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의 민본사상”
정도전은 나라의 근본은 바로 백성이라고 보았습니다. 조정이나 왕 역시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고 본 것이지요. 정도전의 민본사상은 맹자의 사상과 소재동에서의 백성들과의 만남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백성의 삶이 가장 중요하기에 그 삶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나라나 조정은 충성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본 것이지요. 이러한 정도전의 민본사상을 시대의 다양한 인물들과 비교함으로써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충의 대명사인 정몽주입니다. 정몽주는 정도전보다 5살 연상이었으며 정도전과는 이색 문하의 학문적 동지이자 정치적 동지였습니다. 정도전은 백성을 위해 나라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자 한 반면 정몽주는 백성을 위한 충의 가치를 끝까지 지켜냅니다. 두 사람은 같이 개혁하고자 했지만 같이 혁명하지는 못했습니다. 정도전과 정몽주 두 사람의 가치와 진정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기에 어느 한 사람의 손을 들어주기 어렵습니다. 이 점에 대해 학생들과 깊이 토론하고자 합니다.
정도전의 민본사상은 후대에 세종대왕의 민본사상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많습니다. 정도전은 재상 중심체제를 통해 왕권을 최대한 견제하여 시스템을 통해 민본의 가치를 지켜내고자 했습니다. 세습되는 왕권은 검증된 관료조직을 통해 합리적으로 견제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지요. 이점은 세종 시기에 의정부 서사제로 구현됩니다. 세종은 태종의 6조 직계제가 지나치게 왕권을 강화하고 왕의 업무를 집중시키기에 의정부의 재상들이 합리적으로 토론하고 주요 사항을 결정하도록 한 것입니다. 또한 민본의 강조는 정도전, 세종 두 사람 다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고 있는 가치입니다. 정도전의 넷째 아들 진은 살아남아 세종대에 형조판서에 오르기도 합니다. 정도전의 민본사상의 구현을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백성들 스스로의 권리와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고 소통되어야 하는데 이점에서 세종대왕의 한글 문자 창제는 민본의 구체적 구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삼봉의 마지막 과제는 요동정벌이었습니다. 6년 전 최영의 요동정벌과 정도전의 요동정벌은 무엇이 달랐는지 친구들과 살펴보았습니다. 최영은 당대의 기득권인 권문세족의 외교 전략과 괘를 같이 했습니다. 부원배는 끝까지 북원의 세력을 지지하고 떠오르는 명나라를 경계합니다. 당시 명의 주원장이 강하게 부상하던 시기여서 요동정벌 계획은 국제정세상 쉽지 않은 전략이었습니다. 또한 전제개혁 전이라 군량미의 확보와 안정적 전쟁 유지 능력 또한 어려웠습니다. 반면 정도전의 요동정벌은 주원장의 죽음 이후 손자 황태자와 넷째 아들 주체의 내란이 벌어지기 직전이었고 과전법 개혁을 통해 세수의 안정과 사병혁파를 통한 국방력의 강화를 준비하고 있었기에 근본적으로 다른 환경이었던 것이지요.
정도전은 성리학의 이념에 충실한 유학자였지만 성리학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주자학을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했지만 주역을 창의적으로 해석하여 조선경국전을 작성하였고 주자의 나라 명에 사대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기까지 한 것이지요. 조선 중후기에 사대주의와 경직적 성리학 해석에 갇히게 되는 노론 중심의 성리학자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정도전은 이방원에 의해 1398년 요동 정벌 준비 막바지에 피살됩니다. 그의 마지막 꿈은 실패하지만 정도전의 민본사상과 창의적 노력은 후대에까지 전해집니다. 역설적인 것은 조선을 건국한 정도전은 조선 시대 내내 간신과 역적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조선의 건국을 끝까지 반대한 정몽주는 성리학의 정신적 지주가 된다는 것이지요. 이후 정도전은 흥선 대원군에 의해 죽은지 500년이 지나서야 문헌공으로 복권됩니다.
친구들과 쉬는 시간을 거쳐 헨리 조지 연설문의 ‘자유 예찬’의 내용을 가지고 토론을 하였습니다. 헨리 조지는 자유의 가치가 활발하게 펼쳐지는 곳에서 문명이 꽃을 피운다고 역설합니다. 자유에는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가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예속되지 않는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에서 인류는 창의적 문명을 발달시킵니다. 반면 다수가 경제적, 정치적으로 억압받고 지배받는 곳에서 문명은 쇠퇴합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가 정도전을 공부하는 중요한 이유는 정도전이 학문을 하고 정치를 하는 이유가 바로 백성들의 삶을 자유롭게 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은 친구에서 동지 그리고 적으로 바꾸어 갔던 신념의 사람들의 삶을 보고 느끼며 많은 생각을 합니다. 다음 주에는 특별히 정도전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을 마음껏 나누고자 합니다.
백성을 으뜸으로 보고 백성의 삶을 중심으로 성리학을 해석하고 정치적 변혁을 꿈꾸었던 조선 초와 달리 조선 중후기로 갈수록 조정은 모든 정치적 사안에 백성의 삶이 빠지고 상복을 몇 년 입어야 예도에 어긋나지 않는지 등의 이슈에 함몰됩니다. 이로 인한 백성의 경제적 부자유의 삶이 바로 조선의 쇠퇴기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문명의 흥왕과 쇠퇴는 바로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바로 내 옆의 친구와 이웃을 위한 삶을 위해 오늘 우리는 얼마나 치열한 고뇌와 선택을 하는지 되묻습니다. 고려 말 조선 초의 뜨거운 마음을 가졌던 정도전을 비롯한 지식인들의 삶과 선택을 자세히 살펴보며 오늘 우리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통찰과 지혜를 얻을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