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聞香이 넘친 情의 世界
찬샘 조일남 시조집 『식장산 가니』
찬샘이 첫 시조집 ⌜때로는⌟ 이후 6년간의 문학(文學)의 향기(香氣)를 모아 총 6부 90편의 시조로 두 번째 시조집 ⌜비 갠 뒤 식장산 가니⌟를 상재(上梓)한다. 찬샘은 삶을 조용히 관조(觀照)하며, 고운 사랑과 고운 정을 세상에 나눠주는 전형적(典型的) 충청도인(忠淸道人)으로 자연 속에서 자연의 섭리(攝理)를 깨달아 이를 문학 속에 녹여 표출할 줄 아는 시인(詩人)이다. 문단 데뷔 후 20여 년을 먼 하늘 햇살처럼 맑게 사는 무욕인(無慾人)이라고 그의 정년 특집 글에서 밝힌 바 있지만, 그는 한 마디로 속진(俗塵)에 물들지 않는 문학인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사슴 같은 시인이라고 하였다.
공자(孔子)는 인생 60을 이순(耳順)이라 하여 나이 60이 넘으면 하늘의 이치(理致)를 순순히 받아들일 줄 안다고 하였는데, 이는 인생과 함께 가는 문학의 양태(樣態)에도 나타나는가 보다. 찬샘은 시조라는 전통시(傳統詩)를 통하여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情緖)를 시상(詩想)으로 추슬러 이를 천리(天理)에 순응하는 관조의 미학으로 아울렀다. 그러기에 그는 자연 속에 자연스레 인사(人事)를 접합(接合)시킬 줄 아는 시인, 인정(人情)에서 자연을 느낄 줄 아는 시인이다. 찬샘은 이 번 시조집 속에서 한국적 자연 속에 시상을 곰삭혀 토속적(土俗的) 문향(聞香)이 넘치는 정(情)의 세계(世界)를 표출해 내고 있다. 그는 한 그루의 나무, 한 포기의 풀, 한 줌의 바람, 한 가닥의 빛과 소리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스쳐가지 않고 그것들의 본질을 잡아 그의 시의 품에 보듬어 안고 있다. 의식(意識)의 창(窓)을 열고 바라보는 모든 대상은 그의 가슴 속에서 데워져 그의 손끝을 통하여 시로 승화(昇華)되고 있다. 그래 그런지 그의 시조 작품엔 곡진(曲盡)한 서정 속에 은은한 향수(鄕愁)가 배어나오는 것이 많다. 그러면 이런 그의 작품을 몇 편 골라 하나씩 짚어보기로 한다.
1. 자연과 삶의 곡진(曲盡)한 조화(調和)
찬샘 시조(時調)의 첫 번째 미학(美學)은 자연과 삶의 곡진(曲盡)한 조화(調和)에 있다. 자연(自然)의 조응(照應)은 신(神)의 상상력(想像力) 소산(所産)이란 말이 있는데, 찬샘은 자연의 이법(理法) 속에 인간들 삶의 질서(秩序)가 들어 있으므로 자연 속에서 삶을 얻고 삶을 배워 자연처럼 살아야 한다는 하늘의 이치를 깨달아 안 듯하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면서 그가 발표한 작품군(作品群)에 그런 경향성(傾向性)을 보여주는 작품이 드물지 않다. 이 번 시집에서도 시제(詩題)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9할이 자연물(自然物)이다. 인간의 원초적(原初的) 감성(感性)을 자극(刺戟)하는 것은 오감(五感)이요, 오감 가운데도 아주 기본적인 것은 시각(視覺)이라고 한다. 찬샘 시조를 지배하는 감각도 시각이다. 이는 자연물을 순수(純粹) 미학(美學)으로 표현하는 데는 이것이 알맞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는 순수 자연 속에 삶을 곡진(曲盡)하게 투입(投入)하여 이를 조화롭게 표현하고 있다. 이는 이제 자연물을 대하는 그의 시적(詩的) 시각이 그만큼 원숙(圓熟)해졌고, 심리적(心理的) 영토가 그만큼 안정되게 확보(確保)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자연물에 마음을 기대고 거기에서 슬픔과 기쁨, 고적함,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시인의 시작(詩作) 태도(態度)는 그의 작품 속에 면면(面面)히 살아 숨쉬기 마련이다.
바위든 고목이든/ 정갈한 자리만 골라
가부좌 틀고 앉아/ 계절 잊고 선에 든 이여.
다문 잎 잊어버리고/ 우로(雨露) 적셔 사는가.
어쩌다 속연(俗緣)으로/ 바람조차 끊긴 방에
길게 뻗은 뿌리마다/ 분무(噴霧)에 목말라도
뽑아낸 꽃대 하나가/ 세상 언어 다 지운다.
<‘풍란’전편>
이 작품에서 명명(明明)한 삶의 기질본성(氣質本性)을 확연(確然)히 보여주고 있다. ‘정갈한 자리만 골라’ 선적(禪的)으로 사는 ‘풍란’이건만 어쩌다 비바람 몰아치는 속세와 연(緣)을 맺어 살게 되었는가. 그러나 ‘풍란’은 세속(世俗)에서의 삶의 고단함을 극복하고 ‘꽃대 하나’로도 ‘세상 언어 다 지우는’ 세상(世上) 정화작용(淨化作用)을 하고 있다. 자연의 숭고(崇高)함과 위대(偉大)함을 표현한 작품이다. 고고(孤高)한 자연성(自然性)과 어지러운 세속성(世俗性)을 견줘 대비(對比)하면서 그 둘의 조화가 이루어내는 삶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연둣빛 밤꽃이여,
방긋이 향낭을 열자.
고을고을 임의 숨결에
살랑살랑 흘러들자.
남원골 지리산 가다
무심결에 뇌어 본 말.
맑게 개어 더 환한 구름
춘향을 담쏙 안아
쏟아지는 사랑 얘기
세상 다 어지러울라.
단옷날 창포탕으로
말갛게 우려낸다.
<‘단오에는 밤꽃이 핀다.’전편>
밤꽃은 사련(邪戀)의 애정사(愛情事)와 연관(聯關)이 깊다. 밤꽃의 꽃향에 과부 여인네들 사랑이 농익는다는 말이 있듯이 이 작품도 밤꽃에서 남원골 춘향의 연사(戀事)를 연상(聯想)하여 접목(接木) 표현하고 있다. 방긋이 향낭을 열 이는 춘향이고, 살랑살랑 흘러들 임의 숨결은 그 상대역인 이 도령이다. 남원 광한루(廣寒樓)에 얽힌 서사(敍事)를 첫째 수(首) 초, 중장에 담아놓고, 종장에서는 ‘무심결에 뇌어 본 말’이라고 딴청쓰기를 하고 있다. 이렇게 첫째 수에서는 지상의 연사(戀事)를 표현하고, 둘째 수(首)에서는 천상(天上)으로 사랑을 승화(昇華)시켜 속인(俗人)들의 사랑과는 차별화됨을 표현하고 있다.
‘세상 다 어지러울라.’하여 세상 사람들이 춘향골 사랑도 세속적인 것으로 착각(錯覺)하는 혼란을 경계(警戒)하면서‘단옷날 창포탕으로’ 잡귀(雜鬼)를 몰아내듯이 세인(世人)의 속된 생각을 ‘우려낸다.’고 말하고 있다. 비록 허구(虛構)인 춘향전 이야기이지만 밤꽃이란 자연 사물에 투사(投射)하여 형상화하였다. 시인은 이런 과정을 통하여 고고하고 정갈한 삶을 추구하는 희구심(希求心)을 표현한 것이다.
이런 유(類)는 <긴 장마 끝에서>의 둘째 수 “맑은 물소리/ 오르는 길 지워놓고//해맑은 손을 들어/ 우리 내욀 이끌지 않나// 발 벗고 따라 들어가/ 산을 자꾸 빨아 올렸다.//”나 <가다가>의 둘째 수 “가던 길 잠시 멈춰/ 둘러도 봐야 하리// 바람 따라 눕는 풀,/ 풀꽃 밟아 뜨는 인심// 눈 맑혀 한 조각 하늘 당겨/ 마음결에 펴야 하리.//와 같은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가다가>는 표현한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중장의 ‘바람 따라 눕는 풀,/ 풀꽃 밟아 뜨는 인심’과 같은 대구(對句)를 통해 표현 기법의 묘(妙)를 한껏 살린 작품으로 자연 현상과 사람 사이의 일인 인사(人事)가 합일(合一)을 이룬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작품으로 <김영희 닥종이 나라>가 있다. 이 작품은 표현 기법으로 볼 때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활유법(活喩法)을 사용하여 요즘 시문학에 주류적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는 생태시(生態詩)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닥종이가 ‘문화에 뼈 시린 고독을 앓고”난 다음 ‘내면의 울림으로 눈을 번쩍 떠’‘새 숨결’을 고르며, 새 생명으로 태어난다. 그런 ‘닥종이의 주름마다 정이 새록 배어난다.’무생물의 인간화가 이루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이미지의 확산(擴散)과 응축(凝縮)이 역동적으로 이루어지고, 원형심상으로 볼 때 묵시적(黙示的) 이미지가 생동(生動)한다. 시조가 정적(靜的) 침묵(沈黙)의 문학이라고 하면서 현대 흐름으로 볼 때 화석화(化石化)되었다고 매도(罵倒)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런 이들의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아 반증(反證)해 주는 작품으로 찬샘의 이런 유(類) 작품을 보라 권하고 싶다. 정중동(靜中動)이라 할까. 평이(平易)한 시어를 통하여 현대 자유시(自由詩) 못지않게 만상(萬象)에 생동하는 숨소리를 부여(附與)한 다음 이를 인사(人事)에 접목(接木)하는 생태시(生態詩)의 시풍(詩風)을 찬샘은 어렵지 않게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찬샘은 표현상의 기법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자연과 삶의 곡진(曲盡)한 조화를 표현해 보이고 있다.
2. 향수(鄕愁) 어린 회상(回想)의 서정(抒情)
찬샘 시조(時調)의 두 번째 미학(美學)은 향수(鄕愁) 어린 회상(回想)의 서정(抒情)인데, 농경시대(農耕時代) 고향과 가족, 이웃을 대상으로 서정(抒情) 어린 자연 낙원성(自然 樂園性) 향수(鄕愁)를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과 들 다 아름다워 그 이름이 금산(錦山)이다.
산 좋아 물도 좋고 사는 사람 이를 닮아
아침 해 불끈 솟아도 관청문 열 일 없었네.
내 오감(五感) 그 품에서 이슬 마셔 자라왔고
가끔씩 진악(進樂)에 올라 끌어당긴 그림 한 폭
지금도 그 마음으로 사는 거지, 사는 거야.
<‘금산이 아름답다’ 첫째 수, 둘째 수>
이 시조 작품의 모티브(motive)가 된 금산(錦山)은 찬샘의 고향이다. 그는 금산 가운데도 풍광(風光)이 빼어난 적벽강을 끼고 있는 부리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자랐다. 그런 금산의 산수가 뛰어남은 일반인들도 인정하는 자연 낙원의 표상(表象)인 요산요수(樂山樂水)이다. 논어(論語)에 보면 지자요수(知者樂水)요,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 했으니 찬샘의 고향 금산(錦山) 사람들은 그런 산수(山水)를 닮아 지혜롭고 어진 사람이 살고 있어 시비(是非) 곡절(曲折)을 가려주는 관청(官廳)을 개청(開廳)할 필요 없는 것이다. 요순(堯舜) 시대 백성들이 불렀다는 격양가(擊壤歌)가 불려져 나올 법한 경지(境地)가 아닌가.
시적 화자 ‘나’ 또한 ‘이슬’로 표상(表象)되는 더러움과 세속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의 토양에 성장했기에 그 산수(山水)를 닮은 마음으로 산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 아니, 스스로의 삶을 유유자적(悠悠自適)의 순박(醇朴)한 삶이라고 자부(自負)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삶은 순수이며, 자연의 순리(順理)이다. 그의 작품은 그런 삶을 바탕으로 시조(時調)시학(詩學)의 상상력(想像力)을 발동시켜 서정의 곡조(曲調)로 뽑아낸 심상(心象)의 피륙이다.
자갈밭 종종대는 낄러기 따르다가
풍덩풍덩 뛰어든 물에 하늘도 따라 들어
우르르 꽃고기 피라미 떼 얼싸얼싸 춤을 췄지.
징검다리 나무다리 초겨울 맨다리에
여름철 겨드랑 물도 둥실둥실 건너게 하며
확 트인 그 너른 가슴 우리 삶의 배움터였지.
<‘봉황천’ 첫째 수, 둘째 수>
자갈밭, 낄러기, 꽃고기, 피라미, 징검다리 등은 농경시대(農耕時代) 고향 정경(情景)의 정겨움을 제시하는 객관적(客觀的)상관물(相關物)로 토속적(土俗的) 정서를 환기(喚起)하는 시어(詩語)들이다. 유년(幼年)의 아름다운 추억이 세월을 뛰어넘어 펼쳐지고 있는 작품이다.
자갈밭에서 새 울음소리를 벗 삼아 뛰어노는 모습의 회화적(繪畵的) 이미지와 티 없이 순수한 시골마을 낄러기 울음소리의 청각적(聽覺的) 이미지가 어우러진 한 폭의 동양화(東洋畵)이다. 고향을 그리는 향수심(鄕愁心)이 물씬 배어난 작품이다. 누구에게나 고향은 동화(童話) 속 마을이고 그곳의 추억은 거짓 없는 소박함이 마음자리를 차지하는 동화 속의 이야기가 된다.
이 작품에 나타난 소박(素朴)함과 천진난만(天眞爛漫)함이 바로 고향 동경(憧憬)의 표상(表象)이다.
방이 두 개
토방에는
신발이 늘 가득했지
하나는할아버지방조반든어른들하나둘모여들어크고작은집안일동네일이웃마을얘기까지둥글둥글굴려가며얽힌것풀어주고잘못된일꾸짖되모둠으로하시고또하나는동네일꾼들방새끼꼬고망태기바구니도만들며니얘기저얘기슬금슬금돌여가다때로는춘향전에귀를열어무딘마음다듬어보며놉도얻고품도앗아동네일꾸려가고저물녘걱정스런길손맞아들여저녁밥도먹여주고조반까지안심이라바깥세상얘기슬슬풀어내다별이기우니태봉재못넘어보고저세상갈지라도세상사람사는이치모르진않고살았는데
헛간 된 사랑채 앞에서
무심결에 서성인다.
<‘사랑채’ 전편>
위 작품들 모두가 그 표현 기법상 되돌아보기(회상) 수법을 사용한 공통점이 있지만 <금산이 아름답다> <봉황천>이 산수(山水), 동심(童心)을 촉매(觸媒)로 한 소극적이고 정적인 자연 향수심을 표현했다면 <사랑채>는 보다 적극적이고 역동적(力動的)인 개별 향수심이 발로(發露)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사설시조로서의 서사성(敍事性)과 우의성(寓意性)을 잘 살려 한 필(匹)의 명주를 짜듯 공들여 인간적 사설 미학을 표출한 가작(佳作)이다. 특히 중장을 띄어쓰기 없이 처리함으로써 가쁜 숨을 몰아쉬는 자진머리조의 음악적 고려(考慮)도 했음직하다. 그리고 자간(字間) 연결고리를 서로 걸치게 하여 고달프나 정겨운 서민적 생활상을 표출한 점도 높이 살만하다. 어쩌면 이 <사랑채>는 개인의 집에 배치(配置)된 존재가 아닌 세상을 여닫는 소식의 관문(關門)인 태봉재로 파악된다. 찬샘도 지적했듯이 태봉재는 현재 금산과 대전 간을 가르는 높은 재(嶺)로 조선 태조 이성계의 태실(胎室)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이 고개는 재 안인 닫힌 세계 금산과 재 밖인 열린 세계를 연결하는 세상 소식 문이다. 그래서 이 재에선 바깥소식, 안 소식이 서로 얽히고설켜 펼쳐진다. 그런 모습을 찬샘은 지금 보고 있는 듯 눈에 선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 <사랑채>는 다정다감하고 복잡한 일상을 삶의 질서 속에서 조화롭게 공존(共存)시키며, 현재 도시화(都市化), 사이버화(化)된 세상에서의 이런 미풍(美風)의 일탈(逸脫)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사설시조의 표현 기법인 예화를 통하여 알레고리(Allegory)로 표현하고 있다. 나이 들어 느끼는 간절한 세계가 바로 동심(童心)의 터전에 펼쳐졌던 지난 세월이 아니겠는가. <우리 동네 버드나무>에도 지난 세월에 대한 향수와 안타까움 섞인 허탈감(虛脫感)이 나타나 있다. ‘텃새도 떠나고/ 그리움도 바래더니/ 힘센 그 굵은 가지/ 모지라진 허허로움에/ 이 가을/ 앞산이 무너져도/ 귀 밖에 멀겠구나.’하면서 사라지는 세계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영탄조로 표현하고 있다.
이 부문에 나타난 작품 구조의 특징은 구조(構造)의 이원성(二元性)이다. 시적 대상을 표현함에 있어 시간적으로는 과거와 현재, 공간적으로는 현장 공간과 회상 공간이 중첩(重疊) 교차(交叉)되는 양상(樣相)을 보여준다. 앞 작품 <금산은 아름답다>에서 보면 첫 수는 과거, 회상 공간이고, 둘째 수는 현재, 현장 공간이다. <사랑채>에서도 초, 중장은 과거, 회상 공간이고, 종장은 현재, 현장 공간이다. 이렇게 앞뒤로 짝을 지워 작품을 구조화(構造化)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안국상회>에도 나타난다.
‘무주 영동 장길을 터/ 북적대던 쇠전 네거리’는 과거, 회상 공간이고, ‘그 옛날 그 자리에서/ 그 세월 다 꿰고 있다’는 현재, 현장 공간이다. 그리고 ‘대를 이은 주인 이마’엔 현재와 과거, 회상 공간과 현장 공간이 동시 오버 랩(overlap)되고 있다. 이 작품은 대칭(對稱) 구조(構造)를 통하여 향수(鄕愁) 어린 어릴 적 추억을 시공(時空)을 뛰어넘어 현재 속에 그려내면서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향토(鄕土)정서(情緖)를 표출함으로써 우리의 정감을 자아내고 있다. 이렇게 찬샘은 과거(過去)와 현재(現在), 회상(回想)과 현장(現場) 공간(空間)의 대비(對比)를 통하여 향수(鄕愁) 어린 회상(回想)의 서정(抒情)을 간곡(懇曲)하게 표현하고 있다.
3. 전아(典雅)한 토속적(土俗的) 정서(情緖)
찬샘 시조(時調)의 세 번째 미학(美學)은 이해의 용이성(容易性)과 전아(典雅)한 토속적(土俗的) 정서(情緖)의 형상화(形象化)이다. 시조가 가지는 시형(詩形)의 특징은 ‘한 줄 네 마디 형식’의 양식적 상상력을 살려 서정을 변주(變奏) 완결하는데 두고 있다. 그러나 시상(詩想) 전개와 시적(詩的) 호흡에 따라 적절한 변형(變形) 파격(破格)은 허용(許容)할 수 있는 것이 현대시조의 특장(特長)이다. 다시 말하면 소음보격과 과음보격을 수용하는 너름새가 있다는 말이다. 찬샘은 이런 현대시조의 특장을 잘 활용하여 표현의 묘를 확산시키고 있다. 워즈워드는 ‘모든 좋은 시는 강한 감정의 자연적 발로’라고 하여 시의 주관적 정서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찬샘은 시적 대상과 시적 화자의 심리적 거리를 잘 조정하면서 시조의 장치인 형식과 내용이 상호 조응(照應)하는 자연 발로적 정서가 짙은 작품의 전형(典型)을 보여주고 있다.
비비 틀린 몸으로
수백 년쯤 아픔 삭여야
비로소 사람 가까이
사랑 받는 나무인데
너희는 쪽 곧은 몸매로
세월 잊고 당당한가.
천하 절경 한 계곡을
지켜선 미인들이라
하늘이 두려워서
맘에나 담아 가니
옛 분들 사모한 정이
저리 쌓여 오늘인가.
팔천여 줄지어 서서
온 몸으로 맞이하여
속세에 찌든 업보
하나하나 씻어주니
금강에 드는 걸음에
가뿐 가뿐 바람이 인다. <‘미인송’ 전편>
금강산에서 만난 시적 대상인 소나무를 통하여 탈속(脫俗)의 염(念)을 형상화하였는데, 절제(節制)된 시형 속에 평이(平易)한 시어들이 균제(均齊)된 리듬으로 알맞게 자리 잡고 있다. ‘아픔 삭혀야’ ‘사람 가까이’‘사모한 정이’‘줄지어 서서’ 등 기본 음보인 평음보보다 1음절이 많은 과음보이지만 평음보로 읽히며 시상의 명징성(明澄性)까지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그 표현의 묘를 얻었다 할 수 있다. 간사(奸邪)한 인간들의 자기중심적(自己中心的) 사고(思考)를 경계하며 미인송의 시속(時俗)에 대응하는 당당함을 첫째 수에서 표현하고, 둘째 수에서는 위대한 자연의 외경감(畏敬感)을, 그리고 셋째 수에서는 속진(俗塵)을 씻어낸 감회(感懷)를 표현하고 있다. 일찍이 미당(未堂)은 초정(艸丁)을 두고‘모든 사물을 볼 때 거기 살다가 죽어간 옛 어른들의 보이지 않는 넋을 찾아내는데 우리 시인 중 뛰어난 눈을 가진 이’라 했는데, 찬샘은 이 작품에서 옛 선인들의 사모의 정을 통찰(洞察)하고 있다.
산도 그렇지만/ 계곡도 온통 하나
수수 만 년 어루만져/ 자르르 기름진 물이
저 연못/ 하늘 산 실어/ 뽑아 올린 바람이다.
꺼내 든 카메라는/ 한 조각 실망을 찍고
두 눈에 켜 논 불도/ 눈감으면 가물가물
지금은 젖은 땀 식힌/ 바람으로 남는다.
<‘옥류동’ 전편>
이 시조집 속에서 가품(佳品) 가운데 하나가 이 <옥류동>이 아닌가 한다. 시조가 가져야 할 절제(節制)의 미학(美學)을 확연(確然)히 보여주면서 명징(明澄)한 시어로 원활(圓滑)한 통어(通語)의 기능을 갖춰 굽 높은 서정(抒情)을 펼쳐내고 있다. 첫머리 소음보를 통한 긴장과 음성(音聲) 대비어(對比語) 사용을 통한 시적 뉘앙스를 한껏 고조(高調)시킨 작품이다. 특히 이에 사용된 ‘물-바람’의 은유와 ‘불’로 표상된 상징은 작품의 생동감(生動感)과 함께 시적 테션[tension]의 세계를 확장시켜주고 있다. 좋은 작품은 작위성(作爲性)이 없어야 한다고 하는데 시조에서 이를 위한 최선은 시작(詩作)에서의 모든 기제(機制) 운용이나 통어기능이 순리적(順理的)이어야 한다. 찬샘은 이 작품에서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위에서 살펴본 대로 찬샘은 고아(古雅)한 시어 선택으로 전아(典雅)하게 토속화된 자연을 서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4. 그리움이 하모니[harmony]된 잔잔한 사랑
찬샘 시조(時調)의 네 번째 미학(美學)은 그리움이 하모니된 잔잔한 사랑이다. 그의 그리움과 사랑에 대한 시적 포즈는 대상에 따라 다채롭게 변주(變奏)된다. 가족, 사물, 일상 등 구체적 대상에 대한 그리움과 마음, 사랑, 정 등 추상적 대상에 대한 그리움이 때로는 다정다감하게, 때로는 애틋하게 표상되고 있다. 보통 시인들이 표상하는 그리움의 밀도(密度) 속에는 근원적(根源的) 아픔이 잠재(潛在)하고 있는데, 찬샘의 이번 작품에서의 그리움은 그 대상이 순수무구(純粹無垢)의 대상물(對象物)인 까닭인지 밝은 미소, 묵시적 이미지의 펼침이 있을 뿐 절절한 애달픔은 없다. 이는 그의 평소 삶의 긍정성(肯定性)과 천상(天上) 지향적(指向的) 사고의 발로(發露)라고 생각한다.
① 맘 속 오랜 그리움은
만남도 두려움이니
현상(現象)의 예리한 부리 가슴을 쪼아대며
이래도 내가 좋으냐고 자꾸만 물어댔다.
<‘대왕암’ 첫째 수 >
② 꽃잎 입에 물면 옛날이 오늘이고
오늘은 또 어제로 감돌고 피어오르고
주름진 세월 굽이마다 새록새록 돋는 정.
<‘참꽃 필 때’셋째 수>
③ 옷 얼른 갈아입자
바깥 일일랑 훌훌 벗자
어느새 달랑달랑
빨리도 기어와서
종아리 타고 오른다
웃음 함빡 물고 온다.
<‘퇴근길’ 셋째 수>
①은 가슴 속 깊이 똬리를 튼 그리움이다. 그러나 그 그리움은 두려움과 병치(倂置)되어 있다. 병치된 이 두 감정을 통하여 현실과 이상의 상반된 이미지를 충돌(衝突)시켜 그리움의 밀도를 더 애틋하게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②에서는 시공(時空)의 화합(和合)으로 과거와 현재가 합일(合一)을 이루며 원형(原形)의 정을 표출해 내고 있다. 자연의 순환성(循環性)으로 나타나는 그리움이 꽃잎을 촉매(觸媒)로 형상화되었다. ③은 일상(日常)에서 표출되는 그리움의 표상이다. ‘아가’를 보기 위해 ‘애기 엄마’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퇴근하여 ‘바깥일’다 잊고 ‘옷 얼른 갈아입자’ ‘웃음 함빡’으로 기어와 안기는 아기의 모습이 가슴을 파고든다. 가족애(家族愛), 자녀애(子女愛)가 잔잔한 그리움으로 형상화된 작품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티 없이 순수한 애정과 그리움이 융화(融化)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찬샘이 손자, 손녀에 대한 사랑을 흠결 없이 표현한 흥겨움이 넘치는 가족사랑 작품으로는 <지완(智婉)이>, ‘서현이 네가 왔구나’, ‘준희도 왔구나’ 등이 있다. 찬샘은 이 순진무구(純眞無垢)한 사랑의 보물(寶物)들을 두고, ‘한 점 한 점/ 먼 인연 따라/ 이승 문은 열리고/ 정갈히 비워둔 자리/ 네가 살폿 누웠구나’하여 새 생명 탄생의 숭고함과 정겨움을 표현하고, ‘쌓아온 세상 티끌들/ 씻어주려 네가 왔구나’‘굽 도는 세상의 고비마다/ 환한 등불 달겠구나 ∼반가사유상 그대로네’하여 새로이 태어난 손녀들이 세상의 속진(俗塵)을 씻어주는 구세주로 어두운 세상, 고단한 세상의 환한 빛이 되기를 기원하며 그들에게서 부처의 모습을 연상하는 오롯한 애정을 유감없이 표현하고 있다. 어느 집 어느 사람에게나 ‘아가’는 그들의 보석(寶石)이요, 그들의 국보(國寶)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녀에 대한 무조건적(無條件的)인 사랑과 그리움이 사무치는 찬샘의 가족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원래 그리움은 개인적 삶의 경험 구조를 바탕으로 어떤 대상물에 감정이입(感情移入)함으로써 객관화(客觀化), 보편화(普遍化)되어 나타난다. 찬샘의 시조에 나타난 그리움은 애틋하고 사랑은 잔잔하다. 그는 이런 시적 포즈로 작품을 형상화하였다.
지금껏 찬샘의 두 번째 시조집에 나타난 시조 시학에 대하여 몇 개의 작품을 통한 편린(片鱗)을 살펴보았는데, 찬샘은 자연 속에서 자연스런 삶의 원리를 터득한 자연과 삶의 곡진한 조화, 순박한 삶의 터전으로 자연 낙원성의 고향 산천을 시공의 대비를 통해 표현한 향수 어린 서정, 토속적 정서인 애틋한 그리움, 잔잔한 사랑 등등을 그의 시적 렌즈에 잡아 작품화한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이런 생각이 그의 시 세계에서 풍겨 나오는 문향(聞香)을 제대로 맡고 들으며 한 것인지 한편 마음 깃을 여미게 한다. 아마 동네는 들어가지 않고 동네 언저리를 돌아보며 한 소리가 아닌지 우려된다. 하지만 어느 독자가 시인의 속내를 다 읽어내랴. 그저 많은 독자들이 이 시조집의 시조를 읽고 민족시 중흥의 냇물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의 토속적인 냄새가 밴 시조문학의 문향(聞香)을 내 나름으로 맡아보았을 따름이다. 앞으로 찬샘이 더 깊고 더 높으며 더 넓은 문향의 세계로 나가기를 기대한다. 어쩠든 중도 한밭 시조문학의 중견으로 큰 버팀목이 된 찬샘이기에 더욱 굽이쳐 솟아나는 시조의 샘을 파서 생기 있는 작품들이 우리 앞에서 꽃향 넘치게 피어나기 바라며 건강 속에 문운(文運)이 창성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