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암사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
유명개(劉名蓋, 1548~1597)는 누구인가?
약력
1548년(명종3년) 5월 25일 태어났다.
호 : 현보(顯普)
관직 : 증직 감찰(황석산성에서 의병장으로 순절한 공로로 내린 증직).
부 : 충순위(忠順衛) 창신교위(彰信校衛) 우민(友閔)
생부 : 선교랑(宣敎郞) 의금부도사 우삼(友參), 모친 성주이씨(星州李氏).
셋째 아들로 태어나 백부 우민(友閔)에게 양자 입적.
출생지 : 경남 거창군 위천면 사마리
본 관 : 居昌
송나라 한림학사와 병부상서를 지낸 유전(劉筌) 14세손,
고려말 충신 사헌부 대사헌 영계(營溪) 환(懽) 6세손,
증조부 : 양령대군 손서 충무위어모장군 용양위부호군
자헌대부 증병조판서 귀손(貴孫)
조부 : 장사랑 기자전 참봉 유관
행 적
1) 당리당략과 공리공론에 실망하다.
유명개는 입신양명을 준비하던 중 한양에 갔다가
관리와 선비들이 당리당략과 공리공론에 빠져 있는 실상을 보고 회의를 느낀 나머지 1569년(선조 2년) 향리로 돌아왔다.
2) 백성들을 계몽하다.
향리로 돌아온 그는 몸소 경작을 하면서 지역민들을 모아 성현(聖賢)의 도(道)와 농사법을 가르치니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유명개는 향촌에서 상부상조하는 마음을 갖고 식량을 증산하고 유사시엔 나라에 봉사하는 향풍진작과 향당(鄕黨)의 구성을 위해 큰 마을 단위로 공회소(公會所)를 만드는데 관의 지원을 청원하였다.
3) 거창좌수(居昌座首)로 위촉되었다.
공회소 설치안에 대하여 거창과 안음 두 현감은 이를 가납하고, 1577년(선조 10) 안음에 7개, 거창에 9개 마을에 공회소를 설립하였다.
거창현감은 유명개에게 공회소 설립과 백성들 계몽의 공로와 덕망을 칭송하고 거창좌수(居昌座首)로 위촉하였다.
4) 왜적의 침입을 대비(對備)하다.
1592년 4월 왜적이 침략해 온 강토를 유린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유명개는 각 마을 공회소에 왜란이 일어났음을 알리고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장정들을 안음 위천(渭川)으로 모이도록 하였고, 사재를 들여 무기를 만들어 장정들에게 훈련에 힘쓰는 한편 군량미 비축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나라를 위하여 나서다.
1) 황석산성을 보수하다.
1596년(선조 29년) 봄 도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은 안음현감 곽준(郭䞭)에게 황석산성을 재축성하여 지키라는 명을 내렸다. 이에 곽준은 황석산성을 보수하려고 유명개에게 백성을 동원하여 입성하라는 통문을 보냈다. 유명개는 아들 3형제, 가노(家奴)들과 위천의 장정들을 데리고 황석산성 보수에 전력을 다하였다.
2) 군량미를 준비하였다.
1597년 8월 초 바닷가 왜성에 진을 치고 있던 왜적이 다시 우군과 좌군으로 나눠 전란을 일으켰다. 왜적이 양산에 집결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유명개는 안음현감 곽준과 황석산성으로 병력과 식량을 옮겨 왜적과 결전하여 지키기로 하였다.
유명개는
부인 초계정씨, 아들 삼형제(신갑, 의갑, 지갑)와 노비 수십 명과 같이 식량을 지고 떠나면서, 각 고을 공회소 장정들에게 식량은 가능한 많이 옮기되 남은 식량은 땅에 숨겨 적이 이용할 수 없도록 하였다.
3) 군무장으로 전쟁을 준비하였다.
안음현감 곽준은 남문, 출전장 김해부사 백사림은 동문과 북문, 조종도 군수는 서문을 각각 맡아 지키고, 유명개는 군무장(軍務將)으로서 무기고와 식량고를 관장하고 성내의 연락과 지원을 맡기로 하였다.
유명개는
“전투에 이기고 지는 것은 하늘의 뜻이다. 지금까지 잘 싸웠던 것처럼 적이 성안 에 오르지 못하도록 싸워라 적은 식량이 부족하여 버티지 못한다. 우리는 한 달을 먹고도 남을 식량이 있으니 무엇이 걱정이냐“ 하고 사기를 높이면서 병기와 물자를 민첩하게 지원하였다. 아들 3형제와 가노들에게 전쟁이 길어지면 식량이 떨어질 것을 대비하여 집안에 비축한 식량을 가지고 오도록 명하였다.
4) 순절하다.
유명개가 안음현감 곽준과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데 지원을 나갔던 노비 물금(勿今)과 은작(銀勺)이 와서 북문이 함락되고 왜병이 들어오고 있으니 속히 피신하기를 청하자
“전쟁 중에 피하는 것은 將帥의 도리가 아니다. 이곳에서 싸우다 죽겠다.”하였고, 부인 초계鄭氏와 함께 순절하였다. 이때 노비 은작도 적의 흉기에 죽임을 당하였다.
추모하다.
1) 시호와 사액(賜額)을 내렸다.
조정에서는 그의 공(功)을 기리어 의사(義士) 시호를 내리고,
1714년(숙종 40) 안음의 황암사 별사(別祠)에 봉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