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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세탁기. *사물들과 함께 하는 51가지 철학체험(로제 폴 드루아)
해 저물 무렵 세탁장에서
바닷가를 걷는다고 좋아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안 좋아지는 것이 있다. 살이 액체로 변하는 느낌 때문이다. 그 느낌은 발에서부터 시작된다. 차갑고 금방 축축해지는 신발은 물론 발까지 물러지는 이런 현상은 전반적인 용의 전조다. 비종교적인 영적 자각과는 거리가 있지만, 바닷가에서는 관심사가 활발하게 액화하리라는 생각을 하며 웃어보려고 애쓴다.
나는 바닷바람을 받고 서 있는 오래된 집으로 돌아와서 장작불을 피우고 습기가 많은 지역에서 추위로 얼어붙은 사람들이 흔히 그러듯이
멍한 상태로 동물적으로 발바닥과 손바닥을 불가까이 가져간다. 신발은 지하저장실에 놓아뒀고, 질척해진 양말은 벗어버렸다. 잠시 후에 잊지 말고 세탁기에 넣어야 한다. 다행히 이 집에는 세탁기가 있다.
몸이 따듯해지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구석진 불가에서 선사시대에 대한 상상에 빠져든다. 인간은 언제부터 옷을 세탁했을까? 아마도 옷을 입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아니었을 것이다. 몸에 걸친 짐승 가죽이 썩게 내버려두고, 칡이나 마른 잎을 세탁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는지 누가 알겠는가? 게다가 지어낸 이야기겠지만, 마상에서 생활하던 훈
족과 타타르족은 옷을 빨기는커녕 벗는 일도 없이 옷이 닳고 때가 타서 저절로 해져 떨어질 때까지 내버려뒀다고, 몇 세기 전부터 여행자들이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빨래하는 습관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리고 빨래는 어디에서나 여자들 몫이었다. 냇가,강가, 빨래터에서, 열대의 습기나 북쪽 매서운 삭풍속에서 여자들은 빨랫감을 물에 담그고 비비고 헹구고 말렸
다. 천과 실을 통해 수천 년간 이어진 인류의 삶에서 특히 여자들은 가족과 전사들을 위해 옷을 재단하고 꿰매고 깁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빨고 말리고 개는 역할을 했다. 빨래는 청소나 요리처럼 주기적으로 반복하고 유지하는 일이며 삶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여기에 기계가 한몫하게 되었다. 세탁기도 순환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회전하는 드럼, 실린더의 작동 방식이나 급수, 세탁, 헹굼, 탈수 등 프로그램의 반복의 핵심은 주기와 회전에 있다. 세탁물이든 세탁 과정이든 모든 것이 원을 그리며 돌아간다. 마치 우리 영혼처럼 더러움, 씻어냄, 깨끗함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세탁기는 우주적인 사물이다. 우리는 거기에 죽은 영혼들을 쑤셔 넣고, 돌리고, 과거와 흔적과 기억을 씻어낸다. 드럼 안으로 쏟아지는 물이 섬유 속으로 들어가고, 때와 얼룩이 되어 달라붙은 시간의 흔적
을 씻어버린다. 가장 내밀한 흔적조차도 녹이고 세탁한다. 그렇게 한 주기에 다음 주기로 넘어가기를 반복하면서 고대에서 미래가 태어난
다. 이처럼 과거에 속했던 것들이 모두 씻겨나가면 둥근 유리문이 열리고 새로운 삶을 위해 준비된 깨끗한 영혼들이 밖으로 나온다. 과거의 흔적이 말끔히 지워진 이 새로운 영혼들은 당연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마치 갓 태어난 것처럼 다시 더러워질 준비가 되어 있다.
세탁기는 비교(秘敎) 의식을 집전하는 마지막 유물일까? 우리는 이 특별한 사물에서 입문, 죽음, 부활과 같은 삼라만상의 윤회를 새삼 확인한다. 모든 것이 씻기고, 닦이고, 돌아가며 순환한다. 각자의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치르고 있는 대부분 의식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세탁기 *철학자의 사물들/장석주
세탁기는 사물일까? 물론이다. 순환, 회전, 반복, 연속 운동을 하며 기적과 혁신을 불러일으키는 놀라운 도구-사물이다.
이것은 섬유의 올과 올 사이의 때를 빼고, 마지막으로 헹구고 말린다. 몸에서 나온 땀과 기름이 섬유 조직에 배어들고, 살비듬과 먼지가 섬유의 표면에 달라붙는다. 세탁기가 세척과 탈수를
통해 덧없이 과거가 되어버린 시간과 장소들의 흔적을 말끔하게 씻어낸다. 산다는 것은 덜도 아니고 더도 아니고 더러워지는 것이다. 그게 본질이다. 모든 빨래는 사람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
는 불가역적 시간의 포획물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그 불가역적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새것은 낡아지고, 깨끗한 것은 더러워진다.
세탁기에 영성이 깃들어 있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누구처럼 세탁기가 “우주적 사물"(로제 폴 드루아, 《사물들과 철학하기》)이라고 허풍을 떨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이것이 "가장 내밀한 얼룩을 용해 "하고, “깨끗한 영혼들을 내보내는 의식을 치르는 종
교의 신성한 의례와 맞먹는 "신비 의식의 마지막 잔존물" (로제폴 드루아, 앞의 책)이라는 것에는 기꺼이 동의를 하겠다.
우울한 날에는 빨래를 하자. 세탁기가 우리를 대신해서 빨래를 하는 동안에 세탁기의 옆에서 세탁기의 노래를 듣자. 옷들이 건조대에서 마를 때, 그것이 어떻게 눈부신 자기 갱신을 이루는가를 지켜보자. 옷에 달라붙은 오염물질들은 살아온 시간
과 장소들의 흔적들, 즉 이미 흘러가버린 과거 속의 오류들과 낭패들이다. 뻔뻔함과 새빨간 거짓말들. 온갖 욕망에 굴복해 지은 죄가 바로 때다. 존재를 더럽히는 것은 세속의 욕망과 환상들이다. 영혼을 세척하는 세탁기가 있다면 우리는 과거를 지우고, 낭패를 지우고, 부끄러움과 죄를 지울 수가 있을 것이다. 행굼과 탈수가 끝난다. 옷이 일련의 과정을 거쳐 깨끗하게 바뀌듯.죄는 말끔하게 씻기고, 우리는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원시 인류는 어떻게 옷을 빨아 입었을까. 그들이 몸에 걸쳤던 짐승 가죽을 어떻게 빨아 입었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오래 걸쳐 더럽고 냄새가 나는 짐승 가죽을 빨아 입는 대신에 버렸을지도 모른다. 현생인류는 무명, 모직, 비단, 혹은 나일론, 레이온, 폴리에스테르 같은 화학섬유로 지은 옷을 입는다. 더러워진 옷은 세탁소에 맡기거나 세탁기 안에 집어넣으면 된다. 인류가 옷을 걸친 것과 더불어 세탁의 역사도 시작되었다. 고대 이집트의 문헌에 손빨래를 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세탁에 대한
"가장 오래된 역사 기록이다. 19세기 말에 처음으로 수동식으로 세탁하는 기계가 나오고, 1910년 미국에서 전동식 세탁기가 나왔다. 머잖아 진화를 거듭해서 분말세제자동투입 기능, 센서기능, 기억 기능, 예약 기능을 두루 갖춘 세탁기도 나온다. 세탁
기 안에 빨래들을 넣고, 분말세제와 섬유유연제를 투입한다. 세탁기의 문을 잠그고, 세탁기의 작동 버튼을 누른다. 세탁기 내부에서 원형의 통과 실린더가 자동으로 움직이고 옷들은 통채로 돌아간다. 물과 세제가 섞이고 섬유에 착색된 얼룩과 먼지들, 그리고 섬유의 올에 스며든 땀과 기름 따위의 분비물들이 제거된다. 헹굼과 탈수는 세탁의 마지막 과정이다. 오염 물질과 냄새가 사라지고, 구김과 주름은 펴진다. 옷은 본래의 형태와 기능을 되찾는다.
어느 여름날이다. 햇볕은 화창하다. 녹색의 나무들은 땅에 녹색의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땅 위에는 개미들이 한 줄로 열을 지어 기어간다. 적막이 뚱뚱한 몸통을 텅빈 공간으로 밀어넣고
주저앉는다. 열린 창문으로 불어온 바람이 커튼을 소리없이 흔든다. 라디오에서 빌리 조엘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그 찰나, 세상은 살 만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마저 감미롭다. 왜 감미롭지 않겠는가? 물론 "가장 아름다운 사랑도 약간은 쓰다.”(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모호한 낙관주의에 빠진 가슴을 펴자 기분은 더욱 화창해진다. 나는 세탁기 옆에서 그것이 쉬지 않고 내는 소음을 듣는다. 이 소음은 세
탁기가 부르는 즐거운 인생을 위한 송가頌歌이다. 탈탈탈‥
세탁기가 노래한다. 세탁기는 노래하면서 빨래를 한다. 전자동세탁기가 나오면서 빨래는 사람 손을 거치지 않게 되었다. 세탁기가 알아서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구겨지거나 주름이 잡힌 섬유의 변형을 바로 잡아준다. 침묵을 흠모하는 사람에게 세탁기
가 내는 시끄러운 소리들은 치명적인 흠이다. 제조업체들이 소음을 줄이려고 노력하지만 아직까지 무소음 세탁기는 세상에 없다.
옷은 옷이다. 옷은 옷(빨래)이 아니다. 옷은 옷빨래)이다. 다시 풀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새로 산 옷은 언젠가 빨래가 될 운명이다. 옷은 잠재적으로 빨랫감이다. 하지만 새 옷은 빨래
가 아니다. 옷은 반드시 입고 난 뒤에 비로소 빨래가 된다. 빨래가 된 헌옷을 세탁하면 옷은 다시 이전의 옷으로 돌아간다. "A는 A이다”, “A는 B이다.", "다시 A는 셈이다."라는 문장을 단순화하면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의 구조가 드러난다. 변증법을 인식의 변화와 발전 논리로 받아들이며 철학의 방법론으로 정립한 사람은 독일 철학자 헤겔이다. 헤겔이 변증법의 창시자는 아니다. 변증법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시대부터 이미 있었다.
본래 변증법은 토론의 변론술이다.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하면서 상대방이 스스로 자기 안의 진리를 깨우치도록 이 방법을 자주 써먹는다. 플라톤은 문답술의 기술적 형식에 지나지 않는 변증법을 진리 탐구를 위한 사유의 한 형식으로 세운다. 헤라클레
이토스는 만물은 태어나서 유전하며 만물을 생성하는 것은 사물의 대립이라고 주장했는데, 헤겔은 헤라클레이토스야말로 변증법의 진정한 창시자라고 생각했다. 헤겔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논리학의 일부에 지나지 않던 변증법을 철학의 한 방법론으로 정식화한다. 헤겔에 따르면 모든 사물과 존재는 정반합의 3단계를 거쳐 변화하는데, 이때 변화의 2단계에서 사물과 존재는 자기 부정이라는 모순에
부딪친다. 만물은 본질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이고, 그 변화를 일으키는 동인은 모순의 자각과 그 모순에 대한 능동적 자기부정이다. 본래 존재가 정正이라면 내부 모순에 의한 존재의 자기부정은 반이다. 이 모순 구조를 넘어서야 합에 도달한다. 변증법은 만물은 모순의 실재를 인정하는 모순 논리로 모순율을 부정하면서 모순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헤겔의 이론을 관념론이라고 비판하면서 변증법적 유물론을 새롭게 내놓는다. 사물이나 존재는 물론이고 사회나 역사도 변증법으로 변화하고 발전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사회 발전과 변화의 동력이 모순에서 나온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이것은 논리성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토대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주장한다. 다시 헤겔의 변증법으로 돌아가자, 옷과 빨래는 모순 관계가 아니고(동일한 것이고), 동
시에 상호 모순의 관계(동일한 것이 아니다)에 있다. 세탁은 이것을 다시 합(동일한 것)으로 되돌린다. 이때 세탁은 기계의 힘을 빌린 더러워진 옷과 물의 뒤섞음이고, 섬유에서 이물질을 분리하는 과정이며, 때가 묻고 구겨진 모든 것들의 탈바꿈이고, 본래
대로 되돌리는 존재 전환이다. 빨래와 같이 신성한 노동을 여성이건 남성이건 한쪽에 몰아주는 것은 분명히 중차대한 성차별이고 불평등한 일이다. 세탁기를 돌리는 기쁨을 어느 한쪽이 독점해서는 안 되고 평등하게 나눠야 마땅하다.
세탁기 돌리는 남자 / 김종태
남자는 새벽 한 시마다 세탁기를 돌린다
아래층 아줌마의 항의는 일거에 무시하고
빨랫감 없는 날이면 새로 산 양복이나
얼마 안 입은 운동복까지 둘둘 말아
'한스푼'을 열 스푼이나 퍼 넣곤 한다
그의 오랜 세탁기는 덜덜거리면
좁은 베란다 공간을 이리저리 노닐다가
'립스틱 짙게 바르고'나 '애모'에 덜컥
멈추어 퐁퐁퐁 물을 뿜는다
바닥에 물거품 흥건할 때 그 남자
도망간 여자 생각에 눈시울 붉히고
세탁기 물배를 채울 시간이면
랄랄라 손뼉 치며 '라거'를 딴다
복사지처럼 하얀 속옷을 꺼낼 때
신생의 기쁨이라도 맛볼 수 있는 건지
이렇게 세탁기와 친한 까닭은
하나뿐인 식솔인 바퀴벌레도 몰라
세탁기를 돌릴 수 있는 새벽 한 시의
회전과 충돌과 엉킴이 너무 좋아
잔뜩 불어터진 남자의 얼굴은
날마다 검은 하수구에 엉길 수도 있지만
세탁기 / 김현서 (2007년 한국일보 동시 당선작)
세탁기가 돌아간다
코피 묻은 내 옷도 돌아간다
친구의 얼굴도 돌아간다
화가 난 내 마음도 돌아간다
세탁기는 돌면서
꽁꽁 뭉쳐 있던 멍든 내 마음을
비틀었다가 풀어버리고
비틀었다가 풀어버린다
울컥울컥 검은 물이 쏟아진다
먹구름 속에서
해님이 나온다
눈부신 햇살 받으며 옷을 넌다
활활 털어 빨랫줄에 넌다
어느새 말끔해진 내 마음도 넌다
친구를 찾아가는 내 마음
먼저 사과하고 싶은 내 마음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집게로 꼭 집어 넌다
구름 세탁기/ 홍순영
가끔 거실에 누워 하늘 산보할 때면
우르르 몰려다니는 무리들 만날 때 있지
갑자기 들려오는 우레에, 화들짝 놀라 두리번거리면
잔뜩 찌푸린 채 입 불거진 구름가족들
불현듯 세탁기 돌리고 싶지
언젠가 남편이 끌고 온 안개를 넣고 세탁기 돌린 적
있어
걸-그룹 노래가 꾸역꾸역 돌아가더니
거품 가득한 여자의 웃음소리 콸콸 쏟아져 나왔지
때론 밤늦게 들어온 아이의 바지가
세탁조 둥근 모서리 짚으며
밤새 비-보이를 공연하기도 했어
그럴 때면 구름 한 채씩 받아먹은 세탁기
수평 놓치고 온몸으로 경련했지
수평을 맞춘다는 건, 자신을 착착 접어
들뜬 틈새에 밀어 넣는 일이지
뚜껑 열고 마구 엉킨 구름들 풀어놓다보면
뜬구름 몇 장 껴 있기도 했어
새털구름처럼 나달나달해진 그것들 끄집어내면
집안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잘 돌아갔지
미처 헹궈지지 않은 불안과 의혹 밀어 넣고
몇 번씩 눌러지던 헹굼 추가 버튼
구름의 속성은 쉽게 물기를 모은다는 것
번번이 눅눅해지곤 하지
그럴 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구름세탁기
뭉게뭉게 미소 짓는 뽀얀 얼굴을 풍선처럼 날려주지
세탁기/김영옥
낡고 허물어진 지붕
오염된 폐수에 젖어 음습한 방
할머니는 평생을 폐질환으로 콜록이더니
이젠 깜빡깜빡 정신을 상실하고 있네
앙상한 기억들을 더듬는 하얀 절망의 나날들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보낸 후
혈기왕성한 청년이 새집을 짓고
어느 봄날 이사를 왔네
정확한 시간 맞춰 딸깍딸깍 쏴아
싱싱 쌩쌩 잘 돌아가는 혈관
건강미 넘치는 근육질
청춘은 어디서나 빛나고
가슴 설레게 하는 존재라네
봄물 들어 햇빛 좋은 날
꽃무늬 원피스와 청바지가 어깨를 맞대고
꿈결 같은 사랑 나누네
올망졸망 모자와 양말들은
연둣빛 손을 마주 잡고
말쑥해진 바람을 이리저리 밀고 있네
오염된 세상을 말끔히 씻기고 싶어서
어느 땐 겁 없이 지구를 통째로
마구 돌리고 싶은 날도 더러는 있다네
지구 세탁 / 이정옥
오염된 지구
세탁기에 돌려 깨끗이 빨고 싶다
하늘 땅 물 모두 찌들어
눈코 뜨고 볼 수 없다
둘레길 물소리도
꽃 피는 소리도
바람소리마저 시든 지구
거품은 통돌이속에 돌아가고
오염된 구름 해 달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나무와 꽃,동물
어디로 피난해야 할까?
코로나 바이러스 화성 금성으로 보내고
깨끗이 빨아 말린
지구에서 대대손손 살아볼까
세탁기/ 진준수. *시조
속옷은 세탁망에
청바지 따로 담아
흰 셔츠 애벌빨래
스웨터 뒤집어서
한 움큼 돌려 짜내면
일주일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