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9 레오폴트 모차르트
https://youtu.be/WcckyH_voNY
음악이란 까부는거다. 까불다가 드디어 엄청 까불기도 한다.
1732 요제프 하이든
https://youtu.be/CfkxYAsZsXs
곽승 지휘 KBS교향악단과 베를린필 트럼펫 수석 가보 르 터르퀘비
댓글이 더 재미나. 음악은 작곡가나 연주자보다 감상자가 주인인가 감상자도 주인인가. 음악을 작곡했을 때 작곡한 걸 재현했을 때 재현한 걸 감상했을 때.
1756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https://youtu.be/s7vJcUogrEI
음악의 폭발, 디아나 담라우 폭발.
1770 루드베히 판 베토벤
부다페스트 후기 현악사중주의 베토벤 cd
https://youtu.be/KxifDpkU1JU
https://youtu.be/wfF0zHeU3Zs
https://youtu.be/wKvKiN1wYHw
https://youtu.be/dHcm9sS94iE
1782 니콜로 파가니니
https://youtu.be/e1hvnqsO9nY
1786 카를 마리아 폰 베버
https://youtu.be/7ki0uNJQClI
https://youtu.be/arNCFAD25Z0
https://youtu.be/fVDF8njydAw
클래식음악은 사실상 대중문화다. 대중문화란 제공받는 문화를 다수 대중이 받아먹는 방식이 산업화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대중매체가 큰 역할을 한다. 교회와 왕과 귀족으로부터 특정 시민에로, 특정 시민에서 개인으로...
1791
체르니
자코모 마이어베어
프랑스 오페라 양식이 확립된다. 그것은 혁신과 전통의 교묘한 절충양식(발레를 수반한 5막 구성, 적절한 아리아 형식, 각 역할의 성격을 맞춘 성역 배분)으로서 '위그노 교도 Les Huguenots'에서 더욱 현저해진다. 1836년 2월 29일에 초연된 위그노 교도는 파리 오페라 극장의 역사상 가장 눈부신 성공의 하나가 되었다.
1792 조아키노 로시니
https://youtu.be/P9FoY2xj1XE
금수현 아들 금난새 지휘. 금수현은 우리 현대시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았다. 현대시가 서구화돼 리듬을 잃은 데다 표현까지 어려워 작곡가를 고통스럽게 한다고 생각했다. 비단 금수현만의 불만은 아닐 듯하다. 그는 산문을 비교적 잘 쓰는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현대문학에 '무가사'(無歌詞)라는 수필을 쓰면서 작곡가의 입장에서 선율을 붙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현대시는 거의 없다는 불평을 털어 놓았다.
본래 이름이 김수현인 데 순 우리글로 금수현으로 고치고 언제나 한글로만 성명을 썼고 문장도 한글 전용이었다. 지금 같으면 그것이 보편화된 마당어서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 1950년대는 한글로 이름을 쓰는 예는 희귀한 일이었고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금수현은 그런 점에서 앞서 간 사람이었다. 그의 아들 금난새. 금노상이란 순 우리말 이름도 아버지 금수현이 지어준 것이다. 그가 부임해온 경남여고에 교사 18명 가운데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절반이었다. "김 선생!" 하고 부르면 한꺼번에 돌아보는 일이 생겼다. 이를 계기로 우리 한글 성씨도 개척한다는 뜻에 김을 금으로 바꾸고 교직원은 물론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부르도록 알렸다. 그러나 그것이 여의치 않아 교감선생이 고친 성을 부르지 않고 김씨로 불렀다 해서 혼을 내는 촌극도 벌어졌다.
https://youtu.be/3pKxJCBuMsY
이것은 민족음악이다.
38번째 최후의 오페라 독일 시인 쉴러 원착 스위스혁명 배경 오페라 윌리엄 텔(뷜헤름 텔)이후 40년을 조용히. 스위스 군대의 행진
1797 프란츠 슈베르트
156cm, 전업 음악가가가 아니라 음악 애호가.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 작곡가.
겨우 31살의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무려 998개의 작품들을 작곡할 만큼 다작가였다.
혼수상태였을때 슈베르트는 "묻혀지는...... 건... 싫어... 홀로 있는 건 싫어......" 라고 중얼거리자 곁에 있던 페르디난트가 "프란츠, 모두 널 걱정하여 모였단다. 걱정마라."고 말하자 갑자기 그는 "하지만, 여긴 베토벤이 없어!" 잘 있었어? 나는 너무나도 아프다네. 고열과 어지러움이 계속되고 정신을 유지하기도 힘드네. 먹을 것을 먹는 즉시 토해버리고 열하루째 물만 마시고 있어.
그의 절친한 친구인 쇼버에게 생을 마감하기 1주일 전인 1828년 11월 12일에 보낸 편지가 마지막으로 쓴 편지인데, 여길 봐도 그의 마지막 당시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그나마 페르디난트 형과 린나(누이동생)가 정성을 다해 간호하고 있어줘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간혹 좀 낫기도 하고 그러면 책을 읽고 있다네, 지금 마지막 모히칸이라는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네. 이거 작가인 쿠퍼가 쓴 다른 책이 있으면 좀 빌려줄 수 있겠나?
자네의 친한 친구인 프란츠가
1828년 11월 12일.
https://youtu.be/XgizapTCcLg
슈베르트 피아노 삼중주 2번 작품번호 100 D.929
D는 오스트리아의 음악학자인 오토 에리히 도이치(Otto Erich Deutsch: 1883-1967)의 이름 첫 글자. 이 작품은 1828년 3월 26일 슈베르트 자신의 연주로 초연 되었으며 대단한 호평을 얻었다. 그는 이 작품에 매우 자신감이 있었던 모양으로 적극적으로 출판 교섭에 나서 이윽고 라이프치히의 프로프스트에서 출판하게 되었다.
대리한 감정. 숭고함, 엄숙함, 비장함, 슬픔, 상처나 살갗이 찌르는 듯이 아프고 아림... 치통, 이몸앓이... 어쩌면 음악은 몸과 마음에 일어난 일들에 관한 기록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