 성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 ‘나비(נביא)’이다. 이사야도 이사야서 전체에서 세 번에 걸쳐 ‘나비’로 언급된다.(37,2 ; 38,1 ; 39,3) 예언자를 지칭하는 ‘나비’의 어원이 논쟁의 여지를 지니지만, 일반적으로 ‘나비’는 아카드어의 ‘나비움 nabium’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나비움은 ‘부르다’, ‘선언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나부 nabu’에서 나온 명사인데, 그 의미가 능동적 의미를 지닌 ‘부르는 사람’, ‘선포하는 사람’인지, 수동적 의미를 지닌 ‘부름받은 사람’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나비가 하느님의 부르심과 관련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아무튼 나비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의 율법을 가르치며 그에 따라 설던 사람이다.
히브리어 ‘나비’는 그리스어로 ‘프로페테스 προΦήτης’로 번역된다. ‘프로페테스’의 의미는 히브리어 ‘나비’가 지닌 부르심과 관련된 의미보다 더 넓다. ‘프로페테스’는 ‘누군가를 대신해서 말하는 자’ 곧 ‘백성 앞에서 말하는 신의 대변자’를 지칭하기도 하고, 신전과 같은 신탁 장소에서 미래에 대한 물음에 응답하는 ‘앞서 말하는 자’라는 의미도 함께 지닌다. 다만 여기서 예언의 의미가 단순한 미래의 일을 예측하는 점성술과 구별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스어는 ‘예언’과 점성술을 명확하게 구별한다. ‘프로페테스’가 선포의 맥락에서 사용되면서, 점을 치다 라는 의미를 지닌 ‘만테우오마이 μαντευομαι’와 탈혼가 혹은 탈혼이라는 의미를 지닌 ‘만티스 μαντις’와 분명하게 구별되어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는 예언이 지닌 의미가 단순한 미래 예측에 머물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좋은 용례라고 할 수 있다.
구약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 인물에게 ‘나비’라는 호칭을 부여하였다. 우리에게 익숙한 모세, 미르얌, 드보라, 사무엘, 엘리야 등이 이 이름(예언자)을 부여받았다. 나비는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적으로 전한 이들에게 사용되었지만, 동시에 왕궁에서 활동했던 예언자들도 나비라는 호칭을 부여받았다. 아울러 우리에게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예언서를 남겨준 이들, 곧 문서 예언자들 가운데 이사야, 예레미야, 하바쿡, 에제키엘, 즈카르야도 나비로 불렸다. 히브리어 나비는 단수 형태이다. 이 단어의 복수형은 네비임(נביאים)으로 구약성경에서 예언자 무리를 가리켰다. 이들은 주로 참예언자와 대립했던 예언자들(1열왕 22장 : 즈카 13,2 ; 애가 2,14 참조) 또는 바알의 예언자(1열왕 18,19-20) 같은 부정적 인물로 나타난다.
② 호제(חזה)와 로에(ראה)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 사람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 듣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환시를 보거나, 바라본 것을 이해하고 선포하였다. 그러므로 예언의 직무는 청각적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보고 이해하는 시각적 영역의 것도 포함된다. 이러한 시각적 역할을 강조한 표현이 히브리어 호제(חזה)와 로에(ראה)이다.
우선 호제는 ‘환시를 보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에서 파생된 분사형 명사로 ‘환시를 보는 사람, 환시가’를 의미한다. 나비가 부르심을 받고 주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라는 측면을 강조한 표현이었다면, 호제는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환시를 바라본다는 측면을 강조한다. 로에는 기본적으로 ‘보다’, ‘인식하다’, ‘이해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에서 파생된 분사형 명사로 ‘보는 사람’,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 이해를 바탕으로 로에는 ‘선견자(先見者)’로 번역된다. 호제가 바라보는 행위를 강조하였다면, 로에는 바라본 것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행위를 강조한다. 구약성경에서 호제와 로에는 환시와 환청을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수령하는 행위를 표현하며, 그것은 인간의 행위를 넘어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행위를 내포한다. 역사서에서 발라암(민수 24장), 사무엘(1사무 9,9), 가드(2사무 24,11) 그리고 문서 예언자 가운데 아모스(아모 1,1 ; 7,12 ; 9,1)와 이사야 시대의 예언자들(이사 29,10 ; 30,10)에게 이 호칭이 쓰였다.
③ 기타표현
구약성경에는 ‘나비’, ‘호제’, ‘로에’ 외에도 예언자를 나타내는 또 다른 표현이 등장한다. 사자(使者) 또는 천사의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말락(מלאך)’이다. 하까이 예언자는 ‘주님의 사자’로 지칭되며 예언자가 주님의 사자로 불렸음을 알려준다(하까 1,13). 아울러 예언서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 ‘말라키서’의 말라키 역시 ‘말락’을 어근으로 삼으며 ‘나의 사자’, ‘나의 천사’라는 의미를 지닌다. 익명의 그 예언자도 ‘주님의 사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며(말라 2,7), 동시에 앞으로 등장하게 될 인물에게도 같은 이름을 사용한다(3,1).
(3) 활동 예언자와 문서 예언자
예언자의 명칭에서 살펴본 것처럼, 모세(신명 18,15.18), 미르얌(탈출 15,20), 드보라(판관 4,4), 사무엘(1사무 3,20), 엘리야(1열왕 17-19장 ; 21장 ; 2열왕 1-2장), 엘리사(1열왕 19,19-21 ; 2열왕 2-8장 ; 9,1-13 ; 13,14-21)에게 예언자라는 호칭이 부여되지만, 우리에게 모세 예언서, 미르얌 예언서, 혹은 엘리야 예언서는 전해지지 않는다. 이들은 역사서에 등장한다. 역사서는 이러한 예언자들의 등장과 활동을 기술하면서 하느님의 말씀 선포보다 그들이 하느님의 사람으로 보여준 행적에 집중한다. 이처럼 역사서에 등장하며 예언자의 이름으로 활동한 예언자들을 ‘활동 예언자’로 분류한다.
반면에 ‘예언서’는 예언자의 행적과 이야기보다 그들이 전한 하느님의 말씀을 시와 운문의 형식을 지닌 예언 장르에 맞게 기록한 책이다. 이 책들은 ‘예언자 이름 + 예언서’라는 형식의 제목으로 성경의 예언서를 구성한다. 곧, 이사야 예언서부터 말라키 예언서까지의 본문이 예언서에 속한다. 자신의 이름으로 예언서를 남긴 예언자들은 ‘문서 예언자’라고 불리며 활동 예언자와 구별된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의 예언서를 이해하고 풀이할 때는 문서 예언자와 가지는 관계를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