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후 3:12-18
제목 :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려면
어느 날 본문을 연구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이 본문에 대하여 가르쳐 주셨습니다. 간단히 줄여서 말씀드리자면 3장 18절의 “영광”은 계시의 말씀을 뜻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같은 계시의 말씀을 통하여 신앙생활에서 힘을 얻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방언기도를 나름대로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제 마음속에 예수님께서 케네스 해긴 목사님에게 주셨던 말씀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한 번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간신히 영적인 영역을 맛보았다.
너희들은 성령 충만을 받고 방언을 말하므로 쉽게 영적인 영역으로 들어간다.
왜 그곳으로 들어가지 않느냐?
들어가라.
나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라.
확실히 너희들은 원하는 모든 것들을 받을 것이고,
하나님의 충만함이 너희들의 것이 되고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
(케네스 해긴 『성경적 믿음』 홍주영 옮김. 서울: 베다니출판사, 2013. p. 150. )
방언을 말하게 될 때 우리들은 영적인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고, 우리들이 원하는 것들을 받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충만함을 받아 즐거워하게 될 것이란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방언기도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하셨던 사람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방언기도를 열심히 하셨던 것을 기록으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아들하고 야구 구경을 하면서도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었고, 오랄 로버츠 목사님은 손주와 놀아주고 시장을 보면서도 방언으로 기도하였던 것을 기록으로 알 수 있습니다.
오랄 로버츠 목사님은 그의 책 “방패기도”에서 이렇게 기록을 남겼습니다.
저는 의지-욕망-를 사용해서 평생에 영과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는 저의 기도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나의 분주한 생활 속에서 시간을 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묵상하고, 내가 혼자서 조용히 있을 때는 물론이고, 내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에라도 “나의 영을 통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차를 운전하고 갈 때든지, 손주들하고 놀 때든지, 시장에서 장을 보는 중이든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든지, 주님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늘 묵상하고 다닙니다. 나는 이러한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과 항상 가까이 하려고 애를 씁니다.
저는 당신이 충분이 여유 있게, 그리고 항상 기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당신의 내면세계에 아주 자연스럽게, 또한 아주 완벽하게 모심으로 말미암아 그 분이 당신의 모든 생각, 심지어 자신의 자아까지도 그 분의 생각으로 채울 수 있도록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으로’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 것이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우리도 말을 사용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서로서로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한 가지 방법은 ‘영으로’(방언으로)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방법 중 하나는 당신이 방언으로 기도하고 그 방언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통변을 통해서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알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랄로버츠, 『방패기도 당신의 삶을 지켜줍니다』, 임열수 옮김, 도서출판 예루살렘, 1999, pp.41-42)
그래서 예수님께서 해긴 목사님에게 하셨던 말씀을 더욱 힘써 기억하며 해긴 목사님이나 오랄 로버츠 목사님의 사역을 꿈꾸며 더욱 힘써 방언으로 기도합니다. 제가 이렇게 하는 이유가 “방언 기도”가 계시적으로 저에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계시를 받은 사람들은 그 계시에 이끌려 결국은 무엇인가를 성취하게 됩니다.
이런 일들이 바로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는 일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영광을 꿈꾸며 주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의 계시들을 꿈꾸며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런 예들을 여의도에 교회를 건축할 당시의 조용기 목사님의 일화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때 당시의 일을 “4차원의 영적세계”란 책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지금의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짓기 전의 일입니다. 1만 명이 들어가는 교회를 짓도록 성령께서 나에게 불타는 소원을 주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미 계약한 대로 교회를 짓는 데는 당시(1969년) 가격으로 무려 20억원(5백만 달러)이 필요했습니다. 우리에게는 교회 건축을 위한 별도의 비축금이 없었기 때문에 이 액수만 생각하면 심히 두려워졌습니다. 나는 염려와 근심에 눌렸고 확신이 없었습니다.
공사비 20억 원이라는 돈은 거대한 에베레스트산 같았고, 나는 그 앞에서 놀란 한 마리 토끼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장 죽어가는 사람처럼 절박한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이제 공사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자금 대책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어디에서 이 돈을 모두 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고통스러웠습니다. 기도한 지 한 달이 지나도 평안과 확신이 없었습니다. 두 달이 지나도록 확신은 생기지 않았지만 나는 매일 밤중까지 방구석에 꿇어앉아 가슴이 미어지도록 통곡하며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아내도 내가 상심한 것을 보고 염려했지만, 나는 사실 아내가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한 정신적인 흑암을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돈 걱정에 너무 눌린 나머지, 어떤 때는 20억 원에 대한 생각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멍하니 방 가운데 서 있곤 했습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기도한 지 석 달이 지난 어느 날 아침, 아내가 나를 불렀습니다.
“여보, 아침 식사하세요.”
이에 공부하던 것을 덮고 일어나 식탁 의자에 막 앉으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부르짖고 기도해도 아무 변화가 없었는데 드디어 그 순간 위대한 믿음의 권리 보증서, 믿음의 ‘실상’에 대한 확신이 내 영혼 속에 확 들어왔습니다.
나는 갑자기 용수철처럼 의자에서 튀어 일어나며 소리쳤습니다.
“드디어 나는 얻었다! 확신이 생겼다, 생겼어!”
아내가 놀라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부엌에서 뛰어 나왔습니다.
아내는 당황하며 나를 붙들고 말했습니다.
“여보,무슨 일이에요? 괜찮으세요? 여기 앉으세요.”
“드디어 갖게 되었소!”
“대체 뭘 가졌다는 말씀이세요?”
“20억 원을 갖게 되었단 말이오.”
나는 아주 확신 있는 어조로 강하게 말했습니다.
“당신 이젠 미쳤군요. 정말 미쳤어요.”
“그게 아냐, 여보. 나는 20억 원을 내 마음속에 가지게 되었소. 이 돈은 이제부터 내 안에서 자랄 것이오. 오! 내 안에서 그건 점점, 더 커질 것이오.”
나의 불타는 소원이 나로 하여금 필요한 자금에 대한 확신인 ‘실상’을 얻을 때까지 기도하게 했고, 마침내 나는 믿음의 ‘실상’을 얻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그 20억 원이란 거액이 마치 하나의 작은 조약돌처럼 되어 내 손 안에 쏙 들어온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믿음의 손을 뻗어 20억 원을 손에 쥐었고 그 돈은 바로 내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확신에 차서 기도했습니다.
여러분도 일단 믿음의 ‘실상’인 권리 증서나 법적 보증서를 마음속에 갖게 되면, 눈에는 아무 증거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합법적으로 여러분의 것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믿음의 실상은 여러분에게 끌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조용기 『4차원의 영적세계』 서울말씀사, 1996. pp. 43-45.)
이처럼 계시의 말씀은 결국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계시가 누구에게 임할까요?
첫째로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들에게 임합니다(고후 3:13).
오늘 본문 앞에 기록된 모세에게 이런 영광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다보니 하나님의 영광 즉 하나님의 빛이 모세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하겠습니다.
(레 10:3, 개정)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하셨느니라
둘째로 예수님께 돌아가서 수건이 벗겨져야 임합니다(고후 3:16).
(레 10:1, 개정)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레 10:2, 개정)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레 10:3, 개정)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하셨느니라
나답과 아비후는 자신의 불로 하나님께 분향하다가 하나님 앞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이 죽게되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직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자신의 뜻을 전달하셨습니다.
(레 10:3, 개정)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길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답과 아비후처럼 자신의 불을 가지고 나아가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불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무리 착하고 의롭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길이 아니면 버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 열린 그 길을 우리는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들에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계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마 11:27, 개정)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셋째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행 5:32).
(행 5:32, 개정)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사울을 택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불순종하자 하나님께서 버리셨습니다.
(행 13:22, 개정)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한 사울을 폐하시고 더 이상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때의 상황을 사무엘상 28장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상 28:6, 개정)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삼상 28:7, 개정)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이처럼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인데 사울이 불순종하자 더 이상 하나님께서 응답을 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 즐겨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나님께서 응답을 하실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을 보면 위로부터 내리는 계시가 없이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저 자신의 생각과 열심으로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없이 사는 것입니다.
내가 혹시 그런 사람은 아닌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정상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라면 하나님의 인도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를 하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롬 8:14, 개정)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빌 2:13, 개정)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는 반드시 성령의 인도하심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것의 중요성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요일 2:20, 개정)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요일 2:27, 개정)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그러므로 내가 과연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는 가 하는 것을 통해서 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인도와 계시가 보이지 않는다면 나는 과연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는가를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구약의 많은 제사장들과 왕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있었기에 하나님의 계시가 임하지 않았던 일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우리들도 그럴 수 있음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삼상 15:22, 개정)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 15:23, 개정)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영광이 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스스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점검하여 바로잡아서 하나님의 영광의 풍요로움에 거해야 하겠습니다.
그 비결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입니다. 우리들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이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성령의 역사를 더욱 풍성하게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들의 심령에 자유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고후 3:17, 개정)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그리고 더 나아가서 우리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더욱 주를 닮아 변화되게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날마다 풍성한 계시의 연속으로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