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10월 3일(토) 사사기 2:1-5 찬송 508장
1. 어느 날 여호와의 천사가 길갈에서 보김으로 올라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어 너희 조상들에게 약속한 이 땅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내가 너희에게 너희와 맺은 계약을 어기지 않을 테니
2. 너희도 이 땅에 사는 사람들과 계약을 맺지 말고 그들의 단을 헐어버려라‘고 했는데
너희는 내 말에 불순종하였다. 너희가 어째서 이렇게 하였느냐?
3. 내가 분명히 너희에게 말하지만 나는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않겠다.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에게 가시와 같은 존재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은 너희에게 덫이 될 것이다.
4. 여호와의 천사가 이 말을 했을 때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소리 높여 울었다.
5. 그래서 그들이 그 곳을 ‘보김’ 이라 부르고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다. (현대인의 성경)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들을 모두 진멸하고
기업을 차지해야 하는 사명을 부여받았었다.(수13:1-7)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불순종하여
가나안 족속과 혼합, 동화(同化)된 결과(삿1:21-36)
저들과 언약을 맺으며 우상을 섬기기에 이르렀다.(1-2절)
이에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사자를 보내어
이스라엘의 배은망덕을 책망하고 저주를 선포하는데(3절)
그제서야 이스라엘은 통회하며 다시금 하나님을 예배한다.(4-5절)
이러한 본문은 본서 전체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본문은 여호수아 사후 백성들의
신앙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보여 줄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암시해 주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전(全)사사 시대를 거쳐 하나의 패턴을 형성한다.
그것은 곧 본문의 내용 전개에서 볼 수 있듯
「이스라엘의 범죄 → 하나님의 저주 및 심판 → 백성들의 회개 → 구원 → 범죄」라는
사이클의 반복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의 패역한 모습은
당신의 언약을 끝까지 지키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는
너무도 대조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민족에 비해
유달리 변덕스럽거나 감사할 줄 모르는 민족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의 패역한 모습은 근본적으로 죄로 오염된 인간의 속성을 대변할 뿐이다.
인간은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온 후
줄곧 불순종과 죄악의 역사를 점철(點綴)하고 있다.(롬5:12)
그러므로 비록 이스라엘의 패역함에 동참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스라엘의 완악한 모습에서
우리의 죄성(罪性)을 깨닫고 경성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온 인류의 죄악상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오늘날까지 멸망당하지 않은 것은
오직 인간을 사랑하사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요3:16)
하나님은 죄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셔서 구원의 길을 제공하시고
그 길로 들어서는 자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이다.(엡1:7)
하나님은 인류를 대속(代贖)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로 하여금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써
그를 믿는 모든 자마다 다시는 정죄함을 받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게 하셨다.(롬6:6, 8:1)
4-5절)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그러므로 그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고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통을 가하겠다고 경고하자
그들은 큰 소리로 울었다. 이 울음의 의미가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 정신을 차리고
그들의 죄를 뉘우치고 그 죄에서 돌이키는 회개였다면 좋았겠지만
사사기 저자는 그들이 진정한 회개를 했다는 의미보다
그저 ‘소리를 높여 울었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울음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그 곳을 ‘보김(우는 자들)’이라는 지명으로 불렀다.
그러나 죄를 지적받고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신앙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회개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얼마나 큰 소리로 울었느냐가 아니라
지금까지 순종하지 않았던 일을 시행하느냐 않느냐에 초점이 있다.
그들이 진정한 회개를 했다면
그들이 아직 쫓아내지 않은 가나안 족속들을 다시 완전히 쫓아내고
헐지 않은 단을 헐어야 했다.
그런데 그들은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거나 단을 헐지 않고 그저 울기만 했다.
‘여호와께 드린 제사’라는 말씀도 본장의 전체 맥락에서 볼 때
진정한 회개의 표시로 드렸다기 보다는
하나님의 진노를 삭여 보려는 외적인 의식에 불과한 것 같다.
종교적 형식은 살아 있으나 진정한 종교의 정신은
이미 사라진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보여 주는 단면이다.
진정한 회개의 핵심은 변화이다.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의 변화이다.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요, 핵심이다.
변화는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눈물 흘리고 후회해도 이후의 삶의 변화가 없다면 도루묵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회개하고 돌이키면
더 이상 그 죄에 대하여 묻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사1:18, 요일1:9)
범법한 죄에 대하여 깊이 뉘우치고 자백하고 돌이키기만 한다면
더 이상 그 죄에 대하여 묻지 않으시고 용서하신다.
이것이 참된 회개의 결과이다.
우리는 연약하여 수시로 죄를 범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회개와 용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죄를 가지고 십자가 보혈 앞에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한 빛 앞에서 나의 참 모습을 보게 하소서.
그리고 전인적(全人的)인 반응으로 응답하게 하소서.
먼저 통회하는 눈물을 회복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