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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20년 병진(1796) 8월 11일(계미)
20-08-11[07] 《어정규장전운(御定奎章全韻)》을 중외(中外)에 나누어 주고 공사(公私) 간의 압운(押韻)은 이 운서(韻書)의 의례(義例)에 따르도록 명하고, 이어 어휘(御諱)와 발음이 같은 글자가 중간에 오는 것까지 아울러 휘(諱)하는 습관을 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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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교하기를,
“《어정규장전운》을 내각(內閣)에서 인출(印出)하여 올렸다. 규장각, 교서관, 홍문관, 장서각, 존경각, 정원, 예조, 기거주실(起居注室), 5군데의 사고(史庫), 사학(四學)에 나누어 보관하고, 시원임 대신(時原任大臣), 각신(閣臣), 경재(卿宰), 시종신, 각 고을의 향교, 사액서원(賜額書院)에 나누어 주라.
우리나라 운서(韻書)에서 삼운(三韻)으로 글자를 분류하고 입성(入聲)을 따로 두는 것은 운이 본래 사성(四聲)인 뜻과는 어긋난다. 압운(押韻)에 증운(增韻)과 입성을 쓰지 않는 것도 통운(通韻)과 협음(叶音)의 격식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 너무도 엉성하고 어리석다 하겠다. 이 때문에 널리 전거를 찾고 광범위하게 증거를 수집하여 이 책을 편찬하도록 명한 것이다. 앞으로 공사 간의 압운은 이 운서의 의례와 식령(式令)을 따르도록 서울과 지방의 시험을 주관하는 관사에 분부하라.
곧 나의 고심은 습속을 바로잡고자 하는 데 있으니, 이 책을 편찬한 것이 어찌 음(音)을 고르고 성(聲)을 비교하기 위한 것일 뿐이겠는가. 바로 잘못된 누습을 한번 씻어 내고자 하는 것이다. 근래에 찍어 낸 책에서 어휘를 산획(刪畫)한 것은 보기에 매우 놀라웠다. 그러나 여러 차례 신칙하는 하교를 내렸는데도 즉시 예전대로 회복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어휘와 발음이 같은 글자가 중간에 오는 것까지 아울러 휘하는 것을 답습하기까지 하니 그 모두가 바로잡아야 할 것들이다. 지금부터 이런 습속은 일절 엄히 금하고 운서를 오늘부터 쓰도록 하며, 내각에도 통지하라.”
하였다.
○ 우리나라의 운서 중에 가장 먼저 나온 것이 《삼운통고(三韻通考)》인데 그대로 좇아서 행한 지 오래되어 문필에 종사하는 자들에게 표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수록된 글자가 적고 훈(訓)과 주(註)가 소략하여 널리 글을 익히고 예로써 단속해야 하는 운서의 본질을 포괄하지 못하는 데다가 또 사성을 삼운으로 만들어서 이름과 실제가 매우 어긋난다. 김제겸(金濟謙)과 성효기(成孝基)가 증보(增補)하기는 하였지만 그것도 이전의 글에 내용을 조금 보탠 것에 지나지 않았다. 최세진(崔世珍)의 《사성통해(四聲通解)》와 박성원(朴性源)의 《화동협음통석(華東叶音通釋)》은 소리의 반절(半切)에 대해서는 제법 자세히 갖추었지만 글자가 적고 주석이 소략하며 삼운으로 배열하고 별도로 입성을 배치하였으니 운이 본래 사성인 뜻을 놓친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대체로 우리나라에서는 과시(科詩)에 입성으로 압운하지 않기 때문에 잘못된 규식을 인습하여 입성 한 운을 삼운에서 떼 내어 쓸데없고 귀속될 곳 없는 것으로 내쳐 버린 것이다. 그 잘못이 이처럼 가소로우니 학관(學官)의 영식(令式)이나 예원(藝苑)의 규범이 되기에는 부족하였다.
나는 일찍이 이것을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하여, 검서관 이덕무(李德懋)에게 명하여 제가(諸家)의 운서를 가져다가 널리 전거를 대고 광범위하게 증거를 찾아서 《규장전운》의 차례를 이루게 하였다. 평성(平聲)ㆍ상성(上聲)ㆍ거성(去聲)ㆍ입성(入聲)을 종류대로 모아서 음을 맞추고 더하여 4단식 체재를 이루었다. 글자를 편집하는 차례는 옛날 운서에서 자모(字母)로 차례를 삼았던 방법을 따랐는데 언문(諺文)으로 반절을 표시하고 순서를 살펴 배열하였다. 그 글은 또 《증보삼운통고(增補三韻通考)》보다 늘어났고 그 해석은 특히 제가의 운서보다 상세하다.
한 글자가 여러 운에 서로 보이는 경우, 글자는 같은데 음과 뜻이 각각 다른 경우, 중국 음과 우리나라의 음이 글자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경우에는 글자 옆에 표시를 하거나 광(匡)으로 글자를 에워싸거나 혹은 언문으로 주를 달아 분석(分析)하였다. - 한 글자가 4성에 서로 보이는 경우 평성은 ○로 표시하고, 상성은 ●로 표시하고, 거성은
로 표시하며, 입성은
로 표시하였다. 한 글자가 다른 운에 서로 보이는 경우에는 부수(部首)에 주를 달고 광(匡)을 더하였으며, 같은 운에서 글자는 같은데 음과 뜻이 다른 경우에는 언음(諺音)으로 주를 달고 광을 더하였으며, 우리나라 음은 같은데 중국 음에서 뜻을 달리하지 않는 경우에는 작은 동그라미[小圈]로 표시하고 다른 뜻으로 훈하는 경우에는 중국 음을 쓰고 광을 더하였는데 중국 음은 훈민정음의 자모에 따르고 《사성통해》의 언해 번역과 맞추었다. 우리나라 음은 7음으로 변별하고 자모로 율(律)을 맞추었으며 각 글자 아래에 언문으로 중국 음과 우리나라 음을 나누어 주를 달고 역시 각각 광을 더하였다. -
또 오역(吳棫)의 《운보(韻補)》, 양신(楊愼)의 《전주고음(轉註古音)》, 소장형(邵長蘅)의 《고금운략(古今韻略)》에서 약간의 협음을 취하여 운에 따라 요약해 붙이되 차라리 간략할지언정 넘침이 없게 하였으니, 이는 신중을 기하려 함이었다. 통운(通韻)을 따지는 문제는 마치 송사(訟事)를 증명하는 것과 같은 점이 있으므로, 고악부(古樂府), 두보(杜甫), 한유(韓愈)의 시 중에서 확실히 근거가 될 만한 점이 있는 것들만 차례대로 각 운의 아래에 첨부하였다.
책을 이루게 되어서는 또 각신(閣臣) 이만수(李晩秀)ㆍ윤행임(尹行恁)ㆍ서영보(徐榮輔)ㆍ남공철(南公轍), 전 승지 이가환(李家煥)ㆍ이서구(李書九), 교서관 교리 성대중(成大中), 검서관 유득공(柳得恭)ㆍ박제가(朴齊家)에게 명하여 오류를 교정하게 하였다. 갑인년(1794, 정조18) 겨울 규장각에 내려 주고 이가환과 이덕무의 아우 이공무(李功懋) 및 이덕무의 아들 이광규(李光葵)에게 명하여 거듭 대조하여 교정하고 대ㆍ소 두 본을 선사(繕寫)하게 하여 상재(上梓)하게 하였다. 을묘년(1795) 8월에 공역이 완료되어 책판(冊版)을 규장각에 보관하게 하였는데, 이때에 와서 인쇄하여 중외에 반포하게 된 것이다.
○ 사도(四都)와 팔도의 향교에 나누어 준 질(秩)은 다음과 같다.
수원부(水原府), 개성부(開城府), 강화부(江華府), 광주부(廣州府), 경기 - 34개 고을이다. - 충청도 - 54개 고을이다. - 전라도 - 56개 고을이다. - 경상도 - 71개 고을이다. - 황해도 - 23개 고을이다. - 강원도 - 26개 고을이다. - 함경도 - 24개 고을이다. - 평안도 - 42개 고을이다. - 도합 334개 고을에 각각 백지(白紙)에 인쇄한 대본(大本) 1건(件)씩이다.
○ 사액서원(賜額書院)에 나누어 준 질은 다음과 같다.
수원부 - 매곡서원(梅谷書院), 명고서원(明皐書院) -, 개성부 - 숭양서원(崧陽書院), 숭절서원(崇節書院), 오관서원(五冠書院), 화곡서원(花谷書院), 도산서원(道山書院), 표절사(表節祠) -, 강화부 - 충렬사(忠烈祠) -, 광주부 - 구암서원(龜巖書院), 수곡서원(壽谷書院), 현절사(顯節祠) -, 경기 - 양주(楊州)의 도봉서원(道峯書院)ㆍ석실서원(石室書院)ㆍ청절사(淸節祠)ㆍ정절사(旌節祠) ○ 여주(驪州)의 기천서원(沂川書院)ㆍ고산서원(孤山書院)ㆍ대로사(大老祠) ○ 파주(坡州)의 파산서원(坡山書院)ㆍ자운서원(紫雲書院), 풍계사(豐溪祠) ○ 장단(長湍)의 임강서원(臨江書院) ○ 풍덕(豐德)의 구암서원(龜巖書院) ○ 인천(仁川)의 학산서원(鶴山書院) ○ 남양(南陽)의 용백사(龍栢祠)ㆍ안곡사(安谷祠) ○ 김포(金浦)의 우저서원(牛渚書院) ○ 안성(安城)의 도기서원(道基書院) ○ 교하(交河)의 신곡서원(新谷書院) ○ 고양(高陽)의 문봉서원(文峯書院) ○ 마전(麻田)의 미강서원(湄江書院) ○ 가평(加平)의 잠곡서원(潛谷書院) ○ 용인(龍仁)의 충렬서원(忠烈書院)ㆍ심곡서원(深谷書院) ○ 영평(永平)의 옥병서원(玉屛書院) ○ 지평(砥平)의 운계서원(雲溪書院) ○ 포천(抱川)의 화산서원(花山書院)ㆍ용연서원(龍淵書院) ○ 시흥(始興)의 충현서원(忠賢書院) ○ 과천(果川)의 민절서원(愍節書院)ㆍ노강서원(鷺江書院)ㆍ사충서원(四忠書院) ○ 양성(陽城)의 덕봉서원(德峯書院) ○ 연천(漣川)의 임장서원(臨漳書院)이다. -
충청도 - 청주(淸州)의 신항서원(莘巷書院)ㆍ화양서원(華陽書院)ㆍ표충사(表忠祠) ○ 충주(忠州)의 팔봉서원(八峯書院)ㆍ운곡서원(雲谷書院)ㆍ누암서원(樓巖書院)ㆍ충렬사(忠烈祠) ○ 공주(公州)의 충현서원(忠賢書院)ㆍ창강서원(滄江書院) ○ 홍주(洪州)의 노은서원(魯恩書院)ㆍ혜학서원(惠學書院) ○ 청풍(淸風)의 봉강서원(鳳崗書院)ㆍ황강서원(黃江書院) ○ 한산(韓山)의 문헌서원(文獻書院) ○ 옥천(沃川)의 표충사(表忠祠) ○ 단양(丹陽)의 단암서원(丹巖書院) ○ 서천(舒川)의 건암서원(建巖書院) ○ 임천(林川)의 칠산서원(七山書院) ○ 서산(瑞山)의 성암서원(聖巖書院) ○ 문의(文義)의 노봉서원(魯峯書院)ㆍ검담서원(黔潭書院) ○ 보은(報恩)의 상현서원(象賢書院) ○ 회덕(懷德)의 숭현서원(崇賢書院) ○ 부여(扶餘)의 부산서원(浮山書院)ㆍ의열사(義烈祠) ○ 진천(鎭川)의 백원서원(百源書院)ㆍ지산서원(芝山書院) ○ 홍산(鴻山)의 청일서원(淸逸書院)ㆍ창렬서원(彰烈書院) ○ 보령(保寧)의 화암서원(花巖書院) ○ 연산(連山)의 돈암서원(遯巖書院) ○ 목천(木川)의 도동서원(道東書院) ○ 연기(燕岐)의 봉암서원(鳳巖書院) ○ 평택(平澤)의 포의사(褒義祠) ○ 이성(尼城)의 노강서원(魯崗書院) ○ 예산(禮山)의 덕잠서원(德岑書院) ○ 황간(黃澗)의 한천서원(寒泉書院) ○ 아산(牙山)의 현충사(顯忠祠)이다. -
전라도 - 전주(全州)의 화산서원(華山書院) ○ 나주(羅州)의 경현서원(景賢書院)ㆍ월정서원(月井書院)ㆍ반계서원(潘溪書院)ㆍ정렬사(旌烈祠) ○ 능주(綾州)의 죽수서원(竹樹書院)ㆍ포충사(褒忠祠) ○ 광주(光州)의 월봉서원(月峯書院)ㆍ포충사(褒忠祠)ㆍ의열사(義烈祠) ○ 제주(濟州)의 귤림서원(橘林書院)ㆍ삼성사(三姓祠) ○ 순천(順天)의 옥천서원(玉川書院)ㆍ충민사(忠愍祠)ㆍ정충사(旌忠祠) ○ 남원(南原)의 영천서원(寧川書院)ㆍ노봉서원(露峯書院)ㆍ충렬사(忠烈祠)ㆍ민충사(愍忠祠) ○ 장성(長城)의 필암서원(筆巖書院) ○ 담양(潭陽)의 의암서원(義巖書院) ○ 여산(礪山)의 죽림서원(竹林書院) ○ 장흥(長興)의 연곡서원(淵谷書院)ㆍ강성서원(江城書院)ㆍ충렬사(忠烈祠) ○ 보성(寶城)의 용산서원(龍山書院)ㆍ대계서원(大溪書院)ㆍ정충사(旌忠祠) ○ 금산(錦山)의 성곡서원(星谷書院)ㆍ종용사(從容祠) ○ 영암(靈巖)의 녹동서원(鹿洞書院)ㆍ충절사(忠節祠) ○ 고부(古阜)의 정충사(旌忠祠) ○ 익산(益山)의 화산서원(華山書院) ○ 임피(臨陂)의 봉암서원(鳳巖書院) ○ 용담(龍潭)의 삼천서원(三川書院) ○ 창평(昌平)의 송강서원(松江書院) ○ 태인(泰仁)의 남고서원(南皐書院)ㆍ무성서원(武城書院) ○ 흥양(興陽)의 쌍충사(雙忠祠) ○ 곡성(谷城)의 양덕사(陽德祠) ○ 무장(茂長)의 충현사(忠賢祠) ○ 무안(務安)의 송림서원(松林書院) ○ 남평(南平)의 봉산서원(蓬山書院) ○ 동복(同福)의 도원서원(道源書院) ○ 정읍(井邑)의 고암서원(考巖書院)이다. -
경상도 - 경주(慶州)의 서악서원(西岳書院)ㆍ옥산서원(玉山書院)ㆍ숭렬사(崇烈祠) ○ 안동(安東)의 호계서원(虎溪書院)ㆍ삼계서원(三溪書院)ㆍ주계서원(周溪書院)ㆍ서간사(西磵祠) ○ 성주(星州)의 천곡서원(川谷書院)ㆍ회연서원(檜淵書院)ㆍ충절사(忠節祠) ○ 진주(晉州)의 덕천서원(德川書院)ㆍ신당서원(新塘書院)ㆍ은열사(殷烈祠)ㆍ충민사(忠愍祠)ㆍ창렬사(彰烈祠) ○ 상주(尙州)의 도남서원(道南書院)ㆍ흥암서원(興巖書院)ㆍ백옥동서원(白玉洞書院) ○ 순흥(順興)의 소수서원(紹修書院) ○ 대구(大丘)의 연경서원(硏經書院)ㆍ낙빈서원(洛濱書院)ㆍ표충사(表忠祠) ○ 밀양(密陽)의 예림서원(禮林書院)ㆍ표충사(表忠祠) ○ 선산(善山)의 금오서원(金烏書院)ㆍ상의서원(尙義書院)ㆍ낙봉서원(洛峯書院) ○ 인동(仁同)의 오산서원(吳山書院)ㆍ동락서원(東洛書院) ○ 김해(金海)의 신산서원(新山書院) ○ 동래(東萊)의 안락서원(安樂書院) ○ 울산(蔚山)의 구강서원(鷗江書院) ○ 청송(靑松)의 병암서원(屛巖書院) ○ 함양(咸陽)의 남계서원(灆溪書院)ㆍ창주서원(滄洲書院) ○ 영천(永川)의 임고서원(臨皐書院)ㆍ도잠서원(道岑書院) ○ 청도(淸道)의 자계서원(紫溪書院) ○ 영천(榮川)의 이산서원(伊山書院)ㆍ구산정사(龜山精舍) ○ 함안(咸安)의 서산서원(西山書院) ○ 합천(陜川)의 이연서원(伊淵書院)ㆍ화암서원(華巖書院) ○ 예천(醴泉)의 정산서원(鼎山書院) ○ 양산(梁山)의 송담서원(松潭書院) ○ 의성(義城)의 빙계서원(氷溪書院) ○ 고성(固城)의 충렬사(忠烈祠) ○ 남해(南海)의 충렬사(忠烈祠) ○ 의령(宜寧)의 덕곡서원(德谷書院) ○ 예안(禮安)의 역동서원(易東書院)ㆍ도산서원(陶山書院) ○ 안의(安義)의 용문서원(龍門書院)ㆍ황암사(黃巖祠) ○ 연일(延日)의 오천서원(烏川書院) ○ 거창(居昌)의 도산서원(道山書院)ㆍ완계서원(浣溪書院)ㆍ포충사(褒忠祠) ○ 진보(眞寶)의 봉람서원(鳳覽書院) ○ 삼가(三嘉)의 용암서원(龍巖書院) ○ 칠원(漆原)의 덕연서원(德淵書院) ○ 단성(丹城)의 도천서원(道泉書院) ○ 현풍(玄風)의 도동서원(道東書院)ㆍ예연서원(禮淵書院) ○ 산청(山淸)의 서계서원(西溪書院) ○ 영양(英陽)의 영산서원(英山書院) ○ 개령(開寧)의 덕림서원(德林書院) ○ 사천(泗川)의 구계서원(龜溪書院) ○ 봉화(奉化)의 문암서원(文巖書院) ○ 창녕(昌寧)의 관산서원(冠山書院)이다. -
강원도 - 강릉(江陵)의 송담서원(松潭書院) ○ 원주(原州)의 칠봉서원(七峯書院)ㆍ도천서원(陶川書院)ㆍ충렬사(忠烈祠) ○ 춘천(春川)의 문암서원(文巖書院) ○ 철원(鐵原)의 포충사(褒忠祠) ○ 영월(寧越)의 창절사(彰節祠) ○ 김화(金化)의 충렬사(忠烈祠)이다. -
황해도 - 해주(海州)의 소현서원(紹賢書院)ㆍ문헌서원(文憲書院)ㆍ청성묘(淸聖廟) ○ 황주(黃州)의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 ○ 연안(延安)의 비봉서원(飛鳳書院)ㆍ현충사(顯忠祠) ○ 평산(平山)의 삼태사철상사(三太師鐵像祠)ㆍ동양서원(東陽書院)ㆍ구봉서원(九峯書院) ○ 장연(長淵)의 용암서원(龍巖書院) ○ 서흥(瑞興)의 화곡서원(花谷書院) ○ 배천(白川)의 문회서원(文會書院) ○ 신천(信川)의 정원서원(正源書院) ○ 안악(安岳)의 취봉서원(鷲峯書院) ○ 수안(遂安)의 용계서원(龍溪書院) ○ 재령(載寧)의 경현서원(景賢書院) ○ 봉산(鳳山)의 문정서원(文井書院) ○ 금천(金川)의 민충사(愍忠祠) ○ 문화(文化)의 봉강서원(鳳岡書院)ㆍ정계서원(程溪書院) ○ 송화(松禾)의 도동서원(道東書院) ○ 장련(長連)의 봉양서원(鳳陽書院)이다. -
함경도 - 함흥(咸興)의 문회서원(文會書院)ㆍ운전서원(雲田書院) ○ 영흥(永興)의 흥현서원(興賢書院) ○ 길주(吉州)의 명천서원(溟川書院) ○ 안변(安邊)의 옥동서원(玉洞書院) ○ 북청(北靑)의 노덕서원(老德書院) ○ 종성(鍾城)의 종산서원(鍾山書院) ○ 경성(鏡城)의 창렬사(彰烈祠) ○ 덕원(德源)의 용진서원(龍津書院) ○ 회령(會寧)의 현충사(顯忠祠)이다. -
평안도 - 평양(平壤)의 인현서원(仁賢書院)ㆍ용곡서원(龍谷書院)ㆍ충무사(忠武祠)ㆍ무열사(武烈祠) ○ 의주(義州)의 현충사(顯忠祠)ㆍ기충사(紀忠祠) ○ 영변(寧邊)의 약봉서원(藥峯書院) ○ 안주(安州)의 청천사(淸川祠)ㆍ충민사(忠愍祠) ○ 정주(定州)의 봉명서원(鳳鳴書院)ㆍ신안서원(新安書院) ○ 강계(江界)의 경현서원(景賢書院) ○ 성천(成川)의 학령서원(鶴翎書院)ㆍ쌍충사(雙忠祠) ○ 자산(慈山)의 의열사(義烈祠) ○ 창성(昌城)의 충렬사(忠烈祠) ○ 선천(宣川)의 의열사(義烈祠) ○ 구성(龜城)의 정공사(旌功祠) ○ 희천(熙川)의 상현서원(象賢書院) ○ 벽동(碧潼)의 구봉서원(九峯書院) ○ 영유(永柔)의 삼충사(三忠祠) ○ 순안(順安)의 성산서원(星山書院) ○ 용강(龍岡)의 오산서원(鰲山書院) ○ 강서(江西)의 학동서원(鶴洞書院)이다. -
도합 262군데에 각각 백지에 인쇄한 대본 1건씩이다.
○ 각 관사 및 사도와 팔도의 감영에 보관하는 질은 다음과 같다.
내각 - 영장지(嶺壯紙)에 인쇄한 대본(大本) 6건, 백지에 인쇄한 소본(小本) 3건이다. -
장서각 - 영장지에 인쇄한 대본 6건, 소본 3건이다. -
홍문관 - 영장지에 인쇄한 대본 3건, 완장지(完壯紙)에 인쇄한 소본 3건이다. -
성균관 - 영장지에 인쇄한 대본 1건, 권책지(卷冊紙)에 인쇄한 대본 1건, 완장지에 인쇄한 소본 1건이다. -
외규장각 - 권책지에 인쇄한 대본 1건, 소본 1건이다. -
외각(外閣) - 영장지에 인쇄한 대본 1건, 권책지에 인쇄한 소본 1건, 과시(科試)에 쓸 것으로 영장지에 인쇄한 대본 3건이다. -
사학(四學) - 각각 영장지에 인쇄한 대본 1건씩, 권책지에 인쇄한 소본 1건씩이다. -
5군데의 사고(史庫) - 각각 영장지에 인쇄한 대본 2건씩, 완장지에 인쇄한 소본 1건씩이다. -
정원 - 권책지에 인쇄한 대본 1건, 백지에 인쇄한 소본 1건이다. -
기거주실 - 권책지에 인쇄한 대본 1건, 백지에 인쇄한 소본 1건이다. -
예조 - 권책지에 인쇄한 대본 2건이다. -
수원부 - 권책지에 인쇄한 대본 2건이다. -
개성부ㆍ강화부ㆍ광주부 - 각각 권책지에 인쇄한 대본 1건씩이다. -
경기ㆍ관동ㆍ해서 감영 - 각각 권책지에 인쇄한 대본 1건씩이다. -
영남ㆍ호남ㆍ호서ㆍ관북ㆍ관서 감영 - 각각 권책지에 인쇄한 대본 1건씩과 백지에 인쇄한 소본 1건씩이다. -
도합 영장지에 인쇄한 대본 34건과 소본 3건, 완장지에 인쇄한 소본 9건, 권책지에 인쇄한 대본 19건과 소본 6건, 백지에 인쇄한 소본 10건이다.
○ 조신(朝臣)에게 나누어 준 질은 다음과 같다.
각신(閣臣) - 원임 제학인 좌의정 채제공(蔡濟恭)ㆍ봉조하(奉朝賀) 김종수(金鍾秀)ㆍ우의정 윤시동(尹蓍東), 원임 직제학인 영중추부사 김희(金憙)ㆍ판중추부사 이병모(李秉模), 원임 제학 정민시(鄭民始), 제학 심환지(沈煥之), 원임 직제학 서호수(徐浩修)ㆍ서유방(徐有防)ㆍ서정수(徐鼎修)ㆍ김재찬(金載瓚)ㆍ서용보(徐龍輔)ㆍ정대용(鄭大容), 직제학 이만수(李晩秀), 검교직각 김면주(金勉柱), 원임 직각 윤행임(尹行恁)ㆍ서영보(徐榮輔)ㆍ남공철(南公轍)ㆍ김조순(金祖淳)ㆍ이시원(李始源), 검교대교 심상규(沈象奎), 원임 대교 이존수(李存秀), 검교대교 서유구(徐有榘)이다. - 23명에게 각각 백면지(白綿紙)에 인쇄한 대본 1건씩, 백지에 인쇄한 대본 1건씩, 완백지(完白紙)에 인쇄한 소본 1건씩이다.
○ 선발된 신구 초계 문신(抄啓文臣)에게 나누어 준 질은 다음과 같다.
신축년(1781, 정조5)에 선발된 문신 - 호조 판서 이시수(李時秀), 행 호군 이익운(李益運), 부사과 이종섭(李宗燮), 행 부호군 이동직(李東稷), 전 사간 이현묵(李顯默), 전 응교 이노춘(李魯春), 전 현감 박종정(朴宗正), 행 좌승지 이조승(李祖承), 은산 현감(殷山縣監) 이석하(李錫夏), 전 승지 홍인호(洪仁浩), 행 호군 조윤대(曺允大)이다. -
계묘년(1783)에 선발된 문신 - 전 사간 이현도(李顯道), 부사과 정만시(鄭萬始), 행 부호군 이면긍(李勉兢)ㆍ김계락(金啓洛), 전 승지 김희조(金熙朝), 형조 참의 성종인(成種仁), 부사과 이청(李晴), 행 부호군 이익진(李翼晉), 의주 부윤(義州府尹) 심진현(沈晉賢), 광주 목사(光州牧使) 서형수(徐瀅修), 전 정언 강세륜(姜世綸), 전 장령 이유수(李儒修)이다. -
갑진년(1784)에 선발된 문신 - 형조 참판 이서구(李書九), 부사직 정동관(鄭東觀), 전 수찬 한치응(韓致應), 행 부호군 홍의호(洪義浩), 부사직 한흥유(韓興裕)이다. -
병오년(1786)에 선발된 문신 - 병조 정랑 정만석(鄭晩錫), 전 교리 송상렴(宋祥濂), 전 장령 장석윤(張錫胤), 행 부호군 이상황(李相璜)이다. -
정미년(1787)에 선발된 문신 - 경기 도사(京畿都事) 유경(柳畊), 부사과 윤영희(尹永僖), 행 부호군 윤광안(尹光顔), 부사과 신서(申溆)이다. -
기유년(1789)에 선발된 문신 - 행 부호군 정약용(丁若鏞), 부사직 심규로(沈奎魯), 용강 현령(龍崗縣令) 서유문(徐有聞), 문천 군수(文川郡守) 윤인기(尹寅基), 부사과 이동면(李東冕), 부사직 김희순(金羲淳)ㆍ이기경(李基慶), 전 교리 박윤수(朴崙壽), 부사직 김이교(金履喬), 낭천 현감(狼川縣監) 안정선(安廷善)이다. -
경술년(1790)에 선발된 문신 - 전 도사 조득영(趙得永), 전 장령 윤지눌(尹持訥), 부사직 최벽(崔璧), 교서관 부정자 신성모(申星模), 전 좌랑 송지렴(宋知濂), 부사관 이희갑(李羲甲)ㆍ정노영(鄭魯榮), 권지 승문원 부정자 김이재(金履載), 전 응교 이명연(李明淵), 부사과 박종순(朴鍾淳), 수찬 한용탁(韓用鐸), 삼등 현령(三登縣令) 엄기(嚴耆), 권지 승문원 부정자 정약전(丁若銓), 전 집의 김달순(金達淳), 전 수찬 홍수만(洪秀晩)ㆍ윤행직(尹行直), 전적 박종경(朴宗京), 부사관 김경(金憬)이다. -
임자년(1792)에 선발된 문신 - 좌부승지 이조원(李肇源), 이조 정랑 김희화(金熙華), 전 감찰 이홍달(李弘達), 교서관 부정자 한기유(韓耆裕), 권지 승문원 부정자 이운항(李運恒)ㆍ권의(權倚), 부사과 임경진(林景鎭), 전 정랑 심반(沈鎜), 부사과 민치재(閔致載)이다. -
갑인년(1794)에 선발된 문신 - 행 부호군 신봉조(申鳳朝), 사복시 정 최광태(崔光泰), 전 검열 오태증(吳泰曾), 전 교리 김근순(金近淳), 부사과 권준(權晙)ㆍ조만원(趙萬元), 부사정 서준보(徐俊輔), 권지 승문원 부정자 조석중(曺錫中), 부사과 이면승(李勉昇), 권지 승문원 부정자 유태좌(柳台佐)ㆍ홍낙준(洪樂浚), 주서 유원명(柳遠鳴), 권지 승문원 부정자 김희락(金熙洛)ㆍ윤치영(尹致永), 의장고 낭청(儀仗庫郞廳) 구득로(具得魯), 권지 승문원 부정자 송면재(宋冕載), 부사과 신현(申絢), 전 권지 승문원 부정자 정취선(鄭取善), 권지 승문원 부정자 강준흠(姜浚欽)ㆍ홍명주(洪命周)ㆍ황기천(黃基天)ㆍ이동만(李東萬), 부사과 김희주(金熙周), 부사정 김처암(金處巖), 권지 승문원 부정자 이영발(李英發), 부사정 홍석주(洪奭周), 전 주서 김이영(金履永)이다. -
이상 구 초계 문신 72원(員)에게 각각 백지에 인쇄한 대본 1건씩, 신 초계 문신 28원에게 각각 백지에 인쇄한 대본 1건씩, 완백지에 인쇄한 소본 1건씩이다.
○ 각속관(閣屬官) - 각감(閣監) 이흥기(李興淇)ㆍ정학온(鄭學溫), 전 각감 유득우(兪得祐)ㆍ김도전(金道佺)ㆍ송문성(宋文星), 사권(司卷) 홍오성(洪五成)ㆍ현식(玄烒), 전 사권 강세중(姜世重)ㆍ전대중(全大重)ㆍ조수업(趙壽嶪)ㆍ장세기(張世紀)ㆍ김희성(金喜成)에게 각각 백지에 인쇄한 대본 1건씩이다. 검서관 이욱수(李旭秀)에게 백지에 인쇄한 대본 1건과 소본 1건이다. 이광규(李光葵)에게 백면지에 인쇄한 대본 1건, 백지에 인쇄한 대본 1건, 소본 3건이다. 원유진(元有鎭)과 정설(鄭枻)에게 각각 백지에 인쇄한 대본 1건과 소본 1건씩이다. 겸검서관 유득공(柳得恭)에게 백면지에 인쇄한 대본 1건과 백지에 인쇄한 소본 1건씩이다. 서이수(徐理修)ㆍ성해응(成海應)ㆍ유본학(柳本學)에게 각각 백지에 인쇄한 대본 1건과 소본 1건씩이다. 전 검서관 박제가(朴齊家)에게 백면지에 인쇄한 대본 1건과 백지에 인쇄한 소본 1건이다. 이집기(李集箕)와 이신모(李藎模)에게 각각 백지에 인쇄한 대본 1건과 소본 1건씩이다. 이공무(李功懋)에게 백면지에 인쇄한 대본 1건, 백지에 인쇄한 대본 1건과 소본 3건이다. 박종선(朴宗善)에게 백지에 인쇄한 대본 1건과 소본 1건이다. 영첨(領籤) 이흥윤(李興潤)과 윤득녕(尹得寧), 전 영첨 장세경(張世經)ㆍ장칙(張侙)ㆍ진형(秦泂), 감서(監書) 조필문(趙必汶)ㆍ진동로(秦東老)ㆍ현명원(玄命遠)ㆍ이사응(李師膺)ㆍ이의보(李儀輔)ㆍ한명혁(韓命奕), 전 감서 이원동(李元東)ㆍ최응모(崔應模), 생도 감서(生徒監書) 진동구(秦東耈)ㆍ윤득형(尹得亨), 교서관 판교(校書館判校) 최대규(崔大奎), 교리 정현조(丁俔祖), 박사 이몽룡(李夢龍)에게 각각 백지에 인쇄한 대본 1건씩이다. - 43원에게 도합 백면지에 인쇄한 대본 4건, 백지에 인쇄한 대본 43건과 소본 17건을 나누어 주었다.
○ 대신 - 영의정 홍낙성(洪樂性)과 영돈녕부사 김이소(金履素)이다. - 2원에게 각각 백지에 인쇄한 대본 1건과 소본 1건씩을 나누어 주었다.
○ 종반(宗班) 도위(都尉) - 창성위(昌城尉) 황인점(黃仁點), 능성위(綾城尉) 구민화(具敏和), 청성위(靑城尉) 심능건(沈能建), 광은부위(光恩副尉) 김기성(金箕性), 안춘군(安春君) 이침(李
), 학림군(鶴林君) 이욱(李焴), 안창군(安昌君) 이경(李燝), 서춘군(西春君) 이엽(李爗), 안은군(安恩君) 이굉(李𤈻), 광릉군(廣陵君) 이연(李烻)이다. - 10원에게 각각 백지에 인쇄한 대본 1건씩이다.
○ 경재(卿宰)에게 나누어 준 질은 다음과 같다.
1품(品) - 봉조하 구윤명(具允明), 행 판중추부사 이명식(李命植), 전 감사 김화진(金華鎭), 행 지중추부사 이민보(李敏輔)ㆍ정창순(鄭昌順)ㆍ조종현(趙宗鉉), 행 판중추부사 윤숙(尹塾), 행 광주부 유수(行廣州府留守) 서유린(徐有隣), 행 상호군 홍억(洪檍)ㆍ홍양호(洪良浩)ㆍ성덕조(成德朝), 경기 감사 김문순(金文淳), 판돈녕부사 김지묵(金持默), 행 상호군 변득양(邊得讓), 봉조하 홍수보(洪秀輔), 행 상호군 이주국(李柱國), 행 병조 판서 정호인(鄭好仁), 판중추부사 심이지(沈頤之), 행 예조 판서 민종현(閔鍾顯)이다. - 19원에게 각각 백지에 인쇄한 대본 1건씩이다.
2품 - 행 대호군 이성규(李聖圭), 좌참찬 구상(具庠), 행 대호군 김상집(金尙集)ㆍ신사운(申思運), 지돈녕부사 정존중(鄭存中), 행 대호군 신응현(申應顯)ㆍ서병덕(徐秉德)ㆍ이관(李寬)ㆍ한광계(韓光綮), 전 판서 이득신(李得臣), 형조 판서 윤사국(尹師國), 판윤 권엄(權𧟓), 황해 병사 김사목(金思穆), 행 대호군 김이주(金頤柱), 전 판서 구익(具㢞), 우참찬 이치중(李致中), 전 감사 이병정(李秉鼎), 지훈련원사 이경무(李敬懋), 행 대호군 홍응진(洪應辰)ㆍ이빈(李穦)ㆍ어사필(魚史弼)ㆍ윤밀(尹謐)ㆍ황욱(黃㮋)ㆍ이재학(李在學)ㆍ정범조(丁範祖)ㆍ기언정(奇彦鼎)ㆍ이방일(李邦一)ㆍ이가환(李家煥), 수원부 유수(水原府留守) 조심태(趙心泰), 행 대호군 이조원(李祖源)ㆍ홍낙임(洪樂任)ㆍ김한로(金漢老)ㆍ채정하(蔡廷夏), 공조 판서 신광리(申光履), 전 판서 조시준(趙時俊), 행 호군 서유대(徐有大), 황해 감사 서매수(徐邁修), 행 호군 최민(崔
)ㆍ홍주만(洪周萬)ㆍ최몽암(崔夢嵒)ㆍ여선형(呂善亨)ㆍ이경행(李景行)ㆍ신기경(愼基慶)ㆍ조태철(趙泰喆)ㆍ이위(李煒)ㆍ김용한(金龍翰), 호조 참판 조윤형(曺允亨), 행 호군 강유(姜游)ㆍ이방영(李邦榮)ㆍ강덕항(姜德恒), 공조 참판 김익휴(金翊休), 행 호군 이신회(李身晦)ㆍ윤홍렬(尹弘烈)ㆍ홍의영(洪義榮)ㆍ이정규(李鼎揆)ㆍ정환유(鄭煥猷), 봉조하 서유신(徐有臣), 이조 참판 황승원(黃昇源), 함경 감사 조상진(趙尙鎭), 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 조진관(趙鎭寬), 행 호군 정택신(鄭宅臣)ㆍ김학수(金學洙)ㆍ김이희(金履禧), 전 참판 이의직(李義直), 행 호군 신대현(申大顯)ㆍ이득제(李得濟), 여주 목사(驪州牧使) 신대겸(申大謙), 행 호군 채홍리(蔡弘履)ㆍ이한풍(李漢豐)ㆍ오대익(吳大益)ㆍ홍명호(洪明浩)ㆍ김노영(金魯永), 통제사 이유경(李儒敬), 홍주 목사(洪州牧使) 유의(柳誼), 행 호군 이형원(李亨元)ㆍ이보온(李普溫)ㆍ민태혁(閔台爀)ㆍ임시철(林蓍喆)ㆍ이정운(李鼎運)ㆍ홍성연(洪聖淵)ㆍ송영(宋鍈), 안동 부사(安東府使) 이집두(李集斗), 강릉 부사(江陵府使) 이진복(李鎭復), 충청 감사 임제원(林濟遠), 행 호군 백사근(白師謹), 오은군(鰲恩君) 이경일(李敬一), 전 대사헌 이의필(李義弼), 전 대사간 유강(柳焵), 행 호군 김기정(金基正)ㆍ유언수(兪彦脩)ㆍ강원(姜垣)ㆍ고익경(高益擎), 동지돈녕부사 권지언(權之彦), 행 호군 강한(姜翰)ㆍ노윤중(盧允中)ㆍ신광주(申光柱)ㆍ김명저(金明著)ㆍ변득룡(邊得龍)ㆍ황인채(黃鱗采)ㆍ정겸제(鄭兼濟)ㆍ김진탁(金晉鐸)ㆍ김택민(金澤珉)ㆍ김관(金鑧)ㆍ이창섭(李昌燮)ㆍ손석모(孫錫謨)ㆍ차대수(車大脩)ㆍ정익조(鄭益祚)ㆍ이수하(李秀夏)ㆍ조무범(趙武範)ㆍ유광국(柳匡國)ㆍ신광요(申匡堯)ㆍ윤재명(尹在明)ㆍ이명빈(李命彬), 행 도승지 이면응(李冕膺), 행 호군 홍준한(洪駿漢)ㆍ홍용한(洪龍漢), 우윤 강이정(姜彝正), 강화부 유수(江華府留守) 김이익(金履翼), 행 호군 한광근(韓光近)ㆍ이태형(李太亨), 행 대사간 임도호(林道浩), 동지중추부사 정이옥(鄭履玉)ㆍ정동신(鄭東愼), 예조 참판 권유(權裕), 병조 참판 윤필병(尹弼秉), 평안 감사 박종갑(朴宗甲), 행 호군 안형직(安衡稷)ㆍ한종찬(韓宗纘), 대사헌 송환기(宋煥箕), 행 호군 서유병(徐有秉)ㆍ이의준(李義駿), 전 동지 정진(鄭珒)이다. - 132원에게 각각 백지에 인쇄한 대본 1건씩이다.
○ 당상 3품 - 행 부호군 이동형(李東馨)ㆍ오재소(吳載紹)ㆍ이평(李枰)ㆍ윤행원(尹行元), 전 부사(府使) 윤이상(尹理相), 행 부호군 윤동만(尹東晩)ㆍ이철모(李喆模), 안주 목사(安州牧使) 유한녕(兪漢寧), 행 부호군 조흥진(趙興鎭)ㆍ이창한(李昌漢)ㆍ심기태(沈基泰), 양양 부사(襄陽府使) 이겸빈(李謙彬), 정주 목사(定州牧使) 이일증(李一曾), 행 부호군 김이용(金履容), 경상 감사 이태영(李泰永), 전 참의 신대년(申大年), 행 부호군 목만중(睦萬中), 동래 부사(東萊府使) 윤장렬(尹長烈), 삼화 부사(三和府使) 이당(李溏), 한산 군수(韓山郡守) 신기(申耆), 행 부호군 이의강(李義綱), 우부승지 이해우(李海愚), 예조 참의 한만유(韓晩裕), 동부승지 한용귀(韓用龜), 행 부호군 유갑기(柳甲基)ㆍ서미수(徐美修), 현풍 현감(玄風縣監) 이수함(李壽咸), 영광 군수(靈光郡守) 박성태(朴聖泰), 행 부호군 이노술(李魯述)ㆍ이제만(李濟萬), 전 부사 박장설(朴長卨), 전 승지 이경오(李敬五), 공조 참의 서욱수(徐郁修), 경주 부윤(慶州府尹) 유한모(兪漢謨), 북청 부사(北靑府使) 임희원(任希遠), 영월 부사(寧越府使) 한정운(韓鼎運), 행 부호군 박준원(朴準源), 안악 군수(安岳郡守) 김재익(金載翼), 전 군수 이문회(李文會), 행 부호군 이창회(李昌會)ㆍ신흔(申昕)ㆍ박기정(朴基正), 봉화 현감(奉化縣監) 이사조(李思祚), 전 목사 이운빈(李運彬), 행 부호군 이의봉(李義鳳), 양주 목사(楊州牧使) 신헌조(申獻朝), 행 부호군 김효건(金孝建)ㆍ박종래(朴宗來)ㆍ이보천(李普天)ㆍ최창국(崔昌國), 우승지 이유경(李儒慶), 행 부호군 송전(宋銓), 청송 부사(靑松府使) 홍언철(洪彦喆), 병조 참의 이상도(李尙度), 행 부호군 김한동(金翰東), 자산 부사(慈山府使) 이경운(李庚運), 행 부호군 박규순(朴奎淳), 전 부사 민창혁(閔昌爀), 전 첨사 이은모(李殷模), 행 부호군 윤행이(尹行頤)ㆍ신광우(申光祐), 평산 부사(平山府使) 유광천(柳匡天), 행 부호군 이정덕(李鼎德)ㆍ성정진(成鼎鎭)ㆍ박성집(朴聖集)ㆍ김정국(金鼎國), 회양 부사(淮陽府使) 정택부(鄭澤孚), 호조 참의 홍낙항(洪樂恒), 행 부호군 강침(姜忱)ㆍ성대중(成大中)ㆍ송민재(宋民載), 성천 부사(成川府使) 윤치성(尹致性), 전 참의 이우진(李羽晉), 전 목사 유숙(柳
), 행 부호군 황장(黃樟)ㆍ김인섭(金寅燮), 대사성 윤득부(尹得孚), 행 부호군 정덕필(鄭德弼)ㆍ이지영(李之英)ㆍ조명업(曺命業)ㆍ백인환(白仁煥)ㆍ심집(沈鏶)ㆍ유성진(柳星鎭)ㆍ김한종(金漢宗)ㆍ석종극(石宗克)ㆍ정형신(鄭衡臣)ㆍ양주익(梁周翊)ㆍ이빈(李斌)ㆍ박동환(朴東煥)ㆍ마지휘(馬之徽)ㆍ윤열(尹說)ㆍ백상현(白尙絢)ㆍ김광현(金光鉉)ㆍ김상려(金尙礪)ㆍ홍윤오(洪允五)ㆍ이면(李勉)ㆍ어용겸(魚用謙), 곡산 부사(谷山府使) 이지영(李祉永), 행 부호군 심낙수(沈樂洙)ㆍ홍인조(洪寅祚)ㆍ장성좌(張聖佐)ㆍ한경기(韓景琦)ㆍ홍대협(洪大協), 전 참의 채홍원(蔡弘遠), 행 부호군 심갱(沈鏗)ㆍ최진하(崔鎭夏), 삭녕 군수(朔寧郡守) 한덕후(韓德厚), 행 부호군 유헌주(柳憲周)ㆍ조각(趙恪)ㆍ고정헌(高廷憲)ㆍ김성준(金聖準), 순천 부사(順天府使) 최수로(崔守魯), 행 부호군 권평(權坪), 병조 참지 오태현(吳泰賢), 이천 부사(伊川府使) 임희존(任希存), 전 참의 성덕우(成德雨), 행 부호군 이정현(李廷顯), 전 승지 정상우(鄭尙愚), 행 부호군 최경악(崔景岳), 순흥 부사(順興府使) 이주현(李周顯), 행 부호군 허질(許晊)ㆍ최헌중(崔獻重), 임천 군수(林川郡守) 윤광보(尹光普), 행 부호군 이광익(李光益), 제주 목사(濟州牧使) 유사모(柳師模), 행 부호군 서유련(徐有鍊)ㆍ이일운(李日運)ㆍ유협기(柳協基), 이조 참의 이성보(李城輔), 전 오위장 이만운(李萬運), 돈녕부 도정 서일보(徐日輔)이다. - 131원에게 각각 백지에 인쇄한 대본 1건씩을 나누어 주었다. - 이만운에게는 백지에 인쇄한 소본 1건을 더 지급하였다. -
○ 옥당에 나누어 준 것은 다음과 같다.
동벽(東壁) - 부사직 조홍진(趙弘鎭), 부수찬 정동간(鄭東榦), 부사과 한광식(韓光植), 응교 윤서동(尹序東), 부사직 김관주(金觀柱), 부응교 이귀운(李龜雲)이다. -
아장(亞長) - 사성 송익효(宋翼孝), 전 교리 신대윤(申大尹), 부교리 고택겸(高宅謙), 은율 현감(殷栗縣監) 이우제(李遇濟), 부사과 윤우열(尹羽烈), 전 수찬 이경명(李景溟), 전 교리 오정원(吳鼎源)ㆍ심흥영(沈興永), 부사직 장지현(張至顯), 전 집의 정내백(鄭來百), 전 수찬 조윤수(曹允遂)이다. -
승품(陞品) - 전 수찬 김희채(金熙采)ㆍ이정운(李貞運), 전 헌납 유하원(柳河源), 해남 현감(海南縣監) 안책(安策), 수찬 조덕윤(趙德潤), 군자감 정 이춘보(李春輔), 교리 이익모(李翊模), 양산 군수(梁山郡守) 윤노동(尹魯東), 부수찬 윤제동(尹悌東), 부사과 박재순(朴載淳)이다. -
당품(當品) - 부사과 김희직(金熙稷), 부사직 이복윤(李福潤), 부사과 이지담(李之聃)ㆍ이승운(李升運), 고성 현령(固城縣令) 남이익(南履翼), 전적 정이수(鄭履綏), 영춘 현감(永春縣監) 홍낙유(洪樂游), 부사직 강빈(姜儐), 직강 박길원(朴吉源), 전 교리 윤익렬(尹益烈), 북평사(北評事) 임한호(林漢浩), 전 좌랑 유상조(柳相祚), 전 교리 김선(金銑), 전 수찬 이기양(李基讓), 전 교리 민양현(閔養顯)이다. -
42원에게 각각 백지에 인쇄한 대본 1건씩이다.
○ 양사(兩司)에 나누어 준 것은 다음과 같다.
아장(亞長) - 부사과 민유(閔游)ㆍ윤재순(尹在醇), 전 통례 신우상(申禹相), 종부시 정 홍낙연(洪樂淵), 사간 최훤(崔烜), 부사직 유운우(柳雲羽), 좌통례 이병철(李秉喆), 부사직 서유기(徐有沂), 우통례 최중규(崔重圭), 집의 박서원(朴瑞源), 부사직 정경조(鄭景祚), 영천 군수(榮川郡守) 어석령(魚錫齡), 전 사직 이우규(李羽逵), 전 집의 오익환(吳翼煥), 서산 군수(瑞山郡守) 유악주(兪岳柱), 전 집의 이만영(李萬榮), 부사직 이기항(李基恒)ㆍ김효진(金孝眞)ㆍ조석회(趙錫晦), 부사과 민사선(閔師宣), 전 정(正) 심수(沈銖)이다. -
납언(納言 헌납) - 전 현감 권중헌(權中憲), 전 통례 조희유(曺喜有), 부사과 김약련(金若鍊), 부사직 신직(申
), 헌납 유이현(柳頤玄), 부사직 홍극호(洪克浩)ㆍ정의조(鄭毅祚), 전 헌납 정관휘(鄭觀輝)이다. -
승품 - 부사과 김복원(金復元), 부사직 이태현(李泰賢)ㆍ임장원(任長源), 개성부 경력(開城府經歷) 이득휴(李得休), 부사직 신사오(申史澳), 전 현감 유한인(兪漢人), 대동 찰방(大同察訪) 강문회(姜文會), 부사과 이심전(李心傳)ㆍ정지원(丁志元), 결성 현감(結城縣監) 홍병익(洪秉益), 부사직 홍언섭(洪彦燮), 황산 찰방(黃山察訪) 정필조(鄭弼祚), 전 장령 신대귀(申大龜), 전 정 조진정(趙鎭井), 부사과 한계옥(韓啓玉), 부사직 박주우(朴柱遇), 전 장령 현중조(玄重祚), 부사직 이익회(李益恢)ㆍ유현장(兪鉉章), 전 군수 권심언(權心彦), 성환 찰방(成歡察訪) 이상우(李尙友), 전 장령 이익수(李益洙), 부사직 이성륜(李聖輪), 고산 찰방(高山察訪) 신약추(申若樞), 부사직 지덕빈(池德斌)ㆍ홍수호(洪受浩), 장령 김효수(金孝秀), 부사과 강세응(姜世鷹), 태안 군수(泰安郡守) 한영규(韓永逵), 봉상시 판관(奉常寺判官) 이동식(李東埴), 부사과 이경신(李敬臣), 영양 현감(英陽縣監) 박도상(朴道翔), 부사과 곽용제(郭龍濟), 함창 현감(咸昌縣監) 신광악(申光岳), 이조 정랑 이운행(李運行), 좌랑 윤기(尹愭), 전 지평 정최성(鄭最成)이다. -
장통(掌通) - 부사직 조언철(趙彦哲), 부사과 오붕남(吳鵬南), 부사직 이주연(李柱延)ㆍ남필석(南必錫), 양천 현령(陽川縣令) 오태언(吳泰彦), 부사직 김성갑(金星甲), 봉상시 정 김회빈(金晦彬), 부사과 강봉단(姜鳳端), 부사직 변경호(邊景祜)ㆍ조장한(趙章漢)ㆍ이진택(李鎭宅), 장악원 정 오한원(吳翰源), 부사과 문약연(文躍淵), 부사직 황진(黃瑨), 부사과 황내정(黃乃正), 전 장령 이휘(李彙), 부사직 허유(許鍒), 장령 주중옹(朱重翁), 전 도사 민식(閔
)이다. -
지평ㆍ정언 - 부사과 김기상(金箕象)ㆍ김양근(金養根), 태인 현감(泰仁縣監) 조항진(趙恒鎭), 부사과 이광현(李光鉉)ㆍ민경세(閔慶世), 전 정언 장지면(張至冕), 부사과 강석귀(姜碩龜), 부사직 권한위(權漢緯), 전 정언 정택동(鄭宅東), 전 좌랑 이경심(李敬心)ㆍ윤재양(尹在陽), 전 현감 박효성(朴孝成), 전 지평 윤지현(尹之鉉), 병조 정랑 남속(南涑), 전 판관 홍병신(洪秉臣), 전 현감 김치광(金致光), 부사직 이정박(李廷璞), 부사과 박종겸(朴宗謙), 만경 현령(萬頃縣令) 최시순(崔時淳), 부사과 심달한(沈達漢), 경성 판관(鏡城判官) 이덕현(李德鉉), 부사과 성언집(成彦檝), 부사직 최이형(崔履亨), 정언 송문술(宋文述), 하양 현감(河陽縣監) 박명섭(朴命燮), 부사직 이중련(李重蓮), 전 현감 신성진(愼性眞)ㆍ심봉석(沈鳳錫), 태천 현감(泰川縣監) 김기찬(金驥燦), 병조 정랑 여준영(呂駿永), 부사과 이상준(李尙寯)ㆍ이동우(李東宇), 부사직 강극성(姜克成), 전 지평 정계충(鄭繼忠), 전 정언 이의명(李義明), 부사직 신귀조(申龜朝)ㆍ홍낙민(洪樂敏), 부안 현감(扶安縣監) 이윤행(李允行), 옥구 현감(沃溝縣監) 윤행철(尹行喆), 부사직 신완(申完), 비인 현감(庇仁縣監) 이원팔(李元八), 부사직 이서조(李瑞朝), 전 지평 강성익(康聖翊), 전 정랑 이정병(李鼎秉), 전 지평 이인채(李寅采), 부사과 박시수(朴蓍壽)ㆍ홍시부(洪時溥), 전 정언 이안묵(李安默), 부사직 이지형(李之珩), 자인 현감(慈仁縣監) 강휘옥(姜彙鈺), 부사직 최희연(崔禧延), 전 좌랑 채홍직(蔡弘直), 부사직 박재덕(朴載德), 병조 좌랑 이해청(李海淸), 전 정언 김화종(金和鍾), 이조 좌랑 이명부(李明孚), 부사직 김굉(金㙆)ㆍ김종발(金宗發)ㆍ김광우(金光遇), 전 찰방 홍광일(洪光一), 부사과 윤지범(尹持範), 부사직 오대곤(吳大坤), 안의 현감(安義縣監) 이만운(李萬運), 전 정언 남기만(南基萬), 정언 윤함(尹涵), 부사직 최규한(崔逵翰), 지평 김수조(金壽祖)ㆍ정종로(鄭宗魯), 부사과 이서(李垿)ㆍ홍택하(洪宅夏), 병조 좌랑 조태영(趙台榮), 전 좌랑 김상우(金商雨), 전 정언 심능필(沈能弼)이다. -
158원에게 각각 백지에 인쇄한 소본 1건씩이다.
○ 겸춘추 - 호조 좌랑 김양척(金良倜), 병조 좌랑 김경환(金景煥), 예조 좌랑 김진각(金珍恪), 공조 정랑 김초섭(金初燮), 승문원 판교(承文院判校) 복태진(卜台鎭)이다. - 5원에게 각각 백지에 인쇄한 소본 1건씩을 나누어 주었다.
○ 음관(蔭官) - 수원 판관(水原判官) 홍원섭(洪元燮), 상의원 주부(尙衣院主簿) 이전수(李田秀)이다. - 2원에게 각각 백지에 인쇄한 대본 1건씩을 나누어 주었다.
○ 운서 교정 당상에게 특별히 반사한 것이다. - 행 대호군 이가환(李家煥)은 모면지(毛面紙)에 인쇄한 소본 1건, 백면지에 인쇄한 대본 1건, 백지에 인쇄한 소본 1건이고, 형조 참판 이서구(李書九)는 모면지에 인쇄한 대본 1건, 영장지에 인쇄한 대본 1건, 백지에 인쇄한 소본 1건이고, 행 도승지 이면응(李冕膺)은 백지에 인쇄한 대본 1건과 소본 1건이고, 영변 부사(寧邊府使) 서영보(徐榮輔)는 백면지에 인쇄한 대본 1건, 백지에 인쇄한 대본 1건, 소본 1건이다. -
○ 명제(命除)로 서사인(書寫人)인들에게 특별히 반사한 것이다. - 초계 문신 이서구(李書九)ㆍ홍의호(洪義浩)ㆍ이익진(李翼晉)ㆍ이상황(李相璜)ㆍ김희순(金羲淳)ㆍ송지렴(宋知濂)ㆍ김이재(金履載)ㆍ김근순(金近淳)ㆍ서준보(徐俊輔)ㆍ조석중(曺錫中)ㆍ이면승(李勉昇)ㆍ권준(權晙)ㆍ오태증(吳泰曾)ㆍ김이영(金履永)ㆍ강준흠(姜浚欽)ㆍ홍석주(洪奭周)ㆍ김희화(金熙華), 검서관 이공무(李功懋)ㆍ성해응(成海應)ㆍ이광규(李光葵)ㆍ원유진(元有鎭)ㆍ정설(鄭枻)ㆍ유본학(柳本學)ㆍ전 찰방 김기보(金基普), 검서관의 자손인 유본예(柳本藝)ㆍ서유은(徐有殷)ㆍ성헌증(成憲曾)ㆍ박장념(朴長稔)이다. -
28원에게 각각 예단지(禮單紙)에 인쇄한 소본 1건씩이고, ○ 이시정(李蓍廷) 자헌대부(資憲大夫) ○ 이극생(李克生) 전 현감 ○ 조원철(趙元喆) 전 수찬 ○ 송문로(宋文輅) 전 헌납 ○ 신광형(申光絅) 전 지평에게 각각 백지에 인쇄한 대본 1건씩이다.
○ 도합 1483건이다. - 대본이 1189건, 소본이 294건이다. -
[주-D001] 김제겸(金濟謙)과 성효기(成孝基)가 증보(增補)하기 : 《증보삼운통고(增補三韻通考)》를 말한다. 총 9722자였던 《삼운통고》에 1798자를 증보하였다. 《五洲衍文長箋散稿 經史篇 經典類 字書 字書字數辨證說》[주-D002] 광(匡)을 더하였으며 : 원문은 ‘加匡’인데,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24 〈편서잡고(編書雜稿)4 규장전운범례(奎章全韻凡例)〉에는 ‘환광(圜匡)’으로 되어 있다.[주-D003] 광을 더하였으며 : 원문은 ‘加匡’인데, 《청장관전서》 권24 〈편서잡고4 규장전운범례〉에는 ‘아광(亞匡)’으로 되어 있다.[주-D004] 장단(長湍) : 원문은 ‘長端’인데, 《신증동국여지승람》 권12 〈경기 장단도호부(長湍都護府)〉에 의거하여 ‘端’을 ‘湍’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주-D005] 필암서원(筆巖書院) : 원문은 '華巖書院'인데, 장성에 있는 서원의 명칭은 필암서원이 옳으므로 '華'를 '筆'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주-D006] 명제(命除) : ‘명제사은(命除謝恩)’의 준말인 듯하다. 각종 내사기(內賜記)를 보면 ‘……內賜……件 命除謝恩’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내사한 것에 대해 사은을 하지 말도록 명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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