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자도 성지순례 총정리
추자도 성지순례를 가려면 배편과 황경한 성지 찾아가기 등 많은 순례자들이 힘들어하는 곳 중 하나이다.
이 자료집은 교우 누구나 혼자서도 찾아가기 쉽도록 상세한 내용을 담았으며, 많은 순례자들이 이용하는 보편적 코스를 기준으로 하였다.
다른 코스나 다른 방법으로 갈 수도 있으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생략하였다.
1. 먼저 출발항 제주항은 연안 여객터미널과 국제 여객터미널이 서로 떨어져있다,
그리고 부두(탑승)도 제2 부두부터 ~ 제7 부두까지 서로 떨어져 있음을 염두에 두
고 헤메지 말자.
2. 하루 코스로 추자도 성지순례를 하려면 제주에서 오전에 출발, 저녁때 제주에 도
착해야 하는데 추자도 배편은 하루 한 번(왕복기준)밖에 없다, 또한 매월, 2, 4째
주 수요일은 그나마도 휴항한다.
3. 하루 코스로 오전 9시 30분 제주항(제2 부두. 퀸스타 2호) 출발, 오전 10시 30분
상, 추자항 도착. 오후 4시 30분 상, 추자항 출발, 오후 5시30분 제주 항(제2 부
두. 퀸스타 2호)도착 편을 이용하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무난하다.
4. 운임은 편도 13,400(항만사용료별도) 왕복 30,000원 정도 잡으면 되겠다.
5. 일단 상, 추자항에 도착하면 도보로 15분(0.8km)거리에있는 제주 서면 성당 추자
공소를 방문하고 기도 드린다음 둘 중 하나의 방법으로 황경한 성지로 출발한다.
6. 도보(제주올레길)로 황경한 묘소까지는 약 6km.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7. 마을버스로 하,추자항까지 이동(1시간 간격,운임1,000원)한다음 올레길을 따라(오르
막산길) 올라가면 약1.3km의 거리로 소요 시간은 20분이면 된다.
8. 하산 할때는 반대편(예초리)으로 내려와 예초리에서 역순으로 상,추자항까지(도보
또는 마을버스) 가면 된다.
9, 대중교통인 마을버스는 상 추자항에서 예초리까지 1시간 간격으로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행한다.
10. 택시를 이용할 경우 상,추자항에서 하,추자항까지 6,300원(추자면 자료기준)으로
되어있으나 실지는 하루기준으로 운임을 협의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한다.
11. 순례자 편의를 위해 추자 공소 차량을 이용 할수도 있으며, 본당 자산이므로
성지발전기금 일부라도 봉헌했으면 한다.
12. 더 상세한 문의(궁금)사항은 아래 지도와 기타자료를 참고하시고 그래도 궁금하시
면 추자 공소 선교사님의 도움을 받기 바란다. (연락처 맨아래 기재)
13. 추가로 제주도까지 가는 항공편은 날자, 시간, 주말 등에 따라 차이가 아주 크므
로 각자 구입하도록 하시고 숙박, 교통(렌트카) 등은 맨아래 첨부된 연락처들을 이
용 직접 문의하시는것이 좋을 것 같다.
가. 추지도 성지순례 참고 자료
1. 제주항 추자도 가는 배 타는 곳(연안여객터미널.제2부두) 하루코스 이용시 적합.
▲ 추자도 지도보기 (출처:제주올레길 18코스 참조)
▲ 추자공소 가는길(하 추자항에서 추자공소 가는길 도보 7분)
▲ 상 추자항에서 황경항의 묘까지 도보순례길 (1시간30분소요. 약6km)
▲ 상 추자항에서 버스편 이동 + 도보 순례로 이동하기(지도참조)
나. 순교자가 남긴 사람들
올가을 명동에 있는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에서는 이 수도회의 한국 진출 120주년을 기리는 행사와 전시회를 열었다. 1888년 샬트르 수녀들이 처음으로 이 땅을 밟았을 때 맨 먼저 추진한 사업이 순교자들이 남기고 간 노부모와 그 유자녀들을 돌보는 일이라고 하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해주었다. 가톨릭에서 양로원과 고아원을 차려 그들을 돌보는 복지사업이 결코 우연히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도 알게 되었다.
「신유박해자료집」제3권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11월 7일 동부승지 홍희운은 ‘황사영의 어머니 윤혜(允惠)는 경상도 거제부에, 부인 정명련(丁命連)은 제주목 대정현에 보내 비(婢)로 삼고, 아들 황경한(黃景漢)은 두 살이어서 교살형은 면하고 전라도 영암군 추자도에 보내 노(奴)로 삼았다’는 의금부의 보고를 왕에게 전달했다.”
기록은 덧붙여 같은 날 황사영과 황심의 가산을 적몰하는 조처도 취해졌으며, 11월 8일 황사영의 일족을 유배지로 압송하라는 요청이 수락됐다고 전해준다. 황심의 아내와 두 아들도 사영의 유족들과 똑같은 운명에 놓이고 말았다. 참으로 가슴 아픈 것은 순교자 본인에 대한 가혹한 처형만으로 일이 끝나지 않고 연좌로, 그것도 대를 이어 족쇄를 채웠다는 사실이다.
더욱이나 봉건사회였던 그 당시 양반의 지위에서 하루아침에 비가 되고 노의 신분으로 떨어진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으랴! 황사영과 황심의 아내는 ‘비’가 되고, 아들들은 ‘노’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종의 신분, 곧 가장 천한 신분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어느 역사학자는 이렇게 설명해준다.
“조선왕조에서 관비는 무슨 일을 했을까? 관비는 지방 관청의 허드렛일을 맡았으나 가장 보편적인 일은 ‘방지기’였다. 방지기란 중앙에서 파견되어 잠시 다녀가는 하급 관원이나 군관들과 동거하면서 그 일상생활에서 편의를 제공해 주던 존재였다. 이렇게 관비는 지방관의 명령에 따라 뭇 남성의 객고를 풀어주는 노리개가 되어야 했다.”
사영의 아내 명련은 ‘난주’라고도 불렸고 세례명은 마리아였다. 경상도 쪽으로 유배를 떠난 시어머니와 헤어져서 제주섬으로 향하면서 마리아는 우리에게 가슴 아리게 하는 사연을 남긴다. 정약종 순교자와 다산 정약용의 맏형 정약현의 딸이기도 한 그녀가 남편을 잃은 뒤 두 살 난 아들을 데리고 하염없이 뱃길을 가면서 어떤 고통을 지불해야 했던가?
정난주 마리아는 1773년 유명한 남인이요, 경기도 양근 땅 마재를 근거지로 ‘천주교’를 받아들인 집안 형제들의 맏이인 정약현의 딸로 태어나 신앙생활을 몸에 익히며 자라났다. 18세 때인 1790년 16세인 황사영과 혼인하고 1800년 아들 경한을 낳았다. 1801년 신유박해가 막바지에 이른 동짓달 초여드렛날, 두 살 난 아들을 가슴에 안고 귀양길에 오른 난주는 추자도가 가까이 다가서자 ‘주님, 이제 경한이를 이 섬에 떨어뜨려놓아야 한답니다. 저에게 지혜를 주십시오.’라고 열절히 기도했다. ‘주님, 유배형을 받은 이후로 주님께 청한 것이 바로 경한이만은 일생을 노비로 살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옵니다.’
마리아와 어린 경한의 유배지인 제주도와 추자도는 조선의 유배지 중에서도 한양에서 가장 먼 곳으로 ‘유배 3천리’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마리아는 몸에 지닌 패물을 꺼내 뱃사공에게 주면서 간청했다. “여보세요, 이 아이만은 살리고 싶어서 청을 드리는 겁니다. ‘황경한이는 죽어서 수장했다’고 조정에 보고해주시어요. 네?”
패물을 받은 사공들은 나졸들에게 술을 먹여 허락을 받고 추자도에 이르렀을 때 추자도 예초리(禮草里) 서남단 물산리 언덕배기에 어린 경한이를 내려놓았으니, 이때 마리아의 애간장이 얼마나 탔던지 기절까지 했다고 한다. 추자도에 내려오는 전승을 보면 “어린애 울음소리를 듣고 소를 뜯기던 부인이 가서 보니 아기가 있어서 집으로 데려와 저고리 동정에 무엇인가 들어 있는 것을 보고 펼쳐봤다.
여기에는 부모 이름과 아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후 아기를 그 집에서 기르게 되었는데, 그 기른 이가 바로 그곳에 사는 뱃사공 오(吳)씨였다.”고 한다. 이후 추자도 오씨 집안에서는 황씨네 아이를 기른 인연으로 해서 오늘까지도 황씨와는 혼인하지 않는다고 한다. 예초리 산 위에 가면 경한의 묘소가 있고, 여기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바다로 돌출한 바위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이 갯바위가 두 살 난 경한이 놓여 울고 있던 바위이다.
박해가 끝난 뒤 마리아와 아들 경한은 오랫동안 세상 사람들의 관심밖에 있다가 1909년에 제주본당의 2대 주임 라크루(Lacrouts) 구(具) 신부가 전교를 위해 추자도를 왕래하던 중에 황경한의 손자를 만나 이러한 사실들을 알게 되어 곧장 파리의 샤르즈뵈프 신부에게 서한을 보내 순교자 황사영의 아들 경한과 그 후손들의 비참한 생활을 알렸다. 샤르즈뵈프 신부는 이를 전교 잡지에 소개해 프랑스 은인들의 손길로 경한의 손자에게 집과 농토를 사 줄 수 있게 했다.
정난주 마리아는 추자섬 갯바위에 젖비린내 나는 어린 것을 내려놓고 쓰라린 가슴을 움켜 안은 채로 떠나가야 했다. 제주가 맞이한 첫 번째 신앙인으로 기록되는 정 마리아는 그곳에서 대정(大靜)군으로 배소가 결정됐고, 관비(官婢)의 쓰라린 유배 생활을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관비를 담당하던 관리 김씨 집안에서 마리아의 성품을 높이 사서 어린 아들을 맡긴 일이었다. 마리아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집안의 배려로 점차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명색이 관비의 몸이었으므로 아들을 만나러 추자도로 갈 수는 없었다. 마리아는 풍부한 학식과 교양으로 섬 사람들의 모범이 되었고, 김씨 집안에서는 마리아를 ‘한양 할머니’라고 부르면서 양어머니인 양 봉양했다. 1838년 2월 마리아가 세상을 떠나자 추자도의 증손자들에게 서한을 보내 이 사실을 알려주었으며, 그 서한은 지금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다.
마리아는 유배된 후에도 신앙을 버리지 않고 비밀리에 기도 생활을 했고, 김씨 집안에서는 마리아가 신앙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누구도 이를 막지는 않았다. 그의 일상 기도는 30여 년 동안 유배지에서 외롭게 불린 신앙의 노래였다. 남편을 하느님께 바친 마리아는 이처럼 어린 아들을 추자도에 떼어놓았던 생이별의 아픔을 신앙의 힘으로 극복했다.
마리아의 무덤은 김씨 집안사람들이 모슬봉 북쪽에 있는 속칭 한굴밭에 조성했다. 이로부터 130여 년이 지난 1970년대 초, 교회사가 김구정과 김병준 신부는 수소문 끝에 그 무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김씨 집안에서 대를 이어가며 무덤을 돌보아 왔기 때문이다. 이 무덤은 1977년에 순교자 묘역으로 단장되었다가 1994년 제주 신자들의 염원을 담은 ‘대정 성지’로 조성되었다. 이제 제주의 신자들은 마리아를 ‘백색(白色) 순교자’로 공경해 오고 있다(차기진,「사목」2000년 3월호, pp.74-76).
당당한 모습으로 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 황사영과 순교자들은 비록 천상의 영복을 누릴 것을 의심치 않았기에 영광이요 환희이기도 했을 테지만, 그들이 남긴 가족들은 인간적으로는 엄청난 고통과 실의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참으로 많은 것을 내어놓으며 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비록 피 흘려 순교하지는 않았어도 삶을 통해서 하느님을 증언하는 이 ‘백색의 순교’야말로 오늘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표가 틀림없다. 특히 ‘자기의 몫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인 평신도(「교회헌장」31항)들이야말로 일상의 가정생활과 사회 상황 안에서 흰색 순교로써 복음을 선포해야 할 막중한 사명과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2008년 10월 28일 연중 제31주일 - 2008년 11월 11일 연중 제33주일 의정부주보, 최홍준 파비아노]
▲ 눈물의 십자가
다. 추자 공소 소개
‘산 좋아하는 사람은 죽기 전에 다녀가야 할 곳’, 전국의 관광 명소를 두루 다녀본 사람들이 추자도를 이르는 말이다.
추자도는 그만큼 천혜의 자연경관을 청정하게 보존하고 있는 섬이다. 제주항에서 북쪽으로 약 45km 떨어져 있다. 상·하추자도 두 개의 섬과 부속도서로 구성된 추자도의 넓이는 약 7k㎡로 잠실야구장의 670배 크기다.
행정구역상 제주시에 속해 있지만 제주도와 전라남도 중간에 위치한 고도(孤島)다. 생활권은 제주도보다 전남과 가까워 추자도 주민들은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 추자도는 본래 전남에 속해 있다가 1946년 8월 제주도가 군에서 도로 승격될 때, 인구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제주도로 편입됐다고 한다.
평균 14노트 속도로 이동하는 훼리호로 제주항에서 2시간, 완도항에서 3시간이 걸린다. 쾌속선을 타면 목포항에서 2시간 10분, 제주항에서 1시간 10분이면 추자항에 도착한다. 항구를 연결하는 육지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제주공항에서 제주항까지는 택시로 10분 거리이며 추자항에 내리면 1시간마다 운행하는 공영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다만 추자도에 들어갔다가 당일 나오는 배편은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추자도를 찾는 관광객이나 낚시꾼들은 추자도에서 숙박을 해야 한다.
천주교 신자라면 신앙 체험과 관광을 겸해 추자공소(제주교구 서문본당 관할)를 한 번쯤 찾아볼 만하다. 추자공소 신자들은 공소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추자성당’이라 부른다.
하 추자항에서 상추자도 추자공소까지 버스로 15분이면 도착한다. 버스길은 1차로 포장도로다. 달리는 내내 다른 차를 보기 힘들 정도로 한적하다. 도로는 해안을 따라 곡선을 그리고 있고 중간중간 마을을 통과한다.
도로 옆 야자수의 모습에서 이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주택은 빨강이나 파랑 지붕의 단층으로 도시인이라면 옛 고향의 향수를 느낄 법하다.
버스에서 내려 100m 정도 걸으면 추자공소가 나온다. 공소 옆에 오랜 세월 풍파를 견딘 듯 상처가 여러 군데 난 십자가가 달린 작은 건물이 있어 궁금증을 자아낸다.
9년 전까지 47년간 추자공소 신자들의 신앙 못자리 역할을 하던 ‘구 공소’다. 건물은 관리인력의 부재로 다소 낡아 건물 보존을 위해 세를 줄 계획이다. 현 공소는 2003년 6월 30일 봉헌됐다. 추자공소 신자들은 이날을 잊지 못한다.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는 신자들은 건축헌금 마련을 위해 생선과 젓갈, 쑥 등 돈이 되는 것들을 제주도와 지에 내다 팔아 1억 원 이상을 모았고 지하 1층, 지상 2층의 어엿한 새 공소를 갖게 됐다.
부슬비가 내리던 13일 오후 공소에서 만난 전교회장 강동수(요셉) 선교사는 “한때 공소 신자가 100명에 육박하던 때도 있었지만 섬 주민들이 육지로 떠나면서 지금은 30명 정도만 주일에 모여 아쉽다”고 말했다. 만 명을 넘던 추자도 인구는 현재 2000명 내외로 줄었다. 그러나 강동수 선교사는 추자공소에 ‘명물’ 하나를 만들었다. 성당 종이다.
구 공소에 녹슨 채 방치되던 종의 녹을 벗겨내고 기름칠을 해 현 공소에 설치했고 오전 6시, 낮 12시, 오후 6시 어김없이 삼종을 친다. 강 선교사의 휴대폰은 삼종 시간 10분 전과 1분 전 알람이 맞춰져 있다. 종소리는 추자도 거의 전역에 울려 퍼져 신자들은 일손을 멈추고 기도를 드린다. 비신자들에게는 밀레의 ‘만종’ 역할을 한다. 섬 주민들은 은은한 종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의 평안을 얻고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생각한다.
추자공소를 찾은 신자들이 꼭 가봐야 할 천주교 중요 유산이 추자도에 있다. 순교자 황사영(알렉시오)과 신앙의 증인 정난주(마리아)의 아들 황경한(1800~?)의 묘다. 공소에서 차로 10분 남짓 걸린다.
1909년 제주 중앙주교좌본당 2대 주임 구 마르첼리노 신부는 정난주와 경한의관계를 알게된 후 프랑스 신자들이 보내 준 후원금 480프랑으로 황경한의 손자에게 집과 밭을 사줬다는 기록이 있으며 황경한의 후손들은 지금도 추자도에 대대로 살고 있다. 1997년 11월에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황경한 묘를 찾아 참배했고 지난해 10월 황경한 묘비 제막식이 거행되기도 했다.
황경한 묘역 주변은 제주 올레길 중에서도 가장 절경이라는 올레 18-1 코스가 휘감아 돈다. 또한 황경한 묘역에서 내려다 본 추자도 앞바다는 올망졸망 뒤섞인 무인도와 유인도의 조화에 말을 잊고 만다.
추자도에는 민박과 모텔이 충분해 숙박 걱정은 안 해도 되며 민박을 나올 때 추자항까지 교통 편의를 제공해 주는 곳도 꽤 있다. 추자공소와 황경한 묘, 올레길과 남해바다가 공존하는 추자도. 여름휴가지로 확실히 기억에 남을 명소다.
※ 방문 문의 : 추자공소 064-742-3777, 추자면사무소 064-728-4261~4
[가톨릭신문, 2012년 7월 22일, 박지순 기자, 이창준 제주지사장]
황경한의 묘 [굿뉴스 성지 사적지]
지금은 천혜의 관광지로 빼어난 풍광과 온화한 날씨로 찾는 이로 하여금 이국적인 정취마저 느끼게 하는 제주도는 조선 시대에 중죄인을 세상과 격리시키는 유배지였다. 추자도는 제주항에서 북쪽으로 약 45km 떨어진 섬으로 상 · 하추자, 추포, 횡간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1271년(고려 원종 13년)까지 후풍도(候風島)라고 불렀으며, 그 후 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면서 추자도로 개칭하고 1910년 제주에 속하게 되었다. 바로 이곳 하추자도에 황사영의 아들 황경한(黃景漢)의 묘소가 있다.
백서(帛書) 사건으로 유명한 황사영(黃嗣永)은 1790년 진사시에 급제한 해에 다산 정약용의 맏형 정약현(丁若鉉)의 딸인 정난주(丁蘭珠, 본명 命連)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여 1800년 아들 경한을 낳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백서 사건으로 체포되어 11월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후 홀어머니는 거제도로, 부인은 제주도로, 외아들 경한은 추자도로 각각 유배되고, 가산은 모두 몰수당해 한때 명문 세도가였던 가문은 풍비박산 나고 말았다.
남편을 잃은 정난주가 아들을 데리고 하염없이 뱃길을 가야 했던 곳이 바로 제주이다. 게다가 겨우 두 살 난 젖먹이 아들 경한을 데리고 떠나는 유배의 길은 너무나도 외롭고 고통스런 일이었다. 죄인으로 제주 땅을 밟으면 자신은 물론 아들마저 죄인의 자식으로 평생을 멸시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정은 차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궁리를 거듭하던 정난주가 호송선의 뱃사공에게 뇌물을 주어 매수하고 사공은 다시 두 명의 나졸에게 술을 먹여 역시 그들을 매수한 뒤 젖먹이를 하추자도 예초리(禮草里) 서남단의 황새바위에 내려놓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나졸들은 뱃길에서 아이가 죽어 수장(水葬)했노라고 보고함으로써 이 일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하추자도에 남겨진 경한은 오씨(吳氏) 성을 가진 한 어부의 손에 의해 거두어졌다. 경한이 추자도에 떨어뜨려졌을 때 그가 입고 있던 저고리 동정에서 나온 이름과 생년월일에 의해 그가 바로 황경한임을 알게 되었고 오씨의 아들로 키워졌다고 한다. 오씨의 집에서 장성한 경한은 혼인하여 두 아들 건섭(建燮)과 태섭(泰燮)을 낳았는데, 그 후손이 아직도 추자도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낯설고 외로운 유배지에서 생을 다한 황경한은 사망한 후 신양리 남쪽 산의 중간 산등성이에 묻혔다. 이후 그의 후손들이 하추자도에서 거주하기 시작했으며 추자도에서는 오씨와 황씨가 결혼을 하지 않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하추자도의 황경한이 살던 오씨 집은 1965년 불타 없어졌고, 그때 그 집안에서 간직해온 경한의 젖먹이 때 옷이나 가첩 등도 모두 소실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성록”(日省錄)이나 “사학징의”(邪學懲義) 등에 의하면 황경한이 추자도로 오게 된 것은 “나이가 2세 이하로 어려 법에 따라 교수시키지 않고 영광군 추자도에 노비로 유배시킨다”는 판결문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정난주는 젖먹이 아들이 평생 노비로 사는 것을 피하고자 유배를 가던 도중 추자도 예초리의 바닷가 바위 위에 아들을 남겨 놓았고, 다행히 오씨 집안사람에게 발견되어 그 집에서 성장하게 된 것이다.
1900년에 제주 선교를 위해 파견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라크루(Lacrouts, 具瑪瑟) 신부가 추자도를 왕래하던 중 1909년 황경한의 손자를 만나 전후사정을 알게 되었다. 라크루 신부는 샤르즈뵈프(Chargeboeuf, 宋德望) 신부에게 서한을 보내 순교자 황사영의 아들 경한과 그 후손들의 비참한 생활을 알렸고, 샤르즈뵈프 신부는 이 사실을 전교잡지에 소개했다. 그 후 라크루 신부는 프랑스 은인들의 후원금으로 황경한의 손자에게 집과 농토를 사주었다.
1908년 5월부터 선교사가 들어와 전교한 기록이 남아있는 추자도에는 1956년부터 제주중앙 성당 관할의 공소가 시작되었다. 1988년 추자 공소는 서문 성당 관할로 이관되었고, 상추자도 항구 인근에 위치한 추자 공소 신자들은 황경한 묘소를 돌보아 왔다. 제주교구는 1999년 제주 선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하추자도에 있는 황경한의 묘소 주변 부지 600여 평을 매입하여 소공원을 조성하는 성역화를 추진했다.
추자 공소는 매 주일 오전 공소예절을 하며, 미사는 기후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한 달에 한 번 서문 본당 신부가 방문해 집전하고 있다. 제주교구는 추자도의 전교와 육지에서 방문해오는 신자들을 위해 새 공소 성당 건립을 추진하였다.
1975년 건립된 낡은 공소 건물이 2001년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은 후 그 해 7월 기공식을 갖고 건축을 시작해 2003년 6월 30일 지하 1층 · 지상 2층 규모로 완공된 새 성당의 축복식을 가졌다. 새 공소 성당은 어린이 집과 영안실을 갖추고 있고, 20여 명이 머물 수 있는 방과 식당도 마련되어 육지에서 오는 순례객들을 위한 숙소로 이용하고 있다. [최종수정 2013년 10월 11일]
라. 황경한의 묘 2 [굿뉴스 성지 사적지]
간략설명 두 살에 유배 당한 황경한의 애절한 사연이 깃든 추자도
지번주소 제주도 제주시 추자면 신양리 산 20-1
전화번호 (064)742-3777
관련기관 서문 성당 추자 공소
관련주소 제주도 제주시 추자면 대서5길 35
순교자 정난주 묘소 성역화, 김대건 신부 표착지 성지 조성, 라파엘호 복원 추진
새로운 희망의 세기가 불과 한해 앞으로 다가온 99년 '성부의 해'. 우리 나라 최남단에서 복음화 운동을 펼쳐온 제주교구가 올해로 선교 100주년을 맞았다. 1899년 5월 제주도 최초의 선교사인 파리외방전교회 배가롤로 신부의 부임이 선교 100주년의 출발. 국내 유일의 섬교구인 제주교구는 제주선교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93년 8월 '선교 1백주년 기념사업 준비위원회(위원장=허승조 신부)'를 발족시키고 교구의 모든 역량을 집결시켜왔다. 본보는 제주교민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의 큰 기쁨인 제주교구 선교 100주년을 맞아 '순교 정신의 계승'과 '복음전파'라는 커다란 목표아래 제주교구가 추진 중인 다양한 사업들을 조명해본다.
71년 지목구로 설정될 당시 8개 본당에 불과했던 제주교구는 98년 현재 신자수 4만 7297명, 본당 22개, 사제 34명으로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꾸준한 성장을 거듭해왔다. 이러한 결실은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동기와 노력에 의해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제주교구가 신앙 선조들의 정신을 삶 안에 구현하고, 복음선포라는 막중한 과업을 계승 발전시켜온 노력의 결과다.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자'란 선교 100주년 주제를 내건 제주교구는 그동안 △ 교구사 편찬(제주선교 100년사) △ 신자배가 운동(신자 7만명 목표) △ 성지 성역화(관덕정, 황사평, 대정) △ 100주년 기념성당 건립 △ 제주도 출신 최초 신자 김기량(펠릭스 베드로) 시성운동 △ 파리외방 전교회 및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제주사목 성직자 공덕비 건립 △ 제주선교 100주년 경축대회 등을 사업목표로 정하고 '선교 100주년 기념사업준비위원회'를 중심으로 노력과 의지를 쏟아 부었다.
지난 94년 정난주(마리아)의 묘소를 성역화 하고 순교자 현양대회를 가지며 선교 100주년 사업의 첫 단추를 끼운 제주교구는 95년 황사평 순교자묘역을 이장 성역화하고 교구 성직자 묘지를 조성했으며, 초대 교구장인 현헤롤드 대주교와 서귀포본당 주임신부였던 나토마스 신부의 유해를 성직자 묘지에 이장했다. 정난주(마리아)는 제주에서 관비로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불우한 이웃에 나눔을 실천하며 복음적 삶을 살았던 인물로, 제주교구가 열렬한 증언을 통해 순교적 삶을 산 그의 신앙모범을 후손들이 본받도록 하기 위해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묘를 새롭게 단장하고 성역화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제주교구는 추자도에 있는 정난주(마리아)의 아들 황경한의 묘역을 확장, 공원화하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96년엔 100주년 기념성당 부지 물색과 신자배가운동 전개, 성물, 사진 전시회, 100주년 소식지 발간, 100주년 위한 기도문.마크 제작 등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특히 교구가 선교 100주년을 앞두고 애착과 관심을 가지고 추진한 신자배가 운동에 전 교구민들은 성서 읽기.기도생활을 통해 자기 성화를 이루고, 2인 이상 선교, 냉담자 1인 이상 인도에 적극 동참해왔다. 이러한 노력으로 매년 신자수가 증가해왔으며, 지난해엔 입교자가 3196명으로 예년에 비해 신자수가 900명 이상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97년 '신축교안'을 재조명하기 위해 심포지엄을 개최한 바 있는 제주교구는 제주의 대표적 순교성지인 관덕정 성역화, 교구사 편찬 등도 진행하고 있으며, 지난해 9월에는 제주도 출신 최초의 신자인 김기량(펠릭스 베드로)의 순교비 제막식을 가졌다.
제주교구는 그동안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과 최양업 신부 서한 등 사료들을 토대로 1866년 병인박해 때 체포돼 처형당한 것으로 전해지는 김기량의 시성운동에 불을 지펴왔다. 이와 함께 김대건 신부가 1845년 라파엘호를 타고 상하이에서 조선으로 입국하려다 제주도에 표착했던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성지 조성사업과 라파엘호 복원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제주교구는 이 사업을 위해 지난해 6월 전문가에 의뢰한 상태로, 올해 안에 성지 조성을 위한 부지 선정과 함께 라파엘호 복원 사업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올해엔 5월을 기념축제기간으로 설정, 기념식과 연극제, 글짓기대회, 성가 발표회 등 다채로운 행사들을 펼친다. 아울러 11월 21일 그리스도왕 대축일에는 한라체육관에서 교구 신앙대회를 가지며 선교 100주년 행사의 절정을 이루게 된다.
제주교구 100주년 사업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업으로 '제주교구 100년사' 출간과 주교좌중앙성당(주임=고승헌 신부) 성전건립을 들 수 있다.
제주교구는 2000년 2월 출간 예정으로 각 본당별로 위촉된 사료수집위원회를 통해 각종 선교자료를 수집해오고 있으며, 지난 91년 첫번째 자료집을 교구 자체에서 만든데 이어 교회사연구소를 통해 2.3.4집을 모두 발간했다.
또한 신앙의 모체로서 제주 선교에 앞장서온 중앙성당 성전 건립공사는 현재 60%정도 진행 중이고, 올해 11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신자수가 불과 2796명인 중앙성당이 중앙성당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힘을 모은 결과 공사비 50억원 중 35억원을 마련하는 놀라운 성과를 일궈냈고, 전 교구 사제들과 신자들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12억원을 모금하기도 했다. 제주교구는 선교 100주년을 신심 깊은 교구로 거듭나는 분수령으로 보고 그동안 활발히 관련 사업들을 펼쳐왔다.
'4.3'과 '신축교안'이란 불행했던 역사적 사건을 간직하고 있는 제주교구. 이들은 기도와 화해로써 풀리지 않은 응어리를 풀고 기쁨과 희망으로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제주교구 약사
△ 1899년 5월 배가를로 신부 부임, 대구교구 본당(현 제주중앙교회) 설립
△ 1900년 5월 구말렐로 신부 부임
△ 1901년 3월 신축교안(辛丑敎案)으로 신자 700여명 순교
△ 1902년 4월 한논성당(현 서귀포성당) 설립
△ 1909년 10월 신성여학교(초등학교과정) 설립
△ 1911년 4월 조선교구에서 대구교구로 분구
△ 1930년 12월 고딕식성당 신축
△ 1946년 9월 신성여자중학원 개원
△ 1946년 8월 신성여자중학교 설립인가
△ 1951년 3월 라토마스 신부 부임(군종신부 겸임)
△ 1953년 신성여자고등학교 설립인가
△ 1954년 4월 한림성당 설립
△ 1955년 7월 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수녀 6명 초청 부임
△ 1958년 6월 모슬포성당 설립
△ 1960년 1월 원요한 신부 부임
△ 1967년 3월 고승욱 신부 사제서품(제주교구 출신 최초)
△ 1968년 4월 동문성당 설립
△ 1970년 4월 성 이시돌의원 개원(초대원장 성골롬반 수녀회 베닉누스 수녀)
△ 1970년 5월 서귀포 복자성당 설립
△ 1970년 신성여중 도남동으로 신축 · 이설
△ 1971년 5월 광양성당 설립
△ 1971년 7월 제주 지목구 설정, 중앙성당 주교좌성당으로 승격(초대 교구장 현하롤드 대주교)
△ 1973년 9월 성산포성당 설립
△ 1974년 추자공소 준공
△ 1975년 11월 조천공소 신축·낙성
△ 1977년 3월 지목구에서 정식교구로 승격
△ 1977년 4월 2대 교구장 박정일 주교 착좌
△ 1977년 8월 고산성당 본당 승격
△ 1977년 11월 서문성당 설립
△ 1981년 2월 이시돌양로원 설립·개원
△ 1981년 10월 신제주성당 설립
△ 1984년 1월 3대 교구장 김창렬 주교 착좌
△ 1984년 9월 제주가톨릭회관 신축
△ 1988년 2월 효돈성당 · 중문성당 본당 승격
△ 1998년 7월 하귀성당 설립
선교 100주년기념사업 준비위원장 총대리 허승조 신부
『고결한 신앙의 삶을 살다 간 정난주(마리아)님의 숨결과 피흘려 신앙을 증거한 무명 순교자들의 넋이 한 알의 씨앗이 되어 뿌리를 내린지도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번 선교 1백주년을 기해 모든 교구민들이 신앙 선조들의 삶을 본받아 이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기를 바래요』
선교 100주년사업 준비위원장 총대리 허승조 신부는 지난 94년 정난주(마리아) 묘 성역화로 시작된 선교 100주년 기념사업 성과에 만족감을 표시하면서 주님의 도우심과 교구민들의 열성으로 신축교안 등 힘들었던 과거를 극복하고 복음선포의 사명을 계승 발전시켜올수 있었다고 말했다.
허신부는 올해 5월 축제기간을 설정, 지구별 성가 경연대회, 사생대회, 사진 · 성물 전시회, 신축교안 좌담회 등 다채로운 행사들이 열리게 된다고 설명하고 특히 11월 한라 체육관에서 개최되는 교구 신앙대회가 100주년을 결산하는 마무리 행사로서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다.또한 이번 교구 신앙대회에서는 지난해 1월부터 금년 8월까지 활발한 선교활동을 펼친 신자들을 위한 선교대상 시상식도 겸한다.
허신부는 100주년 사업을 추진하면서 보여준 교구 사제들과 신자들의 화합된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전하면서 마지막까지 기도와 노력으로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남기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2천년 대희년을 목전에 둔 우리 모두는 주님의 사랑안에서 일치 · 화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선교 100주년을 맞이하는 뜻싶은 이 시기에 모든 우리 이웃들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도록 앞장서야죠』
[가톨릭신문, 1999년 3월 21일, 마승열 기자]
마. 추자면 관광안내 (추자면 제공)
한반도와 제주 본섬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이섬은 상,하추자,추포, 횡간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를 합쳐 42개의 군도로 형성 되어 있다.
1271년(고려 원종12)까지 후풍도(候風島)라 불리웠으며, 전남영암군에 소속될 무렵부터 추자도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과 조선 태조 5년 섬에 추자나무 숲이 무성한 탓에 추자도라 불리게 되었다는 설도있다. 1896년 완도군으로 편입되었고 1910년에는 제주도에 편입된 후 1946년 북제주군에 소속되었다가 2006년 7월1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로 통합되었다.
천연기념물 제 333호 사수도 족비둘기, 슴새번식지, 문화재로 최영장군 사당, 박씨처사각이 있고 추자 10경으로 유명하여 외래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특히 청정해역으로 연중 갯바위 낚시가 잘되어 감성돔, 황돔, 돌돔 등이 많이 잡혀 낚시꾼들에게 각광 받는다.
바. 추자면 교통안내
1. 여객선 운항정보
계절에따라 수시로 운항 시간이 변경되니 필히 선사에 확인 바랍니다.
여객선명 | 운항구간 | 요금 | 이용안내 |
퀸스타2호 (쾌속선) | 운항 항로 및 시간 (제주항 · 우수영. 1일 1회 왕복) -.제주항(2부두) 09:30 → 상추자 10:30 / 11:00 → 우수영 12:30 -.우수영 14:30 → 상추자 16:00 / 16:30 → 제주항(2부두) 17:30 | 2등객실 편도 기준 제주 ↔추자:13,400원. (도서민 5,000원) 추자 ↔우수영:33,000원 (도서민 6,000원) | 매월2,4째주 수요일 휴항 제주연락처 064-758-4233 상추자연락처 064-742-3513 목포연락처 061-243-1927 |
송림블루 오션호 | 운항 항로 및 시간 (제주항 · 완도 1일 1회 왕복) -.완도항 07:40 → 하추자10:20/ 10:40 →제주항(6부두) 12:40 제주항(6부두) 13:45 →하추자 15:45/16:05 → 완도항18:45 | 제주 ↔ 추자:10,150원 (도서민 5,000원) 완도 ↔ 추자:23,050원 (도서민 5,000원) | 매월 1,3째주 수요일 휴항 제주연락처 064-751-5050 하추자연락처 064-742-8364 완도연락처 061-554-8000 |
임차선 (임차운행) | 운항 항로 대서리 → 추포도 → 횡간도 → 대서리(1회 왕복) | 주민 이용(무료) | 매주 이용 필요 시 추자면사무소(064-728-4294) 문의 |
2. 숙박안내
상추자 숙박업소
업소 명 | 전화 번호 | 업소 명 | 전화 번호 |
청정고을민박 | 064-742-4800 | 태흥여관 | 064-712-5600 |
별장민박 | 064-742-3948 | 서경이네민박 | 064-742-0849 |
추자올레게스트하우스 | 064-711-1801 | 에벤에셀민박 | 010-3692-3668 |
궁궐민박 | 064-742-3832 | 대서민박 | 010-2006-3755 |
등대민박 | 064-742-3827 | 한아름민박 | 010-8662-3695 |
유창민박 | 064-742-3555 | 인추자커피앤민박 | 064-745-3407 |
조은민박 | 010-6310-4069 | 황제민박 | 064-742-7507 |
동운민박 | 064-742-3841 | 사수민박 | 010-3699-7226 |
후포민박 | 064-742-9804 | 해송민박 | 064-742-3897 |
추자섬민박 | 010-8662-5706 | 아름다운펜션민박 | 064-743-3835 |
레몬이네민박 | 010-4513-7081 | 고려민박 | 010-3618-3835 |
그린민박 | 064-742-7377 | 미원민박 | 010-5162-4250 |
블루오션민박 | 010-6247-8216 | 영흥민박 | 010-4696-4545 |
동일민박 | 010-5477-7929 | 나바론민박 | 064-742-8205 |
금양민박 | 010-3696-3736 | 내사랑추자야펜션민박 | 064-742-8953 |
다미네민박 | 010-3693-9771 | 봉골레하우스민박 | 010-8662-2332 |
태성민박 | 064-742-3937 | 골드피쉬다이브리조트 | 010-5393-5690 |
해성민박 | 010-9633-9142 | 밀물민박 | 010-9688-2359 |
고모네민박 | 010-3169-8033 | 서울민박 | 064-727-9217 |
신등대민박 | 010-3697-5716 | 유심이감성하우스민박 | 010-5578-7277 |
여정여관 | 064-742-8111 |
3. 순환 마을버스
운행 시간 | 코스 | 요 금 | 이용 안내 |
07:00 ~ 20:30 (1시간 간격) * 휴일 첫차 08:00 | 대서리 → 영흥리 → 묵리 → 신양2리 → 신양1리 → 예초리 | 성인:1,000원 청소년:600원 어린이:400원 | 추자교통 064-742-3595 / 010-4696-3595 |
4. 렌트카 업체 정보
업소 명 | 렌트카 가능 차종 | 연 락 처 |
추자교통 | 관광버스, 승합차 | 064-742-3595 |
추자렌트카 | 승용차, 승합차 | 010-3698-3937 |
오토랜드 | 승합차, 스쿠터 | 064-743-5589 |
5. 하추자 숙박업소
업소 명 | 전화 번호 | 업소 명 | 전화 번호 |
사계절민박 | 064-742-8102 | 추자도휴양펜션 | 064-742-8170 |
이레민박 | 010-4657-1461 | 훈이네민박 | 010-3702-8157 |
유림민박 | 010-6261-9108 | 추사랑민박 | 010-4046-5240 |
추자피싱랜드 | 010-5489-5500 | 다도민박 | 064-742-1665 |
해변장여관 | 064-742-8092 | 가고파민박 | 064-742-8030 |
뉴추자아일랜드 | 064-744-0533 | 추자도민박 | 010-3325-9306 |
갤러리민박 | 010-8543-7449 | 추자바다25시 | 064-742-2724 |
아이콘민박 | 010-9000-6769 | 에코하우스 | 010-2715-5979 |
추자대물민박 | 010-8309-1537 |
6. 하추자 음식점
업소 명 | 전화 번호 | 업소 명 | 전화 번호 |
유림식당 | 064-742-9108 | 낸내리 | 064-742-8092 |
추자봉이네 | 064-749-9055 | 고향향토장터 | 064-747-8035 |
7. 상추자 음식점
업소 명 | 전화 번호 | 업소 명 | 전화 번호 |
이맛 | 064-742-5148 | 제일식당 | 064-742-9333 |
황금섬숯불갈비 | 064-742-0478 | 신등대민박수산회센터 | 064-742-3868 |
솔잎숯불갈비 | 064-742-0525 | 커피앤빵 | 064-746-8589 |
강진숯불갈비 | 064-743-4266 | 해적선 | 010-8623-8229 |
동해루 | 064-742-3615 | 마마식당 | 064-747-2655 |
커피 앤 민박 | 064-745-3407 | 플로렌스 | 010-2435-6809 |
한밭식당 | 064-742-1858 | 후풍도올레 | 010-3692-3922 |
올레실내포장마차 | 064-742-2070 | 추자바다숯불갈비 | 064-742-8953 |
청정고을 | 010-3694-3789 | 추자뼈해장국 | 064-742-7905 |
중앙식당 | 064-742-3735 | 오누이밥상 | 064-742-1617 |
우리동네숯불갈비 | 064-742-3562 | 보라네 | 064-744-4305 |
귀빈식당 | 064-742-4900 | 밀물식당 | 064-742-2359 |
비비큐치킨추자점 | 064-742-6337 | 유심이감성식당 | 010-5578-7277 |
오동여 | 064-742-9086 | 여로 | 064-742-0816 |
자료편집 : 성지순례후원회❙ http://cafe.daum.net/holyplacek
첫댓글
고맙습니다~
자료 너무 감사합니다. 지난 주 다녀왔습니다. 배편이 조금 바뀐것 같아요. 최신 자료 업데이트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제주연안여객터미널에 전화해서 출항여부도 미리 확인하면 좋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