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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第 三 章 喜悲의 雙曲線 북파무림맹(北派武林盟). 천하의 사분의 일을 지배하고 있는 당금 무림의 최강문파 가운데 한곳이다. 일개 문파에 맹이란 칭호를 붙일 수 있는 경우는 극히 희박하다. 성주 사마덕조,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삼국지의 조조를 닮았다고 평했다. 능수능란한 처세술과 적재적소에 인물을 배치하는 용병술. 한번 신의를 맺으면 무덤까지 함께 한다는 신뢰를 주니, 누가 그를 따르지 않을 것인가? 북육성 가운데 중원의 노른자위라 할 수 있는 하북, 하남, 산서, 산동성이 그의 휘하에 들었다. 예로부터 강북의 무사들은 거칠고 호방한 성품을 지녔기에 천하를 떨쳐 울린 호걸들이 탄생하곤 했었다. 사마덕조, 그도 무림일통이라는 거대한 야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한번도 자신의 야욕을 표출하지 않았다. 나머지 삼세, 즉 무적검맹과 환희천, 그리고 남극벌을 의식한 것이다. 그는 세 세력과 돈독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해서 현재의 무림은 이들 천하사세에 의해 평화로웠다. 누가 말했던가? 풍운은 항시 평화 가운데 잉태하고, 대란은 고요함 속에 탄생하는 것이라고. 현 무림의 정세도 그랬다. 천하사세의 침묵은 어디까지나 외견상 나타난 현상일 뿐이었다. 풍운은 잠룡이 장강을 건너며 시작된 것이다. 사마덕조는 아들인 사마군(司馬君)과 군사인 등표(鄧慓)와 함께 북파무림맹의 정청(政廳)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버지인 사마덕조는 육척의 훤칠한 키에 어딘가 유자(儒者)의 풍모가 흐르는 반면, 그 아들인 사마군은 모계(母系)를 탔는지 칠척에 육박하는 거구에 성품도 호방하기 이를 데 없었다. "등표, 섭소풍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설혹 그가 실패해도 크게 우려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등표! 조조에게 사마의라는 지략가가 있었다면 사마덕조에게는 등표가 있다는 말로 대변되는 인물! 문무겸전의 이 인물은 북파무림맹의 군사이자 대소사를 모두 맡아 처리하는 이인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등표의 말을 들은 사마덕조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실패가 두렵지 않다? 어째서?" "어차피 섭소풍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더구나 섭소풍은 우리 북파무림맹의 인물도 아니니 우리가 비밀리에 그들을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지도 않을 것입니다. 자연히 나머지 삼세의 시선을 피할 수도 있습니다." 등표는 잠시 말끝을 멈춘 뒤 재차 입을 떼었다. "그러나 어쩌면 나머지 삼세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겉으로 드러내지만 않았을 뿐이죠." "그렇다면 군사의 의중은?" "지금 상황에서 섣부른 행동은 나머지 삼세의 결속을 도와주는 결과를 낳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 힘의 균형이 깨지고 그 가운데 제일 힘이 약한 세력은 와해되고 맙니다." 잠자코 부친과 등표의 대화를 듣던 사마군이 물었다. "때를 기다리자 이 말씀이오?" 등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삼세 가운데도 필히 우리와 같은 목적 하에 움직이는 곳이 있을 것입니다." "섭소풍이 죽었을 것이란 뜻이군요. 아울러 그들이 성공하면 우리가 나머지 두 세력을 충동질해 그들을 궤멸시킨다는 복안, 그런가요?" 사마군이 등표의 의중을 제대로 짚은 격이다. "그렇습니다." 등표의 대답을 들은 사마군의 준수한 얼굴에 일말의 의혹이 감돌았다. "어폐가 있군요. 우리 북파무림맹 홀로 삼세를 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이건 엄연한 현실이죠. 그런 사실을 잘 아는 등군사께서 그런 의견을 내놓은 건 의중에 이미 동맹을 맺을 곳을 점찍어 놓았단 뜻이군요." 등표의 안색에 놀람의 빛이 역력했다. 용은 용을 낳는다더니, 사마덕조의 아들답게 사마군의 심지도 매우 깊었던 것이다. "허허허, 소맹주의 심기가 무섭습니다. 그러합니다. 소신은 환희천과 동맹을 맺을 생각입니다. 환희천의 태양마후(太陽魔后)는 성주님과 각별한 사이니까요." "환희천이라! 방법은 괜찮은데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듣기로는 환희천의 천주도 대단한 야심가라 하던데." 사마군이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있던 사마덕조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차피 우리야 손해볼 일도 없으니 괜찮겠지. 하지만 대북파무림맹의 동맹으로 환희천은 약해." 두 사람이 일제히 사마덕조를 바라보았다. 천하사세의 하나인 환희천을 약하다 평하는 그의 광오함에 조금은 질린 듯한 표정으로. 사마덕조가 천천히 태사의에서 일어났다. "중원에 이대잠룡(二大潛龍)이 있으니 그중 하나가 십칠 년 전 멸망한 한 가문의 후손이요, 또 한 사람은 천하의 미치광이로 알려진 남궁세가(南宮世家)의 광룡(狂龍)이다. 그중 하나 정도는 되어야 대북파무림맹과 동맹을 맺을 수 있다." 침묵이 감돈다. 부친의 말을 들은 사마군의 눈에서는 형형한 안광이 번갯불처럼 뿜어졌다. 그는 장차 천하를 쟁패할 후기지수의 선두주자. 그러나 현재의 실세인 무림의 원로들은 두 사람을 최고로 꼽았다. 바로 이대잠룡을! "음!" 아들의 묵직한 신음소리를 귓전으로 흘리며 사마덕조가 입을 열었다. "일단은 군사의 말대로 기회를 보며 기다리기로 하지. 하지만 삼세의 동정을 항상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각골 명심하겠습니다." 등표가 깊숙이 허리를 접으며 답하자 사마덕조는 사마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내일은 미림현으로 그 아이를 데리러 갈 것이다. 너도 대비하고 있도록 해라." 부친의 말을 들은 사마군의 얼굴에 의아함이 번졌다. "드디어 일가가 합치는 것입니까?" "그렇다. 그 아이가 이곳에 오면 환경이 낯설 것이니 네가 각별히 신경을 쓰도록 해라. 그럼 물러가도록 해라." 아버지의 면전을 물러서는 사마군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미림현의 그 아이를 부름은 잠룡, 혹은 광룡을 노린 포석이다. 과연 누가 대북파무림맹의 사위가 될지 궁금하군.' * * * 초라하고 작은 모옥. 모옥의 초가지붕은 넝쿨로 덮여 있고 넝쿨에는 이제 막 형태를 나타내는 조그만 박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으며 마당의 한쪽 구석에 조성된 작은 텃밭에는 각종 채소가 싹을 돋구고 있었다. 겉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는 풍경이다. "콜록! 콜록!" 모옥의 안채에서 병자의 기침소리가 울렸다. 방안! 정갈하다. 지창을 통해 햇살이 은은히 스며들어 따스하다. 하지만 분위기는 칙칙했다. 한 여인이 두터운 담요에 몸을 눕힌 채 연신 괴로운 기침을 토하고 있었다. 병색이 완연하나 젊은 시절의 화려한 미태가 남은 얼굴이다. 특히 깊고도 맑은 눈빛은 병색이 완연한 가운데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풍겼다. 중년여인의 눈길이 닿는 곳에 연해월이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판에 박은 듯 닮아서 한눈에 모녀간임을 알 수 있는데, 연해월을 바라보는 중년여인의 눈에 연민이 차 올랐다. '불쌍한 녀석!' 그랬을 것이다. 딸을 낳은 후 마음 편히 따뜻하게 안아준 적이 없었다. 철이 들기도 전에 남편에게 버림받아 고난의 삶을 살아온 일생이었다. 그럼에도 딸을 데리고 나온 건 핏줄에 대한 연민만은 아니었다. 본부인의 시기에 딸의 심성이 비뚤어질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본가로 돌려보낸다고 생각하면서도 차마 이행치 못한 것은 점차 성장할수록 자신을 닮아가는 딸의 굳은 심지를 알기 때문이다. 연약해 보이지만 한번 옳다고 생각하면 무엇으로도 꺾을 수 없는 딸의 성품을! '그러나 이제 운명의 화살은 쏘아졌다.' 중년부인의 입에서 무심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본가에서 너를 보자는구나!" 연해월의 눈빛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무슨 말씀이세요?" 중년여인은 이불 밑에서 꾸깃꾸깃하게 구겨진 편지를 꺼내 연해월에게 건넸다. "오늘 낮에 본가의 사람이 다녀갔다." 서찰을 펼친 연해월의 손길이 파르르 떨렸다. ― 약속대로 십구 년이 흘렀소. "이게 무슨 뜻이에요?" "네 아버지와 약속했었단다. 십구 년 후 너를 돌려보내겠다고!" 팔랑! 연해월의 손에서 서찰이 떨어져 내렸다. "그럼 아버지가 우릴 데리러……?" "콜록, 콜록." 말문이 열리지 않는다. 간신히 참았던 기침이 고통스럽게 터짐은 그 동안 가슴에 쌓였던 울화를 토함인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십구 년. 그 모진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고통이 이렇게 응어리가 되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엄마……!" 모친은 딸의 손을 꽉 잡았다. 그녀의 손에 묻은 피가 딸의 손에 붉은 피칠을 하건만 두 모녀는 그런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한번만, 마지막으로 한번만 안아 보자꾸나!" 야속한 하늘과 야속한 운명. 남편에게 버림받은 그날로 이미 생이 끊긴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한사코 하늘의 부름을 거부한 건 오직 딸 때문이었다. 이제 하늘은 딸을 아비의 품으로 돌려보냄과 동시에 폐병이라는 천형을 내려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전염성이 강한 병을 앓는 관계로 열 달 동안 배를 앓아 난 자식이거늘 한번도 마음놓고 안아 보질 못했던 딸이었다. "엄마……!" 연해월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녀는 엄마를 꽉 당겨 안았다. "해월아. 내가 그랬잖니, 네 아버지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무심한 분이 아니시라고." 숨이 차는지 모친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다행이다. 너를 어쩔까 하는 고민에 눈을 감지 못했는데." 두 눈에서 흘린 눈물이 마침내 연해월의 고운 두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가지 않겠어요." 딸의 등을 쓰다듬는 여인의 손길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가야 한단다. 네 앞날을 위해서라도!" "나 혼자는 가지 않아요. 엄마랑 같이 가지 않으면 죽어도 아버지를 따라가지 않을 거예요!" 연해월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달려나갔다.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중년여인의 야윈 두 뺨에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문득 그녀의 얼굴에 쓸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생의 마지막이 엿보이는 죽음의 분위기를 풍기는 그런 미소였다. '그러니……? 하지만 너를 위해서는 가야 한단다.' 청강은 말이 없이 흐르고 있었다. 흘러내린 강물이 굽이치다가 만든 작은 소! 위지강과 연해월은 청강의 풀밭에 앉아 수면 위를 스치는 바람을 보고 있었다. 수면에 이는 파문만큼이나 두 사람의 가슴에도 파문이 일고 있었다. 두 사람 다 말이 없었다. 열흘 가량이나 되었을까? 짧은 만남이었지만 서로의 가슴에 각인된 상대방의 모습은 너무도 컸다. 단지 발설을 못해 서로가 애를 태울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별이란다. 가슴에 품은 그 감정이 채 무르익기도 전에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퐁! 연해월이 던진 작은 돌이 잔잔한 수면에 파문을 일으키며 퍼졌다. "왜 말이 없으시죠?" 위지강은 빙그레 웃었다. "무슨 말을 듣고 싶소? 이제 밤마다 고민하지 않고 푹 잠을 들 수 있으니 좋다는 말을 듣고 싶소?" "바보!" 위지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연해월의 뒤에 섰다. 연해월이 고개를 젖혀 그를 바라보자 두 사람의 눈빛이 부딪쳤다. "당신을 보내고 싶지 않지만 연낭자의 앞날을 위해서는 잘된 일이오!" 연해월의 두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난 가고 싶지 않아요." 위지강은 손을 내밀어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연해월은 그의 손을 뿌리쳤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가 절규하듯 외쳤다. "엄마가 오늘 피를 토했어요. 아무래도 오래 사시지 못할 것 같아요. 나 하나만을 보고 사신 엄마예요. 최소한 엄마의 임종을 보아야 해요." 연해월의 가녀린 어깨가 흔들렸다. 위지강은 그녀를 연민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안아주고 싶다. 그녀에게 어떤 확신을 주고 싶다. 아마 그녀도 그걸 원할 것이다. 하지만… 그 자신에게 얹힌 멍에조차 풀지 못한 상태에서 어찌 여인을 취할 수 있단 말인가? 연해월이 발딱 고개를 들어 타는 눈빛으로 위지강을 바라보았다. 이래서 연하의 남자는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히 가르쳐주어야만 하니까. "안아줘요!" 연해월의 붉은 입술을 가르며 흘러 나온 한마디에 위지강의 내심은 풍랑을 맞은 배처럼 흔들렸다. 이성(理性)? 같잖은 감정들은 모조리 사라졌다. 위지강은 와락 그녀를 안았다. 기다렸다는 듯 연해월도 몸을 안겨 왔다. 가슴과 가슴이 맞닿았다. 영혼이, 심장이 가슴을 빠져 나와 하나로 합치려 쿵쿵거리며 뛰었다. 연해월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빛이 열망을 담고 위지강을 바라보았다. 위지강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냐." "바보, 기다리면 무엇도 얻을 수 없어요." "그래도 안돼. 모든 걸 잃을망정 너를 이렇게 안기는 싫다." 연해월이 그의 머리를 당겨 안았다. 붉은 입술과 두툼한 입술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 두 사람은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풀밭 위로 넘어졌다. 연해월은 가슴을 풀어헤쳤다. 그래서 답답함이 가실지는 모르나 봉긋 돋아난 가슴이 바람에 노출되자 그나마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모든 걸 다 버리고 싶었다. "날 사랑하나요?" "그래!" "그럼 무얼 망설이는 거죠?" 위지강의 두툼한 입술이 유두에 닿았다. 전류가 흐르는 듯한 짜릿한 느낌에 연해월의 늘씬한 교구가 활처럼 휘어졌다. 아찔하다. 열일곱 젊은 사내의 육체가 광란을 보이기 시작했다. 불끈 솟구치는 욕정에 눈에서는 핏발이 돌고 여인의 옷고름을 푸는 손길은 열에 들떠 떨리고 있었다. 흰 여체가 푸른 초지에서 빛났다. 그녀의 몸을 간신히 가리고 있는 작은 천들이 유혹하듯 꿈틀거리고 있었다. 위지강의 타는 듯한 눈길은 연해월의 나신에 화살처럼 박혔다. 그는 서둘러 옷을 벗었다. 건장한 체구가 햇살에 드러나자 연해월은 탄성을 흘리며 얼른 눈을 감았다. 주르륵! 오늘은 유난히 눈물이 흔한 것 같다. 엄마의 과거를 안 후로는 절대로 자신만은 울지 않겠다고 맹세했었는데. 위지강은 천천히 그녀의 육체에 몸을 실었다. "하아!" 연해월의 입에서 달디단 신음이 터졌다. 무슨 느낌인가? 허벅지를 문지르는 이 뜨거운 물건은. 호기심에 고개를 쳐든 연해월의 눈동자가 한껏 부릅떠졌다. 단단하게 굳은 그의 상징이 여린 허벅지 사이를 비집고 있는 것이다. 그 강인한 힘에 놀란 연해월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안돼!" 연해월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거부의 몸짓은 아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이미 욕망이 동한 위지강을 어찌 말릴 것인가? 위지강은 그녀의 몸으로 진입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는 서툴렀다. 긴장으로 인해 딱딱하게 굳은 여체로 인해 더욱 힘들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이럴 때 본능은 충분하다. 웁! 연해월이 신음을 토했다. 첫번째 입맞춤! 경직된 여체가 서서히 풀렸다. 마술을 부리듯 위지강의 두툼한 입술이 여인의 입술을 녹이고는 입술을 떠나 도톰한 귓밥에 뜨거운 숨결을 토했다. 그러자 여인의 몸도 덩달아 타오르기 시작했다. 달착지근한 감정이 저 밑에서 솟구치더니 이내 온몸으로 번졌다. 딱딱하게 굳었던 하체에서 힘이 쪽 빠지며 마지막 비밀의 문이 열렸다. 흐뭇하게 웃은 위지강은 본능에 따라 번쩍 하체를 치켜들었다. 건방질 정도로 팽창한 놈은 먹이를 찾아 헤매는 야수처럼 꺼떡이고 있었다. 그때마다 속살에 닿는 야릇한 느낌이라니! 연해월은 두려움과 수줍음에 차마 눈을 뜨지 못하고 곧 닥쳐올 미지의 사태에 가늘게 떨었다. "하악!" 어느 순간인가? 연해월의 입에서 교성이 터졌다. 한순간 두 사람의 몸의 중심이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 이물질은 뜨겁기 그지없었다. 이게 여자가 되는 길인가? 설령 고통스럽다 해도 좋았다. 이대로 몸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도 감내 해낼 것이다. 열일곱의 짧은 생애, 어느 한곳 의지할 곳 없던 몸이 그를 만나 비로소 자신이 여인임을 알지 않았던가! '가져가요. 이 순간을 영원히 추억으로 간직할게요.' 통속적이라 생각해 입에 올리기 싫었던 그런 말들을 지금 연해월은 떠올리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달과 별이 텅 빈 동녘을 대신 메우고 있었다. 위지강은 심장이 쿵쿵 뛰는 충격을 받고 있었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첫사랑의 여인을 품을 때의 그 짜릿함과 뜻 모를 서글픔을! (멍청한 놈, 연낭자를 품을 것이라면 너도 이곳을 떠나거라.) 아마 막 연해월의 몸 속으로 진입하려던 그때였을 것이다. 위지강의 행동이 우뚝 멈췄다. 하늘을 뚫을 듯이 솟구치던 욕정도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할아버지!' * * * 두두두두! 말발굽 소리에 지축이 흔들렸다. 미림현으로 향해 난 관도를 뒤덮고 치달리는 수십 필의 말들. 선두에 선 마상의 인물의 손에 들린 거대한 깃발이 바람에 흔들렸다. ― 北派武林盟! 그 깃발이었다. 석양이 짙게 깔린 관도를 무풍지대처럼 치달리는 수십 필의 준마, 중심에는 사마덕조와 사마군이 오연한 자세로 마상에 앉아 있으며 호위무사들은 두 사람에게 붙듯이 밀착해 따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글쎄, 칼을 차고 기세가 삼엄한 걸 보니 무림인인 것 같은데 저들이 왜 연해월의 집으로 향하는 걸까?" "듣기로는 연해월의 생부(生父)가 유명한 고수라고 하던데 혹시 저들이 아닐까?" 말발굽 소리에 놀라 뛰쳐나온 동리 사람들은 인마가 연해월의 집 앞에서 멈추자 놀라 한마디씩 떠들었다.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닐세. 자칫 화를 당하는 수가 있으니 아예 참견치 말자고!" 사람들은 긴장한 채 하나 둘 사라졌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걱정스런 눈빛으로 북파무림맹의 무사들과 모옥을 번갈아 보았다. "아버님! 어찌 손수 땅에 발을 디디려 하십니까!" 사마군이 놀라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북파무림맹의 지존에 오른 후 웬만한 일에는 신발에 흙을 묻히지 않던 분이시지 않은가? 그런 부친이 손수 말에서 내리고 있었다. "물러서라!" 부친의 싸늘한 명령에 사마군은 감히 대꾸를 하지 못하고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싸리 울타리. 그 너머에 젊은 시절 그의 혼을 불태웠던 여인이 있을 것이다. 그녀의 영상이 뇌리를 스쳐 지났다. 한때 천하제일의 미녀로 불렸던 여인. 하지만 그 출신이 기녀라는 이유로 종내 버릴 수밖에 없었던 여인. 그녀의 말년이 이렇게 초라한 모옥으로 한정될 줄이야. '무심했구나!' 사마덕조는 고개를 저었다. 허나, 동요치는 않았다. 꺼진 불씨를 다시 피우기에는 사십 후반의 나이는 만만치 않은 것이다. 끼이익! 모옥의 문이 열렸다. 연해월을 본 사마덕조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세월의 저편에서 홀연히 날아오듯 그의 앞으로 다가오는 여인 하나. 그때 화려했던 의복 대신 지금은 수수한 마의를 입고 있지만 고운 눈매와 도도한 미모는 과거 그대로였다. "미매(美妹)?" 과거의 여인을 불러보지만 아니었다. "누구시죠?" '너였구나!' 딸이다. 과거의 그 사람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귀한 인연으로 맺어진 핏줄인 것이다. "네가 해월이냐?" 연해월은 고개를 들어 이름을 묻는 중년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에 익었다. 거울을 보며 엄마와 닮지 않은 부분들을 조합해 만들었을 때 떠오른 그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아버지!' 목청껏 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연해월의 입술을 비집고 나온 목소리는 차디찼다. "누구시죠?" 사마덕조는 가슴이 뭉클해 일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대신 아들인 사마군이 입을 열었다. "아버님, 기막힌 미인이군요. 이렇게 아름다운 이복동생이 있는 줄 알았으면 진작에 데리러올 걸 그랬습니다." 사마군은 연해월의 늘씬한 자태를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며 감탄사를 흘렸다. 맹세코 동생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본 적이 없었다. 왜 이런 여인이 내 동생인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연해월의 미모는 충격적이었다. 허나, 좋았다. 동생이라는 인연으로 그의 가문에 돌아온 동생이. 동생은 단지 동생일 뿐이다. 사마군은 장래 중원무림을 이끌 중추답게 이내 냉정을 회복하곤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사마군이다. 앞으로 오라버니라고 부르도록 해라." "……!" 연해월은 사마군의 말에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오직 사마덕조만을 지긋이 노려보고 있었다. "모친은?" 왜 그랬을까? 사마덕조가 모친의 행방을 묻자 연해월의 두 눈에서 붉은 실핏줄이 도드라진 것은.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이던 연해월이 입술을 꽉 물더니 사마덕조를 향해 무언가를 홱 던졌다. "무엄한!" 놀란 사마군이 일장을 격출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발출한 장력이 산악에 가로막힌 듯 무위로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아울러 강한 반탄력에 밀려 쿵쿵 소리를 내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사마덕조였다. 침중하게 명을 내린 그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물체를 낚아챘다. 그건 흰 종이뭉치였다. ― 언젠가 와주실 줄 알았습니다. 꽃 같은 내 딸, 불쌍한 내 아기. 부디 이 아이를 박대 말고 소중히 키워주시길……. 쾅! 문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침침한 모옥의 내부를 바라보는 사마덕조의 두 눈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대들보에 매달려 흔들리는 시신 하나. 한때 그의 청춘을 흩날린 그녀가 이렇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술을!" 북파무림맹주에 오른 후 입에도 대지 않던 술이었다. 콸콸콸! 덧없구나! 먼길을 달려온 건 딸만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그대의 모습을 다시 한번 더 보고 싶어서였거늘! 다시 마주하기에는 너무도 긴 세월이었겠지. 그렇다고 이렇게 죽음으로 나를 대하다니, 그대 역시 너무 박절하지 않은가! "최고의 예를 다해 장례를 치르도록!" "아버님, 해월은 어찌하시겠습니까?" "기다린다!" * * * 부정(父情)은 인간의 본성. 누구도 속일 수 없는 것이다. 천하를 향한 야심을 품고, 결국 천하를 위한 대계의 희생물로 찾으러 온 딸이지만 과거의 여인의 죽음을 보고는 눈물을 숨기려 하늘을 바라보는 사마덕조! 모정(母情)은 그런 것이었다. 딸의 앞날에 짐이 되기 싫어 차라리 죽음을 택한 그 순간에 그녀의 혼은 자유로울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한줌 연기로 변한 그녀가 저리 쉽게 떠나지 못하고 모옥을 빙 돌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 * * 우우우―! 산정에서는 늑대가 울고 있었다. 연해월은 어딘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바보, 엄마는 바보야. 그렇게 사랑했으면서 왜 조금 더 기다리지 못한 거죠? 왜 아버지를 보고 데려가 달라고, 병을 고쳐 달라고 조르지 못했느냔 말이에요!" 마음을 둘 곳이 없다. 뿌연 눈물이 감도는 눈으로 바라본 하늘에는 어느덧 차가운 상현달이 삐죽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곳이었다. 창고를 개량해 만든 그 사람의 작업실, 희미한 불빛 아래서 위지강이 도자기를 빗고 있었다. 달빛이 어린 그의 얼굴을 보자 울컥 눈물이 솟아 나왔다. 그를 향해 다가서던 연해월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그를 감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와 오라버니에게 그를 보이는 것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겠어요. 분명히 당신을 사랑하는데 왜 당신에게 다가가지 못하는지. 이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데요.' 연해월은 푹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그의 체취가 느껴지는 것 같다. 젖가슴에 닿았던 그의 손길과, 허벅지 안쪽에 느꼈던 그의 당당한 실체. 부부의 연을 맺지는 않았지만 이제 그녀를 지배할 사람은 저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사랑은 그런 것이라 했지요. 처음 만났을 때는 설렘으로 그 다음은 고통으로, 마지막은 기다림이라 했어요. 이제는 안녕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아요.' 본능일 것이다. 위지강은 자신을 바라보는 강한 눈길을 느꼈다. 고개를 돌렸을 때 보이는 건 팔랑이는 나뭇잎뿐! 그러나 안다. 느낀다. 바람에 실린 그녀의 체취를. '해월!' 쨍그랑! 유약을 바르던 도자기가 바닥에 떨어져 날카로운 파열음을 남기며 부서졌다. "무슨 일이냐?" 조부의 질문에도 불구하고 위지강의 눈길은 조금 전에 연해월이 있었던 고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슥! 위지강의 몸이 바람처럼 한곳으로 이동했다. 탈애(脫愛)! 고목에 쓰인 그 글! 위지강의 눈동자에서 불이 뿜어지고 있었다. 처음으로 가슴에 품은 그 사랑을 이렇게 풀어버리라는 글을 남긴 여인. "일을 하지 않을 거라면 들어가서 자거라." 어느새 다가온 조부가 나무둥치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연해월이 절절한 심정으로 새겼을 글들이 먼지처럼 부서졌다. "할아버지!" "인연은 억지로 되는 건 아니다. 해질 무렵 일단의 무리들이 연낭자의 집으로 몰려가더구나. 듣기로는 생부가 그녀를 찾아온 것이라고 하던데, 북파무림맹의 핏줄이라면 너에게는 과분한 인연이다." 잊어라, 그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위지강은 고개를 저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네 뜻이 그러하다면 말리지는 않으마. 대신 한가지를 약속해라. 어떤 일이 있어도 북파무림맹의 인물들 앞에서는 무공을 펼치지 않겠다고!" "……!" 위지강은 조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설명을 원했다. 하지만 조부는 말이 없었다. 위지강의 몸이 환영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실체가 사라진 후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진 건 경공술이 극상의 경지에 도달해 나타나는 환영일 터! 노인은 연해월의 모옥이 있는 곳을 지긋이 응시했다. 노인의 주름진 얼굴에 쓸쓸한 어두움이 내려앉았다. "주군(主君),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북파무림맹의 눈을 피해 이곳에 왔거늘, 그의 딸자식을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아무래도 주군이 밟은 그 길을 공자도 그대로 답습하려는 것 같습니다." 노인의 눈동자는 허망하게 야천을 향했다.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목숨보다 더 중하게 여겼던 한 사람. 사내들간에 사랑이라는 말이 성립될지 모르나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모든 걸 다 바쳐 따랐던 주공의 모습이. 천하제일이란 수식어가 조금도 부끄럽지 않던 분이었다. 허나, 주공의 파멸도 결국은 여자였다. 천하를 품을 그 큰그릇도 여인으로 야기된 함정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수많은 지인들과 심지어는 의형제의 검에 의해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던 주군의 마지막 모습이. "쿨룩쿨룩! 주군, 안심하십시오. 맹세코 위지공자를 천하의 대협으로… 주군을 능가하는 일대협객으로 만들어내고야 말 것입니다. 그리고 물을 것입니다. 주군을 난자한 의형제들에게. 누가 옳았는가, 그걸 말입니다!" 생을 마치기 전 반드시 그렇게 하고 싶었다. 욕망일까? 하늘이 과연 그때까지 그의 생을 남겨놓을 것인가? 누구의 대답인가? 저리 슬피 우는 야조의 울음소리는! * * * 연해월은 몸부림치고 있었다. 북파무림맹의 무사들은 그런 그녀를 제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었다. "놔, 이건 말도 안돼요! 오늘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어떻게 지금 당장 떠나자는 말씀을 하실 수가 있는 거죠?" "모친의 장례식은 최고의 예를 다해 치렀다. 네 모친도 네가 본가로 귀환하길 원하실 게다." 연해월은 불이 타는 시선으로 사마덕조를 노려보았다. "당신께는 타인이 아니라 부인입니다. 그걸 인정하기 전에는 한걸음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사마덕조는 시선을 돌렸다. "가마에 태워라." 무사들이 그녀의 양팔을 잡았다. 순간 연해월이 양발을 날려 그들의 사타구니를 가차없이 걷어차 버렸다. 벌렁 나자빠지는 무사들을 떨친 연해월이 차게 말했다. "어차피 있어도 그만이었고 없어도 그만이었던 딸이에요, 이제 와서 생색내지 마세요." "……!" 사마덕조는 물끄러미 딸을 바라보았다. "누구든 강제로 나를 끌고 가려 한다면 이 자리에서 혀를 물고 자진하겠어요." "놈! 아비의 말을 거역하겠단 말이더냐?" 홱! 연해월의 시선이 화살처럼 사마덕조의 얼굴에 꽂혔다. "왜 이제야 저를 찾았는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다정한 분이셨다면 진작에 어머니와 저를 찾았겠지요. 돌아가세요. 전 엄마 무덤을 지키면서 여기서 살겠어요." 말을 끊고 돌아서던 연해월의 눈살이 일그러졌다. 태산처럼 그녀의 앞을 가로막은 한 사내. 사마군이었다. 그의 손에서 스르릉 검이 뽑혔다. 허공을 가른 검날은 연해월의 검은 머리칼을 싹둑 베어버렸다. "아직 본가의 법칙을 모르기에 이번 한 번은 용서한다. 허나, 끝내 아버님의 명령을 거역하면… 난 동생의 목이라도 가차없이 베어버릴 것이다." 이복동생이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사마군에게 아버지 사마덕조는 신앙이자 살아 있는 신이었다. 그런 아비의 명령을 거역하는 일이란 사마군에게는 죽음,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요. 그 법이었죠. 어머님이 십 몇 년 동안 남편을 찾아가지 못한 것도. 하지만 착각했어요. 난 엄마가 아니에요. 사마(司馬)가의 핏줄과는 상관없단 말이에요!" 짝! 연해월의 고운 얼굴에서 피가 튀었다. "나도 이해할 수 없다. 솔직히 너 같은 동생이 있음은 나 역시 곤혹스러운 것이니까! 하지만 인정하겠다. 아울러 약속한다. 이복동생이라 해서 너에게 어떤 차별도 없을 것을!" 사마군은 연해월을 보고는 진정으로 그녀를 아끼게 되었다. 북파무림맹의 명성을 들은 자라면 누가 그곳의 딸이 됨을 주저할 것인가? 호의호식과 사치와 권위가 보장된 그 자리를. 그런데 연해월은 틀렸다. 최소한 사마가의 여인이 될 자질은 넘치게 타고난 아이였다. 연해월은 고개를 저었다. "갈 수 없어요." 사마군의 얼굴이 차게 굳었다. "부와 명예를 마다하다니 작은 어머님이 가정교육은 제대로 시켰구나. 나를 용서하라!" 사마군의 검이 허공으로 솟았다. 형형한 눈이 연해월의 얼굴에 잠깐 고정된 것은 그녀에게 최후의 선택을 할 시간을 주기 위함이다. 고집스런 그녀의 입매를 본 사마군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파아! 연해월은 눈을 감았다. 사마덕조는 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사마군을 향해 뭐라 명을 내리려 했다. 허나, 그보다 빠른 사람이 있었다. "서글프군. 가문의 율법이 아무리 중하다 해도 인간의 목숨에 우선하는 이 현실이." 그 음성은 사립문 밖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웬놈이냐?" 사립문 주변에 쳐지는 검진(劍陣), 검산(劍山)이라도 형성된 듯 무서운 살기가 사방으로 퍼지는 그곳을 한 사람이 들어서고 있었다. 북파무림맹의 무사들은 개개인이 모두 절정고수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감히 그 사내를 제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호랑이와 같다고 할까? 형형이 빛나는 눈빛을 사마덕조에게 고정시킨 채 걸음을 옮기는 그의 행동은 여타 무리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듯한 오만함이 서려 있었다. 위지강이다. 비록 남루한 옷차림이나 그가 뿜어내는 걸출한 기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위지공자!" 연해월이 반색을 하며 그를 향해 뛰쳐나가려는 순간, 사마군이 그녀의 팔을 거칠게 낚아챘다. "해월, 너는 더 이상 과거의 네가 아니다." "이 손 놔요." "말했다. 너는 이제 북파무림맹의 사마가의 후손이라고, 만일 네가 과거에 연연한다면 저자의 죽음을 보게 될 것이다." 연해월은 놀라 사마군을 바라보았다. 거짓이 아니었다. 위지강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차디찼다. "내가 해결하마!" 사마군은 위지강에게 천천히 다가섰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고 우뚝 섰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에서 불이 뿜어졌다. 사마군은 당황하고 있었다. '이건……. 이런 촌구석에 이렇게 놀라운 기도를 지닌 청년이 있다니!' 그랬다. 눈빛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한다 했다. 사마군이 본 위지강은 잠룡이었다. 계기만 주어진다면 푸른 창공으로 날아오를 잠룡, 그게 위지강이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