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1. 2-3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2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사도는 그의 서신 대부분, 첫 시작에 자신의 사도성을 밝힘은 물론 안부 인사를 함에 있어 거의 빠지지 않고 사용하는 말이 바로 여기 3절에서 볼 수 있는 “은혜와 평강”(χάρις ὑμῖν καὶ εἰρήνη)이라는 것이다. 저가 여러 곳에서(로마서, 에베소서, 빌립보서강해) 밝힌 바와 같이, 사도가 “평강과 은혜”라고 하지 않고 “은혜와 평강”이라는 순서를 정하고 있다는 점에 관심을 기우리면 좋겠다. 사실 세상 사람들은 평강만이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평강이 무엇으로 인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성도들의 평강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평강과 다르며, 또한 성도들의 평강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평강의 근거와 다르다.
평강은 흔히 평화(peace)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히브리어로는 샬롬(שָׁלוֹם)이라는 말로 이는 죄인들이 그리스도 신앙으로 하나님과 화목함이 된 평안을 의미한다. 따라서 평강과 은혜가 아니라 은혜와 평강이라는 순서 매김을 한 것은 바울의 깊은 뜻이 여기에 담겨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로마서도 그러하거나와, 특히 갈라디아서는 유대의 율법주의에 대한 은혜에 기초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과 구원을 의미하며, 따라서 그의 행위를 따라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따라 하나님의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보혈로 값없이 의롭다고 인쳐 주신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의 발로이기에, 은혜가 먼저 자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는 은혜라는 말을 먼저 여기서 언급한 것이다.
이 은혜로 말미암아 이제 따라오는 것이 바로 위에서 본 평강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히 여기서 말하는 평강은 세상이 주는 평안도, 세상의 권세자들의 도움을 힘입어 평화를 얻은 것은 이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평강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이다. 찬송가에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 오네”라는 가사가 바로 여기 “은혜와 평강”에 바로 적중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는 “은혜와 평강”이라는 말 앞에,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ἀπὸ Θεοῦ Πατρὸς ἡμῶν καὶ Κυρίου Ἰησοῦ Χριστοῦ)라는 말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2절은 이 서신을 보냄에 있어 수신자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수신자들은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ταῖς ἐκκλησίαις τῆς Γαλατίας)라고 되어 있다. 이미 서론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갈라디아는 북쪽과 남쪽으로 나뉘는데, 여기서 말하는 갈라디아는 남쪽, 즉 바울 사도가 1차 전도여행지인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 루스드라 그리고 더베에 세웠던 남쪽 갈라디아 지방의 교회들을 말한다(행 13:14-14:23). 그런데 이 말 바로 앞에 사도는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σὺν ἐμοὶ, πάντες ἀδελφοί)라는 말을 붙이고 있다. 왜 사도는 그냥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라고 쓰면 될 텐데 이렇게 말을 덧붙였을까? 아마 그것은 이 말씀에 대한 사도와 동역하는 자들도 공히 사도가 쓴 이 편지의 내용에 같은 마음, 그리고 같은 생각, 같은 뜻으로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이 서신에 대한 진리의 확실성을 더 담보하려는 마음이 들어 있음을 우리는 읽을 수 있다.(이하 계속/ 구모영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