轉送(전송) - 능 스님이 용문의 노스님께 문안드리러 가는데 전송하며.
孤筇雙屨蘚衣幷 고공쌍구선의병 幷-庚
지팡이 하나 짚신 한 켤레 헤진 가사 입고
冉冉千峯路杳冥 염염천봉로묘명 冥-靑
일천 봉우리 아득한 길 터벅터벅 걸어가네
若到龍門方丈外 약도용문방장외
만약 용문사 주지스님 뵙거든
冀須詮達小心誠 기수전달소심성 誠-庚
바라건대 작은정성 잘 전해주오.
筇(공) ; 지팡이용 대나무를 이름인데 그냥 지팡이로 푼다. 대나무가 지팡이용으로 쓰 이는 것은 가볍기 때문이다. 마디가 촘촘하여 탄력이 좋고, 불에 달구어 구부 리기 수월한 굵기라야 좋다. 당연히 곧은 대지팡이도 있으
나 竹杖(죽장)은 곧고 굵은 반면 筇(공)은 손잡 이부분이 ‘U'자 모양으로 구부러져 있고 마디가 촘촘하다.
여기서 독자의 시 심을 다듬노라면 길을 나선 스님네가 연로하시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왜냐하 면 죽장은
김삿갓 같은 팔팔한 사람이 지팡이 겸 호신용 또는 풀섶을 헤치는 도구를 겸했지만 공은 오로지 노구를 지탱
하는 목적으로 탄력있는 지팡이 이기 때문이다.
屨(구) ; 삼으로 엮은 신발. 여기서는 짚신.
蘚(선) ; 이끼 선인데, 여기서는 누더기 (옷) 쯤 으로 쓰였다.
幷(병) ; 아우를 병. 지팡이와 짚신과 헤진 옷을 아울러 걸쳤다는 표현.
冉冉(염염) ; 나아갈 염을 겹쳤다. 터벅터벅 걷는 모습이다.
허응당의 시 치고 희한하다. 압운이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경우는 거의 유일무이하다.
게다가 이 시의 제목이 한자로 남아있지 않다. 전송은 역자가 붙인 제목이다. 용문사로 가는 인편에 무언가 선물을 만들어 옛 스승에게 전하고자 한다.
이능화는 그의 저서「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에서 이 시의 저자 보우대사를 강원도 신흥사 혹은 백담사의 승려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그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 시로 미루어 그의 스승이 용문사에 계신 것으로 추정해 볼 때 대사가 신흥사나 백담사에 기거 했다기 보다 경기도 양주의 용문사에 기거 하다가 이 시를 쓸 즈음 머잖은 암자로 옮겨갔을 가능성을 유추할 수는 있다. 시는 작성한 본인의 정서가 중요하지 어디서 무엇 때문에 지었느냐는 애당초 논란거리가 아니다.
그러나 독자로서 해득하는 과정에서 千峯(천봉)이라는 단어를 읽으면서 으레 금강산 어디쯤 있는 사찰인가보다 하다가 龍門(용문)이라는 절 이름을 보면 아니 금강산에 용문사가 있었던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능화도 유몽인도 그런 의문으로 곰곰 따지다가 뜬금없는 지명논쟁이 생기지 않았을까. 보우가 어느 절에 있으면서 시를 썼느냐 누구에게 보냈느냐 관심 갖지 말자. 이 시는 結句(결구)가 백미다.
유몽인은「어우야담(於于野談)」에서 보우대사의 은사로 견성암(見性庵)에 머물던 지행(智行)스님을 들고 있으나 이를 뒷받침할 자료역시 남아있지 않다.
정작 문우가 다투어야할 문제가 있다면 승구(承句)의 명(冥)이 원문과 일치하느냐에 대해 언급한 흔적이 없다. 기구(起句)와 결구(結句)의 압운 병(幷)과 성(誠)은 경운(庚韻)이지만 승구(承句)의 명(冥)은 청운(靑韻)이라서 얼핏 시를 옮기면서 명을 잘못옮기지 않았느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으나 명(冥)이 독자적으로 쓰이지 않았고 묘명(杳冥)이라는 숙어(熟語)로 쓰였으므로 잘못이라 하기 어렵다. 보우대사의 시 라면 제목이 없는 유일한 시 이고 또 압운이 맞지 않는 유일한 시 이기도 하여 마침내 과연 보우의 시가 맞느냐는 의문을 자아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