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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적 가족 계획과 인공 피임
맹광호(가톨릭의대 교수. 예방의학)
Ⅰ. 머리말
한국 보건사회연구원이 매 3년 주기로 실시하는 전국 출산력 및 가족 보건 실태조사 최근(1991년) 보고서를 보면, 15세에서 44세 사이의 우리 나라 전체 기혼 유배우 부인 가운데 79.4%가 어떤 형태로든지 조사 당시에 피임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나머지 20%가 조금 넘는 부인들 가운데는 임신을 하고 싶어도 임신이 안돼는 불임 부인 또는 남편이 불임 상태인 경우가 절반이 넘고 그 나머지는 임신 중이거나 임신을 계획하는 경우여서 80% 수준인 우리나라 가임 부부들의 이 피임률은 한 나라 부부들이 실천할 수 있는 거의 최고의 피임률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부부들의 피임률이 이렇게 높은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1961년 5.16 군사 혁명이후 지금까지 정부가 총력을 기울여 온 인구 및 가족계획 정책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사용하는 피임 방법 또한 대부분 기계적인 인공 피임 방법들인 것이 물론이다.
1991년 조사 결과를 보면 이들 피임을 실천하고 있는 부부들 가운데 부인이 난관 수술을 한 경우가 35.3%로 가장 많고, 다음은 남편이 정관 수술을 한 경우가 12.0%로서 남편이나 부인의 불임 수술을 피임 방법으로 최종 선택한 경우가 47.3%나 된다. 그 외 자궁내 장치를 사용하는 부인이 9.0%, 먹는 피임약을 사용하는 경우가 10.2%이며 자연적인 방법을 포함한 기타 방법이 9.9%로 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이처럼 우리나라 부부 대부분이 출산 조절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이들 피임 원리와 피임 효과, 그리고 의학적 부작용들을 살펴보고 끝으로 이들 자연 또는 인공적인 피임 방법들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Ⅱ. 각종 피임 방법의 작용 원리 비교
부부들이 사용하고 있는 피임 방법의 작용 원리를 이해하자면 우선 임신의 원리를 이해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피임이란 바로 이 임신의 원리를 이용한 임신에 대한 지식 또는 기술적 대응이라고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임신은 다른 모든 생물에서와 같이 두 개의 성세포, 즉 남성 성세포인 정자(精子)와 여성 성세포인 난자(卵子)가 만나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의 경우, 정자는 남성 생식 기관의 일부인 고환이라는 곳에서 사춘기 이후 계속해서 만들어지며 난자는 여성 생식 기관의 일부인 난소라는 곳에서 역시 초경을 경험하는 사춘기 이후 한 달에 한 개(정확히는 월경 주기마다 한 번)씩 만들어지는 것으로써 이를 배란(排卵, Ovulation)이라고 부른다.
이렇듯 만들어진 정자와 난자가 만나 이루는 세포를 수정란(受精卵)이라고 부르며 임신을 바로 이 수정란의 자궁 착상에서부터 성자, 발육되는 약 10개월간의 전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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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임은 이런 임신 과정 어디선가 그 과정을 차단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즉 배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약물을 사용해서 난자의 생산을 억제한다든지 설사 배란이 되었다 하더라도 이 난자가 정자를 만나 수정되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기계적 차단을 한다든지, 아니면 아직 배란이 되기 전이거나 배란된 난자가 일정 시간 이후 체내에 흡수된 다음 부부 생활을 함으로써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난관 불임 수술의 경우, 난소로부터 만들어진 난자가 정자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며, 남성 불임 수술인 정관 수술은 고환에서 만들어진 정자가 밖으로 사정되지 못하도록 정자의 이동 통로인 정관을 역시 묶거나 자르는 수술인 것이다.
남성이 사용하는 콘돔이나 여성이 사용하는 다이아프램 같은 고무 제품은 사정된 남성의 정자가 여성의 생식기 내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기계적 정자 차단 장치이며 여성이 복용하는 피임약은 배란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궁 내막에 변화를 일으켜 수정된 수정란의 착상을 막는 일을 함으로써 조기 유산(流産)과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이 알려져 있기도 하다.
한편 1960년대 정부가 집중적으로 보급에 나섰던 자궁내 장치라는 것은 피임 목적으로 자궁 안에 넣도록 되어 있는 여러 가지 모양의 플라스틱 물질로서 이는 일단 나팔관에서 수정된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되는 것을 방지하거나 자궁 근육을 자극하여 강하게 수축함으로써 일단 착상된 수정란을 떨어져 나가게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자궁내 장치는 피임 방법이라기보다 이미 수정된 수정란이나 착상된 태아를 없애는 조기 유산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런 인공적 피임 방법들에 비해 자연적인 가족계획 방법은 원리상 전혀 약물이나 기계적 방법으로 생식 세포의 생산을 막거나 남녀 생식 세포가 만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 가족계획이란 한마디로 여성의 월경 주기 중에 일어나는 자연적 신체 변화를 임신 또는 피임을 위한 부부 실천에 적용하는 일이다.
임신이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되면서 시작된다는 것은 이미 언급한 일이다.
그러나 난자의 경우, 한 번의 월경 주기 가운데 단 한 번 배란이 되어 나오게 되며 이렇게 배란된 난자의 수명 또한 12시간에서 24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한 주기 중에 정자가 난자를 만나 수정되는 일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더구나 정자의 수명 또한 여성 생식기 속에서 평균 3-5일 정도 생존해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될 수 있는 기간은 이론적으로 평균 28일 한 주기 중 약 5-6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자연적 가족계획은 바로 이 기간을 이용함으로써 임신을 하거나, 이 기간을 피함으로써 피임을 하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이 임신 가능 기간, 즉 배란이 되는 시기를 알아내는 일이 중요한데, 다행이 여성의 몸은 배란이 되는 시기 전후에 여러 가지 신체 변화를 일으켜 누구나 쉽게 이 시기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예컨대, 배란 며칠 전부터 자궁 입구에서 점액이 분비된다든지, 배란 직후체온이 약 0.2도 정도 상승한다든지, 배란 시 하복부에 통증을 느끼게 되거나 유방에 압통을 느낀다든지, 때로는 배란 시에 적은 양의 질 출혈이 있다든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
특히 배란 3-4일 전부터 자궁 입구에서 분비되는 점액은 거의 모든 여성에게 공통적으로 쉽게 인식되는 신체 증상으로서, 이런 점액을 일정한 규칙에 의해 관찰하여 임신과 피임에 사용하는 점액 관찰법(Ovulation method 또는 Mucus observation method 또는 Billings Ovulation method)은 1970년대 초 이후 전세계에 널리 보급되어 사용되는 매우 효과적인 자연 가족계획 방법인 것이다.
배란 직후 체온이 상승되는 것을 이용하여 이 시기 이후 다음 월경 시작까지의 불임기를 확인하는 것이 소위 기초 체온법이며, 이런 기초 체온 상승을 점액 관찰과 함께 사용하는 것이 증상 체온법(症狀體溫法, Sympto-Thermal method)이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초에 각각 Ogino와 Knaus라는 사람에 의해 배란이 다음 월경 전 약 2주전에 일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를 토대로 월경 주기 길이에 따라 가임기와 불임 기간을 계산하는 소위 달력 리듬 방법(Calendar Rhythm method)이 생겨나 한 때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기도 했지만 이 방법은 앞서 소개한 점액 관찰법이나 증상 체온법에 비해 그 효과가 매우 떨어지는 방법으로 지금은 거의 그 사용이 권장되고 있지 않다.
아무튼, 이런 자연적 가족 계획 방법의 원리에 따르면 부부는 원칙적으로 매달 가임 시기 약 일주일 정도만 금욕하면 임신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방법들을 사용하여 피임을 하고자 할 때는 부부가 함께 금욕하는 절제, 특히 남편의 협조가 필요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Ⅲ. 자연 및 인공적 피임 방법의 의학적 부작용과 피임효과
어떤 피임 방법이든지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자면 우선 그 방법의 사용으로 인한 의학적 부작용이 없고 사용이 쉬워야 하고 피임 효과가 높아야 하고 피임 효과가 높아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까지 개발되어 사용되어 온 어떤 피임 방법도 이런 조건을 완전하게 낮거나 사용이 불편하며, 반대로 피임효과가 높은 것은 그만큼 부작용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대부분의 인공적 피임 방법들의 경우 많은 사람이 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볍게는 불편한 신체 증상들로부터 심하게는 생명을 잃게 되는 일까지 여러 의학적 부작용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선,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는 먹는 피임약의 경우, 이를 오래 복용한 사람들 가운데 생식 기관의 암 발생 위험이 높은 것을 비롯해서, 뇌졸중과 심장 질환 위험, 혈관 내 혈전증 발생, 혈압 상승, 간 및 담도 계통 질환 발생, 그리고 자궁외 임신의 위험도 또한 이것을 복용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높다는 보고가 이으며 특히 이 경우 피임약을 사용하다가 중단한 경우 임신이 되지 않는 경우도 종종 발생되는 등 지금까지 유명 의학 잡지에 발표된 의학적 부작용은 그 수만도 30여 가지가 넘는다.
이외에도 가볍게는 구역질이 자주 나고, 복부 팽만감과 통증, 그리고 체중 증가나 부종, 두통, 우울, 불안, 사지의 경련을 호소하는 경우도 적지가 않다.
특히 피임약을 사용하는 사람이 담배를 피운다거나, 과거에 당뇨병이나 고혈압, 임신 중독증의 기왕력을 가진 경우에는 심장병 발생 위험이 크게 증가하는 등 피임약 사용에는 사전 사후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따라서 선진 외국에서는 이 약을 사용할 때 반드시 의사의 진찰을 받고 지시에 따르도록 되어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전혀 이런 배려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이런 많은 부작용 때문에 1년 안에 복용을 중단하는 사람이 60% 이상이나 되는 것도 유의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 먹는 피임약은 대체로 피임 효과가 좋은 편이어서 100명의 여성이 1년 간 이 약을 복용하는 경우 1명 정도가 피임 실패로 임신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음은 자궁내 장치이다.
이 피임 방법은 앞서 그 작용 원리에서도 설명했듯이 이물질을 여성의 자궁 속에 넣고 지내도록 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부작용 또한 대개는 물리적 자극에 의한 것들이 많다.
즉, 지속적으로 출혈이 있다든지, 자궁을 포함한 생식 기관의 통증과 염증, 그리고 심한 경우 자궁이 뚫어지는 일과 심한 빈혈증도 생길 수가 있고 이로 인해 생명을 잃는 경우도 없지 않다.
임신을 하기 위해 이 장치를 제거한 뒤에 임신이 되더라도 자연 유산되는 일이 많고, 자궁외 임신이 되는 일은 정상인보다 10배나 더 많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피임 효과는 대체로 높은 편이어서 100명의 여성이 1년간 이것을 사용하는 경우 1-4건의 임신이 발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방법 또한 부작용 때문에 사용 도중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다음은 남녀 불임 수술의 부작용과 피임 효과이다.
앞서 소개한 경구 피임약이나 자궁내 장치 등이 일시적인 피임 방법들인데 반해 불임 수술은 영구 피임 방법에 속한다.
불임 수술을 받고도 임신이 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불임 수술을 받는다는 것은 더 이상 임신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방법을 영구 피임 방법이라고 하는데, 이 방법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크게 그 사용자 수가 늘고 있는 방법이다.
그만큼 각 나라마다 인구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부부들 또한 되도록 적은 수의 자녀만을 갖기 원하는 경향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경향은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소자녀 개념을 더욱 강조하고 이를 정책으로 실천하는 나라일수록 심한 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부부들의 불임률 47.3%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높은 빈도에 속한다.
즉 미국 Population Council의 1991년도 추정에 의하면 전 세계 부부들의 불임 시술 수용률은 20.1%이며 인구가 너무 많아 큰 고민이라고 하는 중국이나 인도가 각각 36.9%와 30.9%일 뿐 대부분 선진국들은 이 비율이 10% 내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불임 수술 또한 크건 작건 수술적 조작이 필요할 뿐 아니라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신체 부위를 잘라 그 기능을 없애는 일이기 때문에 이로 인한 여러 가지 신체적, 정신적 부작용도 보고가 되어 있는 상태이다. 우선 여성을 대상으로 한 난관 수술의 경우 이 수술적 조작에 의해 복강 내 출혈이나 화상, 감염증이 생길 수가 있으며, 불완전한 시술에 의한 자궁외 임신, 그리고 수술 후 우울증이나 성적 기능 장애 등이 일어날 수가 있다.
한편, 남성들이 정관 수술을 받는 경우에 도 미숙한 수술 조작에 의한 상처나 출혈 등이 있을 수 있지만 그보다 이 경우에는 밖으로 배출되지 못한 정자가 혈액 중에 들어가 소위 항체를 생산함으로써 갑상선 계통이나 심혈 관계 질환 및 당뇨병 같은 질병 발생 위험을 유의하게 높인다는 연구 보고들이 발표되고 있어 주목을 끈다.
그 외에 불안과 성 기능 장애를 보고한 경우도 적지가 않다.
정관 수술 또한 100% 피임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이 수술을 받고 난 다음에도 연간 1만 명당 0.15내지 15건의 임신이 이루어진다는 보고가 있다.
이와 같은 인공적 피임 방법들에 비하면, 자연적인 가족계획 방법들은 우선 약물이나 기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혀 의학적 부작용이 없으며 이 방법 사용을 위해서 별도의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도 오히려 이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 불규칙한 월경 주기를 가졌던 사람이 규칙적인 월경 주기를 갖게 될 뿐 아니라 신체 변화에 늘 관심을 갖게 됨으로써 오히려 부인과적인 질환을 미리 막는데 큰 효과를 보는 경우도 많다.
다만, 터울 조절이 아닌 단산을 목적으로 철저하게 피임을 해야 하는 부부들로서 가임기 가깝게 부부 성생활이 있었던 경우에는 다음 월경이 있을 때까지 임신에 대한 불안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일이 있을 수가 있다.
이 방법의 피임 효과는 역시 이 방법을 사용하기 전 얼마나 열심히 방법 사용 규칙을 배웠느냐와, 남편이 얼마나 협조를 잘해 주는지, 그리고 피임에 대한 부부의 동기가 얼마나 강한지에 따라 크게 다르게 마련인데 이들 자연적 가족계획 방법의 피임 효과에 대한 지금까지의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강한 피임 동기로 이 방법을 잘 사용하는 부부들에게 있어서는 피임률이 매우 높아서 경구 피임약 이상의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점액 관찰법 사용자 200명을 대상으로 8내지 12개월 간 추적 조사해 본 결과 이 기간 동안 약 92%의 피임률을 나타내기도 했다.
또한 1979년 김화순과 이태준이 자연 가족 계획 방법을 3개월 이상 꾸준히 사용하는 부인들과 이 방법을 배우다가 도중 탈락한 부인들을 대상으로 이들의 특성을 조사해 본 연구에서는 남편의 협조 여부와 부인의 건강에 대해 남편의 관심 정도, 그리고 부부가 같은 종교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가 이 방법을 성공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데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여인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한편, 이 방법은 경구 피임약이나 자궁내 장치와 달리 일단 자발적인 사용자가 되면 이 방법을 계속해서 사용하게 되는 소위 방법 계속 사용률이 90%이상 매우 높은 것으로 되어 있다.
IV. 자연 및 인공적 피임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
가족계획에 관한 교회의 전통적 태도와 가르침은 대체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전후로 해서 고찰해 보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이 시기를 전후해서 인구 문제가 세계적인 관심사로 대두되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각종 피임 방법들이 개발, 보급되었을 뿐 아니라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바로 급변하는 현대 세계의 문제들을 사목상의 문제로 다루어 그 해결책들을 제시한 중대한 회의였기 때문이다.
몇 가지 문헌을 통해서 보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인 비오 11세의 회칙「정결한 혼인」(1930)에서는 어떤 경우에서든 피임이 허용되지 않았으나, 1950년대의 비오 12세 시대에는 중대한 동기를 이유로 하는 경우에 피임을 위해 주기 법을 사용할 수 있게 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예컨대 비오 11세의 회칙「정결한 혼인」에서 보면, “부부 행위는 본질적으로 자녀 출산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실천함에 있어 고의로 그 힘과 효력을 박탈하는 행위는 자연에 반대되는 것이다.(중략) 혼인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어떤 경우이든 인간의 노력에 의해 혼인 행위에서 생명을 출산하는 자연의 힘을 박탈하려고 하는 것은 신법과 자연법에 위배되며, 그러한 행위를 하는 사람은 대죄다” 라고 선언하고 있다.
단, 1939년에서 1958년까지 재위한 비오 12세 교황은 자연적인 불임 기를 이용한 피임에 관해 다소 긍정적인 승인을 했는데, 그래도 이것이 승인되는 경우는 교황에 의해서 제시된 중대한 동기 즉, 의학적, 위생학적, 경제학적, 사회적 이유가 있는 한에서였다.
어쨌든 공의회 이전의 가족계획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은 우선 문헌적으로 보더라도 그렇게 풍부하거나 자세한 것이 못된다.
이에 비하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는 이 점에 관해서 매우 자세하고 많은 양의 가르침을 밝힌 바 있다.
우선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인류 전체를 향해 현대 세계에 있어서의 교회의 존재와 활동을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설명 하고자 공포한다”고 밝힌 사목헌장은 혼인과 가정의 존엄성과 함께 적어도 가족 계획에 관한 한 “하느님의 법을 복음의 빛으로 권위 있게 해석하는 교회의 교도권을 온순히 따르도록”(사목헌장 50항)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가족계획에 관한 우리 교회의 가르침이 분명하게 언급된 것은 1968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위해 공포된 회칙 「인간 생명」(Humanae vitae)과 1983년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가족 공동체」라고 할 수가 있다.
회칙「인간 생명」은, “그러므로 산아 조절의 그릇된 방법으로 비록 치료의 이유라 할지라도 직접적인 낙태는 물론 인공 임신 중절을 산아 조절의 정당한 방법으로 생각하는 의견과 일시적 혹은 영구적 직접 단종 시키는 행위, 또한 부부 행위에 선행하거나 도안하거나 그 필연적인 결과로서 피임을 목적하거나 그 방법을 강구하는 모든 행위를 배격한다”(인간 생명 14항)하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주기적 금욕 생활을 통한 자연적인 방법만은, “부부의 육체적 혹은 심리적 이유이건 또는 외적 환경의 이유이건 간에, 다음 출산과 사이에 간격을 두어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부부는 생식 능력에 내재하는 자연 주기를 이용하여 불임 기에만 부부 행위를 함으로써 산아를 조절하는 것은 괜찮다”(인간 생명 16항)라고 발표됐을 때 교회 전체가 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기꺼이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많은 신학자들은 이 회칙의 가르침이 그리스도인적 부부 생활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것이란 점은 인정하면서도 이것을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나 모든 부부들을 위한 의무적인 이상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일은 이 회칙을 발표한 교황 바오로 6세 자신이 이를 발표하기에 앞서 얼마나 많은 연구와 세심한 검토를 거듭했으며, 또 얼마나 큰 고충을 경험했는지에 대한 사실이다.
“이 문제를 연구하여 회칙을 마련하는데 필요했던 지난 4년 동안 내게는 무거운 책임감이 계속되었다.
솔직히 고백한다면 이런 책임감이 내게 적지 않은 정신적 고통까지 주었다.
스스로의 책임감을 이렇게 무겁게 느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힘이 자라는 데까지 많이 연구하고, 또 많이 읽었으며, 많은 토론을 전개하고 많은 기도를 바쳤다.
(중략) 이렇게 산더미 같이 모여든 논증 앞에서 나는 몇 번이나 당황했으며, 인간적으로는 이런 문제를 결정 선포해야 할 끔찍한 사도적 사명에 스스로 부당함을 몇 번이고 다시 느끼곤 했다.
시대적 여론에 동의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현대 사회가 어렵게 받아들일 나의 의견을 고수해야 할 것인가?”라고 회칙 머리에 술회한 교황의 말은 바로 이 회칙이 얼마나 어렵게, 그리고 심사숙고 끝에 이루어진 것인지를 단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
많은 어려움과 함께 또 ‘반대 받게 될 표적’(인간 생명 18항;루가 2,34)이 될 것을 알면서도 교황 바오로 6세가 모든 형태의 인공적 피임 방법 사용 금지를 재확인할 양심상의 의무를 느낀 결정적 이유의 하나는 “무엇보다 문제 해결의 방법이 교도권으로 항구히 가르쳐 오던 혼인의 도덕률에서 거리가 먼 것”(인간 생명 6항)이란 점과 다른 어떤 결정을 내렸을 때 따라올 결과, 예컨대 혼인과 가정, 나아가서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 상실을 아주 자연스럽게 초래하게 될 것이란 점이었다.
이 같은 교황 바오로 6세의 결정은 그 뒤 해가 갈수록 세상일의 되어짐들 속에 그 가치가 더욱 크게 인정받게 되었고, 실제로 회칙「인간 생명」반포 10주년, 20주년을 맞은 1978년과 1988년 등에 전 세계적으로 이를 기념하고 그 판단이 옳았음을 기리는 각종 대회와 학술 모임들이 줄을 잇기도 했다.
이것은 물론 가족계획에 관한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의 절대적 가치뿐 아니라 과학적이고도 실제 사용에 큰 불편이 없는 자연적 가족계획 방법의 개발과 보급에 애쓰도록 많은 평신도 과학자들이 노력을 요청했던 교황 비오 12세 이후 여러 교황의 희망이 이루어진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회칙 「인간 생명」에서 교황 바오로 6세는 “가장 바람직한 일은 의학이 자연 주기를 살펴서 정당한 산아 조절의 확실한 기반을 마련해 주는 그것이다. 이렇게 학자들, 특히 가톨릭 학자들은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생명 전달에 관한 하느님의 법과 진정한 부부애를 보장하는 하느님의 법 사이에 참모순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인간 생명 245항)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 결과 전 세계 많은 가톨릭 의학자와 과학자들은 이런 교회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보다 정확한 자연 가족계획 방법들을 연구 개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으며 이런 노력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빌링스 박사 부부에 의해 연구 개발된 점액 관찰법인 것이다.
점액 관찰법을 비롯한 자연 가족계획 방법은 지금 80여 이상 국가에 보급되어 많은 부부들이 사용하고 있으며 이 방법을 보급하는 국제적인 기구도 세계빌링스법협회(World Organization of Ovulation Method Billings)가 있고 국제가정생활증진협회(International Federation for Family Life Promotion)가 있고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좀더 효과적인 자연적 가족계획 개발을 위한 특별 위원회를 만들어 이 방법의 연구와 보급에 관심을 갖고 있는 상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식적으로 자연 가족계획 방법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75년 6월 주교회의 산하에 「한국 행복한 가정 운동」이 발족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에 앞서 1972년 11월에는 한국 주교회의가 ‘인공 유산과 피임’에 관한 성명을 발표한 바 있고 1974년 11월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펴낸 ‘가톨릭은 인공 유산을 왜 단죄하는가’라는 인공 유산 반대 선언문을 번역 출판해서 널리 보급하는 등 비자연적 피임 방법의 무분별한 사용과 인공 유산 시술에 대해 신자들에게 교회의 태도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교회는 과학적이고 그 피임 효과 또한 뛰어난 점액 관찰법이나 증상 체온법과 같은 자연적 가족계획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치질 못했다.
물론 1970년도부터 목포와 춘천에 있는 성 골롬반 병원에서 몇 분 골롬반회 수녀님들이 빌링스법으로 불리는 점액 관찰법을 지도하고 있었으나 극히 일부의 신자 부부들이 배우는 정도였고, 외국 수녀님들에 의한 지도의 어려움 또한 적지 않았다.
1975년 6월 26일에는 한국 주교회의가 인준한 「한국 행복한 가정 운동」의 발족은 교회가 허락하는 자연적 가족계획 방법을 가르침으로써 출산 조절이 요구되는 부부들을 돕고 인공 유산을 방지하자는 교회의 강력한 의지를 실천에 옮긴 것이 된다.
전국 14개 교구에 「한국 행복한 가정 운동」 교구 위원회를 두고 교구 내에 자격 있는 지도자를 두어 자연적 가족계획 방법 지도를 시작한 것이다.
이를 위해 서울 가톨릭 의과대학 부속 성모 병원에 클리닉을 열고, 춘천, 목포의 성 골롬반 병원, 부산의 메리놀병원 등과 함께 지도자 양성을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이다.
교회가 이렇듯 자연 가족계획 지도 태세를 갖춤으로써 1976년 6월에는 한국 천주교 주교단의 이름으로 ‘건전한 가족계획에 대한 사목교서’를 발표하고 모든 교회 지도자와 부부들이 이 「한국 행복한 가정 운동」에 적극 참가할 것을 권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동안 서울에 전국 협의회를 두고 각 교구 활동을 지도해 오던 이 「한국 행복한 가정 운동」은 1992년 가을 총회를 계기로 일단 전국 협의회를 해체하고 주교회의 산하 가정 사목 위원회가 이를 맡아 교회 내 다른 가정 사목 활동과 함께 각 교구 활동을 지도하고 조정하기로 하였다.
Ⅴ. 맺음말
우리 교회는 적어도 다음 몇 가지 점에서 가족계획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첫째는 우선 가족계획의 윤리와 가치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 입장이며 둘째는 현실적으로 대부분 가톨릭 신자 부부들의 가족계획 실천 양상이 비신자 우리 나라 부부들의 그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이렇듯 거의 모든 부부들이 피임을 실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유산되는 태아가 출산 수의 두 배를 넘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교회가 이 일에 관심을 갖고 여기서 발생되는 문제들에 대해 지혜롭게 대처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적어도 현대 세계에서 그 몫을 다한다고 말할 수가 없다.
그것은 이미 이 글 머리말에서도 밝혔듯이 가족계획은 이제 우리 나라 모든 부부들의 생활 그 자체 일부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부부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가족계획 방법이 지닌 윤리와 가치가 교회의 가르침에 위배될 뿐 아니라 저 많은 인공 유산이 결국 가족 계획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주로 인공적 피임 방법들이 어떻게 비 교회적인지를 그 작용 원리와 교회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교회가 이에 대해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는지에 관해서 현상적인 설명을 해보려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쓰여졌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결코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없는 우리 한국 교회 내 대부분 성직자, 수도자, 그리고 신자 부부들에게 이에 관한 올바른 지식과 판단을 갖도록 하게 하자는 것이었고 이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이 되었다고 본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교회가 이런 현상적 문제들에 관하여 어떻게 대처해 나가느냐에 대한 논의다.
이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교회는 이미 가족계획에 대해서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비 교회적인 인공적 피임 방법들에 대한 대안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교회가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현실적인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신자 스스로 이것을 알고 실천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그러나 교회 또한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도와주는 일에 힘쓰지 않는 한 우리나라 부부들의 가족 계획과 그에 관련된 문제의 해결은 언제까지나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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