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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지 않는 느부갓네살의 꿈과 다니엘(2:1~30)
1. 다니엘서와 아람어(2:4)
구약성경 가운데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전체가 이스라엘 민족의 언어인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다니엘서는 아람어로 기록된 내용이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다. 다니엘서 2장 4절부터 7장 28절까지가 아람어로 기록된 부분이다.
아람어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부정한 이방인들이 사용하는 언어였다. 물론 바벨론으로 강제 이주되어 정착하던 이스라엘 자손들은 생존을 위해 점차 아람어를 배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니엘서에 히브리어가 아닌 아람어로 기록된 부분이 많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 없이 단순히 그렇게 기록되었다고만 말할 것인가? 유대인들의 자존심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가? 이것은 과연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통해 히브리어가 아닌 아람어로 계시를 기록하게 하셨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분명히 이해해야 할 바는 다니엘서가 기록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아람어를 능통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이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으리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다니엘서 일부가 아람어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여전히 선민이라는 민족적 자만심에 빠져있던 유대인들의 환상을 깨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계시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부정한 이방 언어인 아람어로 기록된 사실은 저들을 위한 분명한 해석자가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아람어를 해석해주는 자 없는 상태에서 성경을 자유롭게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은 예삿일이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아람어를 사용하는 이방인들이 그 성경 본문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이는 히브리어에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환상이 깨어졌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나중에 신약성경이 헬라어로 계시되는 의미와도 어느 정도 연관되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사용하는 언어인 히브리어 그 자체에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역사적 정황과 필요에 따라 자신의 뜻이 드러나도록 계시하셨던 것이다.
2. 느부갓네살의 꿈과 다니엘
(1) 느부갓네살 왕의 꿈과 그의 황당한 요구(2:2~6)
느부갓네살이 바벨론 제국의 왕위에 오른 지 이 년이 되던 해에 꿈을 꾸게 되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 년이란 상당히 폭넓은 개념이다. 왕은 그 꿈을 꾸고 나서 내용은 잊어버린 채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꿈을 꾸고 난 후 번민에 빠져있던 그 기간은 아마도 하루 이틀이 아닌 상당히 긴 기간일 수도 있다. 어쩌면 꿈을 꾸고 나서 그것으로 인해 몇 년간 고민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그것이 사건화된 시기는 다니엘이 왕립학교 교육 기간을 마친 후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다니엘이 공부한 왕립학교는 삼 년 교육 기간이었다. 하지만 그 삼 년이라는 교육 기간은 만 삼 년이 아니라 햇수로 삼 년이라는 말로도 이해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느부갓네살 왕은 꿈을 꾸고 난 후 내용을 까맣게 잊어버린 상태였지만, 그 꿈의 내용이 징조를 가진 것으로 반드시 알아야만 할 매우 중요한 내용이라는 사실은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은 그 꿈의 내용을 기억해내기 위해 많은 애를 썼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모든 노력을 기울여 꿈의 내용을 기억하려 해도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더욱 번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왕은 결국 자기가 꾼 꿈의 내용을 알아내기 위해 전국에 있는 유명한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와 갈대아의 술사들을 소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들 가운데 자신의 꿈을 알게 해줄 자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어쩌면 그가 정말 자기의 꿈을 알게 해줄 사람이 있으리라고 믿었다기보다는 그만큼 그의 답답한 마음을 보여주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그의 태도를 통해 그 꿈을 알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을 보게 된다. 때문에 그는 전국의 유명한 점쟁이들과 술객들과 박수들을 불러 모아 그들에게 물어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들은 당시 바벨론 제국에서 최고의 지혜를 가진 학자들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왕은 유명한 점쟁이들과 술사들을 불러 모은 후 자기의 꿈에 연관된 자초지종을 말했다. 자기가 그 전에 어떤 꿈을 꿨는데 그 내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해 마음이 심하게 번민하고 있으니 그것을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거기 모인 내로라하는 뛰어난 술사들은 왕이 꾼 꿈의 내용을 알려주어야만 그에 대해 해몽을 할 수 있으리라고 말했다.
그런데 저들에게 내려진 왕의 명령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꾼 꿈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니, 저들로 하여금 그 꿈을 알려주고 그에 대한 해몽까지 해주도록 요구했던 것이다. 그는 만일 그들이 자기의 꿈을 알게 해주면 큰 상급을 내리며 영예를 얻게 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패가망신하게 되리라고 공언했다. 답변을 하지 못할 경우 저들의 몸을 쪼갤 것이며 저들의 집으로 거름터를 삼겠노라고 단언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속히 자신이 꾼 꿈의 내용을 알려주고 그에 대한 해몽을 해주도록 명령을 내렸다. 느부갓네살 왕의 요구는 결코 이성을 갖춘 정상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의 행동이라 할 수 없다. 그것은 상식을 초월한 억지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바벨론 제국의 박사들에게 왕으로부터 그와 같은 엄중한 명령이 내려졌다.
(2) 왕의 진노(2:7~12)
느부갓네살 왕의 준엄한 명령에도 불구하고 왕이 꾼 꿈의 내용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술사들은 꿈의 내용을 알려주면 그에 대한 해몽을 하겠노라고 되풀이하여 말했다. 그것은 누가 보아도 지극히 상식적이며 합리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꿈으로 인한 번민으로 조급해진 왕은 술사들의 당연한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도리어 술사들을 책망하였다. 왕은 그들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려고 한다며 몰아붙였다. 즉 그들이 왕 앞에서 거짓말과 망령된 말을 꾸며 분위기가 변할 때를 기다리려고 하지만 결코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닦달했다. 그리고 달리 그 상황을 피할 생각을 하지 말고 자신이 꾼 꿈의 내용을 알아내고 그에 대한 해몽을 하도록 요구했다.
거기 모인 술사들도 왕 앞에서 단호한 반응을 보였다. 세상에는 왕이 꾼 꿈을 알게 할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용한 점쟁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권력 있는 위대한 왕이 자신도 모르는 꿈의 내용을 알아내도록 박수들과 술사들에게 물은 예가 없다고 변명했다. 꿈을 꾼 당사자가 기억하지 못하는 꿈의 내용을 알려달라고 하며 그에 대한 해몽을 요구하는 것은 희한한 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느부갓네살 왕이 지금 술사들에게 얼토당토않은 비상식적인 요구를 하며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있었던 위대한 왕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행하지 않은 상식 이하의 요구를 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는 왕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의 표현이자 왕에게 은근한 책망을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신들이라면 몰라도 박수나 술사들에게 알아내라고 요구하는 왕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왕의 처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응했다.
술사들의 이러한 반응은 꿈으로 인해 번민하고 있던 왕이 진노를 더욱 크게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의 명령을 어긴 바벨론 제국의 모든 술사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3.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통한 다니엘의 부각
(1) 위기에 빠진 다니엘과 그의 반응(2:13~18)
분노한 느부갓네살의 명령으로 인해 바벨론 제국의 많은 술사들과 박수들이 처형당하게 되었다. 그것은 결국 왕궁에서 교육을 받은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왕의 경호대장인 아리옥(Arioch)은 왕명에 따라 전국에 흩어져 있는 술사들을 체포하기 위해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아마 당시 권력층에는 전국의 유능한 술사들과 박수들에 대한 명단이 준비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와중에 다니엘은 경호대장 아리옥에게 왕의 꿈에 연관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라는 말을 전했다. 그것은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명철하고 지혜로운 말이었다. 그에 대한 소신을 전하기 위해 다니엘은 직접 왕을 찾아가 알현했다. 이 사실은 당시 다니엘이 상당한 요직에 있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다니엘에게 대단한 용기가 없었다면 그런 행동을 취할 수도 없었다. 당시 느부갓네살 왕은 극도의 분노에 차 있는 상태였으므로 자칫 잘못하면 그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형편이었다.
다니엘이 왕을 찾아갔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왕에게 나아가 만일 자기에게 시간을 준다면 왕이 꾼 꿈을 알려주고 그에 대한 해몽을 하겠다고 말했다. 왕은 다니엘이 하는 말을 듣고 그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겠으니 그렇게 하도록 허락했다. 다니엘은 집으로 돌아가자 즉시 그의 세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전하고 하늘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께 긍휼을 베푸시도록 기도했다.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느 인간도 알 수 없는 은밀한 것, 즉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의 내용을 자기들에게 알려주시도록 기도했던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바벨론의 다른 술사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간구였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지혜를 간절히 구했다.
(2) 하나님의 응답(2:19~23)
하나님께서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의 기도를 들으셨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내용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응답이 다니엘의 단독적인 기도의 결과가 아니라 그의 친구들과 함께한 기도로 말미암은 응답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바벨론에 거하는 모든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간곡한 기도를 들으시고 다니엘에게 그 은밀한 것을 환상으로 보여주셨다. 그것은 느부갓네살 왕이 오래전에 꾸었던 꿈의 내용 그대로였다.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에게 먼저 꿈으로 보여주셨으며, 다니엘에게는 그것과 동일한 내용을 환상으로 보여주셨다.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의 내용을 환상을 통해 그대로 보게 된 다니엘은 하늘의 하나님께 찬송을 돌렸다. 그것은 단순히 느부갓네살의 꿈을 알게 되어 자신의 생명을 구하게 되었다는 외형적인 안도감 때문이 아니었다. 그 꿈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에게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이 꾼 꿈에 대한 내용을 다니엘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신 것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신음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소망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다니엘은 지혜와 능력의 하나님을 찬송했다. 이 말은 인간들에게는 그와 같은 지혜와 권능이 없음을 고백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모든 참된 지혜와 지식이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말해주는 것과 같다. 또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때와 기한을 바꾸시며 왕들을 세우기도 하시며 폐하기도 하시는 분임을 고백하고 있다. 이 말은 모든 왕들 위에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통치권이 존재하고 있음을 노래하는 것이며, 인간들에 대한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지혜로운 자에게 지혜를 주시며 참 지식을 가진 자에게 총명을 주신다. 이는 모든 참된 지혜와 지식의 근원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이시며 인간들 자신에게는 아무런 지혜와 지식도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다니엘은 자신이 특별한 지혜와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모든 지식과 능력의 근원이심을 고백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도저히 알 수 없는 은밀한 것, 즉 느부갓네살이 꾼 꿈을 다니엘에게 환상을 통해 알려주셨다. 그것은 다니엘로 하여금 언약의 하나님께서 지혜와 능력을 허락하신 줄 알고 그에게 감사하며 찬양토록 했다. 그 놀라운 일은 빛 가운데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일이었다.
(3) 다니엘의 결단과 느부갓네살 왕 알현(2:24~30)
다니엘은 그 후 제국 내의 모든 술사들과 박수들을 처형하라는 왕의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 중인 경호대장 아리옥을 찾아갔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그는 아리옥에게 자신이 느부갓네살 왕이 꾸었던 꿈의 내용을 알게 되었음을 전했다. 자기가 왕에게 자신이 알게 된 꿈과 그에 대한 해몽을 말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이것 역시 어떤 의미에서 다니엘에게는 생명이 달린 모험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다니엘이 왕에게 그 꿈의 내용을 알려준다고 해도 과연 그런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일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리 없지만,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과 요구를 하는 자기중심적인 느부갓네살 왕을 볼 때 그런 염려가 완전히 떠나지 않는다.
느부갓네살 왕의 꿈의 내용을 알아냈다는 다니엘의 말을 들은 아리옥은 그를 왕 앞으로 데리고 갔다. 느부갓네살은 자기 앞에 선 다니엘에게 먼저 자신의 꿈과 그 해몽을 알려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다니엘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으로 하여금 왕이 꾼 꿈의 내용을 알게 하신 사실을 말했다. 바벨론의 박수나 술객 그리고 용하다고 하는 점쟁이들이 도저히 알 수 없는 내용이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그것을 알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는 바벨론의 지혜자들과 그들이 추종하는 신들이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왕 앞에 선포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은밀한 것을 알게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사실을 당당히 말했던 것이다.
다니엘은 왕에게 구체적인 꿈의 내용을 알려주기에 앞서 그 의미부터 말했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에게 꿈을 꾸게 하신 것은 후일에 될 일을 미리 알게 하기 위해 그 꿈을 꾸게 하였음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왕이 그 꿈을 꾸게 된 과정부터 소상히 말하기 시작했다.
오래전 어느 날, 왕이 잠자리에 들면서 장래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을 왕에게 알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 꿈의 내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왕에게 다니엘이 그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는 것은 자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지혜가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장래의 일을 왕에게 알려주시려는 하나님의 뜻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다니엘은 이제 느부갓네살 왕에게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알려주신 꿈의 내용을 말하게 된다.
우리가 분명히 명심해야 할 점은 다니엘의 이러한 모든 행동이 진정한 믿음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이다. 느부갓네살의 꿈을 알아내는 것은 다니엘이 자신의 지혜로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 알고 계시는 내용이었다. 다니엘은 꿈을 꾸고 나서 그 내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느부갓네살의 꿈을 하나님의 환상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보여주신 내용을 왕에게 그대로 말하는 것밖에 없었다.
4. 다니엘의 꿈 해몽과 요셉의 꿈 해몽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의 까맣게 잊어버린 꿈을 그에게 다시금 알려주고 그에 대한 해몽을 하게 된다. 이는 애굽에서 바로 왕의 꿈을 해몽해주던 요셉을 기억나게 한다. 형제들에 의해 억울하게 이방 왕국인 애굽으로 팔려 간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던 인물이었다. 그는 애굽에서 출세할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아무도 해석하지 못하는 바로의 꿈을 해몽함으로써 애굽의 최고위 관직에 앉게 되었다.
우리는 바로가 꾼 꿈들과 그것으로 인해 심란해하던 바로에 관련된 창세기의 기록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나일강 가에 있던 일곱 마리의 살이 찌고 보기 좋은 소들과 또 다른 일곱 마리의 파리하고 바짝 마른 흉측한 소들에 관한 꿈을 꾸었다. 그런데 그 흉측한 소들이 일곱 살진 소를 잡아먹었다. 그리고 뒤이어 잘 무르익어 탐스런 일곱 이삭과 바짝 말라 열매를 맺을 수 없는 다른 일곱 이삭에 관한 꿈을 꾸었다. 그 마른 일곱 이삭은 좋은 일곱 이삭을 삼켜버렸다.
바로는 그 꿈을 꾸고 나서 그 꿈이 징조가 있는 중요한 꿈이라 판단했다. 그는 꿈을 해몽하기 위해 애굽의 모든 술객들과 박사들을 왕궁으로 불러들였으나 아무도 그에 대한 분명한 답변을 할 수 없었다. 실력이 탁월하며 용하다고 소문난 자들이 많았겠지만, 그 가운데 어느 누구도 바로의 꿈을 해몽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번뇌하던 바로의 꿈을 해몽한 자는 애굽에서 이방인으로 생활하고 있던 요셉이었다. 요셉은 바로의 꿈의 내용을 듣고 나서 앞으로 칠 년간 큰 풍년이 들겠으며 뒤이어 칠 년간의 엄청난 흉년이 닥치게 될 것이니 그에 대비하라고 말했다. 그로 인해 바로는 요셉을 애굽 온 땅을 다스리는 총리로 기용하게 되었다.
창세기에는 그에 관한 모든 과정들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창41:1~36). 그것은 요셉이 가진 능력 때문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된 것이었다. 요셉은 그 꿈을 잘 해몽하게 됨으로써 그가 애굽의 가장 중요한 요직에 앉게 된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던 다니엘에게 일어났다. 다니엘은 패망한 민족의 자손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바벨론 제국 안에서 점차 위치를 굳건히 하게 된다. 그러던 중 느부갓네살 왕의 잊어버린 꿈을 알려주고 해몽함으로써 바벨론 제국의 최고위직에 오르게 된다.
선지자 다니엘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알게 되고 그것을 해몽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장자(長子)였던 요셉’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해 애굽의 바로 왕의 꿈을 해몽하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여 메시야 사역을 이루어가고자 하셨다. 이는 물론 훗날 일어나게 될 일이었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이 담겨 있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 민족 구원에 연관된 요셉의 꿈과 역사적인 사실들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았을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신앙 자세를 지닌 다니엘에게 친히 응답하심으로써 느부갓네살의 꿈을 알려주고 해몽하게 하셨다. 그 가운데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메시야 사역에 연관된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애굽의 포로와 다르지 않은 상황에서 최고위 공직에 올라 애굽 전역을 호령하던 요셉과, 바벨론 제국의 최고위 공직에 올라 천하를 호령하던 다니엘 사이에는 유사성이 많다. 성경에 나타나는 인물 가운데 이방의 대제국에서 최고의 권좌에 오른 사람은 요셉과 다니엘 두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점은 하나님께서 요셉과 다니엘을 대제국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힌 까닭이 저들을 개인적으로 출세시키려는 목적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에 대한 가장 명확한 깨달음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역시 당사자인 요셉과 다니엘이었다. 그들은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하나님께서 세속왕국의 절대적인 권력을 소유한 왕들이 꾼 ‘꿈’이라는 방편을 통해 역사하신 것은 그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언약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느부갓네살의 꿈을 통해 다니엘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도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으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과정을 통해 메시야 사역을 역사 가운데 지속적으로 진행시켜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