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17. 영강냇가 카페에서 시인 김시종님과 함께 하다!
송구화님의 시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곡을 쓰셨다는 '어머니 생각' 악보
9월에 있을 '시시콜콜'에서 노래를 듣게 되었다.

김시종시인님을 만나 영신냇가에 있는 시비에서 지으신 시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깊은 의미를 다시 새겨보는 시간을 가졌다. 시인은 본인의 육필원고 등이 그리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으시지만 두고두고 남겨야 할 소중한 재산이기에 기증해 주시는대로 문학관에서 잘 관리하고 보관하겠다했습니다.

'도로고'를 짓게 된 사연과 8편의 시가 작곡이 되어있다는 얘기 등 직접 듣지 않고는 알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영신냇가 시비가 2층으로 되어 있다는 것도, 1층만 해놨더니 영순냇가 놀러 오는 사람들이 그 위에 음식을 차려놓고 놀더라는...^^;; 참 웃지 못할 일화들입니다. 기본적인 상식도 없는 사람들이라고만도 못하는 것이 나즈막히 있으니 그게 뭔지도 잘 몰랐을거라는 생각이 더 들어서.
[백화문학]으로 이름하여 문학지를 만드셨던 이야기며, 22호가 경북타임캡슐에 들어가게 된 사연-400년 후에 열어 본다고 함-도 들었습니다. 불모지였던 문학의 장을 위해 글 좀 소질 있어보이는 제자들을 어떻게 안내했는지까지를....어떤 일이든 나중에는 초심을 잃은 본인도 문제가 되지만 무엇보다 그 혜택(?)을 받은 분들의 마음도 중요해 보입니다. 왜곡하지 말고 그 시대, 그 때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고, 해야했던 때였으므로 지금 현재와 동일시하면서 평가를 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사회복지현장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제대로 된 '안내자' 역할이었습니다. 시인이 그러했습니다. 1967년 문학에 불모지였던 그 시대에 교직에 있었고, 제자들의 소질을 그냥 사라지게 하기에는 안타까웠고, 문경문학이 발전해주기를 바람했기에 하셨던 큰일 들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심사비도 안 받고 심사해주던 일화는 문학도들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는 것도 말입니다. 어린시절부터 글 쓰는 것 좋아했던 저로서는 이분을 스승으로 만났으면 지금쯤 더 관심갖고 많이 쓰고 그래서 제대로 된 작품도 만들어냈을 수도 있지않았을까하는 아주 조금은 문경문인들을 부러워하며 아쉬움을 가져보기도 했습니다.
모든 이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베풀고 주는 이들에 대한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는 것 그대로만 받아들이고 꼬아서 해석을 하지않았으면 오해란 것도 만들어지지않을텐데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시대와 많이 달라져 있음도 감안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을테니까요.

늘 걸어다니시더니 다리가 많이 불편하시답니다. 세월도 못이기는 것이 있지만 너무 많이 걸어 다니신 영향도 크겠지요.
너무너무 덥던 어제(8.17. 임시공휴일) 서울에서 이서연님과 권득용 이사장님, 우리 문경의 자랑인 김시종 시인님과 함께 시원한 아아를 마시며 소중한 이야기를 들으며 시인의 말을 되짚어 봅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글을 쓰라'고.


김시종 43시집 [성에 낀 아침]을 선물 받고 표지 안쪽에 수록되어 있는 '어머니 생각' 악보를 9월 시시콜콜 공연에 들어 볼 수 있다는 기대를 잔뜩 품고 대전으로 전송합니다. 저녁식사까지 이어진 시인과의 만남은 시인이 아닌 남편의 은사님으로 모셨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아프지 마시고 언제까지고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그렇게 계시길 바랍니다. 문경 그 어느 길 에서도 문득문득 시처럼 만날 시인의 발길이 멈추는 곳.....그곳이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글을 써가는 우리들이기를 바라면서.
2020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