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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창(鄭汝昌) 1450년(세종 32)~1504년(연산군 10)
一蠹先生續集卷之三 / 附錄 / 伊淵書院上梁文[姜大遂]
文不在茲乎。羹墻只憑於舊跡。士可以祀矣。經始方亟於新祠。德有隣於同時。誠無憾於合席。粤稽檀君幷唐虞而立國。俗未免夫鴻荒。洎乎箕子衍洪範而頒條。民始霑於彝敎。節行忠義之炳炳。代不乏賢。文章經術之彬彬。於斯爲盛。然眞儒之罕出。蓋正學之無傳。十六字旨訣微言。久昧於蠹簡。五百年名世絶學。乃契於烏川。自夫旣沒以來。則亦無有乎爾。幸煕朝列聖之導迪。有間氣兩賢之竝生。志同巖扉。脚跟早定於居敬。花開古縣。心志已專於求端。切問近思。自治已而及治人之術。眞知實踐。由小學而入大學之功。棐几對越乎曾思。明誠兩盡。餘波追泝於伊洛。直方夾持。唯其聲應而氣求。是以盍簪而麗澤。某邱某水。勝地指點乎班荊。是詢是咨。遺事昭載其遣騎。有道同舟於元禮。猶爲古今難再之美談。考亭對榻於南軒。豈非前後揆一之盛事。道方亨於沒世。功莫尙於牖人。宅里斯存。想像春風之坐。軌躅如昨。興懷霽月之襟。於此而曾不得揭虔。爲士者將何所考德。經營規畫。自前輩而留心。幸會協從。有右文之方面。天時人事得便。似不尋常。地主使君宣力。殆非一二。迺眷鶴亭之明麗。允合駿奔之藏脩。千巖揷雲。氣象凝嚴於直北。一壑拖練。境界淸明於眼前。倻山應是武夷。曾詠慕齋之佳句。伊溪遠連洛水。實符河南之善名。鍾造化之蜿蜒。倍儒林之光彩。雲興而霞蔚也。若相斯文。天作而地藏之。以待今日。干支協吉。匠石效能。倒昂霄之貞姿。龍鱗迎刃。礱吐雲之頑質。雁齒聯階。制作出自神工。淬義金而彼斧彼鉅。章甫喜有安宅。用仁木而爲棟爲梁。快睹翬飛。齊聲燕賀。抛梁東。春噓物茁藹和風。試看元氣流行妙。岸草汀花在在同。抛梁南。晝永書帷載籍探。三百三千論說遍。杏壇絃誦怳隨參。抛梁西。碧梧涼月影高低。尋思成物兼和義。轇轕紛綸路不迷。抛梁北。河漢昭回瞻斗極。貞復爲元相始終。兩間一理無容息。抛梁上。飛鳶縹緲層雲向。明窓靜坐仰而思。一擧翩翩其翼兩。抛梁下。浩浩深淵魚所舍。或躍波心孰使之。看渠遂性無虛假。伏願上梁之後。人文載煥。祀事孔明。籩豆靜嘉。致肸蠁之來格。襟佩坌集。見肅將之莫愆。
絳帳宵懸。波深學海。
緇帷曉闢。條達書林。如切如磋。如琢如磨。俱體驗於實地。自東自西。自南自北。競興起於風聲。服三物於鄕閭。盡是賓周之士。睎四科於賢哲。無非學孔之徒。賁我昌辰。協此善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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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두속집 제3권 / 부록(附錄) / 이연서원 상량문(伊淵書院上樑文) [강대수(姜大遂)]
문(文)이 여기에 있지 않은가. 갱장(羹墻)을 단지 옛 자취에 의지하였으며, 선비들 제사를 지낼 만하자 서둘러 새 사당을 짓기 시작하는구나. 덕(德)이 있어 동시대에 이웃이 있었고 성실하여 합석(合席)에 섭섭함이 없었네. 상고하건대, 단군(檀君)이 요순(堯舜)과 같은 시대에 나라를 세웠으나 풍속이 미개한 상태를 면하지 못하였는데, 기자(箕子)가 홍범(洪範)을 부연하여 조목을 반포하기에 이르러 백성들이 비로소 떳떳한 가르침을 받았네. 빛나는 절행(節行)과 충의는 대대로 어진 이가 부족하지 않았고, 빈빈(彬彬)한 문장(文章)과 경술(經術)은 여기에서 성대해졌네.
그러나 진유(眞儒)가 드물게 나온 것은 정학(正學)이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일세. 열여섯 글자의 중요하고도 미묘한 말은 오래도록 좀먹은 책 속에 묻혀 있었는데, 오랫동안 끊어졌던 학문을 오천(烏川 정몽주(鄭夢周))이 비로소 이었네. 오천이 이미 돌아가신 이후에는 또 없어지고 말았는데, 다행히 우리 조정의 열성조(列聖朝)가 인도하여 세상에 드문 훌륭한 양현(兩賢)이 동시에 태어났네. 지동암(志同巖) 초당(草堂)에서 공부의 방향을 일찌감치 거경(居敬)에 정하였고, 화개(花開) 옛 고을에서 심지(心志)를 이미 단서(端緖)를 구하는 데 전적으로 하였네. 간절히 묻고 가까이 생각함은 자기를 수양함으로부터 남을 다스리는 데 이르는 방법이고, 참으로 알고 실제로 행함은 《소학》으로 말미암아 《대학》에 들어가는 공부였네. 비자나무 책상에서 증자(曾子)와 자사(子思)를 대하니 명성(明誠)이 다 밝아졌고, 여파(餘波)를 미루어 이락(伊洛)을 거슬러 올라가 상고하니 직방(直方)을 모두 가졌네.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구하는지라 이러므로 잠깐 만나도 이택(麗澤)하였도다. 주위 산수의 빼어난 경치들을 길가에 앉아서 낱낱이 볼 수 있고, 임금이 자문한 내용은, 그 유사(遺事)가 사명(使命)을 보낸 일에 분명히 실려 있네. 유도(有道)가 원례(元禮)와 배를 같이 탄 일이 오히려 고금에 두 번 있기 어려운 미담인데, 고정(考亭)이 남헌(南軒)과 책상을 나란히 한 일이 어찌 전후에 도가 똑같은 성대한 일이 아니겠는가. 도는 바야흐로 세상을 떠난 뒤에 형통하고, 공(功)은 사람들을 일깨우는 것보다 숭상할 것이 없네.
살던 마을이 여기에 남아 있으니 춘풍(春風) 속에 앉아 있음을 상상할 수 있고, 남기신 자취가 어제처럼 또렷하니 제월(霽月)의 흉금에 감개를 일으키누나. 여기에 일찌감치 경건한 마음으로 제향하지 않는다면, 선비된 자가 장차 어디에서 군자의 풍모를 볼 수 있겠는가. 서원을 짓기를 계획한 것은 선배들로부터 유념하였는데, 다행히 좋은 시대를 만나 문(文)을 숭상하는 감사(監司)가 있었도다. 천시(天時)와 인사(人事)가 편리함을 얻은 것이 심상하지 않은 듯하고, 감사와 사또가 애써 주선한 것이 한두 가지뿐만이 아니었네. 이에 맑고 밝은 학정(鶴亭)을 돌아보니, 실로 많은 선비들이 수양하기에 적합하도다. 북쪽에는 천 개의 바위가 구름 위로 솟아 있으니 기상이 엄숙하고, 눈앞에는 한 골짜기 시냇물이 무명처럼 펼쳐져 있으니 경계가 청명하도다. 가야산(伽倻山)은 응당 무이산(武夷山)이리니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의 훌륭한 시구를 읊조리고, 이계(伊溪)가 멀리 낙수(洛水)에 이어졌으니 실로 하남(河南)의 좋은 명성에 부합하네. 길게 이어진 조화의 자취가 모여 유림(儒林)의 광채를 더하네. 구름이 일어나고 노을이 가득하니 마치 사문(斯文)을 돕는 듯하고, 하늘이 만들고 땅이 감추어 두어 오늘을 기다린 듯하도다.
날이 길일이고, 장석(匠石)이 솜씨를 부리네. 저 하늘을 찌르는 듯한 곧은 나무를 베어 와 반듯하게 손질하고, 구름을 토하는 높은 산의 바윗돌을 다듬어 가지런히 계단을 만드네. 제작이 신의 솜씨에서 나왔으니 의금(義金)을 담금질하여 이쪽 저쪽을 도끼질하고 톱질하였으며, 선비들이 편안한 거처가 있게 됨을 기뻐하니 인목(仁木)을 써서 기둥과 들보를 만들었네. 우뚝이 솟은 동우(棟宇) 보기에 시원스러우니 일제히 연하(燕賀)하네.
들보를 동쪽으로 드니 / 拋梁東
따스한 바람에 봄기운 일고 만물이 자라네 / 春噓物茁藹和風
한번 원기가 유행하는 오묘함을 보게나 / 試看元氣流行妙
언덕의 풀과 물가의 꽃 곳곳마다 같다네 / 岸草汀花在在同
들보를 남쪽으로 드니 / 拋梁南
낮에 길이 서재에서 서적을 탐구하누나 / 晝永書帷載籍探
경례 삼백과 곡례 삼천의 논설 두루 보매 / 三百三千論說遍
행단의 현송에 어슴푸레 따르는 듯하리 / 杏壇絃誦怳隨參
들보를 서쪽으로 드니 / 拋梁西
벽오동 서늘한 달그림자 어리네 / 碧梧凉月影高低
천지간 사물의 이치 깊이 생각하니 / 尋思成物兼和義
뒤섞여 어지러워도 헤매지 않으리라 / 轇轕紛綸路不迷
들보를 북쪽으로 드니 / 拋梁北
은하수 빛 돌며 북극성 향하네 / 河漢昭回瞻斗極
정과 원 서로 처음과 끝이 되니 / 貞復爲元相始終
천지간 한 이치 그치지 않누나 / 兩間一理無容息
들보를 위로 드니 / 拋梁上
나는 솔개 겹겹의 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 飛鳶縹緲層雲向
밝은 창가에 고요히 앉아 우러러 생각하니 / 明窓靜坐仰而思
한 번 훨훨 날아가매 그 날개가 둘이로다 / 一擧翩翩其翼兩
들보를 아래로 드니 / 拋梁下
넓디넓은 깊은 못 물고기가 머무는 곳일세 / 浩浩深淵魚所舍
혹 물결 속에서 뛰어오름 누가 시킨 것인가 / 或躍波心孰使之
본성에 순응하여 거짓 없음을 보겠노라 / 看渠遂性無虛假
삼가 바라건대, 들보를 올린 뒤에 인문(人文)이 비로소 환해지고 제사하는 일이 잘 갖추어지리라. 제기가 청결하고 아름다우니 영령이 감응하여 와서 흠향하고, 선비들이 늘어서서 모이니 공경히 제사 받듦이 허물이 없음을 보리라.
강장(絳帳)이 한밤중에도 걸렸으니 학문의 바다에 물결이 깊어지고,
치유(緇帷)가 새벽에 열리니 서책의 숲에 가지가 뻗어 자라리라. 절차탁마(切磋琢磨)하여 모두 실지를 체험하고, 동서남북에서 앞다투어 풍성(風聲)에 흥기하리라. 향려(鄕閭)의 삼물(三物)을 가슴에 간직하니 모두 주대(周代)에 귀빈으로 대우하던 선비이고, 현철(賢哲)의 사과(四科)를 우러러 바라니 공자를 배우는 무리가 아님이 없으리라. 좋은 날을 빛내고자 좋은 노래로 돕노라.
[주-D001] 이연서원(伊淵書院) :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가야면(伽倻面) 매안리(梅岸里)에 있던 서원이다. 1587년(선조20)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60년(현종1)에 ‘이연’이라 사액되어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그 뒤 1869년(고종6)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복원하지 못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3칸의 강당뿐이다.[주-D002] 문(文)이 …… 않은가 : 공자가 말하기를 “문왕이 이미 돌아가셨으니, 문이 이 몸에 있지 않겠는가. 하늘이 장차 이 문을 없애려 한다면 뒤에 죽는 내가 이 문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거니와, 하늘이 이 문을 없애려 하지 않으시니, 광 땅 사람이 나를 어떻게 하겠는가.〔子曰文王旣沒 文不在玆乎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 其如予何〕” 하였는데, 주자의 집주(集註)에서 “도(道)가 드러난 것을 문(文)이라 한다. 도라고 하지 않고 문이라 한 것은 또한 공자의 겸사(謙辭)이다.” 하였다. 《論語 子罕》[주-D003] 갱장(羹墻) : 앙모(仰慕)하는 마음이 지극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옛날 요(堯) 임금이 죽은 뒤에 순(舜) 임금이 3년 동안 앙모하여, 앉았을 때는 담장에서, 밥 먹을 때는 국그릇에서 요 임금을 보았다는 말이 있다. 《後漢書 卷63 李固列傳》[주-D004] 덕(德)이 …… 있었고 : 공자가 말하기를 “덕은 외롭지 않은지라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隣〕”라고 하였는데, 덕이 있는 이는 반드시 동류(同流)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論語 里仁》 여기에서는 일두 정여창과 한훤당 김굉필이 뜻이 같고 도가 합치하는 것을 말한다.[주-D005] 열여섯 글자 : 순(舜) 임금이 우(禹) 임금에게 천하를 전수하면서 “인심은 위태하고 도심은 은미하니 오직 정밀하고 전일하여야 진실로 그 중을 잡으리라.〔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고 당부한 말을 가리킨다. 《書經 大禹謨》[주-D006] 지동암(志同巖) : 일두 정여창과 한훤당 김굉필이 함께 공부하였던 곳으로,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야로면(冶爐面) 하빈리(河濱里)에 있다.[주-D007] 명성(明誠) : 실덕(實德)으로 말미암아 자연히 밝고, 선을 밝힌 것으로 말미암아 그 선을 확충하는 것을 말한다. 자사(子思)가 천도(天道)와 인도(人道)의 뜻을 설명하기 위하여 “정성으로부터 밝힘을 성이라 하고 덕을 밝힘으로부터 정성에 이르는 것을 교라고 하니, 정성이면 밝게 되고 밝게 되면 정성에 이른다.〔自誠明 謂之性 自明誠 謂之敎 誠則明矣 明則誠矣〕” 하였다. 《中庸章句 第21章》[주-D008] 이락(伊洛) : 이천(伊川)과 낙양(洛陽)으로, 정호(程顥)와 정이(程頤)가 이 사이에서 강학(講學)하였고 주자가 또한 그 학통을 계승했던 까닭으로, 후대에 정주학(程朱學)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주-D009] 직방(直方) : 내면을 경(敬)으로 곧게 하고 외면을 의(義)로써 바르게 한다는 말이다.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군자는 경으로써 내면을 곧게 하고 의로써 외면을 바르게 한다.〔君子 敬以直內 義以方外〕”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주-D010] 같은 …… 구하는지라 : 일두 정여창과 점필재 김종직이 뜻이 같고 도가 합하여 서로 호응한다는 뜻이다.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공자가 말하기를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구하여, 물은 습한 곳으로 흐르고 불은 건조한 곳으로 나아가며,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子曰 同聲相應 同氣相求 水流濕 火就燥 雲從龍 風從虎〕’ 하였다.”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주-D011] 이택(麗澤) : 붕우 간의 학문 강습을 뜻한다. 《주역》 〈태괘(兌卦)〉에 “두 못이 연결되어 있는 형상이 태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붕우 간에 강습한다.〔麗澤兌 君子以 朋友講習〕”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주-D012] 유도(有道)가 …… 일 : 후한(後漢)의 곽태(郭泰)가 일찍이 낙양(洛陽)에서 놀 때 하남 윤(河南尹)이었던 이응(李膺)과 함께 깊이 사귀어 명성을 떨쳤는데, 낙양에서 고향으로 돌아올 때 이응과 함께 배를 타고 하수(河水)를 건너자 전송 나왔던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신선과 같다고 찬탄하였다. 유도는 곽태를 가리키고, 원례(元禮)는 이응의 자이다. 《後漢書 卷98 高士列傳》[주-D013] 고정(考亭)이 …… 일 : 고정은 주자가 강학하던 장소이고, 남헌(南軒)은 장식(張栻)의 호이다. 두 사람은 이학(理學)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많은 편지와 토론을 주고받았으며, 주자는 일찍 별세한 남헌의 문집을 편찬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는 일두 정여창과 한훤당 김굉필의 관계가 고정과 남헌의 관계와 똑같음을 말한 것이다.[주-D014] 춘풍(春風) : 훌륭한 선생의 가르침을 말한다. 송나라 정호의 제자인 유정부(游定夫)가 정호에게서 배우다가 양시(楊時)를 방문했는데, 양시가 정부에게 어디서 오는 길인가를 묻자, 정부가 “나는 춘풍의 화기(和氣) 가운데 석 달 동안 앉았다가 오는 길이다.”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宋元學案 14》[주-D015] 제월(霽月) : 광풍제월(光風霽月)을 말한다. 비가 온 뒤에 맑은 바람이 불고 밝은 달이 뜬 깨끗한 풍광으로, 맑고 깨끗한 인품을 형용하는 말이다.[주-D016] 이계(伊溪)가 …… 부합하네 : 이계는 가야산(伽倻山)에서 발원하여 합천군(陜川郡) 야로면(冶爐面)으로 흐르는 냇물인데 이천(伊川)이라고도 하며, 낙수(洛水)는 낙동강(洛東江)을 말한다. 하남(河南)의 좋은 명성에 부합한다는 것은, 정호와 정이 형제가 살았던 낙수가 있는 하남과 지명이 같음으로 인하여 그렇게 말한 것이다.[주-D017] 의금(義金)을 …… 만들었네 : 방위로 말하면 의(義)는 서방에 해당하고 인(仁)은 동방에 해당하며, 계절로 말하면 의는 가을에 해당하고 인은 봄에 해당하며, 오행(五行)으로 말하면 의는 금에 해당하고 인은 목에 해당한다. 여기에서는 서원이란 선비들이 학문하는 곳으로 인의(仁義)가 특히 중요하기 때문에 의미를 부여하여 ‘의금’이라고 하고 ‘인목(仁木)’이라고 한 것이다.[주-D018] 연하(燕賀) : 큰 집의 낙성을 축하한다는 말이다. 《회남자(淮南子)》 〈설림훈(說林訓)〉에 “큰 집이 이루어지매 제비와 참새가 서로 하례하네.〔大廈成而燕雀相賀〕”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주-D019] 행단(杏壇)의 현송(絃誦) : 공자가 학문을 강론하던 곳으로, 《장자(莊子)》 〈어부(漁父)〉에 “공자가 치유(緇帷)의 숲에 노닐고 행단의 위에 앉아 쉬면서 제자들은 글을 읽고 공자는 노래하며 거문고를 탔다.”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주-D020] 정(貞)과 …… 않누나 : 《소학(小學)》 〈제사(題辭)〉에 “원ㆍ형ㆍ이ㆍ정은 천도의 떳떳함이요, 인ㆍ의ㆍ예ㆍ지는 인성의 벼리이다.〔元亨利貞 天道之常 仁義禮智 人性之綱〕”라고 하였는데, 그 주에 “원(元)은 시절에 있어서는 봄이 되고 사람에 있어서는 인(仁)이 되며, 형(亨)은 시절에 있어서는 여름이 되고 사람에 있어서는 예(禮)가 되며, 이(利)는 시절에 있어서는 가을이 되고 사람에 있어서는 의(義)가 되며, 정(貞)은 시절에 있어서는 겨울이 되고 사람에 있어서는 지(智)가 된다.”라고 하였다. 시절로 보면 정은 겨울이고 원은 봄이니, 겨울이 가면 봄이 오기 마련인 것처럼 천리 자연의 본체여서 만대에 이르도록 바뀌지 않는 것을 말한다.[주-D021] 한 번 …… 둘이로다 : 날개가 둘이라는 것은 거경(居敬)과 궁리(窮理), 즉 존덕성(尊德性)과 도문학(道問學)을 말하는 것이다. 주자가 말하기를 “배우는 자의 공부는 오직 거경과 궁리 두 가지 일에 달려 있으니, 이 두 가지 일은 상호 발명된다. 궁리를 하면 거경 공부가 날로 더욱 진전되고 거경을 하면 궁리 공부가 날로 더욱 치밀해질 것이다.〔學者工夫 唯在居敬窮理二事 此二事互相發 能窮理則居敬工夫日益進 能居敬則窮理工夫日益密〕” 하였다. 《心經 卷4》[주-D022] 강장(絳帳) : 붉은 휘장이다. 후한의 마융(馬融)이 생도들을 가르칠 때 항상 고당(高堂)에 앉아 붉은 비단휘장을 드리웠으므로 후에 사문(師門) 강석(講席)의 경칭(敬稱)으로 쓰인다. 《後漢書 卷60 馬融列傳》
[주-D023] 치유(緇帷) : 《장자(莊子)》 〈어부(漁父)〉에 “공자가 치유의 숲에 노닐고 행단(杏壇)의 위에 앉아 쉬면서 제자들은 글을 읽고 공자는 노래하며 거문고를 탔다.”라고 하였다.[주-D024] 삼물(三物) : 육덕(六德), 육행(六行), 육예(六藝)를 가리킨다. 육덕은 여섯 가지 덕으로 지혜로움〔智〕, 인자함〔仁〕, 통명(通明)함〔聖〕, 의로움〔義〕, 충성스러움〔忠〕, 화함〔和〕이다. 육행은 여섯 가지 행실로 효도함〔孝〕, 우애함〔友〕, 동성 간(同姓間)에 화목함〔睦〕, 이성 간(異姓間)에 화목함〔婣〕, 이웃 간에 신실함〔任〕, 서로 구휼함〔恤〕이다. 육예는 여섯 가지 기예로 예(禮), 음악〔樂〕, 활쏘기〔射〕, 말몰기〔御〕, 글〔書〕, 수학〔數〕이다. 주(周)나라 때에는 교육을 담당한 대사도(大司徒)가 각 지방에 이 세 가지를 가르쳐 잘하는 자가 있으면 예우하여 등용하였다. 《周禮 地官司徒上 大司徒》[주-D025] 사과(四科) : 공자가 문하의 제자들을 두고 “덕행엔 안연ㆍ민자건ㆍ염백우ㆍ중궁이고, 언어엔 재아ㆍ자공이고, 정사엔 염유ㆍ계로이고, 문학엔 자유ㆍ자하이다.〔德行 顔淵閔子騫冉伯牛仲弓 言語 宰我子貢 政事 冉有季路 文學 子游子夏〕”라고 말했는데, 이른바 덕행ㆍ언어ㆍ정사ㆍ문학을 ‘공문사과(孔門四科)’라고 하고, 열거한 열 명의 제자를 ‘공문십철(孔門十哲)’이라고 한다. 《論語 先進》
ⓒ 한국고전번역원 | 공근식 (역) |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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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수(姜大遂) 1591년(선조 24)~1658년(효종 9)
寒沙先生文集卷之五 / 上梁文 / 伊淵書院上梁文
文不在玆乎。羹墻只憑於舊跡。士可以祀矣。經始方亟於新祠。德有隣於同時。誠無憾於合席。粤稽檀君。幷唐堯而立。國俗未免夫鴻荒。洎乎箕子。衍洪範而頒條。民始霑於彜敎。節行忠義之炳炳。代不乏賢。文章經術之彬彬。於斯爲盛。然眞儒之罕出。盖正學之無傳。十六字微言旨訣。久昧於蠧簡。五百年名世絶學。乃契於烏川。自夫旣沒以來。則亦無有乎爾。幸煕朝列聖之導迪。有間氣兩賢之幷生。志同巖扉。脚跟早定於居敬。花開古縣。心志已專於求端。切問近思。自治己而及治人之術。眞知實踐。由小學而入大學之功。棐几對越乎曾思。明誠兩盡。餘波追沂於伊洛。直方夾持。唯其聲應而氣求。是以盍簪而麗澤。某水某邱。勝地指點乎班荊。是詢是咨。遺事昭載其遣騎。有道同舟於元禮。猶爲古今難再之美談。考亭對榻於南軒。豈非前後揆一之盛事。道方亨於沒世。功莫尙於牖人。宅里斯存。想像春風之坐。軌躅如昨。興懷霽月之襟。於此而曾不得揭處。爲士者將何所考德。經營䂓畫。自前輩而留心。幸會協從。有右文之方面。天時人事得便。似不尋常。地主使君宣力。殆非一二。廼睠鶴亭之明麗。允合駿奔之藏修。千岩揷雲。氣像凝嚴於直北。一壑拖練。境界淸明於眼前。倻山應是武夷。曾詠慕齋之佳句。伊溪遠連洛水。實符河南之善名。鍾造化之蜿蜒。倍儒林之光彩。雲興而霞蔚也。若相斯文。天作而地藏之。以待今日。幹支協吉。匠石效能。倒昂霄之貞姿。龍鱗迎刃。礱吐雲之頑質。鴈齒聯階。制作出自神工。淬義金而斧彼鉅彼。章甫喜有安宅。用仁木而爲棟爲梁。快睹翬飛。齊聲燕賀。拋梁東。春噓物茁藹和風。試看元氣流行妙。岸草汀花在在同。拋梁南。晝永書帷載籍探。三百三千論說遍。杏壇絃誦怳隨參。拋梁西。碧梧凉月影高低。尋思成物兼和義。轇轕紛綸路不迷。拋梁北。河漢昭回瞻斗極。貞復爲元相始終。兩間一理無容息。拋梁上。飛鳶縹緲層雲向。明窓靜坐仰而思。一擧翩翩其翼兩。拋梁下。浩浩深淵魚所舍。或躍波心孰使之。看渠遂性無虛假。伏願上梁之後。人文載煥。祀事孔明。籩豆靜嘉。致肹蠁之來格。襟珮坌集。見肅將之莫愆。
絳帳宵懸。波深學海。
緇帷曉闢。條達書林。如切如磋如琢如磨。俱體驗於實地。自東自西自南自北。競興起於風聲。服三物於鄕閭。盡是賓周之士。睎四科於賢哲。無非學孔之徒。賁我昌辰。協此善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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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학 장소 열었으니 ‘치유(緇帷)’는 고인(高人)과 현사(賢士)가 강학하는 곳에 둘러친 검은 장막을 말하는데, 《장자(莊子)》 〈어부(漁父)〉에 “공자가 치유의 숲에서 노닐고 행단의 위에서 휴식을 취하였는데, 제자들은 글을 읽고 공자는 거문고를 퉁기며 노래를 불렀다.〔孔子遊於緇帷之林, 休坐乎杏壇之上, 弟子讀書, 孔子絃歌鼓琴.〕”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구사당집(九思堂集)
2 검은 …… 곳 학문에 몰입할 수 있는 고요한 숲 속을 이른 것이다. 원문의 ‘치유(緇帷)’는 검은 장막이란 뜻으로 나무가 무성한 숲을 비유하기도 하는바, 《장자(莊子)》 〈어부(漁父)〉에 “공자가 치유의 숲에서 노닐고 행단의 위에서 휴식을 취하였다.[孔子遊於緇帷之林, 休坐乎杏壇之上.]”라고 보인다. 매산집(梅山集)
3 검은 장막 원문은 ‘치유(緇帷)’인데, 고인(高人)과 현사(賢士)가 강학하는 곳에 둘러친 검은 장막을 말한다.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면서 검은 장막을 치고서 《시경》과 《서경》을 강학한 데서 비롯되었다 용주유고(龍洲遺稿)
4 검은 휘장 ‘치유(緇帷)’는 고인(高人)과 현사(賢士)가 강학하는 곳에 둘러친 장막을 말한다. 《장자(莊子)》 〈어부(漁父)〉에 “공자가 치유의 숲에서 노닐고 행단의 위에서 휴식을 취하였는데, 제자들은 글을 읽고 공자는 거문고를 퉁기며 노래를 불렀다.〔孔子遊於緇帷之林, 休坐乎杏壇之上, 弟子讀書, 孔子絃歌鼓琴.〕”라는 내용이 있다. 옥오재집(玉吾齋集)
5 공단(孔壇)에 …… 있고 살구나무를 가리킨다. 공단은 공자가 행단(杏壇)에서 제자들과 강학(講學)했던 데서 온 말이다. 《장자》 〈어부(漁父)〉에 “공자가 치유(緇帷)의 숲 속에서 노닐며, 행단(杏壇) 위에 앉아서 휴식을 취했나니, 제자들은 글을 읽고 공자는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불렀다.”라고 하였다. 어우집(於于集)
6 공성(孔聖)의……짝하고 공자(孔子)가 행단(杏壇), 즉 은행나무 아래서 학문을 강론했다고 한다. 《장자》〈어부(漁父)〉에 “공자가 치유(緇帷)의 숲에 노닐고 행단 위에 앉아 쉬면서 제자들은 글을 읽고 공자는 노래하며 거문고를 탔다.” 한 데서 유래한다. 성호전집(星湖全集)
7 금단(琴壇) 공자가 학문을 강론하던 곳으로, 행단(杏壇)이라고도 한다. 《장자(莊子)》 〈어부(漁父)〉에 “공자가 치유(緇帷)의 숲에 노닐고 은행나무〔杏壇〕 아래 앉아 쉬면서 제자들은 글을 읽고 공자는 노래하며 거문고를 탔다.” 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월사집(月沙集)
8 농산(農山)과 …… 열고 행단(杏壇)은 강학 장소라는 뜻이다. 《장자》 〈어부(漁父)〉에 “공자가 치유(緇帷)의 숲에 노닐고, 행단 위에 앉아 쉬면서, 제자들은 글을 읽고 공자는 노래하며 거문고를 탔다.”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곡부현(曲阜縣) 공자묘(孔子廟)의 대성전(大成殿) 앞이라고 한다. 농산은 《공자가어》에 나오고, 기수(沂水)는 《논어》에 나오는 바, 모두 공자가 제자들과 강학하던 지역이다. 무명자집(無名子集)
9 무엇보다 …… 것일세 《장자(莊子)》 〈어부(漁父)〉에 “공자가 치유의 숲에서 노닐고 행단의 위에서 휴식을 취하였는데, 제자들은 글을 읽고 공자는 거문고를 퉁기며 노래를 불렀다.[孔子遊於緇帷之林 休坐乎杏壇之上 弟子讀書 孔子絃歌鼓琴]” 하였다. 옥담시집(玉潭詩集)
10 예전의 행단(杏壇) 포저가 강학(講學)을 했던 곳을 말한다. 행단의 고사는 《장자》 어부(漁父)의 “공자가 치유(緇帷)의 숲 속에서 노닐며 행단 위에 앉아 휴식을 취했나니, 제자들은 글을 읽고 공자는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불렀다.〔孔子遊乎緇帷之林 休坐乎杏壇之上 弟子讀書 孔子絃歌鼓琴〕”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행(杏)을 은행나무로 간주하여 학교에 이 나무를 많이 심었던 데에 비해서 중국에서는 측백나무를 많이 심었다. 포저집(浦渚集)
11 처량하도다 뜰 앞의 회나무여 공자가 제자들과 강학(講學)했던 행단(杏壇)에 나무만 울창하게 우거진 것에 대한 감회를 표현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행(杏)을 은행나무로 간주하고 이 나무를 많이 심었던 데에 반해 중국에서는 측백나무를 많이 심었다. 행단(杏壇)의 고사는 “공자가 치유(緇帷)의 숲 속에서 노닐며, 행단(杏壇) 위에 앉아서 휴식을 취했나니, 제자들은 글을 읽고 공자는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불렀다.”는 《장자》 어부(漁父)의 말에서 유래한다. 간이집(簡易集)
12 치유(緇帷) 《장자(莊子)》 〈어부(漁父)〉에 “공자가 치유의 숲에 노닐고 행단(杏壇)의 위에 앉아 쉬면서 제자들은 글을 읽고 공자는 노래하며 거문고를 탔다.”라고 하였다. 일두집(一蠹集)
13 치유(緇帷) 제자를 가르치는 곳을 뜻한다. 《장자(莊子)》 〈어부(漁父)〉에 “공자가 치유의 숲에서 노닐고 행단의 위에서 휴식을 취하였는데, 제자들은 글을 읽고 공자는 거문고를 퉁기며 노래를 불렀다.〔孔子遊於緇帷之林 休坐乎杏壇之上 弟子讀書 孔子絃歌鼓琴〕” 하였다. 갈암집(葛庵集)
14 치유(緇帷) 강석(講席)을 뜻한다. 《장자(莊子)》 〈어부(漁父)〉에 “공자가 치유의 숲에서 노닐고 행단의 위에서 휴식을 취하였는데, 제자들은 글을 읽고 공자는 거문고를 퉁기며 노래를 불렀다.〔孔子遊於緇帷之林 休坐乎杏壇之上 弟子讀書 孔子絃歌鼓琴〕” 하였다. 갈암집(葛庵集)
15 치유(緇帷) 고인(高人)과 현사(賢士)가 강학하는 곳에 둘러친 검은 장막을 말하는데, 《장자(莊子)》 〈어부(漁父)〉의 “공자가 치유의 숲에서 노닐고 행단의 위에서 휴식을 취하였는데, 제자들은 글을 읽고 공자는 거문고를 퉁기며 노래를 불렀다.〔孔子遊於緇帷之林, 休坐乎杏壇之上, 弟子讀書, 孔子絃歌鼓琴.〕”라는 내용에서 유래하였다. 창계집(滄溪集)
16 치유(緇帷) 오늘날의 흑림(黑林)이다. 공자가 이곳에서 제자들을 데리고 강학하였으므로, 흔히 강학 장소의 대명사로 쓰인다. 《莊子 漁父》 무명자집(無名子集)
17 치유(緇帷)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장소를 의미한다. 《장자(莊子)》 〈어부(漁父)〉에 “공자가 수목이 울창한 숲에서 노닐고 행단의 위에서 휴식을 취하였는데, 제자들은 글을 읽고 공자는 거문고를 퉁기며 노래를 불렀다.〔孔子遊於緇帷之林, 休坐乎杏壇之上, 弟子讀書, 孔子絃歌鼓琴.〕”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미산집(眉山集)
18 치유(緇帷) 검은 숲으로 산림이 무성한 곳을 가리킴.《장자(莊子)》어부(漁父)에, “공자가 치유의 숲에서 놀았다.[孔子遊乎緇帷之林]” 하였음.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19 치유(緇帷)를 …… 간직했다 치유나 강장(絳帳)은 모두 사석(師席)이나 학자의 서재를 지칭하는 말이다. 《장자》 어부(漁父)에, “공자가 시서(詩書)를 강학하는 곳의 숲이 무성하게 휘장처럼 드리워 치유림(緇帷林)이라 하였다.” 하였고, 《후한서(後漢書)》 마융전(馬融傳)에, “마융이 붉은 휘장을 드리운 앞에서 생도를 가르쳤다.”고 하였다. 여기서는 정구가 많은 제자를 배출하고, 백가의 서적도 많이 소장하였음을 말한다.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20 치유(緇帷)와 강장(絳帳) 치유는 검은 장막으로, 고인(高人)과 현사(賢士)가 강학하는 곳을 말하는데,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면서 검은 장막을 치고서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강학하였다. 강장은 붉은 장막으로, 사문(師門)이나 강석(講席)을 가리키는데, 한(漢) 나라 때 마융(馬融)이 붉은 장막을 치고서 선비들을 강학하였다. 《莊子 漁父》《 後漢書 卷60上 馬融傳》 잠곡유고(潛谷遺稿)
21 치유(緇帷)의 …… 가버리거나 《장자》 〈어부(漁父)〉에 나온다. 공자가 치유의 숲을 노닐다가 쉬면서 노래하며 금(琴)을 연주하고 있으니, 강가 배에서 수염과 눈썹이 하얀 어부가 내려서 멀찍이 앉아 턱을 괴고 공자의 곡조를 들었다. 공자에게, 권세도 없고 벼슬도 없으면서 예악을 꾸며 백성을 교화하려 하고 있으니 재앙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고는 배를 저어 떠나니 공자가 망연자실했다. 치유는 검은 휘장이라는 말인데, 우거진 숲을 뜻한다. 사가집(四佳集)
22 치유(緇帷)의 숲 검은 휘장을 친 것처럼 숲이 무성하게 우거진 곳을 ‘치유’라 하는데, 고인(高人) 현사(賢士)가 학문을 강론하는 장소를 뜻한다. 《장자(莊子)》 〈어부(漁父)〉에 “공자가 치유의 숲에서 노닐고 행단 위에서 휴식을 취하였는데, 제자들은 글을 읽고 공자는 거문고를 퉁기며 노래를 불렀다.〔孔子遊於緇帷之林 休坐乎杏壇之上 弟子讀書 孔子絃歌鼓琴〕” 하였다. 미호집(渼湖集)
23 치유(緇帷)의 숲 치유는 곧 검은 장막이란 뜻으로, 숲이 매우 무성하여 마치 검은 장막을 친 것과 같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24 학교 원문은 ‘치유(緇帷)’인데, 《장자(莊子)》 〈어부(漁父)〉에 “공자가 치유의 숲에서 노닐고 행단의 위에서 휴식을 취하였는데, 제자들은 글을 읽고 공자는 거문고를 퉁기며 노래를 불렀다.〔孔子遊於緇帷之林 休坐乎杏壇之上 弟子讀書 孔子絃歌鼓琴〕” 라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목재집(木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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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4) 第31篇 漁父 제1장
孔子 遊乎緇惟之林하시다가 休坐乎杏壇之上(注1)
이러시니
공자가 숲 울창한 緇惟林에서 노닐다가 살구나무를 심어 놓은 杏壇에 앉아 쉬고 있었다.
弟子 讀書커늘 孔子 弦歌鼓琴하사
제자들은 책을 읽고 있었는데, 공자는 노래를 부르면서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奏曲이 未半하얏거늘 有漁父者 下船而來하야
타던 곡조가 채 반이 끝나지 않았을 때, 어부 한 사람이 배에서 내려 가까이 다가왔다.
鬢眉 交白(注2)
이러니 被髮揄袂(注3)
하야 行原以上하야 距陸而止(注4)
하야 左手로 據膝하고 右手로 持頤하야 以聽하니라
구레나룻과 눈썹이 모두 하얀 노인이었는데 머리를 풀어헤치고 소매를 휘젓고서 늪지대를 걸어 올라와 언덕에 이르러 멈추어 자리를 잡고서, 왼손은 무릎 위에 얹고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조용히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曲終하야 而招子貢子路하야늘
이윽고 곡이 끝나자 노인은 子貢과 子路를 손으로 불렀다.
二人이 俱對한대 客이 指孔子하야 曰 彼는 何爲者也오
두 사람이 함께 이 노인을 응대하였더니 처음 보는 노인은 공자를 가리키면서 “저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子路 對曰호대
자로가 대답했다.
魯之君子也시니라
“노나라의 군자입니다.”
客이 問其族하야늘
객이 공자의 族姓을 물었다.
子路 對曰
자로가 대답했다.
族은 孔氏시니라
“성은 공씨입니다.”
客曰
객이 말했다.
孔氏者는 何治也(注5)
오
“공씨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子路 未應(注6)
이러니 子貢對曰호대
자로가 미처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자공이 대답했다.
孔氏者는 性服忠信하고 身行仁義하야 飾禮樂하며 選人倫(注7)
하야 上以忠於世主하고 下以化於齊民하야 將以利天下하나니
“공씨는 태어나면서 忠信을 갖추고 몸소 인의를 실행하며 예악을 지키고 인륜을 갖추고서 위로는 세상의 군주에게 忠義를 다하고 아래로는 만백성을 교화하여 장차 천하 사람들을 이롭게 하려 합니다.
此 孔氏之所治也니라
이것이 공씨가 하고 있는 일입니다.”
又問曰
객이 또 물었다.
有土之君與아
“영토를 가지고 있는 군주인가?”
子貢曰
자공이 말했다.
非也라 侯王之佐與아
“아닙니다.” 〈객이 말했다.〉 “그러면 제후나 왕을 돕고 있는 사람인가?”
子貢曰
자공이 말했다.
非也라
“아닙니다.”
客이 乃笑而還할새 行言曰(注8)
호대
객이 마침내 웃으면서 돌아가는데, 〈왔던 길을 되돌아〉 걸어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仁則仁矣나 恐不免其身(注9)
하노라
“그 사람 어질기는 틀림없이 어질지만, 아마도 그 몸은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苦心勞形하야 以危其眞(注10)
하나니
마음을 괴롭히고 몸뚱이를 지치게 해서 자신의 참된 본성을 위태롭게 할 것이니.
嗚呼
아아!
遠哉라
멀리 벗어났구나.
其分於道也(注11)
여하야늘
그가 참된 도에서 분리됨이여!”
子貢이 還하야 報孔子한대 孔子 推琴而起하야 曰호대
子貢이 돌아와 孔子에게 보고하였더니, 공자는 거문고를 밀어놓고 일어나 말했다.
其聖人與인져하시고
“그 사람은 틀림없이 성인일 것이다.”
乃下求之하사 至於澤畔이어시늘 方將杖拏而引其船(注12)
이라가 顧見孔子하고 還鄕而立이어늘
그리고는 곧 杏壇에서 내려와 그 노인을 찾아 못가에 이르렀는데, 노인은 이때 바야흐로 노를 세워 배를 끌어 띄우려 하다가 공자를 돌아보고는 몸을 돌려 공자를 바라보고 섰다.
孔子反走하사 再拜而進(注13)
한대
공자는 빠른 걸음으로 뒤로 물러나서 노인에게 두 번 절하고서 천천히 노인 앞으로 나아갔다.
客曰호대
客이 말했다.
子는 將何求오
“그대는 내게 무엇을 구하려는가?”
孔子曰호대
공자가 대답했다.
曩者에 先生이 有緖言而去(注14)
어시늘
“조금 전에 선생께서는 말의 실마리만 꺼내시고 그냥 떠나셨습니다.
丘는 不肖라 未知所謂호니
저는 〈보시다시피〉 어리석은 사람인지라 선생께서 말씀하신 뜻을 아직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竊待於下風(注15)
하야 幸聞咳唾之音하야 以卒相丘也(注16)
하노이다
그러니 가만히 선생의 風貌 아래에 이렇게 기다려서 다행히 선생의 기침소리를 듣게 하셔서 마침내 저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客曰
객이 말했다.
嘻라
“하하!
甚矣라
심하구나.
子之好學也(注17)
여
그대가 배우기를 좋아함이여!”
孔子 再拜而起하사 曰호대
孔子가 두 번 절하고 일어나서 말했다.
丘는 少而脩學하야 以至於今이 六十九歲矣(注18)
로대
“저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닦아 지금에 이르러 69세가 되었습니다.
無所得聞至敎니
그러나 지극한 가르침을 들을 수 있는 분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敢不虛心가
그러니 감히 마음을 비우고서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客曰호대
客이 말했다.
同類相從하며 同聲相應이 固天之理也(注19)
니
“같은 부류가 서로 따르고 같은 소리가 서로 공명하는 것은 진실로 자연의 이치이다.
吾는 請釋吾之所有하고 而經子之所以(注20)
호리라
나는 청컨대 나에게 있는 道는 잠깐 놓아두고 그대가 하는 일의 조리를 따져보겠다.
子之所以者는 人事也(注21)
니
그대가 하는 일은 인간의 일이다.
天子諸侯大夫庶人 此四者 自正이면 治之美也오 四者離位면 而亂莫大焉하니라
그러니 천자, 제후, 대부, 서인들 이 네 계급이 각자가 올바른 도를 지키면 최선의 治世이고 네 계급이 각각의 자리를 떠나면 이보다 큰 어지러움이 없다.
官治其職하며 人憂其事하매(하며) 乃無所陵(注22)
이니
관직에 있는 모든 관리가 자기 직분을 잘 처리하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일을 근심하고 애쓰면 누구도 분수를 침범함이 없을 것이다.
故로 田荒室露하야 衣食不足하며 徵賦不屬하며 妻妾不和하며 長少無序는 庶人之憂也(注23)
라
그러므로 田畓이 황폐해지고 집이 파괴되어 의식이 부족하고 세금을 이어서 내지 못하게 되고 처첩이 不和하고 長幼의 질서가 무너져 없어지게 되는 것은 서민들의 근심거리이다.
能不勝任하야 官事를 不治하며 行不淸白하야 群下 荒怠하며 功美를 不有하며 爵祿을 不持는 大夫之憂也(注24)
라
능력이 임무를 감당하지 못하여 관청의 일도 만족스럽게 처리하지 못하며 행동이 淸廉하지 못하여 부하들이 멋대로 하고 怠慢하며 훌륭한 功績도 없으며 爵位와 俸祿을 유지할 수 없음은 대부들의 근심거리이다.
廷無忠臣하야 國家 昏亂하며 工技不巧하며 貢職不美하며 春秋를 後倫하야 不順天子는 諸侯之憂也(注25)
라
朝廷에 충신이 없어서 국가가 혼란하며 工人들의 기술도 정교하지 못하며 조정에 바치는 공물이 조악하며 봄가을의 朝覲을 다른 제후들보다 서열이 뒤처져 천자의 명령을 잘 따르지 못하게 되는 것은 제후들의 근심거리이다.
陰陽이 不和하며 寒暑 不時하야 以傷庶物하며 諸侯 暴亂하야 擅相攘伐(注26)
하야 以殘民人하며 禮樂이 不節하야 財用이 窮匱하며 人倫不飭하야 百姓이 淫亂은 天子之憂也라
陰陽의 기가 잘 조화되지 못하며 계절의 추위와 더위가 때에 맞지 않게 되어 만물을 손상하며 제후들이 사납게 난동하여 멋대로 서로 공격하여 인민의 생명을 殺傷하며 禮樂이 문란하고 무질서해져서 재정이 궁핍하며 人倫이 지켜지지 않아 백성들이 음란에 빠지는 것은 천자의 근심거리이다.”
今에 子 旣上無君侯有司之勢하며 而下無大臣職事之官이로대 而擅飾禮樂하며 選人倫하야 以化齊民하나니 不泰多事乎아
“지금 그대는 이미 위로 천자나 제후 또는 관리의 勢力이 없고 아래로 大臣과 정해진 職官이 없는데도 멋대로 예악을 꾸미고 인륜의 도를 가르쳐서 만민을 교화하려 하니 너무 일이 많지 않은가.
且人有八疵하고 事有四患하니 不可不察也니라
또한 사람에게는 여덟 가지의 瑕疵가 있고 일에는 네 가지의 걱정거리가 있으니 이것을 잘 살피지 않을 수 없다.
非其事而事之를 謂之摠(注27)
이오 莫之顧而進之를 謂之佞이오 希意道言을 謂之諂이오 不擇是非而言을 謂之諛오 好言人之惡을 謂之讒이오 析交離親을 謂之賊이오 稱譽詐僞하야 以敗惡人을 謂之慝이오 不擇善否하야 兩容顔適하야 偸拔其所欲을 謂之險(注28)
이니 此八疵者는 外以亂人코 內以傷身이라
자기의 일이 아닌데도 일삼는 것을 아무 일에나 나댄다고 하고, 돌아보는 이도 없는데 進言하는 것을 말재주꾼이라 하고, 상대의 마음을 엿보고 그 기분에 맞춰 말하는 것을 아첨이라 하고, 옳고 그른 것을 가리지 않고 말하는 것을 追從이라 하고, 남의 결점을 즐겨 말하는 것을 誹謗이라 하고, 타인의 우정을 쪼개고 친족을 離間하는 것을 해침이라 하고, 남을 겉으로는 칭찬하며 속으로는 기만하고 속여서 남을 파멸시키는 것을 사악한 자라 하고, 善惡을 가리지 않고 양쪽을 다 받아들여 양쪽에 다 얼굴을 부드럽게 대하면서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훔쳐 빼내는 것을 음험하다고 하니 이 여덟 가지의 하자는 밖으로는 남을 어지럽히고 안으로는 자신을 손상한다.
君子는 不友하며 明君은 不臣하나니라
군자는 이런 사람을 벗으로 사귀지 아니하고 明君은 이런 사람을 신하로 삼지 않는다.
所謂四患者는 好經大事하며 變更易常하야 以挂功名을 謂之叨(注29)
오 專知擅事하야 侵人自用을 謂之貪(注30)
이오 見過不更코 聞諫愈甚을 謂之很(注31)
이오 人이 同於己則可라하고 不同於己어든 雖善이라도 不善을 謂之矜이니 此 四患也니라
이른바 네 가지 걱정거리는 큰일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며 공연히 자주 변경하여 원칙까지 바꾸어 功名을 높이 세우려 하는 것을 외람됨이라 하고, 자기의 지혜를 과신하고 멋대로 일을 처리하여 남의 영역을 侵犯하여 자기 힘을 발휘하는 것을 탐욕이라 하고, 자기의 과오를 알고서도 고치지 아니하고 충고하는 말을 들으면 도리어 더 심하게 어기는 것을 말 듣지 않음이라 하고, 남의 견해가 자기와 같으면 인정하고 자기와 같지 않으면 착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쁘다고 하는 것을 自矜이라 하니 이것이 네 가지 걱정거리이다.
能去八疵코 無行四患이라야 而始可敎已니라
여덟 가지 하자를 제거하고 네 가지 걱정거리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가르칠 만하다.”
孔子 愀然而歎(注32)
하고 再拜而起하야 曰호대
공자는 부끄러워하면서 탄식하고 두 번 절하고 일어나서 말했다.
丘는 再逐於魯하며 削迹於衛하며 伐樹於宋하며 圍於陳蔡호니 丘는 不知所失이로대 而離此四謗者는 何也(注33)
잇고
“저는 魯나라에서 두 번 추방되었으며, 衛나라에서는 발자취까지 모조리 지워졌으며, 宋나라에서는 큰 나무가 잘려 그 밑에 깔릴 뻔하였으며, 陳나라와 蔡나라 사이에서는 포위되는 어려움을 만났으니, 저는 스스로 잘못한 것을 모르겠는데 이 같은 네 가지 치욕을 당한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客이 悽然變容하야 曰호대
그러자 객은 애처로이 여기며 태도를 바꾸고 말했다.
甚矣라
“심하구나.
子之難悟也여
그대가 깨닫지 못함이여.
人이 有畏影惡迹하야 而去之走者(注34)
擧足이 愈數할사록 而迹이 愈多하며 走 愈疾할사록 而影이 不離身이어든 自以爲尙遲라하야 疾走不休하야 絶力而死호대
어떤 사람이 자기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자기 발자국을 싫어하여 그것을 떨쳐내려고 달려 도망친 자가 있었는데, 발을 들어 올리는 횟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만큼 발자국도 더욱 많아졌고 달리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그림자가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는데, 그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달리기가 아직 더디다고 생각해서, 쉬지 않고 질주하여 마침내는 힘이 다하여 죽고 말았다.
不知處陰以休影하며 處靜以息迹하니 愚 亦甚矣(注35)
라
그는 그늘에서 그림자를 쉬게 하고 조용히 멈추어 발자국을 쉬게 할 줄 몰랐으니 어리석음이 또한 심하다.
子審仁義之間하며 察同異之際하며 觀動靜之變하며 適受與之度하며 理好惡之情하며 和喜怒之節하야도 而幾於不免矣(注36)
리라
그대는 仁義道德의 세계를 자세히 따지고, 같음과 다름의 경계를 분명하게 살피고, 出處進退에 따르는 정세의 변화를 관찰하고, 물건을 주고받는 節度를 합당하게 하고, 좋음과 싫음의 감정을 잘 다스리고, 즐김과 성냄의 절도를 조화하려 하니 그래 가지고서야 危害를 면치 못하는 데 가까울 것이다.
謹脩而身하며 愼守其眞하고 還以物로 與人이면 則無所累矣(注37)
리어늘
삼가 그대의 몸을 수양하고 삼가 참된 道를 지키고 功名 따위의 물건을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면 몸을 고달프게 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今에 不脩之身하고 而求之人하나니 不亦外乎아
그런데 지금 자기 자신을 닦지 아니하고 남에게 요구하는 일만 하고 있으니 또한 빗나간 것이 아니겠는가.”
孔子 愀然하야 曰 請問何謂眞이잇고
공자가 愀然히 얼굴빛을 바꾸면서 말했다. “청컨대 무엇을 참된 道라고 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客曰
객이 말했다.
眞者는 精誠之至也니 不精不誠하면 不能動人이라
“진실이란 純粹와 誠實의 극치이니, 순수하지 아니하고 성실하지 않으면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가 없다.
故로 强哭者는 雖悲나 不哀하며 强怒者는 雖嚴이나 不威며 强親者는 雖笑나 不和커니와
그러므로 억지로 哭하는 자는 비록 그것이 슬퍼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애처롭지 아니하고, 억지로 성내는 자는 그것이 비록 威嚴 있다 하더라도 남이 위엄을 느끼지 아니하고, 억지로 친하게 행동하는 자는 비록 웃더라도 사람들을 즐겁게 하지 못한다.
眞悲는 無聲而哀하고 眞怒는 未發而威하고 眞親은 未笑而和하나니
그러나 참다운 슬픔은 소리 없이도 애처롭고, 참다운 노여움은 드러나지 않더라도 위엄이 있으며, 참다운 親愛는 웃음이 없이도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眞이 在內者는 神動於外일새니 是 所以貴眞也니라
그것은 참된 道가 안에 갖추어져 있으면 신묘한 작용이 밖에 드러나기 때문이니, 이것이 참된 도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이다.
其用於人理也엔 事親則慈孝하고 事君則忠貞하고 飮酒則歡樂하고 處喪則悲哀하나니
참된 도가 인간세상의 도리에 작용할 때는 어버이를 섬겨서는 慈愛와 孝行이 되고, 임금을 섬겨서는 忠誠과 貞節이 되고, 술을 마셔서는 기쁨과 즐거움이 되고, 喪을 당해서는 슬픔이 된다.
忠貞은 以功으로 爲主하고 飮酒는 以樂으로 爲主하고 處喪은 以哀로 爲主하고 事親은 以適으로 爲主(注38)
하나니라
충성과 정절은 훌륭한 공적을 목적으로 삼고, 음주는 즐거움을 목적으로 삼고, 喪을 치를 때에는 슬퍼함을 목적으로 삼고, 어버이를 섬길 때에는 어버이의 뜻에 꼭 맞추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功成之美는 無一其迹矣(注39)
며 事親以適이언정 不論所以矣(注40)
며 飮酒以樂이언정 不選其具矣며 處喪以哀언정 無問其禮矣니
그래서 功을 이루는 아름다움은 그 자취가 일정하게 한정되지 않으며, 어버이를 섬길 때에는 어버이의 뜻에 꼭 맞으면 되고 그 방법은 따질 것이 없으며, 술을 마실 때에는 즐거우면 그만이지 술을 담는 도구는 가리지 않으며, 喪을 치를 때에는 슬퍼하면 그만이지 장례의 규정은 문제 삼을 것이 없다.
禮者는 世俗之所爲也오 眞者는 所以受於天也라 自然不可易也니라
그러니 禮라고 하는 것은 세속에서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고, 참된 도라는 것은 자연에서 받은 것인지라 본디 그러하여 바꿀 수 없는 것이다.
故로 聖人은 法天貴眞하야 不拘於俗이어든 愚者는 反此하야 不能法天하고 而恤於人하며 不知貴眞(注41)
하고 祿祿而受變於俗이라
그러므로 聖人은 自然인 天을 본받고 참된 도를 귀하게 여겨 세속의 풍속에 구속되지 아니하는데, 어리석은 자들은 이에 反하여 自然인 天을 본받을 줄 모르고, 인위적인 구속을 걱정하며, 참된 道를 귀하게 여길 줄 모르고 주체성 없이 남에게 끌려만 다니면서 세속에 의해 변화된다.
故로 不足(注42)
하니
그 때문에 참된 도가 부족하게 된다.
惜哉라
애석하구나.
子之早湛於人僞 而晩聞大道也(注43)
여
그대는 일찍부터 人爲에 빠져 뒤늦게 大道를 듣게 되었구나!”
孔子 又再拜而起하야 曰
孔子가 또 再拜하고 일어나 말했다.
今者에 丘의 得遇也 若天幸然하니
“지금 제가 선생을 뵙게 된 것은 하늘이 준 행운 같습니다.
先生이 不羞하사 而比之服役(注44)
하사 而身敎之(注45)
하시니 敢問舍의 所在하노이다
선생께서 저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셔서 저를 심부름꾼의 대열에 넣어 직접 가르쳐 주셨으니 감히 선생의 집이 있는 곳을 여쭙습니다.
請因受業하야 而卒學大道하노이다
청컨대 이어서 가르침을 받아 끝내 大道를 배우고자 합니다.”
客이 曰호대
客이 말했다.
吾는 聞之호라 可與往者로 與之면 至於妙道오 不可與往者는 不知其道니 愼勿與之라야 身乃無咎라호라
“나는 듣건대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하면 오묘한 道에 이를 수 있고, 함께 나아갈 수 없는 사람과는 妙道를 알 수 없으니 삼가 함께 하지 말아야만 내 몸에 허물이 없게 된다.’라고 합니다.
子는 勉之어다
그러니 그대는 힘쓰도록 하시오.
吾는 去子矣로다
나는 그대를 떠나겠소.
吾는 去子矣로다하고
나는 그대를 떠나겠소.”
乃刺船而去하야 延緣葦間(注46)
하더니
어부는 이렇게 말하고는 마침내 노를 저어 물가를 따라 갈대 사이로 사라졌다.
顔淵이 還車하고 子路 授綏한대 孔子不顧하고 待水波定하야 不聞拏音한 而後에야 敢乘(注47)
이어늘
顔淵이 수레를 〈공자가 있는 쪽으로〉 돌리고, 子路가 수레 손잡이를 내주었는데도 공자는 돌아보지도 아니하고 물결이 가라앉고 노 젓는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기를 기다린 뒤에야 비로소 수레에 올라탔다.
子路 旁車而問(注48)
하야
자로가 수레 옆에 나란히 붙어 걸으면서 물었다.
曰호대 由 得爲役이 久矣로대 未嘗見夫子의 遇人如此其威也호이다
“제가 오랫동안 선생님의 심부름꾼으로 지냈는데 아직 한번도 선생님이 이처럼 두려워하고 삼가면서 남을 응대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萬乘之主와 千乘之君이 見夫子하고 未嘗不分庭伉禮(注49)
어든 夫子 猶有倨傲之容하더시니
萬乘의 천자와 千乘의 제후들이 선생님을 만나 보고 뜰을 나누어 동서로 마주 보는 대등한 禮를 갖추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도 선생님은 오히려 상대를 내려보는 거만한 모습을 지니셨습니다.
今에 漁父 杖拏逆立이어늘 而夫子曲要磬折(注50)
하사 言拜而應(注51)
하시니 得無太甚乎(注52)
이잇가
그런데 지금 어부가 노를 짚고 마주 섰을 뿐인데도 선생님께서는 허리를 구부리고 몸을 기역자로 꺾으시고 상대가 말할 적마다 반드시 절을 하고 응대하시니,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門人이 皆怪夫子矣로소니
제자들이 모두 이상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漁父는 何以得此乎잇고
저 어부는 어떻게 해서 선생님에게서 이 같은 敬意를 얻을 수 있었습니까?”
孔子 伏軾而歎(注53)
하야 曰호대
孔子는 수레의 가로나무에 엎드린 채로 탄식하며 말했다.
甚矣라
“심하구나!
由之難化也여
由를 가르치기 어려움이여!
湛於禮義 有間矣로대 而樸鄙之心을 至今未去(注54)
로다
禮義에 몰두한 지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거칠고 비루한 마음을 지금껏 버리지 못하고 있구나.
進하라
가까이 오라.
吾語汝호리라
내가 너에게 말해주겠다.
夫遇長不敬이 失禮也오 見賢不尊이 不仁也니 彼非至人인댄 不能下人하리며 下人不精이면 不得其眞이라
어른을 만나 공경하지 않는 것은 禮를 잃은 것이고, 현자를 보고 존경하지 않는 것은 어질지 아니한 것이니 그분이 道에 도달한 至人이 아니라면 남의 머리를 숙이게 할 수 없을 것이며, 〈내가〉 남에게 머리를 숙이면서 순수하지 않으면 진실을 얻지 못할 것이다.
故로 長傷身하니
그 때문에 언제까지나 자신의 몸을 해칠 따름이다.
惜哉라
애석하구나.
不仁之於人也에 禍莫大焉이어늘 而由 獨擅之하도다
不仁은 사람에게 그보다 더 큰 화가 없는 것인데도 由는 不仁한 행동을 멋대로 하고 있구나.
且道者는 萬物之所由也니 庶物이 失之者는 死하고 得之者는 生(注55)
하며 爲事 逆之則敗하고 順之則成이라
또한 道라고 하는 것은 만물이 말미암는 근원이니, 모든 사물이 이 道를 잃으면 죽고 이 도를 얻으면 살며, 일을 하는 경우에도 이 도에 어긋나면 실패하고 이 道를 따르면 성공한다.
故로 道之所在를 聖人이 尊之하나니
그러므로 道가 있는 곳을 聖人은 존중한다.
今漁父之於道에 可謂有矣이니 吾敢不敬乎아
그런데 지금 어부에게는 도가 있다고 말할 수 있으니 내가 감히 공경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역주
역주1 孔子遊乎緇惟之林 休坐乎杏壇之上 : 공자가 숲 울창한 緇惟林에서 노닐다가 살구나무를 심어 놓은 杏壇에 앉아 쉼. 緇惟는 緇帷와 같다. 緇帷之林은 숲이 휘장처럼 펼쳐져 어두운 곳. 緇帷는 숲이 울창함을 표현한 말이다. 成玄英은 “숲이 울창하여 해를 가려 음침하고 잎사귀가 펼쳐지고 가지가 드리워져 마치 휘장과 같기 때문에 緇帷之林이라 한 것이다[其林鬱茂 蔽日陰沈 布葉垂條 又如帷幕 故謂之緇帷之林也].”라고 풀이했다. 陸德明은 惟를 따로 표기하여 “어떤 판본에는 帷로 되어 있다[本或作帷].”고 소개했다. 이처럼 惟는 維로 표기되어 있는 판본(狩野直喜, 王叔岷), 帷로 표기되어 있는 판본(狩野直喜, 王叔岷)이 있으며 帷로 표기되어 있는 인용문이 있는데(王叔岷) 金谷治 책, 《莊子集釋》本, 林希逸 현토本, 福永光司 책, 安東林 책 등에는 ‘帷’로 표기되어 있다. 惟와 維는 모두 帷의 假借字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司馬彪는 緇惟를 “검은 숲 이름이다[黑林名也].”라고 풀이했다. 杏壇은 공자가 제자를 가르쳤던 곳을 말한다. 공자의 후손이 그곳에 壇을 만들어, 살구나무를 심고 비석을 세웠다는 견해가 있는데 뒤에는 학문을 가르치는 곳의 범칭이 되었다. 또 道士가 수련하는 곳을 杏壇이라고도 하는데 여기는 공자와 관련된 이야기이므로 도사와는 무관하다. 역주2 鬢眉交白 : 구레나룻과 눈썹이 모두 흼. 鬢은 구레나룻. 世德堂本, 莊子集釋本, 安東林 책, 金谷治 책에는 須로 되어 있고, 林希逸 현토本, 福永光司 책에는 鬢으로 되어 있다. 福永光司의 견해를 따라 鬢으로 표기하였다. 交와 白은 모두 희다는 뜻. 交는 皎와 같다. 郭慶藩 또한 《莊子集釋》에서 “陳景元의 《莊子闕誤》에 張君房본을 인용하여 ‘交’를 ‘皎’로 표기하고 있다.”고 풀이하고 있다. 역주3 被髮揄袂 : 머리를 풀어헤치고 소매를 휘저음. 揄(끌 유, 휘두를 유)는 ‘휘젓다’는 뜻으로 李頤는 投(투)로 발음하고, 휘두르다[揮]는 뜻으로 풀이했다. 역주4 行原以上 距陸而止 : 늪지대를 걸어 올라와 언덕에 이르러 멈추어 자리를 잡음. 原은 들. 여기서는 ‘강가의 늪지대’. 距는 도달함. 李頤가 “이름이다[至也].”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陸은 언덕. 曹礎基는 “《爾雅》 〈釋地〉에 넓고 평평한 곳을 原이라 하고 높고 평평한 곳을 陸이라 한다……陸이 原보다 높다. 그 때문에 먼저 늪지대를 걸어 올라온 다음에 언덕에 이른다[爾雅 釋地 廣平曰原 高平曰陸……陸高于原 故先行原而後距陸].”라고 풀이했다. 역주5 孔氏者何治也 : 공씨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何治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는 뜻이다. 成玄英은 “공씨는 어떤 법술로 자기 몸을 다스리는지 물은 것이다[問孔氏以何法術脩理其身].”라고 풀이했는데 다소 미흡하다. 역주6 子路未應 : 자로가 미처 대답하지 못함. 《論語》 〈述而〉편에 “섭공이 자로에게 공자에 대해 묻자 자로가 대답하지 못했다. 공자가 말하기를 ‘너는 어찌하여 그 사람됨이 한번 흥미를 느끼면 밥 먹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즐거움으로 근심을 잊어서 늙음이 이르는 줄 알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았느냐[葉公 問孔子於子路 子路不對 子曰 女奚不曰 其爲人也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라고 한 대목과 유사한 맥락이다. 역주7 性服忠信 身行仁義 飾禮樂 選人倫 : 태어나면서 忠信을 갖추고 몸소 인의를 실행하며 예악을 지키고 인륜을 갖춤. 服은 ‘일삼음’. 行의 뜻. 飾은 다스릴 칙. 飭의 假借字. 選은 譔의 가차자로 ‘敎’와 같은 뜻. 忠信은 《論語》 〈學而〉편과 〈子罕〉편에 ‘主忠信’이라고 한 것을 비롯 〈顔淵〉편, 〈衛靈公〉편 등 여러 곳에 보인다. 역주8 客乃笑而還 行言曰 : 객이 마침내 웃으면서 돌아가는데, 걸어가면서 말함. 行言은 걸어가면서 말함. 行은 걸어간다는 뜻이다. 역주9 仁則仁矣 恐不免其身 : 어질기는 틀림없이 어질지만, 아마도 그 몸은 화를 면치 못할 것임. 仁則仁矣는 〈天道〉편 제6장의 堯舜問答 가운데 ‘아름답기는 아름답지만[美則美矣]’이라고 한 것과 유사한 표현이다. 恐은 ‘아마도’. 역주10 苦心勞形 以危其眞 : 마음을 괴롭히고 몸뚱이를 지치게 해서 자신의 참된 본성을 위태롭게 함. 苦心勞形는 〈應帝王〉편 제4장에서 “몸을 수고롭게 하고 마음을 졸인다[勞形怵心].”라고 한 표현과 같은 의미이다. 危其眞은 〈盜跖〉편 제1장의 ‘惑其眞’, 〈山木〉편 제8장의 ‘忘其眞’ 등과 유사한 맥락이다. 역주11 遠哉其分於道也 : 멀리 벗어났구나. 참된 도에서 분리됨이여. 分은 일탈함. 분리되어 나감. 成玄英은 “현묘한 도에서 분리됨이다[分離於玄道也].”라고 풀이했다. 역주12 方將杖拏而引其船 : 바야흐로 노를 세워 배를 끌어 띄우려 함. 拏는 ‘뇨’로 읽고, 배 젓는 노를 뜻한다. 成玄英은 “拏는 노이다[拏 橈也].”라고 풀이했다. 역주13 孔子反走 再拜而進 : 공자는 빠른 걸음으로 뒤로 물러나서 노인에게 두 번 절하고서 천천히 노인 앞으로 나아감. 成玄英은 “뒤로 물러났다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경건한 모습이다[反走前進 是虔敬之容也].”라고 풀이했다. 孔子反走 再拜而進은 〈盜跖〉편에도 “자리를 피해서 뒤로 물러났다가 도척에게 두 번 절했다[避席反走 再拜盜跖].”라고 하여 비슷한 글이 있다. 역주14 曩者에 先生이 有緖言而去 : 조금 전에 선생께서는 말의 실마리만 꺼내시고 그냥 떠나심. 曩은 ‘접때’, ‘지난번’. 成玄英은 “曩은 아까이다[曩 向也].”라고 풀이했다. 緖言은 실마리가 되는 말. 陸德明은 “緖言은 먼저 하는 말과 같다[緖言 猶先言也].”라고 풀이했다. 한편 兪樾은 《楚辭》와 《莊子》 〈讓王〉편을 인용하면서 緖는 餘와 같다고 풀이하고, 緖言은 ‘찌꺼기 말[餘言]’이라고 풀이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역주15 竊待於下風 : 가만히 선생의 풍모 아래에서 기다림. 陳景元의 《莊子闕誤》에서 인용하고 있는 張君房본에는 ‘待’자가 ‘侍’자로 표기되어 있다. 역주16 幸聞咳唾之音以卒相丘也 : 다행히 선생의 기침소리를 듣게 하셔서 마침내 저를 도와주시기 바람. 幸은 ‘다행히 ~하고자 함’, ‘~하게 되기를 바람’. 卒은 마침내. 相은 돕는다는 뜻이다. 成玄英은 “卒은 마침내이고 相은 도움이다[卒 終也 相 助也].”라고 풀이했다. 역주17 甚矣子之好學也 : 심하구나. 그대가 배우기를 좋아함이여. 《論語》 〈述而〉편 제5장의 “심하구나 나의 쇠약함이여. 오래되었구나 꿈에 주공을 보지 못한 지가[甚矣 吾衰也 久矣 吾不復夢見周公].”라고 한 어투와 같다. 또 〈公冶長〉 제27장에서 “열 가구 사는 고을에도 충과 신이 나만 한 이가 있겠지만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十室之邑 必有忠信 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라고 한 말을 야유한 표현이다(福永光司). 역주18 少而脩學 以至於今 六十九歲矣 : 어려서부터 학문을 닦아 지금에 이르러 69세가 됨. 《論語》 〈爲政〉편에서 “나는 열다섯 살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일흔 살에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吾十有五而志于學……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고 한 내용을 염두에 두고 서술한 부분일 것이다. 역주19 同類相從 同聲相應 固天之理也 : 같은 부류가 서로 따르고 같은 소리가 서로 공명하는 것은 진실로 자연의 이치임. 相應은 反應共鳴한다는 뜻이다. 天之理는 자연의 법칙. 역주20 吾請釋吾之所有而經子之所以 : 나는 청컨대 나에게 있는 道는 잠깐 놓아두고 그대가 하는 일의 조리를 따져보겠음. 釋은 捨와 같다. 吾之所有는 나에게 있는 道. 福永光司는 釋을 ‘釋明’의 뜻으로 보았는데 적절치 않다. 經은 다스림으로 經世의 經과 같은 뜻인데 여기서는 따진다는 뜻이다. 司馬彪는 “經은 다스림이다[經 理也].”라고 풀이했다. 역주21 子之所以者 人事也 : 그대가 하는 일은 인간의 일임. 人事는 인간 세상의 일. 〈盜跖〉편 제1장에 이미 나왔다. 역주22 官治其職하며 人憂其事하매(하며) 乃無所陵 : 관직에 있는 모든 관리가 자기 직분을 잘 처리하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일을 근심하고 애쓰면 누구도 분수를 침범함이 없을 것임. 狩野直喜, 王叔岷, 金谷治, 安東林 등은 高山寺古鈔本을 따라 憂其事를 處其事로 고치는 것이 옳다고 했는데 于省吾의 주장처럼 處자를 安의 뜻으로 풀이하면 위의 治其職과 대응관계가 자연스러워지지만, 반드시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여기서는 福永光司와 池田知久의 견해를 따라 憂자가 아래 문장의 ‘庶人之憂’, ‘大夫之憂’, ‘天子之憂’의 ‘憂’와 각각 대응하는 것으로 보고 그대로 둔다(福永光司, 池田知久). 陵은 침범함. 犯과 같은 의미로 직분 또는 계급질서를 침범한다는 뜻이다. 成玄英은 “陵 또한 어지럽힘이다[陵 亦亂也].”라고 풀이했는데 미흡하다. 역주23 田荒室露 衣食不足 徵賦不屬 妻妾不和 長少無序 庶人之憂也 : 전답이 황폐해지고 집이 파괴되어 의식이 부족하고 세금을 이어서 내지 못하게 되고 처첩이 不和하고 장유의 질서가 무너져 없어지게 되는 것은 서민들의 근심거리임. 室은 室家. 露는 파괴됨. 王念孫은 ‘敗’로 풀이했다. 屬은 ‘이을 촉’. 不屬은 ‘이어지지 못함(林希逸)’. 역주24 能不勝任 官事不治 行不淸白 群下荒怠 功美不有 爵祿不持 大夫之憂也 : 능력이 임무를 감당하지 못하여 관청의 일도 만족스럽게 처리하지 못하며 행동이 청렴하지 못하여 부하들이 멋대로 하고 태만하며 훌륭한 공적도 없으며 작위와 봉록을 유지할 수 없음은 대부들의 근심거리임. 馬叙倫은 荒자는 忘자의 假借字라고 했는데 다소 무리(池田知久). 功美는 훌륭한 공적, 美功과 같다. 不持는 지키지 못함. 林希逸은 “지키지 못함이다[不能持守].”라고 풀이했다. 역주25 廷無忠臣 國家昏亂 工技不巧 貢職不美 春秋後倫 不順天子 諸侯之憂也 : 조정에 충신이 없어서 국가가 혼란하며 工人들의 기술도 정교하지 못하며 조정에 바치는 공물이 조악하며 봄가을의 朝覲을 다른 제후들보다 서열이 뒤처져 천자의 명령을 잘 따르지 못하게 되는 것은 제후들의 근심거리임. 《老子》 제18장에 “국가가 혼란하면 충신이 나타난다[國家昏亂 有忠臣].” 한 내용이 있는데 맥락은 다르지만 참고할 만한 내용이다. 貢職의 職은 ‘賦’로 표기된 문헌이 있고(陸德明), 馬叙倫은 賦가 옳다고 했다. 하지만 貢職은 《淮南子》 〈原道訓〉의 納職과 같다고 한 福永光司의 견해가 좀 더 타당하다. 여기서는 《淮南子》 〈原道訓〉의 高誘 注에 “職은 공물이다[職 貢也].”라고 풀이한 것을 따라 貢職을 貢物로 보고 번역하였다. 倫은 ‘무리’, 여기서는 대등한 지위에 있는 다른 제후들을 말한다. 不順天子는 ‘천자의 명령을 따르지 못하는 것’, ‘천자의 기분을 못 맞추는 것’. 역주26 擅相攘伐 : 멋대로 서로 공격함. 攘은 물리침, 제거함. 成玄英은 “攘은 제거함이다[攘 除也].”라고 풀이했다. 역주27 非其事而事之 謂之摠 : 자기의 일이 아닌데도 일삼는 것을 아무 일에나 나댄다고 함. 摠은 總과 같다. 곧 자기가 할 일이 아닌 것까지 모두 총괄하여 자기가 하려는 행동으로, 나설 때 안 나설 때의 구별이 없이 아무 일에나 나대는 것을 말한다. 成玄英은 “摠은 지나침이다. 자기 일이 아닌데도 억지로 맡는 것을 지나침이라고 한다[摠 濫也 非是己事而强知之 謂之叨濫也].”라고 풀이했다. 역주28 不擇善否 兩容顔適 偸拔其所欲 謂之險 : 선악을 가리지 않고 양쪽을 다 받아들여 양쪽에 다 얼굴을 부드럽게 대하면서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훔쳐 빼내는 것을 음험하다 함. 善否는 선악. 適은 꼭 맞춤. 和와 같다. 역주29 好經大事 變更易常 以挂功名 謂之叨 : 큰일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며 공연히 자주 변경하여 원칙까지 바꾸어 功名을 높이 세우려 하는 것을 외람됨이라 함. 好經大事는 대사를 경영하기를 좋아함. 林希逸은 “국가 대사를 경영하는 것을 기뻐함이다[喜經理國家大事也].”라고 풀이했다. 常은 불변의 원칙. 易常은 불변의 원칙까지 바꿈. 挂는 내건다는 뜻으로 掛와 통한다. 역주30 專知擅事 侵人自用 謂之貪 : 자기의 지혜를 과신하고 멋대로 일을 처리하여 남의 영역을 침범하여 자기 힘을 발휘하는 것을 탐욕이라 함. 林希逸은 “자기의 사사로운 지혜를 마음대로 쓰고 제멋대로 일을 처리하여 남의 권리를 침범하고 자기 힘을 쓰는 이는 탐욕스런 자이다[專用其私智 獨擅其事任 侵之人權而喜於自用 貪者也].”라고 풀이했다. 역주31 見過不更 聞諫愈甚 謂之很 : 자기의 과오를 알고서도 고치지 아니하고 충고하는 말을 들으면 도리어 더 심하게 어기는 것을 말 듣지 않음이라 함. 成玄英은 “과실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아서 간하는 말을 들으면 더 심하게 어기는 이는 말 듣지 않는 사람이다[有過不改 聞諫彌增 很戾之人].”라고 풀이했다. 역주32 孔子愀然而歎 : 공자가 부끄러워하면서 탄식함. 愀然은 부끄러워하는 모양. 成玄英은 “부끄러워하고 송구해하는 모양이다[慚竦貌也].”라고 풀이했다. 역주33 丘不知所失 而離此四謗者何也 : 저는 스스로 잘못한 것을 모르겠는데 이 같은 네 가지 치욕을 당한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林希逸은 丘不知所失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이다[言不知何過也].”라고 풀이했다. 離는 걸림. 罹와 같다. 成玄英은 “罹는 만남과 같다[罹 遭也].”라고 풀이했다. 四謗은 네 곳에서 만난 치욕을 말한다. 林希逸은 “魯나라, 衛나라, 宋나라, 陳나라, 蔡나라에서 당한 네 번의 치욕이다[魯衛宋陳蔡四辱也].”라고 풀이했다. 역주34 人有畏影惡迹而去之走者 : 어떤 사람이 자기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자기 발자국을 싫어하여 그것을 떨쳐내려고 달려 도망친 자가 있었음. 惡迹의 惡(오)는 ‘싫어함’, ‘미워함’. 역주35 不知處陰以休影 處靜以息迹 愚亦甚矣 : 그늘에서 그림자를 쉬게 하고 조용히 멈추어 발자국을 쉬게 할 줄 몰랐으니 어리석음이 또한 심함. 林希逸은 “그늘에 머물고 고요함에 머문다는 것은 도를 비유함이다[處陰 處靜 道之喩也].”라고 풀이했다. 역주36 適受與之度 理好惡之情 和喜怒之節 而幾於不免矣 : 물건을 주고받는 절도를 합당하게 하고, 좋음과 싫음의 감정을 잘 다스리고, 즐김과 성냄의 절도를 조화하려 하니 그래 가지고서야 危害를 면치 못하는 데 가까울 것임. 適은 적절하게 함. 受與之度는 물건을 주고받는 절도. 理는 ‘다스린다’는 뜻이다. 情은 ‘감정’. 林希逸은 “어부의 뜻은 공자께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모두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네 곳의 치욕을 피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漁夫之意謂夫子之爲此 皆爲人 而非爲己 所以不免於四謗].”라고 풀이했다. 역주37 謹脩而身 愼守其眞 還以物與人 則無所累矣 : 삼가 그대의 몸을 수양하고 삼가 참된 道를 지키고 공명 따위의 물건을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면 몸을 고달프게 하는 일이 없게 될 것임. 眞은 참된 도. 林希逸은 ‘本眞自然之道’로 풀이했다. 成玄英은 “자기 몸을 수양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구한다면 어찌 자신을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겠는가[不能脩其身而求之他人者 豈非疏外乎].”라고 풀이했다. 역주38 事親 以適爲主 : 어버이를 섬길 때에는 어버이의 뜻에 꼭 맞추는 것을 목적으로 삼음. 適은 適志, 곧 어버이의 뜻에 꼭 맞춘다는 뜻이다. 역주39 功成之美 無一其迹矣 : 功을 이루는 아름다움은 그 자취가 일정하게 한정되지 않음. 無一其迹矣는 일정한 행위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林希逸은 “한 가지 일도 그 자취가 나타남이 없음이다[無一事而有其迹也].”라고 풀이했고, 方勇‧陸永品 등이 이를 따르고 있지만 바로 뒤에 ‘事親以適 不論所以矣’라고 한 맥락을 고려한다면 一은 일정하게 한정 짓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역주40 事親以適 不論所以矣 : 어버이를 섬길 때에는 어버이의 뜻에 꼭 맞으면 되고 그 방법은 따질 것이 없음. 不論所以는 방법을 따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버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기꺼이 한다는 뜻이다. 역주41 愚者反此 不能法天而恤於人 不知貴眞 : 어리석은 자들은 이에 反하여 自然인 天을 본받을 줄 모르고, 인위적인 구속을 걱정하며, 참된 道를 귀하게 여길 줄 모름. 恤於人은 인위적인 구속을 걱정한다는 뜻으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할까를 염려하여 자신을 구속하는 인위적인 규범에 구속된다는 뜻이다. 成玄英은 “恤은 근심함이다[恤 憂也].”라고 풀이했다. 역주42 祿祿而受變於俗 故不足 : 祿祿하게 주체성 없이 남에게 끌려만 다니면서 세속에 의해 변화된다. 그 때문에 참된 도가 부족하게 됨. 祿祿은 주체성 없이 끌려 다니는 모습. 奚侗은 “따르는 모양이다[隨從之貌].”라고 풀이했다. 역주43 子之早湛於人僞 而晩聞大道也 : 그대는 일찍부터 人爲에 빠져 뒤늦게 大道를 듣게 되었구나! 早가 蚤로 표기된 판본도 있는데 같은 뜻이다. 역주44 不羞而比之服役 :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고 저를 심부름꾼의 대열에 넣어줌. 比는 나란히. 여기서는 ‘끼어준다’, ‘넣어준다’는 뜻이다. 역주45 身敎之 : 직접 가르쳐 줌. 身은 ‘몸소’, ‘직접’의 뜻이다. 역주46 刺船而去 延緣葦間 : 노를 저어 물가를 따라 갈대 사이로 사라짐. 刺船은 노를 저어감. 撑船과 같다. 역주47 待水波定 不聞拏音而後敢乘 : 물결이 가라앉고 노 젓는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기를 기다린 뒤에야 비로소 수레에 탐. 水波定은 물결이 가라앉음. 拏音은 노 젓는 소리. 陸德明은 “배가 움직이기 때문에 물결이 이는데 멀리 떠나가면 물결이 가라앉는다[船行故水波 去遠則波定].”라고 풀이했다. 역주48 子路旁車而問 : 자로가 수레 옆에 나란히 붙어 걸으면서 물음. 旁車는 수레 곁에 있음. 여기서는 수레 옆에 나란히 붙어 걷는다는 뜻이다. 역주49 未嘗不分庭伉禮 : 뜰을 나누어 동서로 마주 보는 대등한 禮를 갖추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음. 分庭은 뜰을 양쪽으로 나누어 主客이 대등한 모습으로 만나는 모양이고 伉禮는 대등한 예라는 뜻이다. 역주50 漁父杖拏逆立 而夫子曲要磬折 : 어부가 노를 짚고 마주 섰을 뿐인데도 선생님께서는 허리를 구부리고 몸을 기역자로 꺾음. 杖拏는 노를 지팡이처럼 짚었다는 뜻이다. 逆立은 마주 보고 섬. 曲要는 허리를 구부림. 要는 腰와 같다. 磬折은 경쇠처럼 구부림. 경쇠는 기역자 모양이기 때문에 몸을 기역자로 꺾었다고 번역하였다. 역주51 言拜而應 : 상대가 말할 적마다 반드시 절을 하고 응대함. 言자가 再자로 표기된 판본이 있으나(馬叙倫), 成玄英이 “말을 들으면 반드시 절하고 대답함이다[受言詞 必拜而應].”라고 풀이한 것처럼 言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역주52 得無太甚乎 :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林希逸 현토본에는 太자가 大로 표기되어 있다. 역주53 伏軾而歎 : 수레의 가로나무에 엎드린 채로 탄식함. 軾은 수레 앞에 설치된 가로나무. 수레에 탄 사람이 공경해야 할 대상을 만나면 이곳에 기대어 고개를 숙인다. 式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역주54 湛於禮義有間矣 而樸鄙之心至今未去 : 예의에 몰두한 지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거칠고 비루한 마음을 지금껏 버리지 못함. 湛於禮義는 예의에 빠짐. 곧 예의에 몰두함. 成玄英은 “예의에 밀착한 지 시간이 참으로 오래되었는데 여전히 비루하고 졸렬하기 때문에 가로나무에 기대 탄식한 것이다[湛著禮義 時間固久 嗟其鄙拙 故憑軾歎之也].”라고 풀이했다. 한편 陸德明은 “湛은 어떤 판본에는 其자로 되어 있다[湛 或作其].” 했는데 그렇게 보면 其於禮義有間矣가 되어 “자로가 예의를 익힌 지 오래되었다.”는 뜻으로 간단히 이해할 수 있지만 굳이 고치지는 않는다. 樸鄙之心은 거칠고 비루한 마음. 역주55 道者 萬物之所由也 庶物 失之者死 得之者生 : 道라고 하는 것은 만물이 말미암는 근원이니, 모든 사물이 이 道를 잃으면 죽고 이 도를 얻으면 살게 됨. 成玄英은 “由는 부터이고, 庶는 衆이다. 도는 만물을 생성하기 때문에 도라 일컫는 것이므로 만물이 도로부터 말미암아 생김을 알 수 있다[由 從也 庶 衆也 夫道生萬物 則謂之道 故知衆庶從道而生].”라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