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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쉼명상'의 주요 개념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 안에서 많은 이들이 불안에 쫓기고 스트레스에 눌리고 압박을 받으며 자신을 위로하고 스스로 치유하는 법에 서툴다. 이런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진정한 쉼을 깨닫게 하는 것, 구체적으로는 일상에서 겪는 힘겨운 감정을 따뜻한 '알아차림'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며, 이를 통해 매일의 삶을 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본 프로그램의 핵심 목표이다. 특히 본 프로그램은 알아차림과 자애를 통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마음의 휴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를 알려주고 또 경험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우선은 본 프로그램이 정의하는 '마음쉼'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명상을 통한 '쉼'의 경험은 알아차림의 정수(精髓)이며, 몸과 마음의 진정한 쉼은 명상의 첫 단계부터 마음의 본성이 깨어나는 완성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에서 불교 수행의 기본이 되는 요소이다. 알아차림을 통한 마음의 쉼은 현재 순간에 머무르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을 설명한다. 자신을 내적으로 이해하는 앎은 '아 ~ 그랬구나.' 하는 온전한 '쉼'에 이르게 하고, 비로소 명상에서조차 빠른 성과를 내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마음의 습관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게 한다. 이런 알아차림의 통찰 위에 내면의 자애심을 길러낼 수 있고, 이를 통해 먼저 자기 자신을 친절과 연민으로 대응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가족과 직장 등에서의 건강한 인간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내적 자원을 개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진정한 쉼은 감각적인 자극이나 막연한 즐거움의 추구가 아니라 자신을 깊이 관찰하고 이해하는 통찰을 통한 지혜를 개발하고, 부정적 정서의 전환을 위한 자애 명상으로 매일의 삶을 보다 행복하게 사는 자양분을 길러내는 길이다.
'마음쉼명상' 프로그램의 핵심키워드인 알아차림을 통한 자애로 가는 길은 구체적으로 다섯 가지 경로가 있다. 첫째는 정신적으로는 일어나는 어떠한 생각이나 느낌을 하나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일어나는 현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판단하지 않고 수용하는 것이다. 둘째, 신체적으로 자신의 몸을 돌보는 길이다. 알아차림과 자애 수행을 하는 과정에서 항상 기본 바탕이 되는 몸으로 돌아오는 훈련은 사념처 수행의 기본이며 몸을 돌보는 것 쉼의 상태로 들어가는 중요한 길이다. 셋째, 몸과 마음의 쉼을 통한 통찰은 인간관계에서도 자신과 타인을 가르는 이중성을 붙잡지 않고 타인과 진실되게 연결할 수 있는 법을 배우게 된다. 넷째, 영적으로도 내면의 버림받은 에고(ego)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마음 치유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잠재력을 배양하고, 인간 본래의 본성의 상태에서 마음이 쉬도록 함으로써 현재의 삶을 변화와 사랑으로 성장시켜 나갈 수 있는 평정심을 개발하게 한다. 그래서 알아차림 속에서 쉴 수 있고 생각과 느낌들에 열린 상태를 경험할 때, 인생의 시련으로부터 스스로를 더 잘 지킬 수 있고, 다양한 어려움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쉼명상'에서 설명하는 쉼이란 우선 우리 존재의 본성에 내재하는 진정한 행복의 길을 아는 것이며 더 나아가 붓다의 사성제의 첫 번째 진리인 깊고 근원적인 고통의 원인을 알아차리고, 그 고통의 원인을 극복하는 길의 도입부에서 필요한 첫 발걸음이기도 하다. 따라서 '마음쉼명상'은 불교 수행의 진수인 알아차림(Sati)과 자애(mettā)를 핵심 개념으로 삼기에 각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알아차림 (Sati)
'마음쉼명상'의 주요 개념인 '알아차림'의 원어는, 빠알리(pāli)어 'sati'의 번역어이다. 사띠(sati)란 산스크리트어 'smṛti'의 어근 '√smṛ(to remember)'에서 파생된 추상명사로 사전적으로 볼 때 sati라는 단어는 '기억(memory)', '인식(recognition)', '의식(consciousness)', '주의집중(intentness of mind)', '알아차림(mindfulness)' 등의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한다.
또 sati는 사띠빠따나(Satipatthana)에서 비롯된 정의로 사띠(sati)와 빠따나(patthana)로 구성되어 있는데, 빠따나는 대상에 가라앉고(gone down into), 들어가고(entered into), 덮어 버리는(spread over) 어떤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사띠는 마음이 대상에 깊이 들어가고 대상에 밀착하고, 그 대상을 분명히 하는 과정으로 마음을 확립해서 마음을 보호하기에 sati를 '대상을 챙기는 심리 현상'이라고도 한다.
『대념처경』에서 sati는 감관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로 비유된다. 감관의 문을 통해 일어나고 사라지는 몸과 마음의 현상을 감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sati는 사념처 즉 몸(동작, 호흡 등), 느낌(괴로운 느낌, 즐거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마음(탐욕, 성냄, 의심, 위축, 산란 등), 법(몸과 마음의 근본적 특성)의 현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법'을 따라가고 보면서 머무는 것을 말한다.
서구 영어권에서는 sati를 mindfulness로 번역하며, 국내에서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 등으로 번역된다. 그런데 서구 명상심리치료의 핵심개념인 'mindfulness' 및 'sati'의 번역과 이해를 둘러싸고 국내의 많은 학자 간의 논쟁이 2000년 이후 대중매체를 통한 기고 형식과 논문 발표로 이어져 왔다. Mindfulness의 번역을 '알아차림'으로 사용하고 있는 인경은 "sati에 대한 '마음챙김'이란 말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명상 수행의 정신과 충돌함으로써 상당한 혼란을 일으킨다고 보았다. 원뜻에 없는 '마음'이란 용어를 첨가하면서 사념처의 신수심법(身受心法)의 몸, 느낌, 마음, 법(현상)에 대해 마음챙김하라고 했을 때 본래 의미인 '알아차림'을 훼손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마음챙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김재성은 "'마음'과 참선의 화두를 드는 정신이 배인 말인 '챙김'을 결합해 '마음챙김'을 만들어 냈으며, '챙김'이란 대상에 대한 접근 방식을 의미하는 것이지 '챙겨서 지닌다'는 소유의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다. '마음챙김'이 현재 국내에서 가장 많이 활용하는 sati의 번역어이다."라고 하였다. 현재로서는 국내에서 mindfulness의 번역어에 대한 완전한 합의가 학계에서 이루어지지 않았고 국내 다양한 저서나 논문에서 두 가지 용어가 혼용되고 있다. 심지어 번역서를 살펴보면 예를 들어 마음챙김을 설명하면서 실제로는 "마음이 끊임없이 생각에 휩쓸려 정처 없이 떠돌고 있음을 알아차리면"이라고 '알아차림'의 내용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대상에 대한 mindfulness의 한국어 번역을 '마음챙김'한다는 용어보다는 '알아차림'한다는 표현이 본래 의미를 더 잘 살려낸다고 보고 '알아차림'이란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Mindfulness의 정의를 존 카밧진(Kabat Zinn)은 '현재 순간에 특별한 방식으로 주의를 집중해서 개발되는 순간순간의 비 판단적인 자각'이라고 하였다. 또한 MSC(마음챙김 - 자기연민 Mindful Self-Compassion)를 창시한 미국 하버드 의대의 임상심리전문가인 크리스토퍼 거머(Christopher K. Germer)박사는 그의 책에서 mindfulness를 '수용하는 태도로 현재의 경험을 자각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신진욱은 sati가 가진 의미가 마음챙김뿐만 아니라 『대념처경(大念處經)』의 내용에 의거해 추출해 낸 '무심한 바라봄'이라는 의미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위빠사나 수행의 근거인 『대념처경』을 보면 신(身), 수(受), 심(心), 법(法)의 네 가지 대상을 각각 자세하게 나누고 있고 수행자들로 하여금 이를 바라보고 알아차리게 하고 있다. 위빠사나 수행의 목표와 사념처(四念處) 수행에 관한 정의를 『대념처경(Mahāsatipaṭṭhāna Suttanta)의 내용을 통하여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2. "비구들이여, 이 도는 유일한 길이니 중생들의 청정을 위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기 위한 것이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이다."
1-3. "무엇이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이러한 『대념처경』에서의 마음챙김 즉 알아차림은 사마타(samata)와 위빠사나(vipassanā)를 통합하고 있다. 불교수행법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그 중에 사마타는 한문으로 지(止)로 번역되며 위빠사나는 관(觀)으로 한역 되어 지관수행으로 일컬어진다. 사마타는 삼매(定) 수행과 동의어이고 위빠사나는 통찰지(慧) 수행이다. 그러나 『대념처경』에서는 알아차림을 하나로 통합하고 있다. 왜냐하면 집중이든 관찰이든 알아차림(sati) 없이는 불가능함을 실참의 경험을 통해 확인된다. 알아차림은 이 두 가지 수행에 공통으로 중요한 심리현상이기 때문이다.
2)자애(Mettā)
자애는 팔리어로 '메따(mettā)'라고 하며, 산스크리트어로 'maitri(또는 maitra)'라고 한다. 메따는 '친구(友)', '친한 것'을 뜻하는 'mitra'라는 어원에서 파생한 것으로 '진실한 우정', '순수한 사랑의 마음'을 뜻하는 말이다. 팔리어 메따(mettā)를 서양에서는 'loving-kindness'라고 번역한다. '우정, 사랑, 자비, 선한 의지'라는 뜻으로 통용되며 하버드 임상심리학자이며 MSC(마음챙김 자기 연민)의 창시자인 크리스거머는 그의 책에서 "메타를 가장 온전하게 표현하면 '보편적이고 사심 없으며 모든 것을 끌어안는 사랑'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자애(Mettā)를 가지고 사는 삶은 브라흐마위하라, 즉 범천의 삶이며 자애는 사무량심인(자(Mettā)비(Karuna)희(muditā)사(upekkhā)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또 십바라밀에도 '자애바라밀(Mettā panna)이 있고 자애 수행으로 선정삼매도 들 수 있다고 남방불교에서는 가르친다. 인간의 삶에서 풍요롭고 안전과 평화와 행복이 자애 없이 보장될 수 없고 모든 존재의 마음에 자애가 없으면 평온하지 않고 항상 불안할 것이다. 이 시대 가장 필요한 것이 자애의 마음일 것이다.
붓다의 가르침 중에서 『자애경』은 5부 니까야 중에서 『쿳다 까빠따(Khuddakapāta)』의 9번 경전에 수록된 『숫따니빠따(Suttanipāta)』에 나온 「자애경(Mettāsutta)」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필요에 따라서 다른 경전에 나타나는 자애와 관련된 경전을 참고하였다. 또 다른 자애 수행에 관해서는 대림스님이 번역한 『청정도론』의 자애에 대한 설명을 참고하였다.
『자애경』에 따르면 자애수행자는 '계'를 지킴으로써 생명의 소중함이나 정직함, 온화함으로 사랑을 한량없이 방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자애수행은 분노나 성냄(dosa)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해독제 역할을 한다. 자애수행을 닦으면 마음이 빨리 고요해지는 결과가 있으므로 특히 수행 초심자들에게도 매우 적합하고 안전한 수행법이다. 결과적으로 자애수행은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는 수행법이라고 볼 수 있다.
일중은 중생들에 대한 자애, 자애를 일으킴, 자애로운 상태, 자애에 의한 마음의 해탈, 분노(악의)가 없는 상태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애는 신(神)의 은총과 같은 자애가 아니라, 수행자가 수행을 통해 닦고 계발한 것으로서, '모든 존재들이 다 행복하고 평안하기를 바라는(sukhino vā khemino hontu)' 그런 거룩하고 고결한 마음이라고 밝히고 있다.
붓다의 자애명상은 본래 숲속에 살기를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두려움의 근본적인 해독제로 자애를 처방했으며 제자들에게 자애의 마음을 기르기 위해 이 법을 설하셨다. 자애 기르기에 관한 가르침은 5세기 불교 승려 붓다고사(Buddhaghosa)가 『청정도론』에서 처음 소개했다. 메타수행에서 자기 친절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최초의 사람이 붓다고사스님이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먼저 친절을 베푸는 목적이 '자아'를 인정하고 강화해서 결국 고통만 더 키우는 것이 아니고 모든 인간이 행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공통된 바람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서구에 자애명상이 소개된 것은 샤론 살즈버그(Sharon Salzberg)와 조지프 골드스타인(Joseph Goldstein)에 의해서다. 『자애: 혁명적인 행복의 기술 Lovingkindness: The Revolutionary Art of Happiness』라는 책을 통해 샤론은 서구의 수많은 독자에게 자애명상을 최초로 소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베이비 붐 세대가 성년이 되는 1960년대와 1970년대 들어 호기심 많은 서구의 연구자들은 새로운 지혜를 찾아 인도와 남아시아 지역으로 건너갔고 그 중에 이 두 사람은 동양 지혜의 보고(寶庫)인 불교와 수행을 만나 서구 불교도들과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저서를 남겼다.
<'마음쉼명상'의 효과성 연구/ 최은미(보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과 상담심리전공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