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악마의 트릴
김 현 임
나치 치하의 폴란드가 영화의 무대다. 졸지에 가족을 잃고 도망자 신세가 되어, 폐허가 된 건물에 숨어들어 통조림 몇 통으로 간신히 생을 이어가는 스필만. 그는 유태계 피아니스트로 독일 장교에게 은신처가 발각된 후, 말 그대로 악마와의 거래를 한다. 자신의 손끝에 온 영혼을 실어 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피아노 연주를 펼치는 것이다. 전쟁 막바지의 참혹한 풍경에 퍼지던 너무도 고혹적이던 피아노 선율이라니! 이처럼 절묘한 조화를 그 아니면 누가 부릴 수 있을까? 명장名匠로만 르윈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의 감명이 채 사라지지 않아서 일까? ‘미성년 성추행 혐의’라는 불명예스런 죄목으로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노감독의 처지가 딱하다.
우리로 하여금 찬탄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뛰어난 예술가들의 삶에는 불가사의해 보이는 부분이 있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게 악마와의 거래설이다. 23살의 작곡가 타르티니의 꿈속에서다. 타르티니 곁으로 조용히 다가온 악마는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의 영혼을 사고 싶다” 이어 만약 네가 그 거래를 허락한다면, 너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겠다는 악마의 제의에 솔깃해, 타르티니는 선뜻 자신의 영혼을 판다. 악마는 타르티니의 바이올린을 집어 들고 연주를 시작했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아주 절묘한 음악, 환상적인 선율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매혹된 타르티니는 그만 퍼뜩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서둘러 오선지를 꺼내어 그를 도취시켰던 꿈속의 곡조들을 옮겨 적었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게 불후의 명작 ‘타르티니의 바이올린 소나타 g minor’ 일명 ‘악마의 트릴’이다. 대중들이 자신에게 쏟는 끝없는 칭송에 타르티니는 손을 내저으며, 꿈속에서 자신이 듣던 음악과는 비교도 안 된다고 고백했다던가? 또 한 사람은 로버트 존슨이다. 가창, 연주, 작곡 등에 놀라운 조화를 실현한 로버트 존슨은 대중음악사상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델타 블루스의 제왕’이라는 명성과는 달리 27세의 나이에 요절, 당시 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초능超能의 음악적 재능을 얻었다는 소문이 파다히 번졌다. 타르티니와 흡사한 이른바 영혼 매매설이다.
단 두 번의 녹음 세션에 그가 남긴 곡이라야 불과 29곡, 하지만 역사상 가장 중요한 블루스 맨으로 존경 받고, ‘록큰롤의 할아버지’라는 명성까지 얻는다. 그런 그가 주술적 신화의 거래 당사자로 끊임없이 소환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베일에 싸인 짧은 생애와 시대를 앞서 간 음악 때문이다. 생전의 그는 공연 도중 갑자기 돌아앉아서 노래를 부르거나, 부르다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가는 등의 이상 행동을 자주 보였다던가. 그는 음악과는 거리가 먼 노동자 출신이었다. 이곳저곳의 농장을 전전하며 힘겨운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우연히 들른 한 극장식당에서 당시 유명블루스 가수인 선 하우스와 윌리 브라운의 무대를 접하게 된다. 두 사람에 게 매료된 그는 농장 생활을 접고, 극장에 취직해 청소와 잡일을 도맡았다.
그런데 일개 잡역부에 불과하던 존슨이 어느 날부터 갑자기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것도 맹활약을 하게 된다. 1936년부터 1938년 사망할 때까지의 2년 동안 모두의 이목을 사로잡는 놀라운 재능을 펼친다. 악마와의 거래라고 의심이 들만큼의 천재적 음악성을 발휘한 것. 게다가 뜻밖의 사고로 요절하자, 분명 그의 재능은 악마와의 거래로 얻은 결과물이라는 세인의 억측까지 받게 된 것이다. 희대의 살인마이자 기타리스트였던 찰스 맨슨, 비틀즈의 열렬한 팬이었던 그는 자신도 비틀즈처럼 되고 싶었다. 하지만 대중들은 외면했고, 폴란스키가 거주하던 집의 전 주인이었던 음악평론가는 찰스 맨슨의 음악에 악평을 가했다. 그 이유로 폴란스키의 집을 그의 집으로 오인한 맨슨의 추종자들은 희대의 살인극을 벌인다.
잔인하기 짝이 없는 무단 침입자들은, 폴란스키의 아내 샤론 테이트를 비롯해 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를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한다. “당신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대답해 줄 수 있습니까?” 라고 묻는 인터뷰에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온갖 해괴한 표정을 연출하며,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 나는 부랑자, 거지, 떠돌이 일꾼, 나는 박스 카, 나는 와인 통, 만약 네가 나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온다면 날카로운 면도칼이 될 수도 있지 (I am No bady, I’m a tramp, bum, hobo, I’m a boxcar, I’m a jug of wine, And a straight razor get too if you close to me)”라고 했다던가?
얼마나 악마적인 표정을 지었는지 보는 사람에 따라서 충격을 받을 있으므로, 시청 시 각별한주의를 요한다는 경고까지 붙었을까? 자신의 운명에 치명적 상처를 입힌 가해자 찰스 맨슨과 마찬가지로, 범법자가 되어 도망자 신세가 된 노감독 로만 폴스키. 그는 유대인 수용소에서 어린 나이로 부모님의 무참한 죽음을 목격했고, 아내와 가족, 친지들을 끔찍한 사고로 잃어 이상성격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동정론이 일기도 한다. 재능도 행운과 마찬가지로, 잠시 우리 곁에 날아왔다가 훨훨 날아 가버리는 금빛 나비일까? 자신의 힘으론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에 이르러 무릎을 꿇고 만 그 순간, 울먹이며 간절히 신을 부르다가, 대답 없는 신 대신 악마에게 영혼마저 파는 무리수를 두고 마는가? 공연 후 빗발치는 앙코르 요청마저 성에 차지 않는 갈급증. 매일매일 자신에게 이변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예술가들은 감히 악마와의 거래를 튼다. 그들은 무엇을 위하여 이리도 과도한 일을 획책하는 것인가? 문득 되들어보는 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 선율에 겹치는 이런저런 단상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