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의 길
소년의 신앙
이 무렵부터, 부모님의 신앙에 영향을 받아, 나 자신도,
" 또 한 사람의 나"
를 찾아 혼자서 신앙심을 품게 되었다.
마을 근처에 있는 백산 신사라는 조그마한 신사에,
비가 오는 날도 바람 부는 날도, 눈 내리는 날도 매일 참배하고,
아침 저녁 6시에 2회, 신사를 청소하고 명상과 기도를 거듭했다.
열 살 부터 열세 살까지 삼 년 동안 계속했다.
사쿠 고원 지대의 엄동설한에도 꺾이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신불을 향한 신앙심에, 어린 소년의 영혼은 불탔다.
어느 날 나는, 어머님과 함께 나리다 산에 참배하러 갔었다.
그때 검은 옷을 입고 만두 모양의 삿갓을 깊게 눌러쓴 낯선 행각승을 만났다.
그 스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 병 걱정은 말아라. 멀지 않아 낫는다.
너의 눈은 이중 동자다.
열심히 공부하면 반드시 영력을 갖게 될 것이다."
어머님과 나는 그저 눈을 뜨고 멍하니 들었다.
그 스님의 예언대로, 내 병은 거의 반년만에 나았으며,
그 후로는
" 또 한사람의 나"
도 나타나지 않았다.
얼마 후, 전에 만났던 그 행각승과 같은 모습의 스님이,
놀고 있는 내 곁에 다가와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 얘야, 언제나 혼자서 신불을 잘 믿고 있구나."
아무도 없었던 신사인데도,
이 스님은 어째서 나의 일을 잘 알고 있을까, 하고 나는 의문을 가졌다.
스님은 게다가,
" 오늘 밤은 이 냇가에서 잘 테니, 저녁때까지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가르쳐 주마."
그리고 과자를 주는 것이었다.
냇가의 잡초에 빨간 잠자리가 앉아 있다.
벼가 익어가는 논에 괴인 물이 물고에서 소리를 내면서 흘러내린다.
그 물소리는 내 마음의 소리와 같았다.
그 친절한 스님의 말을 믿고 옆에 앉으니,
스님은 나의 장래에 대해서 친절하게 말씀해 주셨다.
" 마음이라는 것이, 모든 것의 근본이다."
라는 어려운 말씀도 해 주셨다.
그 말씀을, 나는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
어느 때는, 우리 집으로 완전히 똑같은 듯한 행각승이 찾아와서
내가 잘 크고 있는가 물어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 집에는 이상하게도 그런 행각승이 자주 찾아와서는,
나에게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르쳐주고 가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시대에도,
" 또 한 사람의 나"
가 왜 나타났던가, 에 대한 의문이 완전히 마음속에 새겨져,
나는 신불의 실체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공부는 별로 취미가 없었고, 신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금방 생기가 돌고 신명 나게 끼어들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산과 들을 쏘다녔다.
6학년 1학기 때.
" 노력이 천재를 이긴다."
" 하면 되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무슨 일이든지 안 되는 것은, 사람들이 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칠판에 써 놓고는 항상 사람의 마음자세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던,
다나카 담임 선생님의 교훈도, 내 인생에 큰 신념을 불어넣어 주셨다.
군인 지망의 나는, 소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갔으나,
그 길에의 수험 공부를 강의록으로 익혀, 희망대로 목표하는 학교에 입학하였다.
집단생활의 첫걸음이었다.
이 생활 속에서, 나는 사상에 바탕을 둔 교육으로서는,
신리의 판단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상은 자기 자신의 의식을 잃고,
인간이 만든 역사의 옳고 그름까지 통째로 외우게 한다.
이래서는 마음의 진리를 파악할 수 없다.
나는 이때에도 계속
" 또 한 사람의 나"
를 추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당시는 육체와 의지의 단련이 주체이고,
화학. 물리. 지질학 등의 기초적인 학문이 교육의 전부였으며,
극미의 세계에 대한 의문이나, 극대의 우주의 관계 등을 사색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전쟁은 격렬해졌으며, 그 허무함을,
나는 친구의 죽음에 의해서 뼈저리게 느꼈다.
순수한 젊은이들이, '명령'의 이름 아래, 죽음의 공포를 간직한 채 사라져 갔다.
왜 전쟁을 하는 것일까.
인간끼리 서로 죽이고 새로운 무기로써,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다.
나의 인생에 대한 의문은 더욱 확대되어 가고, 해결의 실마리를 풀 길이 없었다.
종전.
나는 몇 번인가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제대하여 부모님 앞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평화롭게 되어 보는 고향의 산천은, 나에게 평안을 주었다.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군대 생활과는 전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고향의 풍경에 취해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육군 생도 시절 배웠던 공부를 하기 위해, 두 달 후에 상경했다.
형님 집에 신세를 지면서, 물리, 화학의 공부에 열중함으로써,
나의 전후의 즐거움이 생겼다.
극미의 세계랑 극대의 세계의 관련이, 우리들 인생과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일까.
이러한 방향으로 나의 사고는 비약해갔다.
또 한편으로는 생활 수단을 위해서 전기공학을 배웠다.
차츰, 극미의 세계의 집단이 극대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깨달았으며,
물질계의 짜임의 개략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 또 한 사람의 나"
에 대한 실마리를 잡기 위해서는, 육체의 세포와,
오체의 여러 기관의 구조를 공부하지 않으면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식량난이 심한 때라, 감자 장사를 하면서 내 공부는 계속되었다.
학우인 사토 군이 라디오 조립의 일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주문도 많았고,
수리 등의 일로써 경제적으로는 편했었다.
나는 학력. 성적 등에는 구애받지 않고, 오직 수수께끼의 해명을 위해서
" 또 한 사람의 나"
를 찾고 있었다.
경제 기반을 튼튼하게 해서 연구하기 위해,
나는 조그마한 공장을 차려, 경제력을 키워 나갔다.
마음의 발견 (신리 편) - 다카하시 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