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공인 노인이 되면서
그동안 풍수로 함께 한 분들의 안부를 여쭈어봅니다.
시작은 ‘학회’라는 공적 명칭으로 풍수를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한국기풍수지리학회’와 ‘한국참풍수지리학회’를 창립하여 운영하면서
풍수현장에서 대중과 소통하고 교류하며 소중한 배움의 인연을 조우하였습니다.
‘학회’ 운영의 임원으로, 현장 풍수행에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께 해주신 분들이 지금은 우리 사회에서 풍수의 중추적 역할을 해가고 있습니다.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신 분들도 많고, 독립된 풍수 단체를 이끄시는 분들도 많아졌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대부분이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자족하면서
큰 과오 없이 풍수 세계를 펼쳐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세상 살아가면서 만남과 이별은 찰라로 한없이 교차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풍수로 만난 어느 분을 소개합니다.
회원님께서는 ‘바람처럼! 물처럼!’ 풍수를 풍류하시는 분이십니다.
동양학에 관심을 가지고 풍수와 명리
그리고 생명, 한의 분야에 권위를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그러나 칠순이 가까워지면서 생활 환경과 조건이 건강에 무리가 되어
의지로 회복할 수 있는 임계점을 지나
극한 고통 속에서 생을 정리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가끔 전화로 대화를 하였습니다.
목소리에 기운이 없습니다.
음성은 낮고 세가 흩어져 있습니다.
어떠한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 반응입니다.
몸도 마음도 돈도 사람도 다 무너져 내리고 떠나버렸습니다.
주체적 삶의 의지가 사라지고 한없이 세월에 끌려갑니다.
무엇이라도 해보겠다고 애써 꿈틀거려 보지만 잠시일 뿐입니다.
공공의 손길도 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점점 이 삶에서 죽음으로
여름 햇살에 엿가락처럼 늘어진 연명의 고통이 무심한 시공에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그저 가끔 전화하여 가능한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새해가 되면서 완전히 주체적 삶을 회복하셨습니다.
마음도 몸도 되살아나셨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