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93구간(한울공원해수체험장~인천 남동체육관, 2023년 12월 27일 ) 걷기
한참을 존듯했다. 서울역이다. 겨우 30분이 지났다. 빈자리가 듬성듬성했다. 4호선 전철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충무로역을 지나면 한가해진다. 출근 시간을 비켰으니 더욱 그렇다. 가방을 열었다. 보온병, 귤, 바나나, 빵 등이 눈에 들었다. 황야문학을 꺼냈다. 표지부터 순서대로 훑어 나갔다.
권두언, 특집, 시, 시조 등 다 무난하게 지나갔다. ‘하이쿠’가 이어졌다. 나에게 생소한 장면이었다. 하이쿠는 3행 17음절로 구성되었으며 각 행은 5·7·5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전통적인 31음절의 단카[短歌]라는 시의 처음 3행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도쿠가와 시대[德川時代 : 1603~1867]에 단카와 더불어 유행했으며, 마쓰오 바쇼[松尾芭蕉]가 이 시 형식을 매우 세련되고 의식 있는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한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관계로 평가는 유보한다. 수필부터 후반부 읽을 과제를 남겼다.
흔들거리는 차에서 책 읽기는 어지럼증을 유발한다. 수리산역 정도에서 책을 가방에 넣었다. 오이도역까지 가는 과정에 풍광은 많이 변해 있다. 안산은 화려한 고층아파트로 탈바꿈했다. 반월공단은 변하지 않은 세월을 하고 있다. 중소기업 정책의 미비와 홀대로 어려움이 가중됐을 것이다.
오이도역 버스정류장에서 한울공원해수체험장을 가는 버스 타기가 어렵다. 62번 버스를 타고 갈아타려고 했는데, 방향이 맞지 않았다. 세 정거장 가서 내렸다. 지도 검색을 통해 한울공원헤수체험장까지 걷기로 했다. 4km 1시간 거리다. 배곧신도시는 화려한 고층아파트로 포장을 했다. 서울대학교가 들어설 예정지 등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고, 지어지고 있다. 한참을 걷다가 상가 입주가 거의 안 된 무인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이선균 배우가 차량에서 불을 피우고 죽었다는 속보가 떴다. 연기를 참 잘하던 배우였다. 나도 끌림이 많이 갔었다. 앞으로 더욱 활발한 활동과 기대가 큰 배우였다. 얼굴이 알려진 인기스타가 술 한잔 마시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신적으로 감당해야 할 무게도 무거웠을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음모론은 여전히 중구난방으로 제기되었다. 윤석열검찰정권의 무도한 여론몰이가 안타까운 목숨을 앗아 갔다는 추정이다. 진실은 알 수 없다. 다만, 선량하고 멋지고 의리 있으며 뛰어난 배우가 마약으로 한순간에 모든 것에 맞서야 하는 과정이 절대 쉽지는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우리 시대의 연인이었던 진실이 생각났다. 산다는 것과 인생이라는 것에 새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낮지만 가깝게 느껴지는 옥구공원(산)에 시선이 갔다. 지난번 걷기에서 영근 씨가 이야기해서 정신이 더욱 쓰였을 수도 있다. 슬픈 마음에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했을 것이다. 해수체험장이 눈에 들었다. 두루누비 앱으로 지난번에 찍었던 서해랑길 93구간이 시작하는 바코드를 다시금 찍었다. 시흥시 배곧이다. ‘배곧’은 배우는 곳을 말하는 순 한글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도시의 이름이다. 바다 건너서 보이는 곳은 인천 남동구다.
부지런히 걸었다. 사진도 찍어야 했다. 낯선 사람에게 사진을 부탁하는 일은 계면쩍은 일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처음 부탁한 사람은 그냥 지나쳤다. 그 이후 세 번의 부탁은 사진으로 나타났다.
배곧은 신도시라는 말처럼 30층이 넘어 보이는 아파트로 화려한 단장을 뽐내고 있다. 해안가를 걷는 배곧 구간은 오밀조밀 다양한 시설물이 눈에 들었다. 공원은 도시인의 쉼터로 편안해 보였다. 엉뚱하게 길을 지나치기라도 하면 두루누비 앱은 어김없이 길에서 벗어났다고 소리를 쳤다. 네 번 정도 그런 과정이 있었다. 해넘이 다리에서 그랬다. 뒤로 돌아서 다리를 건넜다. 인천 남동구다. 바다를 풍경으로 둔 길은 아름답고 행복한 느낌을 가득 채워주고 있었다. 소래포구를 지났다. 언론에 오르내렸던 기억이 스치고 지나갔다. 걷고 있는 시각에도 비슷한 뉴스가 계속 보였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고등학생에게 썩은 대게를 판 것이다.
소래포구를 지나 소래습지생태공원을 만났다. 멀지 않은 가까운 곳에 이리도 멋진 생태공원이 있었다. 순천만습지가 멀다고 느껴지면 소래습지를 찾으면 된다. 순천만습지는 입장료가 있지만 소래습지는 그저 들어만 가면 된다. 다 돌아보려면 꽤 시간과 정성이 필요할 듯싶다. 길을 잃기 십상이다. 보이는 사람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사진을 찍고 가던 중에 두루누비앱이 두 번씩이나 저절로 꺼져버렸다.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폰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면 쉬어가는 의자에 앉아 있는데 사진을 찍어 준 분이 지나갔다. 서해랑길을 물었더니 서해랑길에 대해 모른다고 했다. 둘레길은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가다가 보면 둘레길로 이어진다는 대답을 들었다. 준비해간 빵에 물도 먹으면서 잠시 쉬었다.
다시금 나선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참을 가다가 다시금 그 사람을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걸었다.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헤어졌다. 길 안내에 고맙다고 인사를 전하며, 시민과미래 명함을 건넸다. 혹시 연락을 주시면 시집을 한 권 선물하겠다고 했다. 다음에 걸여야 할 서해랑길 94구간의 시작점인 남동체육관 바코드를 찍었다. 체육관 화장실에 들렀다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한참 기다려서 송내역에 도착했다. 혼자 걸으니 시간이 앱에서 안내하던 시간보다 많이 줄일 수 있었다. 혼자 걷는 것과 여럿이 걷는 것에 장단점이 있는 것이다. 대중교통 소요 시간이 많이 든다. 그래도 수도권이기에 가능한 걷기라 할 것이다. 이제 시작했으니 일상의 행운이 노을처럼 빨갛게 타오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