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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7 강 - 疑問品- 3
刺史又問曰,
弟子- 常見僧俗이 念阿彌陀佛하야
願生西方하옵는데 請和尙은 說하소서
得生彼否이까 願爲破疑하소서
師-
言, 使君아 善聽하라 慧能이 與說하리라
世尊이 在舍衛城하사 說西方引化하시되
經文에 分明去此不遠이라하시고
若論相說인댄 里數가 有十萬八千이라하시니
卽身中十惡八邪라 便是說遠이니
說遠은 爲其下根이요
說近은 爲其上智니
人有兩種이나 法無兩般일새
迷悟有殊하야 見有遲疾이라
迷人은 念佛로 求生於彼어니와
悟人은 自淨其心하나니
所以로 佛言, 隨其心淨하야
卽佛土淨이라하시니라
使君아
東方人이라도 但心淨하면 卽無罪요
西方人이라도 心不淨하면 亦有愆이니
東方人이 造罪하면 念佛로 求生西方이어니와
西方人이 造罪하면 念佛로 求生何國고
凡愚不了自性하고 不識身中淨土하야
願東願西나 悟人은 在處一般이라
所以로 佛言, 隨所住處하야 恒安樂이라하시니라
使君아
心地에 但無不善하면 西方이 去此不遙어니와
若懷不善之心하면 念佛로 往生難到니라
今勸善知識하노니 先除十惡하면 卽行十萬인것이요
後除八邪하면 乃過八千인것이니 念念見性하야
常行平直하면 到如彈指하야 便觀彌陀하리라
使君아
且行十善하면 何須更願往生이며 不斷十惡之心하면
何佛이 卽來迎請이리요 若悟無生頓法하면 見西方이
只在刹那로되 不悟하면 念佛求生하야도 路遙어니
如何得達이리요.
***
서방정토라고 하는 문제.
아미타불을 외워서 서방정토에 간다고
하는 것이 큰 문제인데, 과연 서방에 정토가
있느냐하는 이 문제.
육조스님당시에 이렇게 오랜 세월 전에 이렇게
분명하게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안 믿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 이치에 대해서
수긍을 안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전에 해인사 첫 총림 했을 때, 그 때 테이프 들어 보면
염불하는 스님이 나와 가지고 막 퍼붓고, 성철 스님은
외도라고 저놈 쫓아내라고 하는 것이 그냥 녹음이 다
되어 있어요. 그 염불하는 스님과 서방정토.
이 정토 문제 가지고... 유심정토 문제 가지고...
아직도 이것이 납득이 안 되면...
물론 근기 따라서 영원히 납득이 안 될 수가 있어요.
옛날에 그렇게 밝혀 놨다고 해서, 지금 사람들이 다
이해하는 것도 아니지요. 자기의 이해의 수준이
어느 정도냐 하는데 따라서 아무리 이치에 맞게
이야기를 해놔도 그것이 마음에 썩 후련하게 와지지가
않지요. 저도 사실 조금 미심쩍어요. 이것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싶기도 한데 한번 봅시다.
刺史又問曰(자사우문왈)→ 자사가 또 물어 가로대
弟子(제자)
常見僧俗(상견승속)이
念阿彌陀佛(염아미타불)하야→
제자가 항상 보니 승이고 속이고, 僧俗을 막론하고
전부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염불해 가지고서,
願生西方(원생서방)하옵는데→
서방정토에 태어나기를 원 하는데,
지금도. 요즘 중국 불교가 한창 일어나고 있어요.
한창 일어나고 있는데 이 당시도 염불종이 많았고,
지금도 역시 念佛宗(염불종)이 많습니다.
禪宗(선종) 보다 염불종이 더 많아요.
중국에는...
그래 중국염불 들어보면 아주 들을만해요.
염불이 아주 발달 했어요. 저 대만이나 홍콩
역시 중국본토 염불이 곡조가 비슷한데,
들어보면 뭔가 저기 서방정토로 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아요. 그 전에, “광화사”라는데
총림이 있어요. 거기에 가서 한 10일간 같이
수행을 하고 온 적이 있어요.
새벽에 법당에 들어가면 아침에 예불을 두 시간
하는 거예요. 두 시간...
진땀이 빠지는 거예요. 진땀이...
한국스님들은 도저히 못 견뎌요.
염불을 두 시간이나 해요. 법당 안에서...
앉지도 않고... 앉는 자리가 없잖아요.
중국 법당에는 앉는 자리가 없어요.
그냥 서 있거나 무릎을 꿇면 무릎만 대는 거예요.
무릎만 대지, 엉덩이를 붙이도록 되어있지가 아니해요.
그러니까 얼마나 힘 드는지 몰라요. 그래 두 시간을
쭉 법당을 돌다가 또 서서 부처님 쪽으로 절을 하다가,
이렇게 염불을 쩍 하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아미타불을 념 하고서
서방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하는데,
請和尙(청화상)은 說(설)하소서→
청컨대 화상은 설 하소서.
得生彼否(득생피부)이까→
정말 그 이론대로 서방정토에
태어날 수가 있습니까? 이 말이지요.
願爲破疑(원위파의)하소서→
원컨대 저를 위해서 의심을 좀 깨뜨려 주십시오.
파의= 의심을 좀 깨 주십시오. 이 말입니다.
師(사)가 言(언)→ 육조스님이 말씀하시기를
使君(사군)아→ 사군이여 善聽(선청)하라→
잘 들어라. 이 문제는 중요한 문제니까
잘 들으라는 말입니다.
慧能(혜능)이
與說(여설)하리라→ 더불어 이야기 하리라.
世尊(세존)이
在舍衛城(재사위성)하사→
석가세존이 사위성에 계시사,
說西方引化(설서방인화)하시되→
서방을 이야기해가지고서 이끌어 교화 하시되,
經文(경문)에
分明(분명)히
去此不遠(거차불원)이라→
경문에 분명히 말하기를
여기에서 가기에 ‘멀지 않은 곳이다.’
라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겁니다.
‘멀지 않은 곳이다.
去此不遠.’
바로 우리가 있는 이 장소에서 가는데
멀지 않다 그랬어요. 그 10만 8천리라면
어마어마하게 먼데, 분명히 멀지 않은 곳이다.
라고 이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미타경. 또 미타삼부경이라고 해서
이런 사상을 이야기한 경전이 아미타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이렇게 미타삼부경이라고 해서
묶어서, 출판된 책도 있고 그래요. 거기에 보면
분명히 이런 식으로 이야기되어 있거든요.
若論相說(약론상설)인댄→
만약에 이것을 논해볼 진댄,
里數(이수)가 十萬八千이라→
책에 분명히 그렇게 했거든요.
里數가 有十萬八千(유십만팔천)이라.
서방정토가 10만 8천리를 가야만 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새겨들어야 되느냐?
10만 8천리라고 하는 이것을
어떻게 새겨들어야 되느냐?
卽身中(즉신중)에
十惡八邪(십악팔사)라→
10만 8천리라고 하는 것은 우리 몸.
우리 몸에
10가지 악과
8가지 삿된 것이 있어요.
이 10가지 악과 8가지 삿된 것만 끊어
버리면 그대로 그 자리가 극락이다 이거예요.
便是說遠(변시설원)이니→
그것을 이야기하기를 멀다고 이야기한다.
또 멀지 않다. 라고 하는 것은,
그것을 끊으면 바로 가까이 있다 하는 그런 뜻이지요.
說遠(설원)→ 멀다고 말하는 것은
爲其下根(위기하근)이요.→ 하근기를 위한 것이고,
說近(설근)은→ 가깝다고 하는 것은,
가깝다는 뜻과 멀다는 뜻이 동시에 있으니까요.
가깝다고 하는 것은,
爲其上智(위기상지)니→
상지= 높은 지혜. 높은 지혜를 위한 것이니,
人有兩種(인유양종)이라→
사람에게는
지혜가 있는 사람 없는 사람 두 가지가 있으나
法無兩般(법무양반)이라→
사실에 있어서는,
진리에 있어서는
두 가지가 있을 수가 없지요.
사람에게는 뭐 두 가지만 있겠어요?
천 가지. 만 가지가 있을 수가 있지요.
사람의 근기는...
그런데 이치는 하나뿐이다 이겁니다.
분명히 어떤 극락세계라고 하는 주소가
확정 지어져 있거나,
아니면 우리 마음속에 있거나 틀림없이
그건 한 가지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지요.
法無兩般이라→ 법은 양 반이 없다.
迷悟有殊(미오유수)나→
미혹하고 깨달음이 다를 수 있으나,
見有遲疾(견유지질)이라→
소견에 있어서 빨리 깨달음과 늦게 깨닫는 것.
더딘 사람과 빠른 사람이 있음이라.
※
迷悟有殊 見有遲疾.
迷人(미인)은
念佛(염불)로
求生於彼(구생어피)어니와→
미혹한 사람. 캄캄한 사람은.
마음이 도대체가 뚫혀있지 못 한 사람은
염불하는 것으로서 저 서방정토에 태어나기를
구하거니와,
悟人(오인)은→ 아는 사람. 깨달은 사람은
自淨其心(자정기심)하나니→
스스로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해요.
諸惡莫作(제악막작)
衆善奉行(중선봉행)
自淨其心(자정기심)
是諸佛敎(시제불교).
其心 = 其意
자정기심. 그것이 중요하지요.
자기마음을 비우는 것.
자기마음을 깨끗이 하는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이것이지요.
깨달은 사람은 스스로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하나니,
所以(소이)로
佛言(불언)→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隨其心淨(수기심정)하야→ 그 마음이 깨끗함을 따라서,
卽佛土淨(즉불토정)이라→ 곧 불토가 깨끗해진다.
뭐 佛土가 깨끗해지고 말고
더러운 것이 있는 줄 아느냐?
너의 마음이 깨끗할 때 불토가 깨끗해지고,
너의 마음이 더러우면 네가 사는 곳도
역시 더러워진다. 너의 마음이 깨끗하면
바로 깨끗한 국토다.
깨끗한 국토가 뭐예요? 淨土(정토)!
바로 서방정토다 이겁니다.
이 다음에 이야기가 더 기가 막혀요.
使君(사군)이여→ 위 자사를 보고 하는 소리지요.
東方人(동방인)이라도
但心淨(단심정)하면→
동방인 이라도 다만 마음이 깨끗하면,
卽無罪(즉무죄)요→ 죄가 없고,
西方人(서방인)이라도
心不淨(심부정)하면→
서방인 이라도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
亦有愆(역유건)이니→
또한 허물이 있다. 허물 건자입니다. 허물이 있으니,
東方人(동방인)이
造罪(조죄)하면→
동방 인이 죄를 지으며는,
念佛(염불)로
求生西方(구생서방)이어니와→
염불로 서방에 간다고 하자. 그런데
西方人(서방인)이
造罪(조죄)하면→ 서방 인이 죄를 지으면
念佛(염불)로
求生何國(구생하국)고→
염불해서 어디로 가느냐 이겁니다.
구생하국고?
이미 서방에 있는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
염불해서 좋은 나라에 가야할 판인데,
이미 서방에 있으니 딴 나라 가긴 가야 되는데
어디로 가느냐 이겁니다. 어느 나라에 가느냐?
이런 말은요. 설사 이렇게 이해했다 하더라도
딴 조사들은 이렇게 표현을 못해요.
육조스님만이 이렇게 표현을 할 수가 있습니다.
동방인은
죄를 지으면 염불해서 서방에 태어난다고 하자.
그럼 서방 사람은 죄를 지어가지고 염불하면
어느 나라에 가느냐? 이겁니다. 이치상으로
당연히 어디로 가야될 것이 아니냐? 이것입니다.
凡愚不了自性(범우불요자성)하고→
어리석은 범부들은
자기 마음자리 자성을 알지 못하고,
不識身中淨土(불식신중정토)하야→
신중정토. 이 몸속에 정토가 있는 줄을 알지 못해서,
願東願西(원동원서)나→
동을 원하기도 하고 서를 원하기도 하나,
悟人(오인)은
在處一般(재처일반)이라→
깨달은 사람은 항상 처한 곳이 한 곳이다. 이겁니다.
어디에 있든, 곳은 문제가 안 된다 이겁니다.
所以(소이)로
佛言(불언)하사대→
그런 까닭에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隨所住處(수소주처)하야→
자기가 머무는 곳을 따라서, 자기가 어디에 있든,
恒安樂(항안락)이라하시니라→ 항상 안락하다 하시니라.
念念菩提心(염념보리심)이면
處處安樂國(처처안락국)이라.
제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
늘 깨어있는 마음. 곳곳이 다 안락 국토다.
염념보리심이면 처처안락국이라.
우리 한순간. 한순간 늘 깨어있는 마음.
그 菩提心(보리심). = 覺心(각심). = 道心(도심).
염념보리심이면 처처안락국이라.
안락국이 따로 없어요.
편한데가 따로 없다고요.
惺惺(성성)하게 깨어있는 마음.
실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그런 마음이면 바로 안락한 나라다.
隨其心淨(수기심정)하야 淨土(정토)라하시니
使君(사군)아 東方人(동방인)이라도
但心淨(단심정)하면 卽無罪(즉무죄)요
西方人(서방인)이라도 心不淨(심부정)하면
亦有愆(역유건)이니 東方人(동방인)이
造罪(조죄)하면 念佛(염불)로 求生西方(구생서방)이어니와
西方人(서방인)이 造罪(조죄)하면 念佛(염불)로
求生何國(구생하국)고 참 대단한 말입니다.
凡愚不了自性(범우불요자성)하고
不識身中淨土(불식신중정토)하야
願東願西(원동원서)나
悟人(오인)은
在處一般(재처일반)이라
그런 까닭에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隨所住處(수소주처)→
머무는 바의 곳을 따라서, 내가 어디에 있든,
恒安樂(항안락)이라→ 항상 안락이라.
使君(사군)이여
心地(심지)가
但無不善(단무불선)이면→
마음자리가 다만 선하지 못 할 것 같으면...
저 앞에서 10惡(악) 8邪(사)를
제가 설명을 아니 했지요?
10만 8천리를 간다. 또는
10만8천억 국토를 지나간다.
등등 그런 말을 하는데 어쨌든,
“10만억 국토!” 이런 말도 있고 그래요.
육조스님은 이것을 “10악과 8사” 그랬는데
10악= 身(신)3. 口(구)4. 意(의)3.
[身(신)3.→
殺生(살생). 偸盜(투도). 邪淫(사음).]
[口(구)4.→
妄語(망어). 兩舌(양설). 惡口(악구). 綺語(기어).]
[意(의)3.→
貪欲(탐욕). 瞋恚(진에). 邪見(사견)=痴暗(치암:어리석음).]
이것을 10가지 악이라고 그러고,
8사는
8正道(정도)를 뒤바뀐 것을 8사라고 그래요.
예를 들어서
[正見(정견) ↔ 邪見(사견).]
뭐든지 바르게 봐야 되는데 삿되게 본다든지,
[正思惟(정사유) ↔ 邪思惟(사사유).] 삿될 사자,
삿되게 사유한다.
사유가 영 비틀어지게 사유한다든지, 그 다음에
[正語(정어) ↔ 邪語(사어).] 삿된 말.
[正業(정업) ↔ 邪業(사업).] 삿된 업을 짓고,
[正命((정명) ↔ 邪命(사명).] 삿된 명.
[正精進(정정진) ↔ 邪精進(사정진).] 삿된정진.
[正念(정념) ↔ 邪念(사념).] 삿된생각.
[正定(정정) ↔ 邪定(사정).] 삿된선정.
이것이 8가지 삿된 것. 그러니까
팔정도를 뒤바꾸면 팔사가 되고,
십선을 바꾸면 십악이 되는 거고,
십악참회를 우리가 흔히 많이 하지요?
근본적으로 그것이 기본이니까요.
그것 두 가지만 바로하면
그대로 서방정토다. 그런 말이지요.
使君(사군)아
心地(심지)에
但無不善(단무불선)이면→
다만 마음에 불선이 없을 것 같으면,
西方(서방)이
去此不遙(거차불요)라→
여기에서 가기가 멀지 않은 곳이다.
若懷不善之心(약회불선지심)하면→
만약에 불선한 마음. 불선한 마음을 품을 것 같으면,
念佛(염불)로
往生難到(왕생난도)니라→
염불 아무리 한다 하더라도 저 나라에 왕생하는 것.
가서 태어나는 것이 이르기 어렵다.
그러니까
不善한 마음 가지고 아무리 염불 해 봐야
그건 뭐 소용없는 일이 되는 것이지요.
今勸善知識(금권선지식)하노니→
지금 선지식들에게 권하노니,
先除十惡(선제십악)하면→
먼저 10악을 제거하라. 살생. 투도. 사음.
망어. 거짓말 하는 말. 악담하는 말.
비단결 같은 말. 여기저기 이간질 시키는 말.
탐욕. 분노. 그 다음에 어리석음.
이것을 제할 것 같으면,
卽行十萬(즉행십만)이요→
바로 10만 리를 가는 것이요.
10만 국토. 또는 10만 리를 가는 것이고,
後除八邪(후제팔사)하면→
뒤에 8사를 제거하면, 여덟 가지 삿된 것.
삿된 견해. 삿된 사유. 삿된 말.
이런 것들을 제거할 것 같으면,
乃過八千(내과팔천)이라→
바로 8천리를 지나가는 것이니.
念念見性(념념견성)하야
常行平直(상행평직)하면→
순간순간. 염념에
性品(성품)을 보아서
우리 마음을 딱 보아 가지고서,
항상 평탄하고 평등하고 정직한 것을 행할 것 같으면,
到如彈指(도여탄지)하야→
저 서방정토에 이르는 것이 탄지와 같아,
손가락 탁 튕기는, 0.1초도 안 걸리는
이 짧은 순간에 서방에 간다는 것입니다.
탄지와 같아서
便觀彌陀(변관미타)하리라→
바로 아미타불을 보게 될 것이다.
唯心淨土(유심정토).
自性彌陀(자성미타)라고 합니다.
唯心淨土. 自性彌陀.
이런 것 가지고 많이 토론합니다.
이렇게 설명 들어도 좀 미심쩍지요?
이 극락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너무 확고부동 하니까요. 사실은 저도 미심쩍어요.
유심정토. 자성미타라고 수 없이 수없이 이야기를
해도 극락세계라고 하는 것이 너무...
불교인이든 아니든 간에 너무 일반적으로
우리 의식 속에 그 나름의 인식이 되어 있어가지고...
念念見性(념념견성)하야
常行平直(상행평직)하면
到如彈指(도여탄지)라 그래서
便觀彌陀(변관미타)하리라→ 바로 미타를 볼 것이다.
使君(사군)아
且行十善(단행십선)하면→
다만 십선을 행할 것 같으면,
10선은 10악을 바꾸는 겁니다.
살생 대신에 방생을 하고,
투도 대신에 보시를 하고,
사음 대신에 청정행을 하고,
망어 대신에 바른말 을 하고,
악구 대신에 부드러운 말 하고,
綺語(기어): 비단결 같은 말.
비단결 같은 말을 할 때는 반드시
뭔가 저의가 깔려있거든요. 그러지 말고
바르게 그냥 정직하게 순수하게 이야기하고,
이런 등등이 십선입니다.
何須更願往生(하수갱원왕생)이며→
십선을 행한다면 다시 어찌 모름지기
왕생. 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하겠는가?
왕생은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不斷十惡之心(부단십악지심)하면→
10악의 마음을 끊지 아니할 것 같으면,
何佛(하불)이
卽來迎請(즉래영청)이리요.→
어떤 부처님이 와서 청하겠느냐 이 말입니다.
마음에 10악을 끊지 못했는데,
열 가지 악한 일을 계속 하는데
어떤 부처님이 네까짓 것 데려가겠느냐 이겁니다.
아무리 염불 한다한들, 입으로 염불하고
마음으로 그 악을 못 끊을 것 같으면
어떤 부처가 할 일이 없어서 데려가겠습니까?
若悟無生頓法(약오무생돈법)하야→
만약에 무생돈법을 깨달을 것 같으면,
見西方(견서방)이 只在刹那(지재찰나)로되→
서방을 보는 것이 다만 찰라 사이에 있다.
서방세계 보는 것, 뭐 일도 아니다 이겁니다.
무생돈법. 이것은 生死(생사)가 없는,
또는 生滅(생멸)이 없는 마음의 도리를
깨닫는 것을 오무생돈법 이라고 합니다.
왜 돈법이냐? 이것은
“한꺼번에 되는 도리다.”
해석을 하면 이 뜻인데,
이 마음의 도리는 한꺼번에 됩니다.
차츰차츰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은 형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형체가 없다보니까 차곡차곡 쌓는
그런 일이 아니거든요.
아무리 오랜 어둠이라 하더라도 불을 밝히면
그 순간 다 밝아지는 것이지요. 수 천 만년 된
동굴 속의 어둠이라 하더라도 전기를 딱 켜는 순간
바로 밝아지지, 그것이 뭐 어둠의 역사가 오래 됐다고
해서 천천히 밝아지는 그런 이치는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頓法입니다. 한꺼번에 되는 것입니다.
無生頓法(무생돈법)!
생사가 없는 돈법을 깨달을 것 같으면,
西方이 只在刹那다→ 다만 찰라 사이에 있다.
不悟(불오)하면→ 깨닫지를 못할 것 같으면,
念佛求生(염불구생)하야도→
염불하고 태어나기를 구한다 하더라도,
路遙(로요)어니→ 길이 아주 멀으니,
如何得達(여하득달)이리요.→
길이 너무 먼데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가 있겠는가?
서방정토에 대한 시원한 답은 이미 나왔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또 다시 질문 하고 답하는
그런 식으로 좀 더 부연하는 그런 내용이 뒤에 있습니다.
달마대사의 공덕 문제와
또 서방정토에 대한 문제.
우리가 확실하게 이런데서 어떤 확신을 가지고
마음속에 새겨 놓아야할 그런 대목인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