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7월 12일(금) 이사야 2:1-4 찬송 407장
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 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개역 개정)
- 평화의 메시야 왕국 도래 예언 -
제 1장은 이사야서의 첫 장으로서 남유다의 종교적·도덕적 타락상에 대한
책망과 회개 촉구 및 심판 경고에 대해 기록하였다.
이어 2:1-4:6까지는 세계 만민이 여호와의 전(殿)을 중심으로 모여
평화의 왕국을 이룰 것에 대한 예언(2:1-4)과
남은 자의 구원과 축복 약속(4:2-6)을 양괄식 형태로 하고
그 사이에 여호와를 의뢰하지 않고 금은 보화를 의뢰하며
우상을 숭배한 모든 교만한 자들에게 대해 심판을 경고(2:5-4:1)하고 있다.
그런데 남유다의 구체적 죄악들을 지적하기에 앞서
이렇게 본문에서 메시야 왕국의 도래에 대해 먼저 언급한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더럽히고 있는 모든 죄를 철저하게 제거하시되
그 궁극적인 목적이 거룩하게 된 그 백성들을 통하여
메시야 왕국을 도래케 하는데 있음을 나타낸다.
이런 문맥하에서 본문은 세계 만민이 오직 공의의 말씀으로만
세계를 다스리시는 여호와를 흠모하여 그 전에 모일 것(1-3절)과
그 공의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그 모든 열방의 백성들이
완전한 평화를 이룰 메시야 왕국이 도래할 것(4절)을 예언하고 있다.
이는 결국 하나님께서 절대 공의로 이 세상 만민을 다스리시는 분이심과
범죄한 모든 백성에 대한 심판의 궁극적 목적이 그들을 멸하시는데 있지 않고
구원하여 평화의 메시야 왕국을 이루는데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모든 불의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공의만이 있는 메시야 왕국에 대한 소망을 더욱 견고히 하며(골1:5; 딛2:13)
나아가 이 소망이 속히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우리 각자가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공의를 이루어야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다져야 한다.(마6:33)
3a절)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많은 백성 곧 만방이 여호와의 전의 산 곧 교회로 모여들면서 하는 말이다.
그런데 본절을 보면 만방이 교회로 모여드는 이유가 나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당신의 길(道)을 가르치실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길’이란 구원의 길을 말한다.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구원의 문제이다.
죄 아래 있는 인간은 누구나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단지 육체적으로 죽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영원한 멸망의 고통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문제는 구원의 문제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본능적으로도 구원의 길을 찾는다.
세상의 수많은 세속 종교들은 사실 이처럼
본능적으로 구원의 길을 찾는 사람의 요청에 의하여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속 종교들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구원의 길을 제시하여 주지 못한다.
세속 종교는 다 사람이 만든 것이다.
따라서 구원의 길이라는 것도 사실은 사람이 제시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보면
다 인간적이고 불완전한 헛된 몸부림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죄 아래 있는 인간은 스스로는 구원의 길을 찾을 수 없다.
만일 세속 종교에서 구원의 길을 찾을 수만 있다면
세상에는 그처럼 많은 종교가 필요치 않을 것이다.
세속 종교들은 어느 종교도 진정한 구원의 길을 제시하지 못하기에
수많은 종교들이 저마다 구원의 길을 제시하며 생겨난 것이다.
때문에 공자와 같은 성인은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
곧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말하였다.
이는 구도자의 자세를 강조한 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세상에서는 구원의 길을 찾을 수 없다는 역설이 담긴 말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서는 진정한 구원의 길을 찾을 수 없다.
진정한 구원의 길은 오직 한 곳에서만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의 전의 산 곧 교회이다.
그래서 3절에서는 만방의 백성이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고 외치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다른 세속 종교에서 제시하는 것과 달리
여호와의 산, 야곱의 하나님의 전인 교회는
참되고 온전한 구원의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제시한 구원의 길이 아닌
인간의 구원과 멸망을 결정하시는 하나님께서 보이신 구원의 길이다.
사람들은 오직 교회 안에 있는 구원의 길,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세속 종교와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사람들 중에는 모든 종교는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
기독교 이외의 종교는 다 같을지 모르지만 기독교는 세상의 종교들과는 다르다.
기독교는 세속 종교들이 주지 못하는 진정한 구원을 준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또한 믿고 확신함으로 신앙 생활해야 한다.
그래야 당당하고 힘있는 신앙 생활,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베푸신 바 하나님이 제사하여 주신
그리스도의 유일무이한 구원의 복음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