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에서 한 번 쯤은 경험하여 보았을 일이 있다. 근무시간 오후 심심하던 차 “사다리타기 게임” 이다. 언제나 그렇듯 선배가 종이에다 세로로 줄을 치고, 후배들이 칸칸마다 임의의 가로로 줄을 친다. 3만, 2만, 1만, 꽝이 나오도록 밑에다 시계불알처럼 달아 놓았다. 그리고 윗부분 꼭지에 차례로 이름을 적는다. 볼펜으로 그것을 찾아가는 재미는 직장인의 오후나절에 즐기는 그런 게임이 생각났다. 그것을 “사다리 타기” 라 불렀다.
인생은 어쩌면 사다리로 올라가는 것 같다. 높은 곳을 올라가기 위해 우리는 사다리라는 도구를 이용한다. 우리는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면서 사다리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듯이 앞으로 나아간다.
처음에는 자신감 있게 사다리를 오르지만, 어느 정도 오르고 나면 떨어질까 봐 무섭다. 계단 오르다 잠시 쉬어서 주위를 둘러보면 너무 놀라워서 아찔, 아찔한 순간들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 눈을 찔끔 감고, 한숨을 쉬고 가까이를 보지 말고 멀리 본다. 천천히 올라가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올라갈 수 있다. 내가 살아가는 인생도 어쩌면 사다리를 올라가는 것과 너무나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
어려서 아무것도 모를 때는 무서운 것도, 겁나는 것도 없었다. 세상이 온통 생각하는 것으로 나의 천국이었고, 아무 걱정 없이 잘도 놀았다. 그런데 세상과 부딪치면서 겁도 나고,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늘 그렇지만은 않다. 마치 사다리를 타다가 어느 정도 올라가 내려다보았을 때 느끼는 공포감이 그런 기분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이러지고 저러지도 못하고 용기 내어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 마음을 다잡아본다. 그래야만이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생긴다.
나는 지금 인생사다리 쉰일곱 번째 중년의 끝 계단을 오르고 있는 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란으로 치면 완숙단계다. 날 계란은 삼 십대도 깊은 생각 없이 마구 내 생각만 내 밷었다. 지나고 보니 사십 대에서부터 조심성이 약간 생겨나서 함부로 말하던 것이 줄어 들었다. 중년 인생의 완숙기인 육십대 사다리 끝계단 오르려고 보니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기존의 지식에서 나의 교양을 가장 잘 드러내고 화합의 단계를 마무리 할 줄 아는 높은 사다리에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지금 이 시간 나는 지난날의 미완에서 앞으로 완숙한 생활로 변화가야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럴수록 높은 계단을 올라갈 때 조심하고 신중해야하듯이, 지나간 삶을 성찰해 보고 독서를 통해 삶의 지혜와 통찰력을 가져야 하겠다.
이제 어느 정도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느꼈다.
“멀리 가기 위해서는 함께 가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 나도 세상의 아름다운 모습을 구경하면서 내 가족과 내 이웃들과 내 지인들과 함께 한 계단 한 계단 오르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지금부터 두 가지 경우가 나타날 것이다. 첫 번째, 정말 극락과 같은 황홀한 세계가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인생의 절저이다. 무엇을 해도 부닥침이 없는 나의 세상이다. 얻을 것 모두 얻었고, 잃을 것이란 없는 경우다. 둘째, 사다리 끝 계단에 올랐다고 생각한 그 순간은 너무 아찔한 무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공포의 추락단계가 보인다. 아차! 하는 순간에 나락(那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세상의 70억 인구 중에 육십 대 인간에서 주어지는 세상의 최고 훈장인 셈이다. 이처럼 나만이 만끽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없다. 흔히 세파에서는 쉬운 일보다 어려운 일이 더 많이 발생한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끝없는 인생의 사다리를 타고 나는 높이 높이 올라가고 있다. 나도 튼튼한 사다리를 타고 미지의 나만이 행복한 세계로 한 계단 한 계단 오르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안간힘을 다 쓴다고 생각한다. 또 그렇게 되기 위하여 사회 정의를 구현하고, 사악하지 않으며 정도(正道)에 걸어간다. 그러나 사람이란 마음 속에 넣어 둔 욕심이 꿈틀 거린다. “인간이 본래 착하게 태어나 사회에 나쁜 물 때문에 나쁜 인간이 된다.” 라는 성선설이다. 반대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하였는데 사회의 올바른 규범을 보고 놀라 착한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다.” 는 성악설 있다. 시대를 거쳐 오면서 서양의 계몽주의가 “성악설”이 우세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세에 와서는 창조적 자아를 발견해 가는 “성선설”이 더 나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다리 밑바닥에 저절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부모의 성스러운 결혼으로 인하여 내가 태어나 축복받았기에 나의 생이 행복한 것이다. 내가 그렇게 성스럽게 태어난 것은 이미 살아왔던 어린 날, 학창기, 청춘의 화려한 삶의 시기가 있었다. 내 인생의 절정을 향하기 시작하였던 삼십대, 나의 2세를 낳아 본 체험에서 새로운 나인 나를 발견하였던 사십대, 세상의 자산이 내 손아귀로 모여들고 있는 오십대를 현재 오르고 있다. 사다리는 밑바닥이 넓고, 끝부분을 올라 갈수록 좁아진다. 사다리꼴 넓이 공식도 사각형 공식보다 복잡하다. 공간은 좁아지는데 셈법은 복잡해진 것과 맞먹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 “밀가루 장사하면 바람이 불고, 소금 장사하면 비가 온다.” 고 했듯, 운수가 사나우면 당하는 일마다 공교롭게도 안 된다는 말이다. 내가 승진하려고 열심히 일하면 꼭 경쟁자가 붙어 단 한 가지 부족으로 승진하지 못한다. 누구를 원망해서도 해결하지 못한다. 현명한 생각은 와신상담(臥薪嘗膽)하여 다음의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 최고의 방안이다. 사다리 끝에 다가가 이제 한 숨 돌리려는 차에 빼앗기고 마는 것은 그 고비를 넘지 못하여 생긴 일이다. 직장에서 사다리 타기는 늘 불안하다. 내 손에 완전히 포착할 때까지 조심하고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직장에서 사다리 타기를 다시 해 보자. 혹시 나에게 행운이 돌아올지 누가 알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비록 아래가 넓은 사다리라 해도 그 끝에는 좁아지면 경쟁자가 는다. 나의 완벽한 자리를 찾기 까지는 늘 경쟁시대에 경쟁하여만 얻는다. 사다리꼴 도형을 생각하면서 다시금 용기를 얻는다.
(20230327)
첫댓글 하하하. . . 뒤죽박죽을 정리하면 명품 글이 될 수 있습니다.
작은 체험이라도 자기 생각에 아린 마음을 표현 알 줄 알기까지는 여러 수 백편의 글을 써다보면
문법도 터득하게 되고, 문장도 수수하게 쓰기 시작합니다.
더군다나 글을 자꾸 쓰다 보면 문학성을 포함하는 아름다운 문장(文章)을 자기도 모르게 표현하고 말 것입니다.
모든 일이 첫 술에 배부르지 않습니다. 이제 고작 두 편째 글을 쓰면서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나
미국 작가 노인과 바다의 작가 "헤밍웨이"가 될 수 없습니다.
글을 쓰자면 조급한 마음은 금물입니다.
자기 글은 누가 무어라해도 꾸준히 창작하는 게 가장 남는 장사가 됩니다.
일단 한 편의 미완성작이라도 자기 표현이 들어 갔다는데 칭찬을 드립니다.
카페지기.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의 응원과 격려 감사드립니다. 빠진 힘이 또 생기네요..ㅎㅎ
자의 반, 타의 반 벌써 2편의 멋진 작품이 되었네요
더욱더 일취월장 하시길 바랍나다.
모두 모두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컴퓨터를 켤때마다 한번씩 들러는 곳이 바로 이곳이 되었다. 참 신기하고 놀라운일이다.
천리길도 한걸음 부터. 라는 말이 떠오르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