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희생을 통해 미래를 약속하시는 하나님
2020년 1월 19일 / 예레미야 32:6-8 / 찬송가 88장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신앙에서 사소취대(捨小取大) 신앙으로
약 1:10-22 / 부요한 사람도 기뻐하십시오. 재산이란 주님이 보시기에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리쬐는 한여름의 태양 아래 아름답게 피어났던 꽃도 곧 그 아름다움을 잃고 시들어 말라 버리듯이 부자의 생애도 이와 같습니다. 제아무리 사업에 바쁘게 뛰어다닌다 해도 그것을 다 마치지 못하고 뒤에 남겨 둔 채 죽고 마는 것입니다. … 13) 누구든 악한 일을 할 마음이 생길 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유혹하시는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결코 악을 행하기를 원하시지도, 악을 행하도록 유혹하시는 일도 없습니다. 14) 인간은 자기의 악한 생각이나 욕심에 끌려서 유혹을 당하는 것입니다. 15) 그 악한 생각이 악한 행동을 하게 만들어 결국 하나님께 죽음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 16) 그러니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잘못된 길로 빠져 들지 마십시오. 17) 온갖 좋은 것과 완전한 것은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변함이나 그림자 같은 것이 전혀 없이 영원히 밝은 빛으로 비춰주십니다. 18)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자유로운 뜻에 의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새로운 가족 가운데 최초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19)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말은 적게 하고 듣기를 즐겨하며 화는 잘 내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20) 분노는 우리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사람이 되는 데도 방해가 됩니다. 21) 그러므로 더러운 것이나 악한 것은 모두 다 제거하여 버리고, 우리가 받아들인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에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십시오. 그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아 우리를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다. 22) 또 듣기만 하고 그 말씀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입니다.
종종 바둑이나 장기 같은 게임을 접할 때마다 깨닫는 교훈이 있다. 초보자들은 대부분 고수들이 두는 수보다 적어도 몇 수를 내다보는 지혜가 없기 때문에 또는 작은 한두 개를 잡으려다 큰 것을 잃어버려 반드시 필패(必敗)한다. 여기서 배우는 것들이 있는데 고수들은 작은 것에 집착하지 않고 하수들은 작은 것에 집착한다는 사실이다. 하수들은 정작 자신의 것들이 죽는 줄도 모르고 작은 말 하나를 먹으려고 집중하다가 대마를 잃어 패배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하지만 고수들은 작은 것에 하나 둘씩 희생하여 잘못 두는 듯하나 결국 자신의 큰 것을 위하여 작은 것을 희생함으로 큰 것을 건져 결국 승리한다. 눈앞에 보이는 작은 욕심을 탐하다가 결국 큰 것을 잃어버린다는 속담이 소탐대실이다.
이 말의 반대말이 사소취대(捨小取大)이다. 사소한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한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가르치신 말씀도 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신앙생활을 하려면 예수님의 교훈에 따라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작은 것을 얻기 위하여 큰 것을 놓치거나 작은 것도 얻고 큰 것도 얻으려는 욕심에 사로잡히면 결국은 가룟 유다처럼 모든 것을 놓치고 말 것이다.
마 5:1-12 / 어느 날 예수께서 많은 사람이 모여든 것을 보시고 제자들을 데리고 산 위에 올라가 앉으셨다. 2)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슬퍼하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온유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올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이 만족할 것이다. 7) 친절과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 것이다. 8)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9)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10) 올바른 일을 하다가 박해받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나의 제자라는 이유로 모욕당하고 박해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비난받을 때 너희는 행복하다. 12) 그럴 때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라. 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옛 예언자들도 이같이 박해를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라.
우리의 일상적인 삶 가운데서도 여지없이 이러한 것들이 현실적으로 많이 나타난다. 자기 개인적인 작은 탐욕 때문에 큰 것을 잃어버리고 난 뒤 후회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자신의 능력으로 큰 부나 권력을 잡은 듯하나 그것이 결국 자신의 사리사욕이나 큰 욕망에 이끌리다 보면 결국 자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매몰되다 결국 타락이나 좌절 또는 파멸의 나락으로 빠졌을 때 절망하거나 후회하는 경우를 허다하게 목격한다.
또한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소탐대실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이기적인 신앙이다. 자신 밖에 모르는 신앙, 겸손할 줄 모르는 신앙, 자기가 얻고 취한 신앙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신앙이 바로 소탐대실의 신앙이다. 자신도 모르게 소탐대실의 수렁에 빠지듯이 죄악과 낙심과 멸망에 늪에 빠져 벗어나지 못하고 멸망에 이르게 된다. 그런 마음이 올바른 신앙을 잃어버리게 하는 위험한 도구가 될 수도 있기에 우리는 언제나 경계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소탐대실(小貪大失)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소취대(捨小取大)이다.
신앙에 있어서 사소취대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영원한 생명이다. 영원한 생명이 가장 큰 것이요, 가장 소중한 것이다. 버릴 수 없는 가장 귀한 것이 바로 영원한 생명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의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높고 높은 보좌 그 모든 것들을 버리시고 종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의 멍에를 매시고 영원한 생명을 구원하여 주셨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예수님께서 낮고 천한 이곳으로 오셔서 당신의 십자가가 아닌 죄인들의 죽을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대신 지셨을까? 이것이야 말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얻는 가장 귀한 사소취대(捨小取大)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작은 것이라도 희생하라는 것보다 받은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라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아울러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겨자씨 비유, 누룩 비유,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들도 작은 것을 희생해야 천국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신 말씀이다. 찬송가 216장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하여 분명히 쓰여 있다. ❶ 성자의 귀한 몸 날 위하여 버리신 그 사랑 고마워라 내 머리 숙여서 주님께 비는 말 나 무엇 주님께 바치리까 ❷ 지금도 날 위해 간구하심 이 옅은 믿음이 아옵나니 주님의 참 사랑 고맙고 놀라워 찬송과 기도를 쉬지 않네 ❸ 주님의 십자가 나도 지고 신실한 믿음과 마음으로 형제의 사랑과 친절한 위로를 뉘게나 베풀게 하옵소서 ❹ 만 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살겠네
우리는 여기에 참 감사와 마음 그리고 분명한 신앙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래야 참 믿음이요 그래야 참 신앙이다. 영생을 얻어야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가장 우선이어야 한다. 다른 무엇이 영혼 구원보다 앞서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우리들도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삶의 현실 앞에 보이는 작은 물질 때문에 눈이 돌아가고 현혹되고 매몰되는 현실이다. 삶이 궁핍하다 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고 돌아서려고도 한다. 믿음이 연약한 것도 있겠지만 그 마음 깊숙한 곳에 소탐(小貪)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그러다 대실(大失)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멀리 내다보고 작은 것에 집착하는 습관들을 버리는 경건의 훈련을 해야 한다. 말씀 앞에 서서 자신을 날마다 깊이 있게 반성하고 또 자신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아야 한다. 현실을 직시하며 살되 현실에 매몰되지 않으며 멀리 바라보며 살되 너무 이상적이지 않는 믿음의 삶이 필요하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지만 결코 비현실적이지 않아야 하며, 믿음이 현실 속에 적용되어야 하지만 결코 현실의 눈앞에서만 반드시 일어나는 어떤 이상과 기적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배우고 익히다 보면 현실을 올바르게 직시하게 되고 멀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 분명해 지는 놀라운 인지력을 갖게 된다.
말씀 안에서 산다는 것은 보다 분명한 현실 가운데 믿음으로 헤쳐 나가는 것이고, 믿음을 통하여 내가 해야 할 일을 찾게 된다.
그러므로 소탐대실(小貪大失)의 헛된 믿음을 버리고 사소취대(捨小取大)의 큰 믿음을 가지라.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가 되지 말고 이웃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멀리 내다보는 큰 믿음을 가지라. 교회를 올바르게 살리는 믿음, 가정을 바르게 하는 믿음, 이웃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을 분명한 믿음의 자리에 올려놓는 신앙이 오늘 이 시대에 필요하다.
이러한 신앙은 반석 위에 세운 신앙으로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하여 무너져가는 저들의 잘못된 신앙 즉 잘못된 터전인 모레와 같은 삶을 고치고 순종하는 믿음을 가지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거룩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신다.
이에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자.
렘 32:6-8 / 예레미야가 경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또 이런 말씀을 하셨다. 7) “예레미야야, 이제 곧 있을 일이니 잘 들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이렇게 부탁할 것이다. 우리의 고향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촌이 사시오. 나는 지금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빠져서 그 밭을 팔 수밖에 없는데, 지금 그 밭을 사야될 나의 가장 가까운 친척은 바로 사촌이오.” 8) 그런데 여호와께서 내게 알려 주신 대로 정말 내 사촌 하나멜이 경비대 뜰로 나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베냐민 지파에 소속된 아나돗 마을의 내 밭을 사촌이 사시오. 사촌은 나의 가장 가까운 친척으로서 그 밭을 사야 할 우선권과 의무가 있소. 만약 지금 다른 사람이 산다고 해도 사촌에게는 나중에라도 그 밭을 다시 매입해야 할 의무가 있소. 그러니 지금 그 밭을 사시오.” 나는 이 사촌의 부탁이 바로 주님의 명령이라고 깨달았다.
시드기야가 유다의 마지막 왕으로 11년을 통치하다가 나라가 멸망했는데, 이 사건은 시드기야 10년에 일어났으므로 유다가 멸망하기 일 년 전의 사건이다. 유다가 주전 587년에 멸망했으니 이 사건이 일어난 때는 주전 588년입니다.
이 때 예루살렘은 바벨론 제국에 포위된 지 1년이 지난 상황이었다. 성 안에는 먹을 것이 떨어져 사람들은 굶주렸다. 유다 백성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런 상황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 탄식했다.
애 2:20-21 / 여호와여, 보소서! 돌아보소서! 주께서 누구에게 이리하셨는지요. 아낙네들이 배고파 그리도 애지중지하던 어린 것들 살덩이를 뜯어먹고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예언자들이 성전에서 살해당하고 있습니다. 21) 젊은이건, 늙은이건 모두 다 길거리에서 살육당해 나동그라져 있습니다. 젊은 청년도 처녀도 모두 다 원수의 칼에 쓰러졌습니다. 주께서는 분노하시던 날 사정 볼 것도 없이 저들을 여지없이 쓰러뜨리셨습니다.
성 안에는 먹을 것이 없어 자녀를 잡아먹는 끔찍한 일까지 발생했다. 불안은 극에 달했다. 행복은 0%에 가까웠다. 손에 잡을 수 있는 행복과 조그마한 안전이라도 확보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레미야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아나돗에 있는 자신의 밭을 예레미야에게 파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나라가 망하게 되는 상황에서 땅을 팔아 현금을 확보하며 그것으로 작은 행복이라도 건지려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당시 시위대 뜰에 갇혀 있었던 예레미야를 찾아 간다.
예레미야는 그 때 왜 감금되어 있었을까?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것까지 예언했다. 왕은 당연히 기분이 나빠서 예레미야를 가두게 된 것이다.
렘 32:3-5 / 시드기야왕이 예레미야를 그곳에 가두어 둔 이유는 예레미야의 예언 때문이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도성 예루살렘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주어 그가 이곳을 정복하도록 하겠다. 4) 유다 왕 시드기야도 그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가 바벨론 왕 앞으로 직접 끌려가서 입과 입을 맞대고 눈과 눈을 맞대며 답변해야 될 것이다. 5) 시드기야가 대답도 못하고 변명도 못하면, 느부갓네살이 그를 바벨론으로 끌어갈 것이다. 그러면 그가 남의 땅에 갇혀 있다가 죽을 것이다. 그런데도 너희는 지금 갈대아 족속과 감히 싸우려고 한다. 그것은 전혀 성공할 수 없는 무모한 짓이다. 이것은 나 여호와의 말이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실제로 그 다음 해인 기원전 586년에 멸망하고 만다.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싸서 유다는 멸망해 바벨론에 다 빼앗기고 사람들은 다 포로로 끌려갈 것을 뻔히 알고 있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는 사촌의 땅을 사라고 하셨다.
부동산 거래 제1법칙은 그 땅의 미래에 따라서 땅값이 결정된다. 예를 들어 지금은 황무지 같은 땅이지만 내년에 대기업이 들어온다고 하면 그 땅값은 많이 오른다. 또 지금은 낡은 아파트이지만 내년에 재계발이 된다고 하면 아파트 값이 많이 오를 것이다. 지하철역이 생긴다고 하면 값이 많이 오르게 되어 있다.
이처럼 미래에 그 땅이 어떻게 활용되느냐에 따라서 땅값이 결정된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산 땅은 원수들에게 빼앗길 땅으로 땅을 사도 방문조차 할 수 없는 땅이다. 권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땅이다. 그런 땅을 현재가격을 쳐서 사려고 하니 얼마나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바보같이 보겠는가? 사촌 하나멜도 속으로 ‘역시 내 사촌 예레미야는 선지자라 그런지 성경은 알고 예언은 해도 실물경제, 부동산 거래는 모르는구나?’하고 비웃었을 것이다. 그것도 예레미야가 현재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로 그 땅을 사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짓으로 보였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통해 이러한 일이 있을 것에 대해서 미리 알고 있었다.
렘 32:8 / 그런데 여호와께서 내게 알려 주신 대로 정말 내 사촌 하나멜이 경비대 뜰로 나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베냐민 지파에 소속된 아나돗 마을의 내 밭을 사촌이 사시오. 사촌은 나의 가장 가까운 친척으로서 그 밭을 사야 할 우선권과 의무가 있소. 만약 지금 다른 사람이 산다고 해도 사촌에게는 나중에라도 그 밭을 다시 매입해야 할 의무가 있소. 그러니 지금 그 밭을 사시오.” 나는 이 사촌의 부탁이 바로 주님의 명령이라고 깨달았다.
이때 예레미야는 어떻게 했을까? ‘전쟁 통에 밭을 사라니요? 안 됩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하나님 명령대로 은 17세겔을 달아 주고 밭을 사는데, 이는 노동자가 1년을 일해서 모을 수 있는 금액이다.
사촌과 매매 계약서를 작성하고 보증인들이 보는 앞에서 그것을 봉인한 다음 은을 저울에 달아 주었다. 그리고 매매 규정에 따라서 봉인된 매매 계약서의 원본과 봉인하지 않은 사본을 함께 받았다. 예레미야는 사촌 하나멜과 그 매매 계약서의 원본에 서명한 보증인들과 경비대의 뜰에 머물러 있던 모든 유다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 두 가지 문서를 마세야의 손자이며 네리야의 아들인 바룩에게 넘겨주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바룩에게 다음과 같이 부탁하였다.
렘 32:14-15 / 온 세상의 주인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양피지를 위아래 두 부분으로 접어서 똑같이 작성하고, 윗부분은 봉인하고 아랫부분은 말기만 한 이 두 계약서를 받아서 옹기그릇에 담아 오랫동안 보관하여라. 15)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날에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다시 집과 밭과 포도원을 살 것이다. 이것은 나 여호와의 말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무모한 일을 하라고 요구하신 것은 70년이 지나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이 다시 유다 땅에 돌아와서 그 땅을 다시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2개의 매매증서를 작성한다. 보관된 매매증거가 다시 쓰이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에 대해 약속으로 예레미야가 밭을 산 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행위 예언이었다.
예레미야는 이 일을 여러 증인과 시위대 뜰 앞에 있는 유다사람들 앞에서 진행했다. 언제 망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이 일은 예루살렘의 미래를 하나님께서 보장하신다는 하나의 강력한 상징적 행위라는 소문이 사람들이 믿던 아니 믿던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급속도로 퍼져 나갔을 것이다.
예레미야는 비록 하나님의 명령 때문에 밭을 사긴 했지만 찹찹했을 것이다. 그러나 곧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더욱이 예루살렘이 70년 뒤에나 회복된다는 사실은 고맙고 감사할 일이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매매를 마치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렘 32:17 / 오, 주 우리의 하나님이시여! 주님은 큰 힘과 권능으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으니 주께서 힘이 부족하여 못하실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라의 멸망을 앞둔 시점에서 예레미야는 슬픈 감정이 앞을 가렸지만 전지전능하신 사랑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사 찬양을 했다. 그러나 모든 의심을 털어버리기 위해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왜 땅을 사라고 하셨는지 질문한다.
렘 32:25 / 나의 주 하나님, 예루살렘은 이미 바벨론 군인들의 손아귀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는데 주께서는 제게 ‘돈을 주고 밭을 사며 증인들까지 세워서 매매 계약서를 작성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곧 말씀해 주셨다.
렘 32:26 / 나는 온 세상의 주인으로서 모든 사람을 다스리고 움직이는 하나님이다. 그런 내게 무슨 일이든지 불가능한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으셔서 예루살렘을 바벨론의 손에 넘기신 것이 아니었다. ‘내게 무슨 일이든지 불가능한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은 단지 지금의 상황 때문에 좌절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좀 더 거시적인 안목을 갖고 역사와 미래를 바라보라는 주문이기도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어서 이스라엘의 죄악 때문에 이런 일이 작정되었음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죄를 지적하신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파멸만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회복도 약속해 주셨다. 징계만이 아닌 긍휼의 하나님이시다.
렘 32:37-41 / 내가 지금은 무서운 분노를 내뿜으면서 그 도성의 주민들을 내쫓아 세계만방으로 흩어 놓지만 나는 그들을 다시 그 모든 나라에서 불러다가 모아 놓겠다. 나는 그들을 다시 이곳으로 인도하여 그들이 이 땅에서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도록 하겠다. 38) 그래서 그들이 다시 내 백성이 되도록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겠다. 39) 그때에는 내가 그들의 생각과 행실을 변화시켜 한 가지 목표 곧 `그들이 언제 어디서나 나를 두려운 마음으로 섬겨 그들과 그들 자손이 언제까지나 복을 받아 잘사는 인생'을 향하여 일생을 살게 하겠다. 40) 그뿐만이 아니라 그때에는 내가 그들과 영원히 폐지되지 않을 계약을 체결하고 그 계약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여 내가 그들에게서 떠나지도 않고 그들을 내가 내쫓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그들에게 복되고 아름다운 일들을 베풀어 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직접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언제나 나를 두려워하는 생활 태도로 살게 하여 그들이 다시는 내게서 멀리 떠나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41) 그때에는 그들에게 복을 많이 주는 것이 나의 기쁨이 될 것이다. 나는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그들을 영영 이 땅에 살도록 심어 놓겠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 70년이라는 바벨론 포로의 시간을 허락하셨으며, 그 기간이 끝나면 다시 원래의 땅으로 돌아와 평화롭게 살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세 가지 믿음에 대한 도전과 교훈을 받을 수 있다.
1. 믿음이란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70년 뒤에는 다시 돌아오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 말씀을 그대로 믿고 땅을 샀다. 사람들이 그를 어리석다고 비웃고 조롱해도 현 시가대로 샀다. 사람들이 ‘왜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냐?’며 놀린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70년 뒤에는 여기 돌아온다며 사라.’고 말씀하셨으니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믿음의 행동을 보인 것이다. 그렇다고 예레미야 선지자가 투기의 목적으로 그렇게 행동한 것이 아니라 곧 포로가 되어 붙잡혀 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 것뿐이다.
▶ 믿음의 사람들 모두는 이러한 길을 걸어갔다. 그리고 선진들이 남겨놓은 과거의 발자취는 다음 시대의 사람들에게 거울이 된다. 특히 신앙세계의 역사는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의 길에서 이탈하지 않고 바른길을 걷게 하는 등불이 된다.
출애굽의 영도자 모세는 그 백성의 지난 역사를 회고하면서 “먼 옛날을 기억해 보고 대대로 내려 온 시대를 더듬어 보며 본래 너희가 어떤 족속이었던가를 너희 부모에게 물어 보고 너희가 어떻게 선민이 되었는가를 노인들에게 물어 보아라.”고 하였다(신 32:7). 지난 역사 가운데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순종했을 때 만사가 형통했던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신 28:1-6).
사도 바울은 선진들의 역사를 조명하고 그들이 남긴 성공과 실패의 자취를 교훈삼아야 된다고 하였다. 고린도전서 10:1-6에 보면 출애굽 기간에 있었던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이적들과 축복의 내용을 소개하고 또한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하다가 광야에서 멸망당한 일을 거론하면서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1장은 이러한 믿음을 잘 대변하였다.
히 11:1-2 /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갖는 게 아니겠습니까? 또한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일지라도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게 아닙니까? 2) 예전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들도 다 이러한 믿음으로 인정받았던 것입니다.
히 11:6-10 / 여러분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진정으로 하나님을 바라는 이는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7) 노아도 하나님을 믿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장차 일어날 일을 경고해 주셨을 때 홍수의 조짐 같은 것이 전혀 없었는데도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방주를 만들어 자기 가족을 구해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노아의 신앙은 그 당시 거역만을 일삼던 사람들의 죄나 불신앙과 비교할 때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 이 믿음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시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8)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고향을 떠나 약속해 준 먼 땅으로 가라고 지시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채 고향을 떠났습니다. 9)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서 훗날 하나님께 같은 약속을 받은 이삭과 야곱처럼 천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10)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튼튼한 기초 위에 세워진 하늘의 도성으로 그를 데려다 주시리라는 확신 속에서 기다리고 산 것입니다. 그 하늘의 도성은 바로 하나님께서 설계하고 건설하신 곳입니다.
특히 믿음의 사람들은 이 땅에 대한 소망보다는 하늘나라의 도성을 바라보며 신앙생활을 했다.
히 11:13-19 / 지금 내가 열거한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다 얻은 뒤 죽은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그 약속이 자기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을 기쁨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참 고향이 아니고 다만 자신들은 잠시 이 땅에 나그네로 와 있는 데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14) 그들이 이렇게 생각한 것으로 보아 하늘에 있는 참 고향을 그리워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5) 만일 그들이 이 세상의 여러 가지 달콤한 생활로 돌아가기를 원했다면 언제든지 돌아 갈 수 있었습니다. 16)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고 하늘의 도성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역시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고 그들을 위해 하늘의 도성을 만들어 두셨습니다. 17)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셨을 때도 아브라함은 아무런 의심 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삼아 제단 위에서 그를 죽여 희생제사를 드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18)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이삭을 통해서 그의 자손이 퍼져 나가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삭을 희생제물로 바치려 하였습니다. 19) 만일 이삭이 죽더라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시리라고 아브라함은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와 같은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죽을 운명에 놓여 있던 이삭이 살아 있는 그대로 다시 아브라함에게 되돌아온 것입니다.
히 11:24-26 / 모세가 어른이 되었을 때 애굽 왕의 손자로 불리는 것을 거절한 것도 그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잠시 동안의 쾌락을 위해 죄에 빠지기보다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나누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26) 애굽의 모든 보화를 소유하는 것보다는 장차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받는 편이 훨씬 더 낫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실 큰 상을 더 바란 것입니다.
히 11:31 / 창녀 라합이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자기 집에 숨겨준 것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불순종한 여리고성 사람들이 멸망할 때 구원을 받았습니다.
히 11:35-40 / 그리고 어떤 여자들은 믿음이 있었으므로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장차 더 나은 생명의 부활을 얻으려고 감옥에서 풀려나는 대신 매 맞고 사형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유의 몸이 되기보다는 죽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36) 어떤 사람들은 조소당하고 매 맞고, 다른 사람들은 쇠사슬에 묶여 감옥에 갇혔습니다. 37-38) 어떤 사람들은 돌에 맞아 죽고, 어떤 사람은 톱에 두 동강으로 잘려 죽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믿음을 버리고 풀려나기 보다는 칼에 맞아 죽는 편을 택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양이나 염소의 가죽으로 변장을 하고 광야와 산을 방황하였고 동굴이나 토굴에서 숨어 살며 굶주림과 병과 학대에 시달려야 하였습니다. 39) 이 사람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약속하신 것을 전부 다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40)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보다 더 좋은 것을 준비해 두신 것을 그들에게도 주시려고 기다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6:19-21절에서 예수님이 “이 땅위에 재물을 쌓아두지 말라. 땅에서는 좀이 먹어 없어지거나 도둑을 맞기 쉽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서는 그 가치를 잃어버리는 일도 없고 도둑이 들어와 훔쳐 갈 염려도 없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이렇게 볼 수 있다. ❶ 하늘은 좀도 동록도 도적도 못 온다는 것이다. 도적이 아무리 날고뛰어도 하늘까지 올라가서 훔쳐올 수는 없다. ❷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면 그 사람 마음도 천국 하늘에 있게 된다. 이 두 가지 이유로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셨다. 세상 사람들은 보물을 어떻게 하늘에 쌓아 두냐며 어리석은 말씀이라고 생각하며 돈을 낭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70년 뒤에 돌아올 유다 땅을 사는 것처럼 우리도 돌아갈 본향 천국을 위해서 땅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마태복음 19장에서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말씀과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묵상하자.
마 19:21-29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네가 완전하게 되려거든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22) 이 말씀을 들은 젊은이는 큰 부자였으므로 침울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23) 그러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다. 24) 다시 말하지만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25)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놀라서 `그러면 세상에서 구원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다.' 27) 그때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게 되겠습니까?' 28)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새 세상이 되어 인자가 그 나라에서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29) 그리고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고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재산을 버린 사람은 백배의 상을 받을 것이고 또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주신 말씀도 보자.
딤전 6:17-19 / 부자들에게는 교만하지 말고 또 곧 없어질 돈을 의지하지 말라고 일러두시오. 그런 것보다는 오히려 우리를 즐겁게 해주시려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항상 풍족하게 주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자랑하고 그분만을 의지하도록 가르쳐 주시오. 18) 착한 일에 돈을 쓰도록 가르쳐 주시오. 자기가 가진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 언제든지 다른 사람과 기쁘게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질 때 그들은 참된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9) 그러면 그들은 하늘에다가 참 보화를 쌓는 것이며 이것만이 영원을 대비하는 안전한 투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사람은 이 땅 위에서도 열매가 풍성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2. 믿음이란 때로 ‘어리석다’는 비난과 위험도 감수하는 것이다.
세상적으로 말을 해 보자. 하나멜은 매우 영특하고 재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시세를 파악하고 민첩하게 자기의 밭을 팔고자 하였다. 얼마 안 있어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으로 끌려 갈 것인데, 그럴 경우 가지고 있는 토지는 아무런 가치가 없게 될 것이다. 오히려 좀 싸게 받더라도 팔아 현금을 챙기는 것이 편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느 때나 하나님께 대한 비전이 없는 사람은 눈앞에 있는 이익만을 챙기려고 애를 쓴다. 이런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봉착할 때마다 인내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냥 주저앉거나 어떻게든지 피해 가려고만 애를 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세상적으로 평탄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고 위험하다며 비난해도 위험을 무릅쓰고 가야 한다. 왜냐하면 복음 자체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장 23절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에 대해서 설교할 때면 유대인들은 기분이 상해 있고(거리끼는 것) 이방인들은 모두 잠꼬대 같은 소리(미련한 것)라고 합니다.”라고 기록되었다. 이방인들은 예수 믿고 죄 용서 받으며, 하나님과 교제하고, 죽으면 천국가고, 영생한다는 자체를 어리석은 일로 생각한다. 사실 예레미야가 하는 일에 대하여 잘 한다고 박수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사실은 그들이 어리석은 것이다. 복음은 지혜로운 것이다.
전도하는 것도 세상 사람들은 미련하게 본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 “이 세상이 인간의 지혜를 가지고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는 것도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경륜으로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고 바보 같다고 말하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사는 사람들을 구원하기로 하신 것입니다.”라고 기록되었다. 믿음의 영웅들은 참으로 미련하리만큼 위험을 무릅쓴 사람들이었다.
아브라함이 잘 살고 있던 고향을 버리고 알지도 못하는 땅으로 하나님을 따라간 것은 믿음 때문이며, 모세가 바로의 공주 아들이라고 하는 자리를 버리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고생한 것도 믿음 때문이며, 노아가 사람들에게 놀림과 조롱을 받으며 육지에서 큰 배를 지은 것도 앞으로 있을 홍수심판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바울이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출세가 보장된 삶을 버리고 매 맞고 핍박받는 전도자의 길을 간 것도 믿음 때문이다. 영생, 내세를 향한 미래적인 믿음 때문이었다.
예레미야 자신도 자기가 한 행동이 세상사람 보기에 어리석게 보인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예레미야 32장은 세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❶ 예레미야가 땅을 산 사건 ❷ 땅을 사고 난후 예레미야가 기도한 것 ❸ 하나님이 응답하신 사건이다. 그런데 예레미야의 기도를 보게 되면 “하나님은 능력 있는 참 좋은 분이시다.” 찬송을 하고 끝부분인 25절에서 “주 여호와여 주께서 내게 은으로 밭을 사며 증인을 세우라 하셨으나 이 성은 갈대아인의 손에 붙인바 되었나이다”라며 기도를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라고 해서 샀지만 그리고 이 성이 이렇게 바벨론 사람들에게 멸망해 버리면 과연 70년 후에 다시 우리에게 회복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겠습니까?”라고 물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즉시 대답해 주셨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세 번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❶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투자를 갚으실 능력도 있고 반드시 갚아주신다. 그러나 함부로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빌려주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투자를 갚으실 능력도 있고 반드시 갚으신다. 약속하신 것에 대하여 거짓말하실 분은 절대로 아니시다.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어도 하나님은 반드시 상으로 갚으신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그런 기도를 하니까 하나님께서는 26-27절에서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라고 당신을 걸고 말씀하신 것이다.
❷ 43-44절에 “이 나라와 이 도성에 대하여 너만이 아니라 모든 유다 사람이 망하였다고 말한다. 이 도성은 이제 완전히 바벨론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버렸으며, 이 나라는 사람과 짐승이 더 이상 살 수 없는 황막한 땅으로 변하였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바로 이 땅에서 사람들이 다시 밭을 사고 평화롭게 사는 날이 올 것이다. 이 절망적인 나라에서 사람들은 곧 다시 매매 계약서를 작성하고 증인들을 불러다가 서명을 시키며 풍속대로 봉인해 둘 것이다. 이 나라의 어디에서나 사람들이 모든 땅을 다시 살 것이다. 예루살렘과 그 주변이나 유다의 성읍들 안에서만이 아니라 아나돗과 같은 북방의 베냐민 지역에서도 토지 거래가 활발해지고 더 나아가 산지나 언덕이나 남녘의 초원지대를 가릴 것 없이 유다 어디에서든지 토지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내가 유다 백성의 국운을 전환시켜 다시 평화로운 번영의 시대를 맞도록 할 작정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온 세상의 주인으로서 약속하는 말이다.”고 기록되었다.
43절에 ‘너희가 이 땅에서 다시 사람들이 밭을 사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왜냐하면 ‘내가 포로로 돌아오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신다. ‘포로로 돌아오게 함이니라’는 영어성경에 ‘I will restore their fortunes(내가 그들의 행운을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다)’라고 기록되었다. 행운을 회복하신다는 이 약속이 예레미야 29-33장에 8번이나 반복하며 약속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운을 회복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투자에 보상을 하시되 확실히 보상하실 것이다. 70년 뒤에 예레미야는 죽었더라도 예레미야의 친척들, 그 후손들이 와서 항아리에 넣었던 인봉한 매매증서를 꺼내며, ‘우리 조상인 예레미야가 선견지명도 좋게 이 땅을 사놨구나!’하며 즐거워할 것이다.
결 론
■ 특이한 풍습이 있는 어느 조그마한 섬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 섬의 원주민들은 바깥세상의 정보를 얻기 위하여 풍랑을 만나 표류해 온 사람을 1년 동안 왕으로 세워준 뒤 많은 정보를 얻고는 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면 그 사람이 표류해왔던 형태로 다시 그 섬을 떠나보내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사람이 널빤지를 타고 그 섬으로 표류해왔다. 그는 마을의 주민들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 그러자 욕심이 생겼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마을에서 제일 크고 좋은 집을 짓고, 보물이란 보물은 다 끌어 모았다. 세월이 지나 어느새 1년이 되었다. 그는 그 섬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데, 그동안 고생하며 마련한 아름다운 집도 값비싼 보물도 하나도 가져 갈 수 없었다. 단지 1년 전에 자기가 표류해 올 때 타고 왔던 널빤지를 타고 그 섬을 떠났다가 얼마 못가서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또 어느 해인가 한 사람이 헤엄을 쳐서 섬에 도착했다. 그는 자기보다 앞서서 표류해왔던 사람이 남겨놓은 집과 보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어차피 1년 후가 되면 자기가 표류해온 것처럼 빈손으로 헤엄쳐 갈 텐데, 좋은 음식이나 많이 먹으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몸에 좋다는 것은 닥치는 대로 열심히 먹었다. 그러다보니 살이 쪄서 움직이는데도 불편했다. 약속된 1년이 되어 처음 그 섬에 표류해온 것처럼 다시 바다를 헤엄쳐 떠나게 되었지만, 몸이 너무 무거워 예전 같지가 않았다. 결국 그 사람도 헤엄을 친지 얼마 있지 않아 지쳐서 그만 바다에 빠져죽고 말았다. 또 어느 해인가 한 사람이 스티로폼을 타고 그 섬에 표류해 왔다. 그 역시 그 섬에 도착하자마자 이 섬을 다스리는 왕이 되었다. 그는 자기보다 앞서서 표류해왔던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한참 생각하더니,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섬사람들에게 그 섬 전체를 보여 달라고 요청을 했다. 섬을 돌다보니 동쪽 끝에 조그마한 한 섬이 보였다. 원주민들에게 물어보았더니, 그 섬은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무인도라는 것이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원주민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 섬에 우물을 파라. 섬에 집을 짓고 밭을 갈고 먹을 것을 잔뜩 가져다 놓아라. 나무를 심고 꽃을 심어라.” 그는 1년 동안 다른 것은 하지 않고, 사람이 살 수 없는 무인도를 자신이 거처할 수 있는 훌륭한 섬으로 꾸미는데, 모든 시간과 정열을 바쳤다. 정해진 1년이 되어 그 섬을 떠날 때가 되자, 그는 자신이 타고 왔던 스티로폼을 타고 그동안 잘 가꾸어놓은 섬으로 이동하여 그 섬에서 편안하게 잘 살 수 있었다.
정호승 시인의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자>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빌 4:4-7 / 항상 주님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다시 한 번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5) 자기보다 먼저 남을 생각하는 너그러움을 모든 사람에게 보이십시오. 주께서 곧 오신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십시오. 6) 걱정에 싸여 지내지 말고 무슨 일에 있어서든지 기도하십시오. 필요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고,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남께 감사드리는 일을 잊지 마십시오. 7) 그러면 여러분은 인간의 이해를 훨씬 더 초월한 하나님의 평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의지할 때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안정시키며 안식을 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