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3호
박선희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사건, 아니 그것은 사고다.
처마 밑에 떨어진 물방울이 살짝 얼어 있는 것을 미처 모른 채 디딘 발이 미끄러진 순간.
발목은 금세 부어오르고 툭 불거져 있다.
발을 디딜 수조차 없는 지경에 꿈인가 하고서 눈을 감았다 떠보았다.
꿈이 아니었다.
엑스레이상으로 발목 골절이라고 한다. 쇠를 세 개나 박는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왼쪽 발로만 겨우 지탱할 수밖에 없는 몸을 하고서 병실에 누웠다. 감사히 수술은 잘 되었다.
탯줄 같은 링거를 달고서 아파서 잠들 수 없는 고통이 어떠한 것인지를 체감하며 누웠다. 무통 주사를 맞아도 아픈 것은 가라앉지 않는다.
맞은편에 누워있는 환자는 날 대신하여 꿈속에서 우는 것인지 엉엉 소리 내며 흐느껴 울고 있는 밤이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 되뇌며 지나온 일상을 돌아보며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다음날 또 한 사람이 병실에 들어온다, 계단을 내려오다 넘어졌는데 발목뼈가 부러지고 인대가 늘어났다고 한다.
옆의 영양 할머니는 방에서 넘어졌는데 팔꿈치가 부러져서 깁스를 하고 계신다.
문 앞에는 청송 아지매가 걷기가 힘들어서 칠십 평생을 사용하던 다리 수술을 하고 계신다.
창가의 예천 아지매는 교통사고로 양쪽 발을 수술하고서 휠체어에 의지하며 재활치료 중이다.
맞은편 안동 아지매는 발가락이 골절되어서 입원 중이다.
저마다의 아픔을 안고서 병실에 누웠다.
시간 맞춰 들어오는 밥을 약을 먹기 위해 모래알을 삼키듯 겨우 한술 뜨고 또 눕는다.
병실에서 제일 오래된 예천 아지매는 리모컨을 쥐고서 원하는 곳을 이리저리 조종한다.
문 앞의 청송 아지매는 양쪽 무릎을 수술한 불편하기 그지없는 몸으로 하루는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어릴 적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큰아버지 댁에서 식모처럼 살아왔다.
그렇게 입에 풀칠하며 커서 18살에 벙어리에게 시집을 가게 되고 시어른들을 모시며 시집살이를 맵게 했다.
술을 드시고 때리는 남편에게 맞으면서 아들 삼 형제를 낳았다.
그중 큰아들은 신장 투석을 하다가 40대의 젊은 나이에 가슴에 묻었다고 한다.
살아온 지난 삶을 이야기하는데 우리의 아픔은 잠시 잊은 채 함께 가슴 아파하며 마음을 나누었다.
울먹이는 아지매의 마음을 어루만지려 휠체어를 끌고 가서 손을 잡아 드렸다.
그날 밤 병실은 신음 소리와 코 고는 소리와 방귀 소리까지 더해 잠 못 들게 한다.
수술한 발목의 통증은 초침처럼 쉬지 않고 밤은 길기만 하다.
빨리 아침을 맞고 싶다.
아픔이 없는 밝은 날. 포도 위에서 걷고 싶다.
복도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희망으로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