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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The Man Standing Next, 2018
한국영화, 장르:드라마, 개봉:2020.01.22
감독:우민호, 원작:김충식, 제작:하이브미디어코프,젬스톤픽처스,
주연:이병헌,이성민,곽도원,이희준,김소진,
관객:3,226,090명(2019.01.27.)
1. “10.26사태”
“1026사태”로 불리우는 “박정희 암살사건”(궁정동사건)은 1979년 10월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암살한 사건을 말한다. 사건당일 박정희대통령은 대북방송용 KBS당진 송신소 개소식과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한 후 궁정동 안가에서 차지철, 김계원 비서실장, 김재규와 함께 연회를 개최했다. 당일 행사에서 의도적으로 김재규를 제외시켰던 차지철 경호실장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언제나 각을 세우고 있었다. 김재규는 김계원 비서실장에게 박정희와 차지철을 살해할 것이라는 계획을 미리 알렸다.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가 심수봉(가수)과 신재순(모델)에게 보안 계약서 작성을 지시했다. 박정희는 정치경제적문제로 인한 민중소요사태를 진압하지 못한 이유와 신민당에 대한 온건한 태도를 이유로 김재규를 추궁했다. 평소 강경파였던 차지철은 탱크로 밀어 버려야 한다고 강경기조를 유지했다. 저녁 7시10분경, 김재규가 연회장에서 잠간 나와 당시 육군참모총장 정승화와 중앙정보부 2차장보 김정섭이 대기중인 가동에서 양해를 구한다. 7시30분, 김재규는 중앙정보부 박선호 의전과장에게 정인형 경호처장과 안재송 경호부처장을 처단하라고 지시하고, 중앙정보부 수행비서 박흥주에게도 경비원과 주방 경호원을 모두 처단하라고 지시한다. 7시38분, 김재규가 다시 연회장으로 복귀하여 심수봉의 노래가 끝나고 신재순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순간, 7시41분, 김재규가 차지철의 오른쪽 손목을 총으로 쏘고, 이어 박정희의 가슴을 쏘아 치명상을 입힌다. 그와 함께 동시에 박선호와 박흥주도 사건을 감행한다. 화장실에 은둔했던 차지철이 경호원을 찾으러 나왔다가 다시 김재규의 총을 맞고 사망한다. 김재규는 다시 박정희의 후두부에 총을 쏘았다. 대통령 비서실장 김계원은 연회장의 대기실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동에 있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김정섭 중앙정보부 2차장보도 20여발의 총성을 듣고 매우 당황해 하였지만 후속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사건 후 김재규는 정승화, 김정섭과 함께 육군본부로 향하였다. 김계원은 박정희의 시체를 국군서울지구병원으로 긴급후송하여 노력했지만 이미 사망한 후였다. 박정희 사망후 계엄사령관이 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은 전두환을 국군보안사령관 및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하고 사건관련자 조사를 한다. 10월27일, 김재규를 체포하고 1980년 3월6일, 현역군인 신분이었던 박흥주는 총살형, 5월24일, 김재규와 박선호, 유성옥, 이기주, 김태원은 사형선고를 받고 사라졌다. 김재규는 마지막 변론에서 자유민주주의 회복과 국민들의 희생확산저지, 적화통일의 방지, 한미동맹의 회복, 독재국가 이미지 일신을 위해 거사를 일으켰다고 말하였다.
1972년의 유신체제는 억압과 비민주적 정치를 심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77년, 미국 카터 대통령은 미군철수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한국의 인권상황을 주시하였다. 자주국방을 주창한 박정희는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면서 미국과의 갈등은 증폭되었다. 이어 터진 박동선게이트는 한미관계를 더욱더 악화시켰다. 국내의 민주화운동과 열망은 재야세력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터져 나와 전국민적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1978년, 동일방직사건과 함평고구마수매사건을 계기로 10대 국회의원선거는 신민당(야당) 32.8의 지지로 공화당의 31.7%를 추월하였다. 1979년 8월의 YH사태는 노동소요가 절정에 이른 사건으로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예고한 것이었다. YH노조 여공들이 생존권 보장을 위해 신민당(총재,김영삼) 당사로 진입해 농성을 감행하였다.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8월11일, 경찰은 여공들을 강제로 해산하는 작전을 감행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김경숙 노조원이 옥상에서 투신자살하는 중대사건이 발생하였다. YH사태를 계기로 민주화운동은 보다 거세게 일어 났고 1979년 5월 이철승후보를 이기고 당선된 김영삼총재는 박정희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철승계 후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민당 대의원 2명의 투표권 무효를 주장하여 법원은 김영삼 총재직 박탈을 결정하였다. 국회 또한 1979년 9월16일자 뉴욕타임즈 기자회견을 빌미로 10월4일, 국회의원직 박탈을 가결하는 무리수를 사용하였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1979년 10월, 부산, 마산, 창원에서 시위가 벌어졌고 부마사태로 확산되었다. 10월15일, 부산대학교를 중심으로 고신대, 고등학생, 전문대생과 일반인들까지 가세한 시위대가 곳곳에서 경찰들과 충돌하였고, 17일, 부산대 휴교령후 소요는 더욱더 확산되며, 경찰서, 파출소, 세무서, 신문사, 방송국까지 투석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10월18일, 부산지역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고 공수부대와 군 병력이 투입되어 시위대를 강제진압하였으며, 20일에는 마산, 창원지역에 위수령을 발동하였다. 부마사태는 정권내부의 시각차와 대응의 간격을 초미한 갈등으로 이어지게 하였고 결국 10.26사태라는 오명으로 이어졌다.
10.26사태 후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은 제주도를 제외한 전지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10월30일, 군부 고위층에 의해 유신헌법 폐기를 결정하였다. 결과적으로 10,26사태는 유신체제를 전복시키고 전두환정권을 수립하는 계기가 되었으나 민주화 의거는 분명 아니었다. 김재규의 변론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다. 김재규는 사태 직후 정승화와 연대를 시도하였으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거부로 쿠데타는 불발이었다. 10.26사태는 유신체제를 종식시켰지만 권위주의 통치시대의 연장선을 가져왔고 군부정권을 지속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하였다. 결국 12.12쿠데타로 전두환이라는 신군부의 탄생과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촉발시킴으로서 민주화의 길은 여전히 험로위에 서 있었다.
2. 영화 “남산의 부장들”
1979년10월26일, 궁정동 안가, “김규평”(이병헌역)은 부하들에게 나라를 염려하며 주머니에 은닉한 총을 보여 준다. 김규평은 오늘 모두 끝낸다고 말한 후 안가로 진입한다. 그리고 총성이 울린다.
40일전 미국, 미 하원의회 청문회가 개회되고 “박용각”(곽도원역)이 증인석에 있다. 박용각이 자신은 KCIA부장으로 인권유린이 지속되는 조국에 대하여 증언하고 정권의 최상층부를 고발한다고 말한다. 한편, 김규평이 “박대통령”(이성민역) 보고를 위해 이발소를 찾는다. 김규평이 “박부장”(곽도원역)이 기자들과 FBI에 회고록 내용을 이야기 했다고 보고한다. 박대통령은 배신자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데 “곽상천”(이희준역) 경호실장이 박부장을 잡아와 청와대 뒤뜰에 묻자고 강조한다. 김규평이 미국이 보호하고 있으므로 자신이 미국으로 가서 조용히 처리하겠다고 말한다. 박대통령이 김규평과 집무실로 이동하면서 회고록부터 회수해 오겠다는 김규평의 말을 듣고 자신이 그만 두기를 바라는지 되묻는다. 김규평은 자신은 대통령곁을 지킬 것이라고 말한다.
9월8일, 미국, 중앙정보부 함대용 요원이 김규평을 맞이한다. 함대용은 박용각이 “심여사”(김소진역)와 함께 청문회에 갔다고 보고한다. 김규평은 회고록부터 회수해야 한다고 박용각에게로 이동한다. 박용각이 침을 맞고 누워 있다가 인기척을 듣고 총을 들었다가 김규평인지 확인하자 총을 내려 놓는다. 박용각이 중앙정보부에 간 이유를 물으며 곧 자기처럼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은 회고록으로 노벨상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느스레를 뜬다. 김규평은 돈을 줄테니 회고록 원고를 달라고 말한다. 박용각은 원고를 내놓으면 죽는다면서 거절한다. 김규평은 내일 출국한다면서 회고록을 주지 않으면 진짜 죽는다고 경고한다. 김규평이 레스토랑에서 “데보라 심”(김소진역)을 만난다. 데보라 심이 박용각을 앞세워 나라를 판 것인지 김규평에게 묻는다. 김규평이 돈뭉치를 건네며 이제부터 심여사가 박용각을 책임지라고 말한다. 다음날, 링컨 메모리얼 파크에서 박용각은 김규평에게 회고록 원고를 건넨다. 김규평은 모든 것이 잠잠해 지면 한국으로 돌아 오라고 말한다. 박용각은 박통이 개인비밀장부를 운영한다는 정보가 있는데 미국 CIA에서는 이아고라고 부른다. 이아고가 스위스 자금내역을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박용각은 혁명시기부터 박통(박대통령)이 사람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들 가운에 이아고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박용각은 미국에서 박통을 1년내에 끝낼 것이라고 말한다. 박용각은 우리가 목숨을 걸고 혁명한 이유를 묻고 김규평은 말없이 돌아간다.
9월20일, 궁정동 안가, 박대통령이 회고록의 제목 “혁명의 배신자”를 바라보며 고성을 지른다. 박대통령은 김규평에게 박용각이 한 말을 묻는데 김규평은 박용각을 용서해 달라고 말한다. 김규평이 박대통령에게 이아고에 대해 들어보았는지 묻는데 박대통령은 되려 그게 무엇인지 묻는다. 박대통령은 자신이 5사단장 부임후 김규평이 36연대장일 때 그때 먹던 막사(막걸리+사이다)가 맛있었다면서 오랜만에 막사 한잔 하자고 말하며 웃는다. 대통령 집무실에 도청장치가 발견되었다고 곽상천 경호실장이 난리를 친다. 김규평이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시킬 것이니 경호실은 철수하라고 말한다. 순간 박대통령이 집무실로 들어오자 곽상천 경호실장이 UN에 알려야 할 사건이라면서 오버액션을 한다. 김규평이 미국대사관을 찾아 로버트 미국대사에게 항의를 한다. 로버트 대사가 발뺌을 하자 UN에 알리겠다고 분노한다. 로버트 대사는 박통의 스위스 비밀계좌에 대한 내용도 함께 다루자고 대응한다. 김규평은 이제 박통이 아이가 아니라고 말하며 돌아간다. 김규평의 비서가 곽실장과 함께 온 사람이 대학교수로 보안사 도청팀 훈련교수라고 보고한다. 비서가 도로에서 마주오는 탱크를 발견하고 곽실장이 탱크를 또 돌린 것 같다고 말한다. 김규평이 차에서 내려 화를 낸다. 박통 비서실장이 김규평에게 곽상천이 과잉충성으로 탱크를 자주 돌려 민심이반이 계속된다고 말한다.
곽상천 경호실장이 “전두혁”(서현우역)과 대화중에 전두혁을 보안사령관으로 추천할 때 김규평이 반대했다고 귀뜸한다. 비서가 경호실장에게 김부장이 찾아 왔다고 보고하는데 없다고 하라고 짜증낸다. 김규평이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데 전두혁이 인사를 하고 나간다. 김규평이 국회에서 또 병정놀이를 하느냐고 중단할 것을 요구하자 곽실장이 중앙정보부에서 노니깐 자신이 나선 것 뿐이라고 대꾸한다. 김규평은 중정은 이제 그따위를 하지 않는다고 분노한다. 김규평이 곽실장에게 탱크 한번만 더 돌리면 경호실부터 탱크로 밀어 버리겠다고 경고한다. 김규평이 곽상천에게 “경호나 잘해라 곽중령”이라고 말하는데 곽중령이 진노하며 총을 겨눈다. 김규평이 곽상천의 손을 잡고 자신의 권총을 겨누며 여기는 니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고함을 친다.
9월22일, 서울 명동,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대학교수를 감시중이다. 대학교수가 YS(김영삼) 총재와 뉴욕타임즈의 인터뷰를 녹화한 후 늦은 밤 테이프를 곽상천에게 건넨다. 곽상천은 교수에게 회고록을 넘겨준다. 대음날 곽상천이 박통에게 김영삼이 뉴욕타임즈 기자회견한 사실을 보고한다. 박통이 김규평 실장에게 알고 있었는지 묻고 김규평은 인터뷰만 갖고 제명하면 국민들이 소요를 일으킬 것이라고 보고한다. 그순간 전두혁이 집무실안으로 들어와 박통에게 귓속말을 보고하며 봉투를 건넨다. 박통은 봉투를 김규평에게 던지며 나가 버린다. 홀로 남은 김규평이 주간지를 주워 드는데 전 중앙정보부장 회고록 기사가 나와 있다. 한편, 미국에서 박용각이 회고록 공개된 것에 고민하고 있다. 박용각은 FBI와 김규평에게 주었는데 FBI가 유출한 것 같다고 의심한다. 생각하던 박용각이 박통이 죽으면 미국에서 누구를 밀것인지 심여사에게 묻는다. 박용각이 김규평은 오래 못간다면서 2인자는 살려 두지 않는 사실을 주지한다. 박용각 부장은 예전의 중정시절을 회상한다. 박대통령이 3선개헌 반대 의원들로 인해 짜증을 낸다. 박대통령은 박용각에게 임자 하고 싶은대로 하라면서 강력대응을 지시한다. 그후 박용각이 개헌반대 의원들을 중정으로 체포해 고문하여 찬성을 종용하였다. 그후 박대통령이 박용각에게 3선 개헌한 수고를 인정하면서 당분간 쉴 것을 지시한다. 박대통령은 의원들에게 한 행동을 박용각에게 전가하면서 문제를 제기한다. 박용각은 박대통령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 강변하는데 박부장이 퇴근할 때 돈 보따리는 두고 가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9월26일, 남산 중앙정보부, 김규평 부장이 대학교수 정보 보고를 받는다. 보안사 도청팀 훈련교수로 워싱턴에서 박용각 부장 도청도 했다고 말한다. 김규평은 교수에게 박용각 도청사실을 묻는다. 교수는 미국에서 제임스 유라는 중정사람의 의뢰로 도청한 사실을 전하고 보안사에서 김규평 부장 도청지시를 받았다고 말한다. 김규평은 제임스 유가 유동훈으로 곽상천 실장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프랑스 파리, “주불한국대사”(김홍파역)를 만난 유동훈은 이야기를 나눈다. 함대용이 유동훈을 감시하면서 촬영을 한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박대통령은 참모진과 집무실을 나선다. 곽상천이 박부장이 대통령을 끌어내려고 미국과 협력한 것 같다고 정보보고를 하며 박부장을 죽여 버리겠다고 말한다. 김규평 부장이 박대통령에게 보고할 내용이 있다고 말하는데 박대통령이 지나쳐 버린다.
10월1일, 파리 한국 대사관, 사무실로 귀소한 유동훈이 전화를 한다. 늦은 밤 빈 사무실안으로 함대용이 들어와 유동훈 책상밑에 숨겨둔 녹음기를 확인한다. 윤대사가 박부장을 파리로 초청하기로 한 내용이 녹음되어 있다. 10월2일, 미국대사관에서 파티가 열린다. 데보라 심이 로버트 하원의원과 함께 참석한다. 혼자 있는 김규평에게 미국대사관 터가 명당이고 청와대는 터가 않좋다면서 주인이 바뀔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파티에 참석한 곽상천은 로버트와 대화하며 전두혁을 소개한다. 함대용이 김규평에게 전화를 하고 녹음내용을 보고하며 유동훈이 곽실장의 지시를 받고 있다고 말한다.
10월4일, 파리 방돔 광장, 박부장이 파리에 도착한 후 기다리던 윤대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간다. 도쿄에서 황인철 총리가 오기로 했다고 전하며 박용각이 미국에 가져간 돈만 회수하면 용서한다고 말한다. 윤대사는 김규평이 곽실장에게 밀려 청와대 조회도 못들어간다고 귀뜸한다. 중앙정보부에서 사진을 보던 김규평은 박용각과의 대화를 상기한다. 파리 중정요원의 전화를 받은 김규평은 유동훈이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총을 구했다는 보고를 듣는다. 중정요원이 지시를 내려 달라는 순간 박대통령이 김규평의 사무실을 찾는다. 김규평이 수화기를 내려놓고 사진을 엎는다. 박대통령이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사람은 우리 뿐이라면서 술한잔 하자고 말한다. 박대통령이 자기 다음에 김규평이 자리를 이어라고 말한다. 김규평은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말한다. 박대통령이 박용각은 어떻게 할 것인지 다시 물으며 임자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강한 압박을 한다. 파리에서 함대용은 청부업자를 만나 총을 확인한 후 알제리인 3명의 용병을 구하여 김규평에게 보고한다.
10월7일, 파리 드골공항, 심여사가 함대용을 만나 자동차로 이동한다. 심여사는 박용각을 밖으로 유인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계약과 다르다고 짜증을 내자 함대용은 다시 워싱턴으로 돌아가도 무관한데 대신 한국에 오는 것은 금지라고 잘라 말한다. 한편, 서울에서 박대통령이 17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파리에서 유동훈이 킬러에게 총을 건네고 윤대사가 박부장을 407호실로 데려 갈 것이라고 정보를 알린다. 킬러는 407호실에서 미리 대기하고 윤대사는 카지노에 있는 박용각을 찾는다. 윤대사는 박용각에게 황인철 총리가 강풍으로 비행기가 연착되어 늦다고 기다리자고 말한다. 유동훈이 카운트로 향하던 윤대사에게 407호로 데려 가라고 알린다. 심여사가 카지노에서 게임중인 박용각에 판돈을 다 걸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 데보라 심이 존슨과 함께 왔다면서 미 대사관파티때 하원의원들은 김규평과 미팅했다고 말한다. 박용각은 윤대사가 김규평은 끝이라고 말한 사실을 전한다. 데보라 심은 건너편 레스토랑에 존슨과 하원의원들이 기다린다고 가자고 말한다. 박용각은 자신이 여기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묻고 심여사는 김규평이 알려 주었다고 말한다. 카지노로 돌아온 윤대사가 박용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찾는다.
박대통령의 좌우측에 곽상천과 김규평이 앉아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곽실장의 부하가 들어와 귓속말을 하자 곽상천이 놀라 김규평을 보며 밖으로 나간다. 파리에서 박용각이 데보라 심과 함께 걸어 가던 도중 데보라의 모자가 바람에 날려 간다. 데보라가 모자를 찾아 가는데 대기중인 알제리인들이 나타나 박용각을 붙잡아 어디론가 데려가 버린다. 박용각이 납치되자 유동훈이 밖으로 나와 총을 쏜다. 다른 자동차에서 지켜보던 함대용이 유동훈의 추격을 막으며 현장을 떠나 버린다. 잠시 기절했던 박용각이 정신을 회복하고 잠든 척 하다가 남자들이 느슨한 틈을 노리며 공격한다. 박용각이 도망하는 것을 보며 남자들이 추격하며 총을 쏜다. 함대용 또한 박용각이 도망한 사실을 듣고 도망로를 확인하며 어디선가 기다린다. 박용각이 외곽지역 마을 도로변에서 차를 발견하고 손짓하는데 함대용이 내린다. 박용각이 허탈한 웃음을 짓는데 함대용이 총을 쏘아 버린다. 알제리인들이 박용각의 흔적을 찾지 못하도록 뒤처리를 깨끗하게 마무리한다. 공연장에서 박대통령과 관람중인 김규평이 박용각의 처리 소식을 듣는다.
10월18일, 박대통령이 부산소요사태 상황보고를 받는다. 김규평은 김영삼 제명 철회를 하고 대화로 풀 것을 제안한다. 곽상천이 화를 내며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탱크로 밀어 버리자고 말한다. 김규평은 그렇게 되면 마산까지 확대된다고 우려를 표한다. 전두혁이 1공수여단을 투입하여 조기진압하는 것이 맞다고 말한다. 박대통령은 부산지역에 계엄을 선포하고 1공수여단을 투입하라고 지시한다. 회의후 김규평은 박대통령에게 박용각이 실종되었다고 보고한다. 곽상천이 안에서 나누는 대화를 엿듣고 있다. 박대통령은 박부장은 어떻게 되든 가져간 돈은 반드시 찾아오라고 지시한다. 김규평이 박대통령에게 김영삼을 자신이 만나겠다면서 계엄령은 철회해 달라고 부탁한다. 박대통령은 검지와 중지를 펼쳐 담배신호를 보내는데 김규평에게 담배가 없다. 박대통령이 곽상천에게 담배 가져오라고 말하고 곽상천이 담배를 드리며 이야기를 나눈다.
미국대사관에서 로버트 대사가 CIA에서 박용각 실종된 사건으로 난리라고 말하며 파리 윤대사와 관련된 것 같다고 말한다. 로버트 대사가 김규평에게 KCIA 관련성여부를 묻는데 관련없다고 말한다. 로버트 대사는 박통시대는 끝났다면서 다음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귀가길, 궁정동 안가에서 행사가 있는데 박대통령이 곽실장만 불렀다고 말한다. 비내리는 밤 김규평은 궁정동 안가로 은밀히 들어간다. 김규평이 옆방 옷장안으로 들어가 도청장치를 통해 대화를 엿듣는다. 곽실장이 박대통령에게 부산에 1공수여단을 투입해 진압중이라고 보고하며 김부장은 이제 끝이라고 덧붙인다. 곽실장은 부산에서 방송국까지 불태웠다는 보고를 듣고 확인하고 오겠다면서 방을 나간다. 김규평이 옷장에서 팔이 옷장에 부딪히며 소리를 낸다. 박대통령이 순간 부르던 노래를 멈추고 전화기를 들고 전화를 한다. 박대통령이 김부장과 미대사가 나눈 이야기를 묻는다. 박대통령은 미국이 좋으면 미국가서 살아라고 말하며 김부장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물어본다. 박대통령이 김규평은 친구도 죽인 놈이라면서 임자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말한다. 집무실로 돌아온 김규평이 생각에 잠긴다. 비서는 김규평에게 부산에 다녀와야 할 것 같다고 보고한다.
10월24일, 김규평이 부산으로 향하는 헬기에서 부산에서 마산까지 시위가 확산되었다는 보고를 받는다. 김규평은 박용각과 로버트 주미대사, 심여사가 똑같이 했던 말을 상기한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박대통령이 참모진들과 회의를 한다. 김규평이 부산에서 돌아와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를 보고하며 대국적으로 정치할 것을 보고한다. 곽상천은 캄보디아는 300만명을 죽였는데 우리라고 못할 것 없다는 말을 서슴치 않고 내뱉는다. 박대통령은 발포명령을 내린놈은 강제진압으로 사형당했지만 내가 직접 발포명령을 내린다면 나를 사형시킬 사람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삽교천 준공식 참석을 위해 박대통령이 참모진들과 이동하는데 곽실장이 김규평을 막아서며 박대통령이 남아 있으라고 했다고 전한다. 집무실로 복귀한 김규평이 남산 안중근의사 제막식은 동생에 금이가 취소해야 한다는 보고를 받는다. 김규평이 곽상천의 전화를 받는다. 궁정동 안가에서 대행사가 있으니 참석하라는 이야기다.
10월26일, 궁정동 안가, 김규평은 “참모총장”(김민상역)에게 연락하라고 지시한 후 궁정동 안가로 간다. 김규평이 비서실장과 함께 박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잠시후 박대통령이 곽상천 경호실장과 함께 도착한다. 박대통령이 김규평을 위한 자리라고 말하며 위로를 한다. 김규평은 술을 마신뒤 일어나 참모총장을 만나러 간다. 김규평이 갑자기 박대통령이 찾아 왔다고 말하며 식사는 다음에 하자고 말한다. 김규평은 금고에서 총을 꺼낸후 주머니에 넣고 박대통령에게로 간다. 김규평은 나라가 잘못되면 다 죽는다고 부하들에게 말한다. 비서가 김규평에게 경호원들도 많고 거사일을 다음날로 미룰 것을 제안한다. 김규평은 보안문제상 오늘밖에 없다고 말한다. 안가로 불려온 가수가 노래를 부른다. 김규평이 방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신다. 김규평의 부하들이 대통령 경호원이 머무는 곳에서 동향을 주시한다. 김규평이 박대통령에게 술을 한잔 올려 드리며 그날 새벽 한강을 건널 때 이야기를 한다. 박대통령은 그날 헌병대 저지선에 도착했을 때 총알이 날아 왔다면서 그때 김규평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기억한다. 김규평은 빈잔에 술을 가득 담고 자신의 술잔을 채운다. 김규평은 먼저간 박용각은 친구였다고 말한다. 김규평은 박대통령옆에 버리지같은 곽상천이 있기 때문에 나라가 이모양이라고 분개한다. 김규평은 박대통령에게 이제 그만 하야해야 한다고 말하자 박대통령이 친구나 죽인 놈이라고 고함을 친다. 김규평이 우리가 왜 혁명을 했는지 되물으며 정신을 차리라고 고성을 지른다. 곽상천이 분개하며 김규평을 노려보자 김규평이 총을 꺼내 곽상천을 쏘아 버린다. 이어 박대통령에게도 한방을 날린다. 총성이 울리자 중앙정보부 부하들이 경호원들을 일시에 제거한다. 김규평이 곽상천에게 총을 쏘려 하는데 기능고장이 생겨 장전이 불발된다. 곽상천이 그 순간 몸을 피하고 김규평도 아래층으로 내려와 다른 총을 받는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김규평이 곽상천과 격투 끝에 총을 쏘아 죽인다. 김규평이 혁명의 배신자를 처단한다고 박대통령을 다시 쏜 후 밖으로 나온다. 김규평이 참모총장을 데리고 남산으로 돌아가자고 지시한다. 참모총장은 김규평에게 무슨일이 있는지 상황을 물어본다. 김규평은 박대통령이 저격당했다고 말한다. 순간 참모총장은 김규평이 저격한 것을 눈치채고 육군본부로 가서 계엄령을 선포하며 육본으로 자진해서 찾아 온 김규평을 긴급 체포한다. 한편 전두혁은 대통령 집무실 금고문을 열고 현금, 금괴, 스위스 은행계좌서류를 챙겨 떠나 버린다.
대통령저격 47일후, 신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다시 장악해 버린다. 영화는 끝이 났다. 1979년 10월26일, 궁정동 안가에서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박정희와 박정희의 사람들이 벌인 피의 역사를 재조명한다. 김재규의 정당성을 변호하려는 영화는 조금 각색되어 역사를 인식하는데는 어긋난 장면이 있다. 결국 욕심이 죄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주는 증거로서의 영화다. 그리스도인은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많은 교훈을 얻는다. 권력무상과 함께 잘못된 참모의 조언이 얼마나 많은 오류를 낳게 되는지 사울의 한 장면을 다시 보는 듯하다. 결국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에게 진정한 사과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채 죽음을 맞이 하였다. 물론 그가 이룩한 산업화와 경제발전의 성과는 놀랄만한 업적이 분명하다. 그러나 1970년까지만 했어야 하는 그의 재임기간을 늘리지만 않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자족함이 꼭 필요하다. 넘쳐서 흘러 내리는 것 보다 약간 모자라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기쁨인지 삶을 통해 끝없이 알아가야 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욕심이 있다. 스스로는 욕심이 아니라 성취라고 말하지만 성취뒤에 가려진 검은 그림자는 늘 욕심일 뿐이다. 욕심을 내려 놓으면 모든 국민들로부터 존경심을 얻고 신뢰함을 얻으며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다. 이것이 남산의 부장들에게 없는 자족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