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봄날은 43살에서 49살까지인 것 같다.
그때는 작은 딸이 중학교 2 학년이 되었고, 큰 딸은 고등학교 2학년이다.
자식에게 손이 들 가자, 나는 이제야 내가 다른 일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장사를 하고 싶었다. 서점을 낼까?
뭘 할까? 하다가 신문광고에 "한복순 식품 대리점 광고"를 보고 나는 왜 그것이 하고 싶은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나는 돈을 버는 재주가 있었는가 보다.
식품점 <한복선 식품대리점 서구점>을 열고,
장사를 시작했는데,
겁도 없이,
물건을 들고 길거리에 나가서
이거 사보라고 광고를 하고 , 시식도 해서 장사를 잘했다.
내가 생각해도 대단하다.
어느덧 3년이 지나 자리가 잡혔는가 하는데,
집을 팔았다고,
상가가 팔렸다고,
나에게 나가라고 한다.
나는 다음 장소로 팔달시장 매천시장 등으로 알아보다가 매천시장으로 정했다.
연고도 없는데
그때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청소부아저씨에게 담배 사 들고 가서 물었다.
필요한 상황을 알게 되고,
그중에 빈 곳이 있다는 정보와 사무실 사람과 연결이 되었다.
나는 겁도 없이 또 시작했다.
대구에서는 아무도 시작 못 한 김치를 수입했다.
내가 한 것이다. 나는 천방지축을 나도 모르게 뛰었다.
뛰고 또 뛰었다.
새벽에 4시 되면 매천동에 나가 장사를 하고 ,
아침 9시에 밥 먹고.
오후 3시 되면은
다시 물건을 받아 창고에 넣고 넣고 또 넣고,
우리 창고가 모자라서, 남의 창고 2~3개 빌려 창고에 넣고 넣고 해서 매일 물건을 받았다.
부산에 일주일에 1번만 컨테이너 받는 것이 아니고, 4번을 받았다. 평택에서 2번 하루 안 오면은 난리가 났다. 작은딸이 방학을 맞아 내일을 거들다가 김치가 없어서 못 파는 것을 보고 본사에서 사람 나온 사람에게 "김치가 없어서 장사를 못 하게 하는 경우가 있냐?"라고 난리를 쳤다.
나는 신났다.
잠을 안 자고, 밥을 안 먹고, 집안일도 내 팽개치고,. 장사에 매진했다.
남편이 월급을 줬는지 주는지 생각도 못하고,
나는 그보다 열 배 백 배 많은 돈을 만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월급을 여러 차례 못 받은 것 같다.
큰 딸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자주 가지를 문해 아이는 집 멋대로 하고 있었다.
얻어준 전셋집에서 안 지내고, 다른 곳에 있었고, 그 집에는 다른 아이들이 수북이 살고 있었다,
남편은 어떤 여자에게 밥 사주고 커피 사주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신나게 장사에 올인하고 있었다.
정신 차려보니
엄마가 아프다.
매일 집에 가는 길에 84살 엄마에게 들러,
내 마음대로 필요한 물건 들여놓고 지나갔는데,
그것으로 부족하다.
큰 길가에
가게 확장하려고 준비 중인데~~~
빨리 선택했다.
더 이상은 안 된다.
나는 1톤 냉동탑차를 몰고 가
엄마를 태우고,
맥박석 침구를 초인적인 힘으로 싣고,
신천대로 타고, 서재집으로 데려왔다.
엄마는
우리 집으로 와서
6년을 더 살다가 90살 생일 한 달 뒤에
돌아가셨다.
그때 큰 길가게를 계속했으면 어땠을까?
지금 생각하면, 돈을 많이 벌었을까?
건강은 잘 지킬 수 있었을까?
자식은 잘 키웠을까?
그때가 신명 나게 뛰어다닌 나만의 "인생믜 봄날"이었다.
2024.04.20. 낮 끝.
있던 어느 날. 그것을 알게 된 계기가 있었다. 작은딸이 들어갔다가 작은딸에게 전화기를 점검해 보니 어디예요 하는 문자가 나왔다 이거 뭔데 하고 물었더니 아빠 휴대폰이고 전에도 이런 문자가 있었다 그런다. 음 내가 무심하게도 음 남편의 휴대폰과 딸이 휴대폰은 우리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가져 나와 살펴보니 어떤 여자의 목소리에서 전화를 해보니 예쁜 목소리가 들렸다. 음 그 전화 걷던지 전화국에 물었어. 아이 전화를 바꾼다 하고 그 상황을 물어보니까 전화 요금이 그기 조금 나오는 40 되는 여자였. 됐다
나는 그 길로 남편에게 닦달했다. 이거 무슨 전화야? 왜 이런 전화가 오냐 왜 이런 통화를 하냐 남편은 전전건강 변명하기 바빴다 아 우리 공장에 일하러 왔는 사람인데? 일어나게 된 사람인데 내일 만나게 해 줄까 내일 나오라 할까 아니 그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인데 내일 나오라 카면 나오고 어 어 국화냐 만약 내인데 물으면은 나는 내일 일정이 있는지 살펴봐야 되고 어 생각해 볼 것도 있는데 그 사람만 나오라 하면 나오고 음 그러냐 아 그리고 그 나올 수도 없고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황당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지만 일단 그다음 날 지났다. 그다음 날이 되니 약속된 시간에 남편이 전화가 왔다. 빨리 오라고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카페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