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여름동안 내려온 온기를 품고 있다가 겨울이 되면 품었던 온기를 식물에 내어 줍니다. 민들레 잎은 얼어 죽은 듯 땅에 붙어 있지만 여름을 지나 겨울 내어주는 온기를 받아 겨울의 날카로운 바람을 견디어 봄이 오면 노란 꽃을 피웁니다.
지리학 여행 전 우리는 식물학을 시작했다. 지리학의 시작과 마찬가지로 식물학도 가까운 우리 주변에서 시작해 점차 확장하기 위해 봉제산을 찾아 고사리와 이끼 등을 관찰했다.
5월 말경 코로나로 인해 하지 못 했던 대장간 체험을 겸해 3학년과 함께 보은에 있는 대장간으로 가서 단조 작업과 주조 작업을 통해 모종삽, 화살촉. 쟁반 등을 만들었다.
이후 우리는 문경으로 향해 지리학과 식물학 그리고 모내기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첫 날 낮에 대장간 체험으로 한 뒤 저녁에 도착해 모내기 장소를 확인하고 모판을 나른 뒤 내일 문경세재로 향할 준비를 한다.
둘째 날..
점심과 식물학 공책을 준비하고 희양산 마을 소유의 공유 트럭을 빌려 문경세재로 향한다. 1~3 관문을 걸으며 이끼류, 고사리, 버섯류를 위주로 고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역시 처음에는 의기양양 한 발걸음으로 이끼류의 모습을 그리고 서식환경을 써본다. 주변에 물기가 있는지 그늘이 지는지, 물이 흐르는 곳에는 이끼가 없는지를 보고 ‘흐르는 물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는 속담의 두 가지 뜻을 전달해 준다. 이제 그만 올라가자고 해도 아직 이라며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이다. 이제 1과문 겨우 시작인데....
고도가 올라 갈수록 이끼류의 모습이 달라지고 뭔가 이끼인 듯 버섯인 듯 헛갈리는 것들이 보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땅의 옷인 지의류였다.
이끼류가 점차 사라지고 고사리류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미 잎을 활짝 핀 모습으로 우리가 먹을 때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잎을 핀 고사리 주변을 살펴보니 고사리 무리 아래에 아기 주먹 모양을 한 고사리 들이 모여 있었다. 그제야 평소 알고 있던 고사리를 만나 반가워하며 왜 아기 손을 ‘고사리 손’이라고 하는지도 느낀다. 초반과는 다르게 그리고 적는 시간이 무척 짧아진다. 더 써야 하지 않겠냐는 말에 대꾸도 잘 하지 않고 공책을 가방에 넣는다. ^^;
점심을 먹고 잠시 낙동강을 향해 가는 개울물에 들어가 더위를 식힌다. 방금 전까지 힘들다고 내려가자고 하더니 어디서 이런 힘이 오는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고향 찾은 송어 때 모습이다.
2관문을 지나 3관문으로 가는 동안 고사리의 모습이 점차 커지더니 어느 순간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이곳에는 낙동강 발원지인 초점이 있다. 3관문으로 향하는 두 갈래 길에서 초점을 보기 위해 작은 길로 들어선다. 기대를 품고 다가선 초점은 우리 눈의 초점을 흐리게 할 정도로 말라 있었고 어떻게 이게 발원지 이지 하는 의아함이 느껴질 정도여서 그냥 패스~
조금 더 오르자 드디어 3관문이 보이기 시작한다. 12시에 오르기 시작해 3시에 3과문을 통과해 백두대간 조령에 도착을 했다. 이 순간 강줄기와 백두대간을 엮어 지리학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백 지리 여행의 씨앗이 심어지는 순간이다.
정상에는 토끼가 여기 저기 뛰어 놀고 있었고 5학년 동안 가장 긴 등반을 마치고 내려간다. 내려오는 길은 자유롭게 맨발로 걷기도 하고 수다도 떤다.
다시 희양산으로 돌아와 일지를 정리하고 다음 날을 준비한다.
셋째 날..
본격적인 모내기 작업을 한다. 3년간 갈고닦은 솜씨를 보여주고 마지막 날 밤을 맞이한다.
내일은 빛들만의 낙동강 발원지를 찾아 나선다.
넷째 날..
빛들 옆에 한강이 있다면 남한에서 가장 긴 강인 낙동강이 있다.
희양산 주변에는 언제나 맑은 물이 흐른다. 5월 초 답사를 왔을 때 도대체 이 물은 어디서 나와 어디로 흐를까? 문뜩 이러한 생각이 들었고 지도를 따라 희양산 물줄기를 따라가 보았다. 지도상에서 보면 아주 얇은 파란 물줄기가 희양산 봉암사 주변에서 시작되고 그 물은 양산천이라는 이름으로 아래로 아래로 흘러 문경새재에서 나온 물과 만나고 다시 안동 봉화 그리고 더 위에 있는 태백에서 시작되는 물과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물은 흘러 흘러 부산 앞바다로 빠져 나가는 것이다. 이게 뭐지 하고 자세히 보니 바로 낙동강 이다.
이틀 전에 갔던 문경세재 초점 말고 낙동강의 발원지는 태백에 있는 황지 연못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지도를 보면서 발원지는 어디에 있던 물이 시작되는 곳이 발원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희양산에 오르다 보면 물이 시작되는 곳을 볼 수 있으리라는 상상을 시작했다. 이 때 부터는 상상력의 시간이다. 농사 선생님께 이러한 내용을 이야기 하자 희양산은 봉암사에서 통제를 하여 일반인들은 올라가지 못한다고 하였고 편지라도 써서 올라 갈 수 있게 해보겠다는 나의 우격다짐에 윗마을에 사시는 이장님께 물어봐 주신다는 답을 들었다. (발원지의 사전적 의미는 가장 먼 곳에서 시작되는 물을 말한다.)
문경 여행 수업 몇일 전 봉암사 방향으로는 올라갈 방법은 없고 다른 쪽으로 올라가면 가능 하다는 답을 얻었다. 다만 윗마을 이장님께서 아주 오래전에 샘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적이 있지만 본인도 한 번도 실제로 본적은 없으시다는 말을 전달 받았다.
어째든 우리는 상상의 샘을 찾아 올라가기로 계획을 세웠고 마지막 날 아침을 서둘러 맞이했다.
나의 탐사 계획은 이러하다.
산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고 길이 있기는 하지만 신마니 말고는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어 길을 잃을 염려가 있다. 그리고 산길을 따라 가다 보면 물길과 떨어져 발원지인 샘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 아쿠아 슈즈를 신고 물길을 따라 올라가는 것이다. 올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물이 줄고 그러다 보면 반듯이 물이 시작되는 곳을 찾으리라.. 누구는 무식하고 무모 하다고 했다.
농사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설명을 토대로 희양산 중턱에 있는 마을로 들어가 마지막 집 왼쪽으로 작은 길로 들어섰다. 집 뒤로 물길과 오솔길 두 개의 길이 있었다. 잠시지만 그냥 오솔길을 따라 갈까 고민이 된다. 과연 이 친구들과 함께 물길을 따라 갈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기에.... 하지만 물긴 옆에 무성하게 열린 산딸기를 따먹으며 물속에 발을 담구니 처음 상상대로 물길을 따르기로 했고 마치 나무로 만들어진 문을 통과 하듯 연어가 되어 길을 오른다. 1학기 동안 배운 클라이밍 기술을 총 동원하고 장마에 쓰러진 나무들을 피해가며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고 넘어지고 물에 빠지면서 정신없는 가운데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위로 올랐다.
계속 변형되는 움직임이 우리를 계속 깨어있게 했고 바위를 오를 때마다 올라오는 성취감과 안도감은 휴식시간을 지루하게 만들 정도였다. 중간에 쉬었던 바위는 신선의 정취를 느끼기 충분했다.
2시간 정도 오르니 물길이 현저히 줄기 시작하더니 두 갈래 길로 나뉜다. 어디로 갈까?
우선 물이 많은 쪽으로 올라갔는데 생각보다 금장 끝이 나서 이길 아니가보다 하고 다시 내려와 다른 쪽으로 올랐다. 힘이 빠진 친구들은 그냥 저기가 샘이라고 하자며 그만 오르길 요청한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만 더 가보자고 어르고 달래면서 오를수록 가팔라지는 길을 올랐다. 10분 정도 올랐을까? 뭔가 주변 분위기가 차분해 지고 이끼가 많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아! 여기가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휙~ 하고 들어오는 곳이 보였다.
위로는 더 이상 물이 보이지 않는 고목 아래 언제부터 자리하고 있었을지 모른 이끼 얹은 돌 틈 사이로 물이 쏟고 있다. 맑은 물 그 자체.. (북36.42.3 동128.1.54 해발480m)
잠시 멍하니 물이 쏟는 모습을 보다가 ‘빛샘’ 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다시 산을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은 오솔길을 주로 이용했는데 오다 보니 넓은 공터가 있었고 돌을 쌓아 놓은 모양과 주변의 평탄한 지형이 말로만 듣던 화전민이 떠오르게 한다. 칠갑산 노래가 떠오른 건 왜일까? 어떤 이유에서건 이런 산골짜기까지 올라와 터를 잡았다는 것에, 불을 놓았던지 나무를 잘랐던지 이렇게 무성한 나무 사이에 이토록 넓은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바위들을 옮기고 쌓고 바람과 비와 동물들까지 그리고 위협하는 사람들까지 피하며 살았을 그 모습이 그려진다. 잠시 앉아 있으면 마치 동막골 사람들이 저 숲 사이로 나올 듯 한 기분이다. 이 순간 ‘언제 내려가요. 이제 빨리 가요’ 라며 나를 현실로 이끄는 친구들 덕분에 짠했던 마음은 휘리릭~~ 사라지고 다시 아래로 아래로 향한다. 내려오는 길은 언제나 그렇듯 빠르다. 하지만 그만큼 더 위험하기도 하다. 힘은 덜 들지만 더 긴장을 해야 하기에 올라갈 때와는 반대로 계속 천천히 라는 말로 속도 조절을 해주어야 한다.
올라갈 때 눈에 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인다. 중간 중간 돌담들이 이 곳에 산골마을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아랫동네 양봉을 하시는 할아버지께서 아들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다는 큰 바위틈에 있는 벌통도 보인다.
숙소로 돌아와 서울로 향할 준비를 한다. 가슴속에 각자의 샘물이 하나씩 생겼다.
버스를 타니 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물길을 따라 오르며 발견한 샘, 우리가 낙동강 발원지로 명명한 ‘빛샘’ 나에게는 ‘빛들’이 그러하다 원천은 가장 먼 곳에 있는 것만이 아닌 내가 찾아내는 것이고 상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것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다.
지리학은 이렇게 우리는 이끌어 준다.
행. 복. 하. 세.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