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 소설
흑묘黑猫들의 공화국
sandong303@daum.net
2022년 강서문학 원고 / 김 성 열
“조합원들 피 빨아먹는 흡혈귀! 조합장과 집행부는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 가칭, “바르게 살기 운동” 이라는 비 대위들의 시위는 며칠째 계속되고 있었다. 숫자도 점점 불어 나고 그 양상이 생각 외로 과열이 되어가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임시총회를 열어 현 집행부를 몰아내고 자신들이 조합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의혹은 가는데 물증이 없어 확 뒤집어 현 집행부의 비리를 캐내고야 말겠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재건축 정비 사업조합 집행부는 눈썹 하나 까딱 않는다. 비리가 있으면 법대로 하라며 버티고 있다. 하기야 다른 조합은 삼 년도 안돼서 조합장이 벌써 두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이 조합은 십 수년이 되어도 조합장과 임원진은 철옹성처럼 잘도 버티고 있다.
그 조합에 비 대위는 이번이 벌써 두 번 째다.
첫 번 째는 해당 구청으로부터 사업승인을 받고 공사는 시작도 되지 않아 바로 터졌다. 그것은 무시무시했다. 어느 날 밤 자정 무렵, 덩치 큰 사내들의 돌팔매질로 사무실 유리창이 깨지고, 주먹만한 돌덩이가 사무실 안으로 날아들어 컴퓨터가 박살이 났다. 그것은 폭동과도 같았다. 같은 조합원인데도 안면 몰수하고 사무실을 강제로 점령하려 들었다.
쇠 망치로 사무실 철문을 부수려 드는가 하면, 고층 사다리 차 에 산소 용접 기까지 동원하여 철 창문을 해체하려 들었다. 독기서린 얼굴로 잡아먹을 듯 달려들었다. 보다 못한 나는 119에 신고를 했다. 경찰관이 들이 현장에 도착했으나. 뒤짐 짓고 구경만하고 있었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경찰관에게 항의를 했다. 그 경찰관의 대답이 가관 이다. 조합 일은 조합원들끼리 해결을 하란다. 섣불리 끼어 들었다가는 오히려 경찰이 법에 휘 말 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는 것도 같았다.
조합 반대파 주동자는 원래 조합 임원들 이였다.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겨 변호사와 정비 사업체를 배후에 끼고 작당을 한 것이다. 도둑 고양이들이 생선 냄새를 맞고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조합이 둘로 쪼개질 판이다. 어떻게 던 막아야 한다. 그러나 반대파도 만만치가 않았다. 임시총회를 개최하기 위하여 이를 악 물고 집집마다 찾아 다니며 서면 결의 서를 받았다. 그들에게는 나름대로 명분이 그럴 싸 했다. 조합에서 책정한 분양가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을 한다는데 돌아서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재건축이 된다 안 된다 하던 아파트 단지가 서울시로부터 재건축 사업계획이 발표되자 부동산 가격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국토 해양 부에서는 서둘러 부동산 투기지역으로 지정고시까지 했다. 재건축조합에는 눈먼 돈이 뭉텅 이로 굴러다녀 먼저 먹는 자가 임자라는 풍문대로 어중이 떠 중이 들이 조합장을 하려 들었다. 조합 사업승인이 나고 이 삼 년도 채 안되어 비 대위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똥 냄새를 맞고 온갖 똥 파리떼들이 모여들었다.
아파트 광장에서는 조합원 임시총회가 열렸다. 기존 조합에서도 총 비상을 걸어 비 대위들의 움직임을 철저하게 감시를 했다. 임시 회장은 연단에 올라서서 임시 총회 개회를 선언 했다. 재적 조합원 과반수참석에 참석인원 과반수 찬성이면 총회 성립이 인정된다는 도시 정비사업법 조항을 낭독했다. 임시의장은 법적으로 총회 개최 요건이 충분하다는 것을 사회 봉을 두드리며 선언을 했다.
법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속기사들이 회의록을 작성하고 임시의장은 일사천리로 회의를 진행했다. 현 집행부의 자격이 박탈되고 새로운 조합이 탄생이 되는 순간이다.
조합원들은 새로운 조합장과, 입원들을 거수로 선출하고 그 자리에서 발표도 했다. 새로 선출된 조합장은 미모를 겸비한 여성 회원이 되었다. 박수갈채를 받으며 연단에 오른 신임 조합장은 약속한대로 조합원들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사업비도 대폭 줄이고 분양가도 확 낮춘다고 했다. 새로 선출된 신임 조합장이 폐회를 선언하자 비 대위 조합원들은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새로 선출된 조합장은 곧바로 해당구청의 정비사업조합을 등록하고 현 집행부의 자경정지를 요구하는 서류를 구청에 제출했다.
이를 받아 드린 구청 때문에 기존조합의 업무는 한 달이나 가까이 정지상태가 되고야 말았다. 이에 기존 조합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협력업체를 총동원하여 비 대위의 임시 총회에 대한 분석 결과 조합원 정족수 미달이라는 정보를 입수 하는 결정적인 게기를 잡았다.
그것은 쾌거였다. 적장의 목을 잡은 격이다.
기존의 조합은 다음날, 임시총회무효와 증거자료 보존신청을 남부 법원에 제출했다. 워낙 중요하고 민감한 사항이라 법원에서도 서둘러 판결을 내렸다. 비 대위에서 보고한 서류가 위조되었다는 것이다. 기존조합에서 제기한 임시총회 무효 소송에서, 참석조합원 숫자가 미달로 임시총회는 무효 판결로 확정이 되었다.
오히려 비 대위들의 임시총회를 게기로 기존 조합장과 임원 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고민에 빠져있던 조합장은 힘이 하늘을 찌를듯했다. 이제는 누가 뭐라 해도, 거짓은 주머니의 감출수록 송곳처럼 밖으로 뚫고 나오고, 진 실은 가장 자유롭다는 명언을 들먹이며 당당하게 맞섰다.
아파트 광장에는 며칠째 머리띠와 어깨띠를 두른 조합원들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항간에는 이웃 아파트 에서 청산시기에 맞춰 작전 세력들이 비 대위를 결성하여 재미를 톡톡히 보았다는 소문들이 난무했다. 그런 것을 변호사를 끼고 전문적으로 하는 브로커들이 있다고 하더니 사실로 들어났다.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하는 소문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조합원들의 아우성은 잡을 길이 없었다. 아파트 단지 내에는 울긋불긋한 문구들이 새겨진 현수막들이 여기 저기 걸려있어, 보기에도 안 좋지만 아파트 값 형성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었다. 준공이 된지가 오래되었는데도 애당초 분양가에도 못 미치고 있다.
어쩌면 비 대위들의 요구가 당연 한지도 모른다.
아파트 분양을 하면서, 일원 한푼 없다던 추가부담금이 여기 저기서 봇물 터지듯 한다. 상가도 계획대로 분양이 되지 않고 불어나는 공사비 이자 문제로 떨이를 하다시피 했다. 상황이 그런데다, 300억이나 되는 공사비부가세, 백오십억에 이르는 일조권패소, 생각지도 않던 100억에 가까운 취득세가 하늘에서 폭탄처럼 터지듯 했다. 조합원들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사실 조합원들이 말하는 조합원들 피 빨아먹는다는 이야기는 그 조합 정비사업조합 조합장과 그 집행부가 아니라, 현 사회구조가 너무나 썩은 데서 비롯된 갑 질들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행정부나 사법부나 또는 입법 기관들도 그러기는 마찬가지다. 모두가 합법적인 양 경쟁을 하다시피 조합원들을 상대로 수탈과 착취에 앞장섰다. 민주주의란 방울을 단 고양이 들에게 생선 가게를 맡긴 꼴이 되었다.
관할관청에서 사업승인이 떨어지자, 조합원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지은 지 30년도 더 되는 서민중의 서민 아파트였으니 어쩌면 단연한 일 이였다.
이천 세대가 가까운 아파트가 반 이상은 열 평 남짓했고, 하물며 열 평 안 되는 조합원들도 대다수다. 그 중에는 서민 갑부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월남 참전 용사도 있고, 독일에 파견되었던 광부들도 있을 테고, 열사의 나라 중동에 파견되었던 근로자들도, 그 심한 매연을 마셔가며 대로변에서 야채를 팔아 어렵게들 장만한 집들 이다. 정말이지 피와 땀이 배어있는 그들의 재산 이였다.
관청이 그들에게 저지른 갑 질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십여 년 간 무허가로 흉물이 되다시피 한 단지 내 상가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공인 감정가로 오십억도 안 되는 건물을 그들은 지금 상상을 초월한 금액 1,000천억을 요구하고 있다. 관할관청은 재건축 사업승인 시기에 맞춰 건물 준공허가를 서둘러 내주어 알 밖 끼 행위에 일조를 한 것 이다.
조합원들은 관청을 향해 주먹질을 하곤 했다. 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상가와 교회는 지겹게도 조합을 물고 늘어 졌다. 하도 어이가 없어 조합원들은 상가와 교회를 사업부지에서 제외시켜달라고 서울시에 민원을 제기했더니, 해당 관청에서는 재건축 사업을 취소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 일들이 어디 한 두 가지랴. 재건축 설계도를 들고 관청 부서를 한 바퀴다 돌아다니며 허가를 받으려니 하나같이 그들은 참으로 가관 이였다. 자기네 땅이라면 공무원들은 그랬을까. 허가 필수사항처럼 환경 영향 평가다 또는 도로용지와, 공공용지를 요구했다. 자그마치 10,000여 평에 가깝다. 강원도 깊은 산 기슭 땅도 아니고 서울 한복판 금싸라기 같은 땅 만 여 평이나 되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관에서의 갑 질은 갈수록 태산이다. 그들의 횡포는 도를 넘었다. 해당교육청에서는 초등학생수가 줄어 학교 문닫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데, 학교부지를 자기네 땅처럼 넉살 좋게도 요구했다.
조합원들은 하늘을 향해 가슴을 치며 그들을 저주했다. 이제는 원위치로 돌아 갈수도 없다. 이미 기존 건물들이 철거가 다된 상태였다. 차 떼고 포 떼고 덩그러니 궁만 남은 꼴이다.
참다 못한 조합 최 감사는 조합 임원회의 석상에서 목소리를 높여 분통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가 그런 어조로 그러는 것은 처음 보는 모습이다.
“아니, 이러고도 고개를 바짝 쳐들고 백성을 위한다고 하겠지. 시계가 꺼꾸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조선시대로 되돌아가있는 기분이 든다니 까요!
여러분들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고종 29년에 일어난 동학란의 동기가 무엇입니까? 지금도 그때보다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어요. 관에서 하는 갑 질은 그때나 지금이나 뭐가 달라졌대요. 힘없다고 백성들을 짓밟으려 들고 여기저기 고부군수 조병갑에 유전자를 배양이라도 받은듯한 무리들의 집단 양성소가 되어 있다니까요. 특히나, 서초동과 여의도, 과천 할 것 없이 그런 놈들만 득시글대고 있어요.
그리고서도 한결같이 서민을 위한 정치라고, 양기가 주둥아리로만 올라서, 아니 북쪽 보다 뭐가 달라요. 사방을 둘러봐도 비상구가 전혀 보이지를 않아요. 힘있는 자들은 법을 이용 하려 들고 약한 자들 많이 법을 지켜야만 하니 불공평하지 않아요. 백성아래 그들이 존재하는 것이자, 백성 위에 그들이 군림하는 지배자들이 되어 있어요. 그래요. 안 그래요. 말씀들 좀 해보세요.”
그의 말은 조금도 틀리지를 않았다. 오죽하면 북쪽까지 비유를 할까. 예상치도 못했던 사업비가 여기저기서 터져대는 바람에 조합원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그것은 아우성이 아니라 비명에 가까웠다. 이래도 서민들을 위한 정치라며 재탕 삼 탕 해대는데 그들의 양심 색 갈은 무슨 색일 까. 하얄까, 깜 할까?
지금 재건축 시공 사는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일군에 해당하는 대형 건설회사다. 애당초 조합과 공사 계약을 체결할 때 공사비 부가세는 시 공사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지분 제 방식을 택했다. 그런데 부동산 경기가 하향 곡선을 그리며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공사를 시작 할 때 만 해도 짖기가 무섭게 분양이 되었다.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아파트는 부족한 상태였다. 더욱이 대형평수를 위주로 아파트를 진 것은 조합이든 시공 사든 그것은 대단한 악재가 되었다. 거기다가 공항이 가까워 고도제한에 걸려 더 이상 높일 수도 없는데다, 분양가 상한선도 법으로 묶긴지 오래다.
분양이 시작되자 너도 나도 소형평수로 몰려들었고 그렇게도 인기 좋던 대형 평들은 모두가 찬밥신세가 되고 말았다. 조합원들 대부분 입주를 거부하고 분양 받은 권리 가 대로 매매하기를 원했다. 일반 분양 분은 시 공사가 책임지고 분양을 시도 했으나, 그도 뜻대로 되지 않아 시공 사는 막대한 손해를 피할 수가 없었다. 다급해진 시공 사는 할인 분양이라는 모험을 내걸었다.
이에 시공 사는 우리나라에서는 내로라 하는 법률 팀이 총 가동하여 총력을 기울였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자재 값도 인상이 되었지만 설계변경 몇 번 해오면서 슬쩍슬쩍 지분 제 계약을 흐리게 만들었다. 그런 것 들을 빌미로 시공 사에서는 공사비 부가세를 조합원들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음모에 돌입했다.
조합원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새로운 보금자리로 들어가려는데, 시공 사는 제동을 걸고 나섰다. 아파트 열쇠를 담보로 공사비 부가세를 납부하지 않으면 키를 내 줄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들은 단호했다. 나를 포함하여 조합원들은 막다른 골목에 다 달았다. 전세계약도 만기가 다되어 오고 이사 날짜도 받아 논 상태다. 그 들의 횡포는 교활 하다못해 악 날 했다. 공사비 부가세가 자그마치 삼백억에 가깝다고 했다.
조합에서는 모든 조합원들에게 문자를 발송해 조합의 위기사항을 알리고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겠다는 심정으로 시공 사로 몰려가 시위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시공 사는 벌써 조합의 움직임을 감지하여 관계기관에 거미줄을 쳐놓은 상태였다.
해당 경찰서는 행인들의 방해를 최소화하는 조건으로 대로변 인도를 시위장소로 겨우 내주었다. 장소가 비좁아 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동원 할 수가 없어 전체조합원들 번갈아 교대를 하며 시위에 참여하기로 했다. 하고많은 시위는 수도 없이 보아 왔지만 이토록 직접 참여하기는 나는 처음이다. 대형 버스가 인원들을 실어 날랐다. 확성기도 설치하고 머리띠와 어깨 띠도 둘렀다. 기자들을 부르려 했지만 벌써 시공 사에서 약을 쳤는지 전화를 하면 모두가 성의 없는 대답들뿐이다.
머리가 벗겨 저 빤짝이라는 별명에 조합 박 총무는 언론사의 기자로 있는 고향 후배를 찾아가 자초지정을 이야기 했다.
“선배! 그런 일이라면 곤란한데. 사정은 딱하지만 그 회사는 이미 신문이나 방송 같은 언론사들을 거의 장악을 하여 그 회사 눈치를 보고 있다니까요. 이미 손을 썼어도 몇 번은 썼을 거에요. 요소 요소에다 저격수들을 다 심어 놓은 것 아직도 몰랐어요. 선배도 아시겠지만, 과거 부장판사다, 대법원 판사다, 전문 변호사 들은 이미 그들의 소속된 용병들이라니까요.”
시중에 떠도는 말이 사실 이였다. 약육강식은 동물의 세계에서만 있는 줄 알았는데 재건축 현장에는 더욱 심했다. 조합 강건 파 임원들은 기왕지사 이렇게 된 일 사장실로 바로 쳐들어가자고 했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 이였다.
공병장교 출신으로 베트남전쟁에 참전 하여 병참업무를 담당했던 박상도 이사가 마이크를 잡고 진두 지휘했다. 그런대로 어울렸다. 육 척이나 되는 장신에 체격도 씨름꾼 같았다. 탐스럽게 기른 검은 턱수염은 장비와도 같은 중압감에 보는 이들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게다가 목소리는 어찌나 큰지 여름 들판에 암소를 향해 외쳐대는 황소의 영 각 소리와도 같았다. 오른손을 하늘을 칠 듯이 높이 치켜들고 그가 선창을 하면 참가 조합원들은 따라 했다.
“실권자 재경부장은 대답하라. 대답하라/ 대답하라. 조합원들 피눈물 내는 시공 사는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건축도 모르는 재경본부장은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입주를 볼모로 삼는 시공 사는 악덕기업/ 악덕기업/ 악덕기업. 장0구회장의 결단을 촉구한다/ 촉구한다/ 촉구한다. 조합원들의 재산을 수탈하는 악덕기업을 서민들의 이름으로 심판 한다/ 심판 한다/ 심판 한다. 서민들을 우롱하고 피를 빠는 악덕기업은 지구상에서 살아져라/ 살아져라/ 살아져라./ 조합원들의 피를 빨아/ 비자금 만들고/ 조합원들 짓밟아 / 너희들만 배 불린다/ 너도 살고/ 나 도 사는/ 그런 세상 어디로 갔나/어디로 갔나/ 어디로 갔나.”
시위하기도 만 만치기 않았다. 내 차례가 되었다.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더니 목이 잠기고 전신에 몸살 기가 돋는다. 시위도 아무나 하지 못하고 그래서 전문 시위 꾼이 있나 보다. 교대로 하다가 힘이 들면 대중 가요 테프도 틀었다. 바다가 육지라면/ 동숙의 노래/ 나그네 설움/ 무너진 사랑 탑/ 등 흘러간 노래를 틀었다. 시위는 일주일간 계속되었으나 달걀로 바위치기다.
삼 년 씩이나 끌어오던 상가보상비에 대한 대법원판결이 내려졌다.
천억을 채워 달라는 상가 내 교회 보상비를 850억을 보상하라는 판결 이었다. 결국은 십 여 년 간이나 텅 비어 있던 상가 건물을 관청의 힘을 빌려 알 밖 끼에 그들은 성공을 했다. 조합원들은 그들을 증오했다. 판결금액으로 보상을 하다 보니 그 상가와 교회는 빗 잔치에 급급 했으나 그 금액도 턱없이 부족했다. 진 빚을 갚기 위해 삼 년 간이나 떼를 써오며 조합원들의 피를 빨아 댔다. 흡혈귀가 따로 없었다. 소위 신앙인 이라고 자처하는 목사와 장로들이 앞장서서 예수의 이름으로 어진 신도를 불러모아 기만하고 사기를 쳐댔다. 참으로 교활했다. 안에서는 개고기를 팔고 밖에다는 양 가죽을 걸어놓은 두 얼굴을 가진 자들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이는 내 멍에는 쉽고….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더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마태복음 11장 에있는 성경말씀을 그들은 함부로 남용하고 있었다. 얼마나 성스럽고 거룩한 말씀인가. 그러나 그들은 단 세치도 안 되는 혀를 날름거리며 신도들을 우롱했다.
결국 시공 사와 조합은 법정에서 만날 수밖에 없었다. 끝내 시 공사는 안면 몰수하고 조합 임원을 상대로 내용증명까지 보내 공사비 부가세 반환소송을 제기하고야 말았다.
조합도 서둘렀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설상 가상으로 그들과 싸우려면 법정 대리인인 변호사를 선임 하여 야 하는데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를 않았다. 개인 변호사 말고는 거의가 법무 법인으로 되어 있는데, 권위 있는 변호사들은 이미 그들의 용병으로 소속에 되어 있었다. 일단 거기에서부터 조합은 밀리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날고 긴다는 로펌 회사들은 시공 사가 거의 다 장악을 하다시피 했다.
법무법인 김완장, 법무법인 괭장, 법무법인 열촌, 법무법인 너라, 그 건설 사를 상대로는 선임을 할 수가 없었다. 법정엘 갔다.
사건 심리 현장인데 논리적으로는 우리 변호사가 시공 사 쪽 변호사를 몰아 부쳤다. 그들은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기에 급급 했다. 우리들이 보기에는 조합 변호사의 논리대로 유리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재판장은 판결을 계속 미루고 있었다. 그리고는 몇 개월 후에 재판장은 판결을 내렸다. 그 결과 엉뚱하게도 시공사의 손을 들어주고야 말았다.
조합원들은 멀쩡한 하늘에서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다. 판결문에는 삼백억을 시공 사에 지급 하라며 이자와 법률비용까지 조합원들에게 물리라고 판결을 했다. 할 수 없이 조합에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판결금액 이자 때문에 선 보상, 후 항소를 하기로 했다.
조합원들은 난리가 났다. 아무래도 조합이 뒤집힐 것만 같다. 조합 에서는 이번 판결이 형식과 구색을 가 추기 위해 애당초 확정을 해놓은 구차한 행위라 했다. 그 이 유는 심리를 끝내놓고는 판결 시간이 너무나 길었다는 이유다. 우리조합 주장을 무시하고, 시공 사 편을 들은 공평 성이 훼손된 판결이라며 조합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언제인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 떠올랐다. 재판장 판결이 부당 하다며, 판사가 퇴근하기를 기다리 고 있다가 석궁을 쏘아댔다는 기사가 공감이 가기도 했다.
조합은 고등법원에 상고 하기로 결정을 내리고 이번에는 부가세만 취급한다는 전문 대리인을 선임하기로 했다. 일심 판결을 뒤집기는 매우 어렵지만 새로 선임된 변호사는 일심 판결이 오심이라며 충분히 뒤집을 수가 있는 사건이라 했다. 하기야 변호 사들 백이면 백, 모두가 승소를 장담하지 패한다는 변호사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하지만 우리들은 변호사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설상 가상으로 엉뚱한 공문이 관할 관청에서 날아들었다. 조합에 대한 감사결과 별 특별 한 것은 발견 되지 않았고 취득세 100억이 발생 이 되었다는 것이다. 조합은 또다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아니 허가 조건으로 달라는 대로 기부체납을 한 것을 갖고 세금을 부과하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이야긴가. 옛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뭐 주고 뺨 맞는다는 격이다. 엄연히 공공 부지의 취득세를 조합원들에게 강제로 떠넘기려는 변태 성 갑 질 이다.
관에서는 서민들에게 이중삼중으로 세금장사를 하고 있다. 그들은 꿩 먹고 알 먹기 식이다. 가재는 게 편이라더니 관청이나 법정이나 다 한통속이다. 백성을 주인처럼 섬기고, 서민을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들은 세치도 안 되는 혀를 갖고 백성들을 기만 하는 행위이다. 조합에서는 궁리 끝에 법으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대한민국 에서 가장 명성이 있다는 법무 법인 괭장을 찾았다. 상대가 시공 사가 아니고 관청이기에 다른 사건과는 달리 변호사 선임 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는 것은 조합으로서는 다행 이였다.
세상에 진다는 변호사도 없고 그렇다고 이길 자신이 있으면 각서를 쓰고 공증을 받자고 하면 거기에 응하는 변호사들은, 대한민국 에는 단 한 명도 없다. 조합원에게 재건축을 빌미로 배를 채우는 이들은 따로 있었다. 그곳은 바로 백성들을 담보로 좌지 우지 하는 힘의 지배자들이다. 서민들을 상대로 이중 삼중으로 폭리 장사를 하는 힘있는 지배자들이다.
관청은 별 희한한 조세법을 들먹이며 서민들을 혼란 시키고 있다. 백성을 위한다는 정치는 아예 보이지를 않고, 오히려 백성을 이용하여 국가를 배 불리는 악법 중에 악법이다. 조합원들의 땀이 배인 그 비싼 땅을 서울시는 기부체납을 받고서도 취득세는 조합원들에게 떠 맞기 고 있으니 도무지 납득이 가지를 않는다.
조합원들은 분노와 울분을 금치 못했다. 휴전선 넘어 북쪽이야 원래 그렇다 하지만 죽어 나는 건 서민들뿐이다. 조합에서 이번에는 능력 있고 경험이 많은 부장판사출신의 변호사를 선임 했다. 선임한 변호사는 전문가답게 법률에 박식하고 논리정연 한 것이 지금까지 선임한 변호 사중에 가장 능력이 있어 보였다. 취득세 부과에 대해 법률가인 자신들도 도통 이해 할 수가 없다며 적부심사에서 꼭 이길 것을 자신했다.
삼십 여명이나 되는 서울시 적부심사위원들을 하나하나 찾아 다니며 설득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라 했다. 하지만, 그토록 기대었던 이번 사건도 공교롭게도 조합이 밀리고야 말았다. 정말이지 짜놓고 치는 고스돕 인지도 모를 일이다. 너무나도 교활했다. 이야 말로 정작 착취와 수탈이 아니고 무엇인가 말이다.
조합이 일심에서 패하고 고등법원에 상고한 공사비 부가세 청구 소송 건은 까다롭고 언제나 정의로운 재판장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되도록이면 강한 자 보다는 약한 자 편에서 공정한 판결로, 주변으로부터 존경과 추앙을 받고 있는 송 일도 부장 판사다. 그에게는 언제나 대쪽 판사라는 별명까지 붙어 따라다녔다. 그는 지금까지 그래 왔지만, 이번 사건이야 말로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그 아주 모범적인 사례로 기록될 공정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몇 번이고 다짐을 해왔다. 무엇보다도 대기업과 조합원들과의 다툼이기에 송판사는 고심에 고심을 하고 있는 중이다. 비록 이번 많은 아니지만 그는 어느 사건을 앞두면 자기 부친의 말씀을 몇 번이고 떠올리곤 했다.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그는 판사가 되자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 고향으로 내려갔다.
고래당 같은 기와 집은 으리으리했다. 지은 지 삼 백여 년이 되었는데도 전쟁을 피해 옛날의 고풍스러움을 그대로 풍겨 대고 있었다.
그 집은 조선시대 중엽 예조 판서를 지냈다는 연0 김씨의, 대 대로 내려오는 문중 재실 이다. 넓은 임야와 기름진 논과 밭이 그 문중의 종 토였다. 송판사의 부친 송 영감은 어느덧 사대 째 그 문중의 임야와 넓은 종 토를 관리해 오고 있었다. 일년 농사를 짓고 가을이면 그 문중의 시제를 모시는 일 이 그의 임무이다. 그 외에도 종 토 일부를 임대를 주고 가을이면 도지를 받아드렸다. 그 수입으로 송 영감은 서울에 조그만 집을 장만하고, 어려서부터 자식들을 서울로 올려 보내 교육에 집중했다.
1892년 탐관 오리들이나 지배계층들에 민중탄압은 날로 더해갔다. 특히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과 수탈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교도들과 농민들이 합세하여 농민혁명이 발발했다. 송판사의 고조부는 농민들과 함께 전봉준장군 편에 서서 관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가는데 마다 승리에 승리를 거듭했다.
이를 보다 못한 무능한 조정에서는 결국 일본까지 불러들였다. 동학 농민군들은 신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끝내는 전봉준 장군이 체포되고 동학 농민들의 불꽃은 거기서 그렇게 꺼지고야 말았다. 조정에서는 전봉준 편에 가담했던 모든 농민들을 잡아 들이기 시작했다. 송판사의 고조부는 관군에게 쫓기고 쫓기다 지리산을 거쳐 강원도 산골짝으로 숨어 들어 포수생활로 하루하루 살아 가고 있었다.
삼십 대 한창나이에 그것 가지고는 심이 차지 않아 틈나는 대로 화전도 일구었다. 풀을 깎아 말리고 불을 질러, 새로 일군 땅은 무엇이든 심기만 하면 잘되었다. 담배도, 옥수수도 심었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올 무나 덫으로 잡은 산짐승들을 백리 길도 더 되는 장마당에 내다팔아 생활필수품을 장만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사냥을 나갔다가 길을 잃었다. 눈은 펑펑 쏟아지고 어둠이 밀려온다. 사냥총은 있었지만 인기척도 없는 산중에서 밤을 보낼 생각을 하니 기가 막혔다. 그때 어디 선가 산짐승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울음소리는 배가 고파 우는 것도 아니고, 암놈을 부르는 소리도 아니고, 새끼를 부르는 소리는 더더욱 아니고, 필경은 목숨을 살려 달라는 애타는 소리 같았다.
송 포수는 짐승의 울음 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눈은 싸여 무릎까지 차오른다. 야트막한 산등성을 넘으니 어린 새끼 노루가 올 무에 걸려 다 죽어가고 있었다. 목에서는 가죽이 벗겨져 피가 철철 흘렀다. 이제는 힘이 빠져 울지도 못하고 숨만 겨우 할 딱 거리고 있었다. 송 포수는 어린 노루를 자루에 담을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자신이 포수라 하지만 너무 어린 게 불쌍하고 가여웠다. 그는 잠시 나쁜 생각을 했던 것을 자책을 하며, 서둘러 올 무를 풀어주었다. 그 노루는 자유의 몸이 되어 후다닥 거리며 언덕을 넘어 잘도 달려가고 있었다. 그를 풀어주자 송 포수는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포근해짐을 느꼈다. 그런데 이상했다. 저만치 뛰어가던 그 어린 노루가 가던 길을 멈추고 뒤 돌아서서 꺽꺽 울어댄다. 송 포수가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았다. 집이 보였다. 송 포수는 얼마나 반가운지 이제 야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 포수는 그 집으로 찾아가 염치불구하고 하룻밤을 쉬어가려고 사정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데 이상 했다. 사람이 사는 집 같지가 않았다. 인기척도 없고 새어 나오는 불빛도 없었다. 송 포수는 무서운 생각이 들어 메고 있던 사냥총에 실탄을 장전했다.
헛기침을 하며 인기척을 내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송 포수가 고개를 돌려 사방을 한 바퀴 휘 둘러보았다. 얼마 떨어지지 않는 언덕 위에 커다란 봉분 두기가 나란히 모셔져 있는 것을 보아 그제 서야 어는 문중에 사당이라는 것을 알았다. 문중 후손들이 모여 숭조 사상을 기리기 위해 가을이면 음식을 차려 놓고 제주를 올리며 시제를 모시는 곳 이였다.
송 포수는 염치불구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깥 보다는 훨씬 아늑했다. 벽장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제기와 제관들이 묵을 수 있는 이부자리도 있었다. 바깥은 여전히 바람이 씽씽 불고 눈보라기 친다. 그는 마음속으로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는 두 겹 세 겹 깔았다. 이게 정말 얼마 많인가. 온몸이 따듯해지며 피로가 단숨에 풀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억수처럼 비가 쏟아지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모여들고 관군들이 누구를 포승 줄로 묶어 끌고 가고 있었다. 그 구경을 하느라고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다. 관군이라는 말에 송 포수도 숨을 곳을 찾았으나 별 마땅한 곳이 없다. 그때 끌려가는 사람들이 녹두 장군이라고 웅성거렸다. 관군들은 죄 없는 농민들을 보는 대로 칼로 베이고 창으로 찌르고 시체가 즐비했다. 그러더니 벼란 간 날이 개 이고 파란 하늘에 무지개 뜬 사이로 풍 체도 좋고 수염이 허연 한 노인이 나타났다. 그림에서만 보아오던 신선 같았다. 그 노인이 한 말씀 하신다.
“그래, 너는 누구인데 집도 없이 이리 떠도는고….,?”
“네 죄송합니다. 저는 조정에 죄를 짓고 숨어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 무슨 죄인고?”
“사람답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야 당연 한 것 아닌가. 오히려 조정에 탐관오리들이 벌을 받아야 함에도 그들은 순한 농민들을 너무나 핍박을 한 게야.”
“그런데 어르신은 누구세요?”
“그런 것은 묻지 말고, 머지않아 너도 곧 하산을 하게 될 거야. 남의 조상도 내조상처럼 모시면 되는 거야.”
그러더니, 그 할아버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급히 어디론가 살아졌다.
아무 영문도 모르는 송 포수는 할아버지를 부르며 그의 뒤를 쫓아가다 몇 길도 더 되는 폭포수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꿈 이였다. 하도 이상한 꿈이라 혼자 꿈 풀이를 하느라고 밤을 지샜다. 날은 밝고, 햇볕은 따듯했다. 그는 그제서야 밖으로 나와 무덤 앞에 세워진 비문을 보았다. 비석도 오석으로 되어 있었고 무덤 앞에는 석물들이 다양한 것을 보아 이 무덤의 주인은 문무백관을 지낸 높은 벼슬을 한 주인 같았다. 장명등도 상석도 병풍석도 둘러져 있었다.
조선조 중기, 자주 출몰하는 북쪽 오랑캐들을 평정 하는가 하면, 고도의 외교술로 명나라와도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 공로로 예조판서까지 오른 연0 김씨 문중 비문이다. 그런 내용의 비문을 읽은 송 포수는 어제 밤 하루를 이 문중에 빚을 졌다는 생각으로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를 않는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어쩔 수도 없지를 않는가. 그는 무심코 발걸음을 몇 발작 뛰어 놓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제일 먼저 눈에 뒤 덮인 두기의 봉분이 보였다. 언젠가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 산소의 눈을 치던 생각이 떠올랐다.
송 포수는 짐을 내려놓고 나뭇가지를 꺾어 칡넝쿨로 빗자루를 만들어 봉분에 눈을 쓰러 내리기 시작했다. 겨울이지만 온몸에는 땀이 흐르기도 했다. 눈이 녹으면서 질퍽거리기는 했지만 그가 두 봉분에 눈을 다 쓸어 내렸을 때는 겨울 해는 어느덧 오후로 한참이나 기울어져 있었다.
송 포수는 자기가 살고 있는 움막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눈이 많이 올 때는 산 아래로 내려가 그 산소에 눈을 치는 것을 거르지를 않았다. 그의 움막 생활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나무를 베고 숯을 굽고 장작을 팼다. 그러는 새에 어느덧 봄이 돌아왔다. 송 포수는 연장을 챙겨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약초를 캤다. 오늘은 재수가 좋은 날이다. 가는 곳 마다 생각지도 않은 귀한 약초들이 그득했다. 산 작약, 천마, 창출, 더덕, 생전 처음 보는 산삼도 세 뿌리나 캤다. 그는 흥얼흥얼 콧노래까지 부르며 자기 집에 다 달았을 때는 석양이 서산 마루에 걸친 체 노을이 붉게도 물들여 있었다. 저녁 노을은 너무나도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그런데 그가 놀랜 것은 자기의 움막집 앞에 젊은 장정 두 명이 서성이고 있었다. 순간, 송 포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 문중 사당에서 깜빡 잠이 들었을 때 관군에게 쫓기는 꿈을 꾼 것이 떠올랐다.
필경 관군들이 자기를 잡으러 왔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도망을 칠래야 칠 수도 없다. 그들과는 너무나 가까운 거리였다. 결국엔 이렇게 죽고야 마는 구나. 그러면서도 붙잡혀 끌려가는 녹두장군을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들은 하나같이 송 포수에게 눈길을 돌려 아래위를 훌 터 보고 있었다. 송 포수는 시치미를 떼고 엉뚱하게 그들 향해 물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떡해서던지 저들을 따돌릴 생각뿐 이였다. 일단 그들의 신분을 떠보고 싶었다.
“혹, 말린 엽초나, 아니면 너구리나, 오소리 가죽을 구하러 왔소! 그도 아니면 장작이나 숯이 필요 한 게요?”
송 포수는 이판사판이란 생각이 들어 직설적으로 물으며 혹시나 몰라 총은 항상 들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를 잡으러 온 관군은 아닌 것 같았다.
“아! 아니요. 좀 알아 볼일이 있어서요. 사실 우리들은 한양에서 왔고, 이 곳에 가보면 움막을 짓고 사는 사람이 있다 하기에 물어물어 여기까지 왔소이다.”
그들은 송 포수에게 꼬치꼬치 캐묻고 있었다. 이 곳으로는 언제 왔으며 무슨 일을 했고, 이곳으로 왜 왔는지를 그들은 자세히도 물어댔다. 그러나 송 포수는 농민군 이였다는 이야기 많은 감추었다. 아시다시피 살기가 너무나 힘들기도 하고, 농사를 부칠 땅도 없어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다 그것도 만만치 않아 그냥 떠돌아다니다가 이곳에 정착했다고 둘러댔다.
그러자 그들은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묻겠다고 했다.
“지난 겨울 눈이 많이 내렸을 때, 이 아래 김씨 참판 댁 문중 사당에서 묵은 적이 있나요?”
송 포수는 조금도 거짓 없이 사실대로 대답했다.
“예, 사실입니다. 눈은 쏟아지고 깜깜 한밤에 길을 잃어 할 수 없이….,”
“그런데 봉분의 눈은 왜, 쓸었죠?”
“ 네! 그건 그 문중의 신세를 졌기에 그냥 오기에는 어딘가 양심이 허락 치를 않아서죠.”
송 포수의 대답을 들은 그들은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들 중 한 사람은 그 문중 종손 이였고, 또 다른 한 사람은 그 문중에서는 제일 높은 어른 이였다. 그날 송 포수는 그 문중으로부터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그 자리에서 문중의 관리인으로 중책을 맡아 지금까지 대대로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날 때 마다 송판사는 아버지로부터 고조부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판사가 되어 제일 먼저 고향으로 내려갔을 때엔, 고향에서는 소와 돼지를 잡고 술과 떡을 빚어 큰 잔치를 베풀었다. 열 칸도 넘는 안채와 사랑채에 손님들이 가득 했다.
이토록 큰 경사는 동네가 생긴 이후 처음이라며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축하를 했다. 어떻게들 알았는지 면장과 군수까지 선물을 들고 찾아와 축하를 해주었다. 동네 입구에는 판사탄생을 축하한다는 현수막들이 여기 저기 내 결려 있었다. 장원급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아버지에게 친구분들이 한마디씩 당부를 하듯 조아린다.
“송서방! 아들이 판사가 되었다고 우리를 모르는 척 해서는 안 되는 것 알지, 개천에서 용 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곳을 떠나서도 아니 되고, 말 야. 개구리가 올챙이적을 잊어서는 안 되는 법이야. 알았지?”
“아무렴! 그렇고 말고 여부가 있겠나!”
사흘 동안에 걸친 잔치는 끝이 나고 모든 손님들이 다 돌아가자 그의 부친 송영달은 판사가 된 장남을 불러 놓고는 감격에 벅찬지 목이 메인 소리로 훈계를 하고 있었다.
‘내 아비가 되어 너희들에게 한마디만 하겠다. 나는 법관은 아니지만 모든 법 이라는 게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상식 인 게야. 네가 판사가 되었지만 그럴수록 항상 겸손하고 강자보다는 약한 사람 편에서 한번 더 생각을 하여 공정한 판결을 하도록 해라. 그리고 언제나 처음처럼 업무에 임하도록 하거라.”
“네! 아버지, 염려 마세요. 언제나 아버지의 아들로 아버지의 욕 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저도 아버지께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부탁이라니, 말해보거라.”
“아버지, 이제 이 일을 접으시면 안될까요?”
‘접다니! 그것 많은 안 된다. 방금 전, 이 애 비 친구들이 나에게 한말을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하지만 아버지!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늙으나, 젊으나, 아버지한테 하대를 하는 게 그게 제일 못마땅해서 그래요. 아버지가 왜 그들에게 굽 신 거려 야만 해요. 아버지가 이 문중에 하인도 아니잖아요. 오히려 아버지한테 고마워 할 사람들은 이 문중 사람들이라고요. 아버지 같은 분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어요. 자기네 조상 그리 받들면 오히려 감사해야 할일 안 예요. 계속 이 일을 하신다면 아들의 체면이 뭐가 되겠어요?”
“……,”
부자간 사이에는 당분간 침묵이 흘렀다. 아들의 제의에 송영달 영감은 당분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너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신분의 차이를 굳이 논한다면 주인과 하인관계라 말 할 수 있으나, 이 애 비 생각으로는 서로 도우며 사람들은 살아가는 거야. 문중에서도 우리네 같은 사람이 필요 하고, 또 그와는 반대로 우리에게는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 한 거야.
이를테면 말이다. 이것도 하나의 직업으로 받아드리면 마음 편할 거다. 그리고 무엇 보다 도 우리가 지금 있기 까지 에는 여기 문중의 절대적인 은혜를 부정해서는 안 되는 법이야. 네가 법조인이 되었다고 벌써부터 이 문중이 이렇고 저렇고 하는 것은 너의 고조 할아버지께 반기를 드는 것 과도 같은 이치다. 인권이 아무리 중하다 해도 나는 열 번 백 번 생각해도 나의 인권을 침해 당했다 고는 조금도 생각 하지 않는다. 이 문중은, 동학 농민 혁명으로 오 갈대 없는 선대 할아버지를 살려주신 훌륭한 문중이야. 그리고 또 한가지 그토록 살기가 힘들었던 한국 전쟁도 때도 우리는 거짓말처럼 피할 수가 있었던 게야. 사람들이 얼마나 이 자리가 탐이 났으면 너의 증조부를 사헌부에까지 찾아가 동학농민의 아들 이였다고 밀고를 하지를 않나 온갖 중상 모략과 음해, 아첨과 아부를 있는 대로 다 떨어도 그분께서는 오히려 그들을 호통을 치면서까지 우리의 가문을 보호하고 지켜준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내가 살아 있는 한,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야. 생각한다는 그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이야. 지금 네가 한말 애비는 안들은 걸로 하겠다. 그러니 다시는 그런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가 법조인으로 일을 해나가는데 아마도 좋은 사료가 될지도 모른다.”
송 일도 판사에게는 330억이 넘는 공사비 부가세에 대한 고등법원 판결 날이 돌아왔다. 이제는 법정 한도일로인해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송판사는 지금까지 법을 판결하면서 아직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고 자부를 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 사건을 배정받고는 그의 양심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워낙 액수가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일심을 뒤집어야 하는데 그것도 큰 부담이 되었다.
현재까지는 이 사건이 애당초 조건부 지분 제 라 공사비 부가세는 원래부터 해당사항이 아닌데, 건설 사는 맹랑하게도 법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 가며 조합에 덩 터 미를 씌운 것이다. 이를테면 공사비 손해를 조합원들에게 떠 맞긴 일심은 원래 오심이라 판단했다. 헤게 망측한 법을 끌어드려 건설 사 공사비 적자를 메 꾸는 절대적인 오심이라는 송판사의 판단이다. 송판사는 자신을 가졌다. 일심판결을 뒤집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날 저녁 부장판사들의 회식이 있었다. 그 자리는 부장판사들의 고충을 털기도 하는 그런 자리였다.
일차 식사가 끝나고 이차는 휘 황 찬란한 술집으로 이동했다.
양주에 여자들도 있었다. 부장 판사들이라고 들 하지만 그것은 직업일 뿐이지 사내들의 본능은 부장판사들이 아니다. 양주와 푸릇푸릇한 꽃 향기를 뿌리 칠 수는 없었다. 그러기는 송판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매일같이 공기 탁한 법정에서 판결문이나 낭독하던 것에 비하면 황홀한 세상이다.
말초신경까지 자극하는 여인들 살 냄새는 피곤했던 사내들 심장에 불꽃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 까.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엔 햇볕이 방안에 가득 찾아 든 이른 아침 이였다. 아직도 방안에는 여자의 짙은 살 냄새가 묻어 있었다. 창 틈으로 새어 들어온 햇볕은 얼마나 고귀하고 저만치 진실 한 것이 세상에 어디 또 있으랴. 송판사는 두려워서 더 이상 햇볕을 바라 볼 수가 없다.
송판사가 더욱 놀란 것은 잉크냄새가 마르지 않은 신권 오만 원 짜리 돈 다발이 쇼핑 빽 에 가득 담겨져 있었다. 송판사는 그때야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지금까지 지켜온 양심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제는 다시 되 돌릴 수가 없다. 그는 후회를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송판사는 밖으로 나왔다.
하늘도 세상 모든 것 들이 자기를 비웃는 것만 같아 고개를 쳐 들 수가 없다. 그 때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도 이제는 받기가 겁이 난다. 어제 까지만 해도 모든 세상을 바라볼 때 자신이 있었는데, 이제는 살갗에 스치는 바람 맞어도 자신을 꾸짖는 것 같았다. 송판사는 전화기를 들었다.
“송판사! 나요. 이번 사건 말이요? 이쯤 해서 이방원에 하여가를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을 듯 하오. 강하면 부러지게 마련이요. 대쪽 같다는 송판사를 내 어이 모르겠소. 사실 뒤 짚는다는 것도 보통 부담이 아닐 거요. 세상 좋은 게 좋은 거요. 이 세상 혼자 튀며 산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거요. 그쪽 변호사 한 테도 작업을 해 놓았소. 그럼, 난 당신만 믿고 이만……,”
전화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송판사는 한동안 망 서렸다. 법정으로 출근을 하지 않고 고향을 찾기로 했다. 전화 받은 대로 자신도 시대 흐름에 합류를 한다면 자기자신도 부패하지 않으면 안 될 수 밖에 없었다. 이 대로 법복을 입을 것인지, 아니면 벗을 것인지, 동학 농민군 이셨던 고조부님 묘가 계신 선산을 향해 자동차는 이미 한참이나 달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