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 무료급식소(주로 노인분들을 위한)에 들렸는데
한 남자 청년이 식사를 마친 식판을 받아 주면서 제게 '아버지, 식판 주세요'라는 말을 듣게 되었는데
머리한 꽁지 머리를 보니 제가 식판을 받을 때(노인분들이 식판을 가지고 빈자리를 찾아가기가 힘들게
노인대상 무료급식소는 봉사자들이 식판을 받아 자리를 잡아 줌) 제 식판을 받아 빈자리에 안내해 준 청년
이더군요.
이런 노인 대상 무료급식소에서는 주로 '할아버지 할머니 어르신' 등으로 호칭하는데
저처럼 어쩔 수 없어 중년에 가까운 이들이 오게 되면 호칭이 불려지는 것을 꺼려 하는데 '아저씨'라는 호칭만으로도
노인대상무료급식소에서 무료급식을 받을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되어 자격지심에 불편한 마음에 식사를 하기도 합니다.
(이 무료급식소 홈피에는 책임자께서 비록 노인대상 무료급식소이지만 중년이 찾아오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 삼지 않는다는 글이 있음, 일단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기에라는 이유로, 저도 이 곳은 토요일 일요일 두번만 찾아감, 벌써 이 곳도 2년 차가 되었음, 매주 보는 2명의 남자 봉사자가 있지만 대화 나누는 것도 없이 눈인사로 인사하고 이 분들도 저를 받아줌)
제 입장에서는 그냥 조용히 왔다가 식사하고 가는 것이 한번씩 저를 노인으로 착각한 청년 봉사자들이 '할아버니나 어르신'으로 불리기도 했지만(귀쪽에 난 흰머리로 그럴 수도 있음, 근데 체격이나 목소리는 청년 봉사들의 아버지 뻘에 속한 중년이기에) 한버도 '아버지'라 불린 적이 없기에 그렇게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지나가는 말이였지만 제가 처음으로 '아버지'(식당에서 '이모'라로 불리는 수준의 호칭이였지만)라는 호칭을 처음 들어봤습니다.
원래 아버지의 외도로 풍지박살난 가정에 대한 상처로 저는 좋은 가정의 가장이 될려는 환상과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대학1학년때 신앙을 가진 후에는 신앙 안에서 결혼을 꿈꾸다가 먼저 사역자로서 자신을 준비하는 과정(제 안의 음란성을 발견 후)에서 사역도 결혼이 먼저가 아니라 먼저 '사람이 되자'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사회에서 말하는 인격적이고 도적적인 수준(언행이 뛰어남)이 아니라 마음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수준의 '사람'으로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중년의 나이에 사역자로서도 가장으로서 삶을 살지도 못하고 급성우울증으로 인한 고독사를 피해 사회로 부터 도망해 무료급식소를 이용하는 제 자신의 현실에 서울도서관에서 오랜만에 많은 눈물을 남몰래 흘린 적이 있기도 했습니다. 사역자의 호칭은 얻지 못한다고 해도 모든 대부분의 남성들이 얻게 되는 남편 아버지의 호칭을 얻을 기회가 거의 사라진 현실 앞에 절망감의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이런 제 형편이 사도바울이 디모데와 디도를 아들아 라고 부르는 모습에서 나름 깨닫는 것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제가 사역을 위해 결혼과 자녀를 포기한 불교의 승려나 천주교의 신부의 삶을 지향한 것도 아닌데 현재 저의 형편은 이런 승려나 신부의 삶인 사역자의 삶도 아닌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처지에 놓인, 하나님의 사랑의 관점에서 저의 영적 가치를 찾지 않으면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생을 달리할 형편임에도...이런 고민과 갈등은 제게 육의 사람에서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한 내적영적갈등이기는 하지만 이제 물리적 생물학적 나이로는 아버지의 삶을 살 수 없는 형편을 자각하고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비록 무료급식소에서의 남자 청년 봉사자의 식당에서 '이모' 부르듯이 부른 '아버지'라는 호칭은 제게는 '아버지'라고 불린 첫 경험(제가 나은 자녀가 아니지만)이라 오늘 이렇게 기록으로 글을 남깁니다. 다음에는 여성 청년 봉사자로부터 '아버지'라는 호칭을 들어볼 기회가 오겠지만 그때 다시 이와 같은 비슷한 글을 남겨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