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 part2 무의식과 언어
1. 욕구, 요구, 욕망
욕구 : 식욕, 수면욕, 배설욕과 같은 생물학적으로 필요한 것을 채웠으면 하는 바람을 말한다
요구: 자신의 욕구를 채워달라고 표현하는 것
욕망: 아기가 무제약 사랑을 요구할 때 이것은 충족불가하다. 욕망은 충족되지 않은 요구를 말한다. 요구에서 욕구를 뺀 것이 바로 욕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욕망은 절대로 채워질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착각을 한다. 저 차만 타면, 저여자와 사귀기만 하면, 저 책만 읽으면 욕망이 채워질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결핍은 해소되지 않는다. 그래서 또 다른 차를 사고, 또다른 여자를 찾고, 또 다른 책을 산다. 하지만 곧 깨닫는다. 그것이 헛수고라는 것을.
그런데 왜 욕망은 채워지지 않을까? 그것은 욕망이 타자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걸까?
라캉은 그 이유를 아기와 엄마와의 관계에서 찾는다. 아기는 엄마가 무언가를 결핍하고 있으면 자신이 그 결핍을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기는 엄마의 욕망의 대상이 되기를 원한다. 엄마 말씀을 잘 듣고 엄마 말대로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의사가 되는 것을 자신의 욕망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욕망은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타자에 의해 주입된 욕망이다.
현대 소비사회는 이러한 인간의 욕망을 계속하여 부추긴다. 광고는 “저 가방이 내 욕망이야”라는 착각을 계속해서 심어주고, 학벌주의는 “저 대학이 내 욕망이야”라는 착각을 심어준다.
심지어 “이런 것들은 나의 욕망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일 뿐이야”하면서 모든 욕망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명상에 잠기는 행위도,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삶도, 이타적 삶을 살겠다는 결정도, 수도자의 삶을 살겠다는 선택도 사실은 또 다른 타자의 욕망일 뿐이다.
헛된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행위 또한 또 다른 헛된 욕망일 뿐이다.
그래서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노력은 필연적으로 실패를 한다. 그런데 왜 인간은 이러한 욕망을 피할 수 없는 걸까?
그것은 욕망이란 아이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거치면서 필연적으로 짊어지게 될 운명이기 때문이다.
2.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상상계 속에는 아기와 엄마, 2자 관계만이 있다. 이때 이기는 자신이 엄마의 욕망의 대상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면 엄마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남근, 팔루스이다.(팔루스는 실제 페니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에 대한 욕망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기는 자신이 엄마의 팔루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의 이름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아버지의 이름은 바로 금지의 상징을 말한다. 이제 아기는 자신이 엄마의 팔루스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것을 바로 상징적 거세라고 한다. 이때 아기는 언어라는 상징적 질서로 들어가게 된다. 이때 비로소 아기의 주체가 형성된다.
이처럼 라캉에게 있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엄마에 대한 욕망의 자리에 상징계가 채워지면서 주체가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엄마에 대한 욕망이 있었던 빈자리가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이 빈 자리는 영원히 결핍의 상태로 남게 된다. 그래서 주체가 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어떤 결핍을 발생시킨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욕망은 본질적으로 결핍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3.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라캉의 핵심주장은 무의식이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압축과 전치
이제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 프로이트의 무의식 메카니즘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프로이트는 무의식이 꿈을 통해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데 무의식 속 이미지 하나가 꿈 속에 한 장면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의 여러 이미지가 복합적으로 중첩되어서 꿈 속에서는 한 장면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예컨대 여자, 병원, 연구 각각의 이미지가 가운을 입고 연구하는 여자로 나온다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꿈 속에서 여러 가지 무의식이 들어가는 메커니즘을 ‘압축’이라고 한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무의식, 예컨대 평소에 두려워하던 병원의 이미지가 미용실의 이미지나 빵집의 이미지와 같은 다른 친숙한 모습으로 위장되어 나오는 것을 ‘전치’라고 한다. 압축과 전치는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의 기본 메커니즘이다.
소쉬르의 언어의 구조- 결합구조와 계열구조
나는 빵을 먹는다는 문장은 “나는” 과 “빵을” 과 “먹는다” 는 말이 결합된 문장이다. 이처럼 유사한 단어들끼리 결합할 수 있는데 이것을 결합관계라고 한다.
그리고 “나는”을 바꾸어서 “너는 빵을 먹는다”, “그녀는 빵을 먹는다”로 바꿀 수도 있고, “빵을”바꾸어서 “나는 떡을 먹는다”, “나는 죽을 먹는다”로 바꿀 수도 있다.
그리고 “먹는다”를 바꾸어서 “나는 빵을 버린다”, “나는 빵을 준다”라고 바꿀 수도 있다. 이처럼 하나의 단어를 인접한 단어로 바뀌어도 결합관계가 성립될 때 이것을 계열관계라고 한다.
야콥슨의 수사학= 은유와 환유
수사학의 대표적 기법으로 은유법이 있다.
은유 : 내마음은 호수다. 마음과 호수는 분명이 다르다. 그런데 이 두 단어는 모두 “잔잔하다”는 속성을 가질수 있기 때문에 마음을 호수라고 말할 수 있다.
프로이트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융에게 “이 사람들 우리가 패스트를 가지고 온 걸 모르는 모양이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을 패스트로 은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수사적 기법으로 환유라는 것이 있다. 환유란 부분으로 전체를 지칭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술 한잔 먹자는 말은 정말로 한 잔을 먹자는 말이 아니다. 이처럼 하나의 단어가 자연스럽게 인접한 단어를 연상시키는 것이다.
라캉은 소쉬르, 프로이트, 야콥슨을 모두 소환한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의 메커니즘인 압축과 전치가 소쉬르가 말하는 계열관계, 결합관계이고, 야콥슨이 말하는 은유, 환유라는 것이다
따라서 무의식의 메커니즘은 결국 언어의 구조이며 이는 언어의 수사법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은 개별적인 인간의 의식 아래 있는 것이지만
라캉이 말하는 무의식이란 사회의 구조, 인류문화의 보편적 구조를 말한다.
이렇게 보면 라캉은 무의식을 칼 융의 “원형”이나 레비스트로스의 “ 문화의 보편적 구조”와 같이 의미를 확장한 것이다.
라캉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인류의 보편적 정신구조에 대한 이론으로 확장을 시켜버린 것이다.
소쉬르와 라캉
라캉이 말한 “무의식이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이 점을 알기 위해서는 라캉의 언어이론을 좀 더 살펴봐야 한다.
소쉬르는 언어라는 기호는 기표와 기의로 구성되어 있다. 기표는 사과라는 언어를 말하는 것이고 기의는 기표가 지시하는 이런 대상을 말한다. 사과는 영어로 애플, 일본어로 링고라고 말한다. 이말은 이것을 반드시 “사과”라고 부를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의 언어의 체계속으로 들어가면 기표와 기의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밀접하게 결합된다. 하나의 기호의 의미는 다른 기호들과의 차이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아름답다는 의미는 “빼어나다” “수려하다” “훌륭하다”라는 말과 유사하다는 관계와 “밉다” “못생기다”라는 말과 반대말이라는 관계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표와 기의 중에 기의가 우선한다는 것이다. 사과라는 언어는 실제 대상인 사과와 결합되어 있다. 먼저 실제 대상인 사과가 있으니까 이것을 지시하기 위해서 “사과”라는 말을 한다.그러니 기의가 기표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라캉은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자의적이라는 것은 받아들이지만 이러한 결합이 동전의 양면과 같이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반대한다. 기표와 기의 사이에는 장벽이 있다. 그래서 기표는 기의에 닿지 않고 계속해서 미끄러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항소라는 말에는 상소가 들어가고 상소를 찾아보니 재심이라는 말이 나온다. 항소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상소의 의미를 알아야 하고 상소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재심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기표는 기의에 닿지 않고 계속해서 미끄러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기표가 다른 기표로 대체되면서 이러한 기표들 사이의 차이에서 의미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쉬르는 기의가 기표에 우선한다고 생각했지만, 라캉은 기표가 기의에 우선한다고 보았다. 기의가 있기 때문에 기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표가 있기 때문에 기의가 있다는 것이다.
첫댓글 열공!!!
나는 빵을 먹는다 겉이 허해서 속에 바람을 넣는다 드러난 세상은 허하므로 나를 보고 호구가 되라 한다 만만한 뻥쟁이와 구멍난 가슴들을 기꺼이 채워줘야지 내핵과 외핵으로 꽉 채운 지구도 배가 고파 지각판으로 늦은 한숨을 토한다 자, 자신은 꿀꺽 삼키고 감각만 기억한다 죽음도 가져가지 못하는 남겨진 빵을 위해 총을 빵, 쏘는 겁쟁이도 있다 늦기전에 드러난 욕심을 비양심이 불변하기 전에 썩어버리는 결심들 발효되는 무의식들을 위해 뻥, 차는 발 달인도 있다 그래서 축구장은 지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뻥쟁이들이 만든 욕구분출의 장이다 나와 함께 같이 먹지 않을래? 식구를 늘려 이 업을 이어가야 해 그저 사랑과 미움을 빵빵하게
천천히 이해하며 다시 읽어야겠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