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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4:13, 개정)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고후 4:13, 킹흠정) 기록된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노라,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영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잠 6:2, 개정)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잠 6:2, 킹흠정) 네 입의 말들로 인하여 네가 올무에 걸렸으며 네 입의 말들로 인하여 네가 붙잡히게 되었느니라.
지난 주에 우리는 말의 중요성과 그 위력에 대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설교 마무리 부근에서 찰스 캡스 목사님이 경험한 말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예화를 대략 말씀드렸던 것이 생각납니다. 대략적으로 기억에 의존해서 말씀을 드렸던 터라 저 자신도 그 내용에 대하여 정확하게 확인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그 자료를 찾아보았고 그 내용을 오늘 주보에 “금주의 묵상”란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이 내용이 제 마음에 계속 남았습니다. 말을 늦게 하면 결과에서 손해를 볼 수 있으니 믿음으로 빨리 말을 해야 한다는 그런 부담감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말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는 찰스 캡스 목사님의 믿음의 글을 읽으면서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문제를 향해 명령하라 - 찰스 캡스
몇 년 전 농사를 그만두기 전에 저는 벼를 심었습니다, 그런데 비가 내리더니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땅도, 기온도 싹을 트게 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논으로 나가 제가 심어놓은 벼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기 위해 땅 여기저기를 파보았습니다. 그런데 싹이 터서 아주 조금씩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씨앗의 어떤 것들은 못쓰게 돼 버렸지만 어떤 것들은 아직까지도 괜찮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이 벼농사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시 심어야 할까요?”
잠언은“당신이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을 때 그 말씀은 당신과 더불어 말할 것이다”(잠6:22)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말함으로써 그 말씀으로 당신의 마음을 가득 채우게 될 때, 당신의 영은 필요할 때는 어느 때든지 그 말씀을 당신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당신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영이 제 안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왜 너는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는 대로 행하지 않느냐? 너는 문제를 향해 말하라. 너는 벼를 향해서 어떻게 할 것을 명령하라!”
“벼에게 말을 하라구요? 재가 벼에게요?”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때 저는 제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행하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항상 해답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대로 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논을 걸어 다니면서 볍씨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내가 너, 벼에게 말한다. 벼는 내 말을 들을지어다. 벼는 싹이 나서 나올지어다. 벼는 풍성한 수확을 낼지어다.”
아마 저는 한 시간 정도 논을 걸어 다니며 볍씨를 향해 말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 “말도 안되는 소리!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이지? 나는 이해가 안돼!”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실 나 자신도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예수님께서 하라고 명하신 것들을 할 때 우습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만일 당신이 하라는 대로 행하지 않으면 당신은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당신은 실패로 인해 지쳐있습니까? 예수님은 그런 실패에 대한 처방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말씀을 행하라” 입니다.
저는 벼에게 말했고 벼는 내 말에 순종했습니다. 놀라운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두 주 먼저 심었던 다른 벼에게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효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저는 주님께 그 이유를 여쭈어 보았습니다.
주님은 “네가 너무 오랫동안 기다려서 네가 그 벼에게 명령할 때는 이미 그 씨앗들이 썩어 있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제가 실패한 것입니다.
(찰스 캡스 『당신의 말속에 성공이 들어있다』 최기운 옮김. 베다니출판사, 2011. pp. 186-188.)
여러분들도 찰스 캡스 목사님이 경험했던 것처럼 너무 늦게 말을 하여서 실패를 경험하지는 않았습니까?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말을 하고 않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하여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말이 우리를 지배한다는 이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그리스도인들이 거의 없다는 게 나의 확신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입술의 고백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우리의 고백의 수준으로 올라가든지, 아니면 내려가든지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는 않는다 해도 그들의 말의 능력을 발견하고, 그것이 그들에게 역사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나는 마음먹은 것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라고 계속 자기 자신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가 그의 입으로 그렇게 말하고 그것을 그의 마음에 믿을 때 그는 무엇에 손을 대든지 성공할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의 배후에 영적인 법칙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아무튼 간에 그에게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반면, 나는 사람들이 그들 앞에 놓인 해결할 과제를 바라보고는 “나는 못 하겠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그 말을 하는 순간 그들은 이미 패배한 것입니다. 당신에게 믿음이 없다고 말하는 순간, 의심이 거인 같이 올라와서 당신을 결박할 것입니다. 당신의 부정적인 말로 당신은 갇히게 됩니다.
(케네스 해긴 『하나님과 동행하기』 오태용 옮김. 서울: 베다니출판사, pp. 263-264.)
이처럼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힘이 있을까요?
첫째 말의 힘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말의 힘은 우리들을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롬 10:10, 개정)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10절)는 표현을 주목해 보십시오. 이 원리는 구원에만 관련된 진리가 아닙니다. 실제로 고백하고 시인하는 것은 무엇에든지 다 통합니다. 구원, 부요, 치유, 기타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면 무엇에나 다 적용이 됩니다.
둘째로 말의 힘은 좋든 나쁘든 우리들의 말이 우리들의 삶을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좋든 나쁘든 우리의 말이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많은 예화들 가운데 이 원리가 들어 있습니다. 혈루증 여자가 말했습니다.
(마 9:21, 개정)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마 9:22, 개정)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그녀는 그녀가 믿은 것과 그녀가 말한 것을 정확히 얻게 되었습니다.
구약에서는 갈렙과 여호수아가 그와 똑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민 13:30, 개정)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갈렙과 여호수아와 함께 그 땅을 탐지하러 갔던 다른 열 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민 13:31, 개정)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정탐꾼들도 두 그들이 얻을 것이라고 말한 그대로 얻게 되었습니다. 능히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했던 열 명은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민 14:2, 개정)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들은 그들의 말대로 되었습니다. 결국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광야에서 죽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 우리가 능히 이기리라”고 말했습니다(민 13:30). 그들은 그 세대 가운데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소유한 유일한 두 사람이었습니다!
이상은 좋든 나쁘든 우리의 말이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성경 속의 여러 예들 가운데 몇 가지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실패나 패배를 말하지 마십시오. 한순간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인생의 문제를 극복하게 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패배를 말할 때 여러분은 “하나님이 나를 성공시킬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넘치고 또 더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모든 상황에서 당신을 성공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둘째 말을 하는 방법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소유하기 전에 믿음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먼저 축복을 소유하고, 그 다음에 그것을 고백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주목해 보십시오.
“…그가 말하는 대로 갖게 되리라”(막 11:23).
우리들이 그것을 말할 때에는 아직 그것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말하고 고백하는 것이 소유하는 것보다 순서적으로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바라는 것이 현실세계에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고백해야 합니다(히 11:1).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성경적 믿음』이라는 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고백하고, 그런 후에 소유한다”는 주제 아래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독교는“위대한 고백”이라고 불립니다. 이 위대한 고백의 법칙은 내가 자연적 영역에서 어떤 것을 소유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약속한 것을 소유하게 되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마비 증세와 불치의 혈액병으로부터 치유를 받았던 방법입니다. 이것이 내가 심장 기형으로부터 치유받았던 방법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보았고, 치유가 내 몸에 나타나기 전에 치유 받았음을 고백하였습니다. 나는 자연적인 영역에서 치유를 소유하기 전에 치유 받았음을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심장이 건강하다는 것을 고백했을 때 나는 아직도 침상에 누워 있었고, 심장은 호전되지 않았고, 치유 받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또한 내가 치유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고백하자마자 마귀는 나에게 도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믿음의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고후4:13).
마귀는 내가 치유를 느낄 수 없고 치유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치유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마귀에게 성경이 내가 치유되었다고 말하고, 나는 성경을 믿기 때문에 치유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마귀에게 내가 믿음으로 치유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만일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예수님은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예수님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10분도 되지 않아서 나는 침상에서 나와 두 발로 설 수 있었습니다. 마귀는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부르려고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입술로 우리의 구원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영에 작용하여 영을 재창조하시기 전에 입술로 구원에 대한 고백을 먼저 해야 합니다. 당신이 거듭날 때,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마음 속의 하나님의 영의 증거로 알게 됩니다. 그러나 당신은 먼저 증거를 가지고 그것을 고백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먼저 구원을 고백하고 그런 다음에, 그 고백은 마음속에서 구원에 대한 실재를 창조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당신의 영에 작용하여 영을 재창조하십니다.
(케네스 E. 해긴 『성경적 믿음』 홍주영 옮김. 서울: 베다니출판사, 2013. pp. 236-237.)
둘째로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의식을 가지고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속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말로 이렇게 계속 선포를 해야 합니다.
(요일 4:4, 개정)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세상에 있는 마귀와 귀신들 전체보다 더 크십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원수의 모든 능력을 넉넉히 이기는 자들입니다(롬 8:37).
우리들의 생각하는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것들을 곰곰이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긍정적이고 믿음이 가득한 말들을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탐지하러 갔던 12명의 정탐꾼들 중에 하나님을 의지하였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말을 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10명의 정탐꾼들은 스스로를 메뚜기라고 할 정도로 패배를 생각하며 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생각하며 믿음으로 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시편 91편은 우리들에게 큰 힘이 되는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시 91:9, 개정)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시 91:10, 개정)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시 91:11, 개정)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내가 믿음으로 말을 했더니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믿음대로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믿음으로 취하여 우리의 믿음의 고백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담대하게 말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믿음의 수준대로 말을 해야 합니다.
믿음의 수준과 관계되어 케네스 해긴목사님에게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주셨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ABC로 돌아가라. 오늘날 믿음과 고백을 가르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현재 그들이 누리고 있는 수준 즉, 씨앗 수준이 아닌 열매 수준에서 그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믿음 교사들의 가르침을 듣는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을 바로 그 열매수준에서 역사하게 하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곤경에 빠지게 된다.”
주님은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들은 믿음을 가르치는 교사 자신이 바로 그 수준에서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는 작은 믿음에서 출발하여 매일 말씀을 먹고 그가 믿을 수 있는 것들에 그 믿음을 실천함으로써 수많은 시간 동안 계속해서 그의 믿음을 증가시켰다.”
(케네스 해긴 『하나님과 동행하기』 오태용 옮김. 서울: 베다니출판사, pp. 273-274.)
예수님께서 해긴 목사님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각자의 믿음의 수준에서 말을 해야하는데 이와 관련해서 영국의 브리스톨에서 고아원을 세웠던 조지 뮬러 목사님의 간증은 이것을 잘 증명해 줍니다.
그가 한 번은 말하기를 고아원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그가 처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기 시작했을 때 1달러를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데에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믿음이 필요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50년 동안 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의 믿음을 먹이고 그것을 실천하고 난 후에는 그가 50년 전에 1달러를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었던 것과 똑같이 쉽게 1백만 달러를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고 뮬러는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의 믿음을 따라서 같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를 잘 가늠하여 믿음의 분량을 따라 말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 세 번 째로 믿음으로 말을 할 때 주의할 점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우리들의 머리에 의심이 있어도 믿음은 우리들의 마음에서 역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글쎄요. 만일 내가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들은 그들의 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들의 마음(mind)이 그들에게 말해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때문에 종종 사람들이 실패와 패배를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머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나옵니다. 성경은 마가복음 11:23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어디에서 의심치 아니한다고요? 로마서 10:10을 보십시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
우리들의 머리에 의심이 들어도 믿음은 우리들의 마음에서 역사합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혼과 영을 구분할 줄 모른다는 점입니다. 믿음은 혼이나 정신(mind)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믿음은 영이나 마음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에게 속한 것들과 우리들이 믿고 있는 것들에 관한 것일 때는 우리들의 머리에 있는 것으로 행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영으로 행합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이러한 사실을 『하나님과 동행하기』라는 책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우리들의 머리에 의심이 있어도 믿음은 우리들의 마음에서 역사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내가 그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믿음의 기도를 드린 직후에 나의 머리에는 의심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나의 마음(mind)이 계속 나에게 말했습니다. 너의 믿음의 기도는 역사하지 않을 거다. 만일 네가 일어나려고 한다면 너는 떨어져 죽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속에서, 나의 영에서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너는 네가 건강해진 것을 믿느냐?”
내가 말했습니다. “확실히 믿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일어나거라! 건강한 사람들은 아침에 10시 30분에는 일어나야 하는 거야.”
나의 마음(mind)은 말했습니다. “하지만 네가 마비된 상태에 있는데 어떻게 일어나려고 하느냐?” 그러나 나는 내 머리에 일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 영으로부터 행동했고 내가 믿음으로 구했던 것을 받았습니다. 내가 치유되어 그 병상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내가 나의 생애와 사역 가운데 경험했던 가장 큰 재정적인 기적들 중에 몇 가지는 나의 머리가 나에게 "그건 역사하지 않을 거야. 그건 역사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고 있을 때 일어났습니다. 그래도 나는 내 머리에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 영에 주의를 기울였고, 내 마음이 말씀대로 믿는 바를 말하고 선포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첫 번째 집을 샀을 때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 집을 사기 위해 나는 내 모든 믿음을 다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10일 안에 내가 그에게 1천 달러를 계약금으로 줄 수 있다면 나에게 집을 팔겠다고 제의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제안이 좋은 조건이었기에, 나는 그 집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1천 달러의 계약금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그 집을 사겠습니다”라고 믿음으로 말했습니다.
“내가 10일 안에 당신에게 그 계약금을 치르겠습니다.” 내가 그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았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느낌이 든 게 아니었습니다. 사실, 나의 머리는 나를 심하게 꾸짖었습니다.
지금은 그 돈이 크게 생각되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그 1천 달러가 나에게는 오늘날 1백만 달러 만큼이나 크게 보였습니다! 나의 머리가 나에게 말했습니다. “그건 역사하지 않을 거야. 너는 너무 멀리 나가서 대단히 불리한 처지가 되었어. 네가 어디서 1천 달러를 구할 것이냐?” 그러나 나는 내 머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 영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영으로 믿는 바를 계속 말하고 선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입의 말로 당신의 믿음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말이 당신의 환경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당신의 말이 당신의 삶의 여러 환경들을 지배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떠나기 전에, 나는 그 사람에게 내가 10일 안에 1천 달러를 그에게 지불하겠다고 여러 번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그 말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머리는 걷는 걸음마다 나에게 싸움을 걸었습니다. 내가 10일 안에 어디서 1천 달러를 구할 것인지 나는 알지 못했습니다. 기관총이 탄환을 발사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실패의 생각들이 내 마음(mind)을 집중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계속 나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10일 안에 1천 달러가 생길 것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나의 머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나의 마음 즉 나의 영으로부터 행동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다음날 오전 예배가 끝난 후에 내가 전에 열었던 집회에서 성령 충만을 받았던 한 부인이 목사관으로 전화를 걸어 “목사님에게 1천 달러가 필요합니까?”라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왜 물어 보세요?”
나에게 1천 달러가 필요하다는 것을 누군가가 그녀에게 말해 줬는지 여부를 알고 싶어서 그렇게 물었던 것입니다.
“네, 어젯밤에 내가 기도를 하기 시작하자 내 속에서 뭔가가 나에게 말하기를 목사님께 1천 달러를 드리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매님, 의심할 여지가 없네요.”
얼마 안 있자 그 여자가 목사관에 들러 1백 달러 지폐 10장을 나에게 주었습니다! 할렐루야! 당신의 머리에는 의심이 있어도 믿음은 당신의 마음에서 역사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케네스 해긴 『하나님과 동행하기』 오태용 옮김. 서울: 베다니출판사, pp. 275-277.)
둘째로 믿음으로 화합할 때 상대방의 수준으로 내려가서 화합해야 합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자신이 경험했던 간증을 『하나님과 동행하기』란 책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수술이 필요했던 한 여성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나는 이 여자의 말, 즉 그녀의 고백을 들어보고 그녀는 치유가 그녀의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녀가 치유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여자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믿을 수 있나요?”
때때로 당신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위치를 알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믿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보아야 합니다. 당신의 믿음이 당신에게는 언제나 역사하겠지만, 어떤 딴 사람에게도 항상 당신의 믿음을 역사하게 할 수는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어떤 믿음의 수준에 있다 할지라도 그들을 도와주려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이 여자에게 무엇을 믿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만일 그녀가 나와 일치가 되어서 말씀이 말하는 바를 고백할 수 없다면 그 때는 내가 그녀와 일치가 되려고 해야 합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내가 수술을 안전하게 받도록 하나님께서 나에게 힘을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믿음의 수준에 맞추어서 기도로 그녀와 마음을 같이 했습니다. 우리는 그녀가 수술을 잘 받고 속히 건강을 회복하여 의사들도 깜짝 놀라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녀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리라 믿었기 때문에 그녀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수술 후에 의사가 그녀를 살펴보려고 잠깐 들렸을 때 나는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그의 개인적인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만일 다른 의사가 나에게 말하기를 저런 종류의 수술 환자가 이토록 속히 회복이 되었다고 했다면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건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습니다!”라고 그 의사가 그녀의 병실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케네스 해긴 『하나님과 동행하기』 오태용 옮김. 서울: 베다니출판사, pp. 278-279.)
이런 간증을 통하여 우리들이 상대방에게 믿음이 역사하게 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어린 신자들에게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나타나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믿음의 말을 할 때 생명의 말을 해야 합니다.
로버트 모리스 목사님이 『말의 능력』이란 책을 쓰면서 “‘생명을 말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를 설명해 줄 만한 예를 보여달라고 주님께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주님, 아주 절망적인 상황에서 생명을 말함으로 그 상황이 급진적으로 변화된 것을 목격한 사람을 보여 주십시오.”
로버트 모리스 목사님은 주님께서 성경의 위대한 인물 중 한 사람이나, 아니면 교회사에서 아주 유명한 사람 중에 한 분을 내게 가르쳐 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실제로 그 사람을 내 마음에 떠오르게 하셨을 때에 목사님은 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의 책에 있는 그대로 읽어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 온 중에 가장 위대한 사람의 예는 나의 아내 데비였다.
수년 전에 내가 아직 이기적이고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교만했을 때에 그녀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로버트는 훌륭한 남편이다.” “로버트는 착한 남자다.” “로버트는 너무나 멋진 아빠다.” “로버트는 훌륭한 가장이다.” “로버트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도와주고 싶어한다.” “로버트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다.”
아내는 언제나 위와 같은 말을 하곤 했다. 아내가 위와 같은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에 그것들 가운데 내게 해당되는 말은 정말 거의 없었다. 실제로는 그것들과 정반대였다. 데비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사실을 부인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단지 끊임없이 나에게 생명을 반복해서 말했을 뿐이었다.
오늘날 위의 것들이 진실에 많이, 너무도 많이 가까워졌다. 나는 아직도 위의 내용에 도달하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열심히 노력하며 진보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발전했는가!
성령님께서 이 빛나는 예를 나의 목전에서 보여주셨을 때에 내가 울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지금까지 25년 이상 나를 사랑해 주고 나에게 생명의 말을 말해준 사람이 있었다.
나는 이제 변화된 사람이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생명의 말이 지닌 능력이다. 그 능력이 바로 당신의 혀 끝에 있다.
(로버트 모리스 『말의 능력』 오태용·김광석 옮김. 서울: 베다니출판사, 2016. pp. 131-133.)
“생명의 말”이란 생명을 주는 말을 의미합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말을 의미합니다. 불신앙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신앙의 길로 빠져들어 갔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수많은 죽음의 말들로 인하여 하늘 문이 닫히고, 가난과 고난과 실패와 절망의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원망과 불평의 말이 아니라 생명의 말을 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실대로 진실대로 하는 말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는 말을 통하여 사람들의 심령이 상하게 되고 절망하고 좌절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말”과 관련된 좋은 예화가 2편이 있는데 그 내용은 크리스 오야킬로메 목사님이 쓰신 “예언”이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일화이고 또 하나는 조용기 목사님에 대한 일화였습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이야기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녀는 15세 된 자기 아들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녀가 해긴 목사님께 기도 요청을 했을 때, 목사님은 그녀에게 자신의 기도가 전혀 효력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녀는 이유를 물었고, 해긴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당신의 아들을 위해 기도해도, 당신이 그것을 무효화시킬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들이 결국에는 소년원에 갈 것이고,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계속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해봤자 아무 효력이 없을 것입니다.”
그녀는 간절한 심정으로 물었습니다.
“이제 제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러자 해긴 목사님은 그녀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했습니다.
“아드님이 구원을 받을지 걱정하기를 멈추시고, 그의 삶을 위해 하나님께 감사하기 시작하십시오. 그에게 어떤 무서운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대신, 그가 어디 있든지 돌보아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오. 그런 걱정은 아드님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를 위해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이렇게 선포하십시오. 주님, 저는 저의 모든 염려를 당신께 맡깁니다. 왜냐하면 당신께서 저를 돌보시고 제 아들을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내 아들이 어디에 있든지, 그 애는 바로 당신 손에 있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배우기 시작했고, 몇 달 뒤에 다시 찾아와서 그렇게 한 것이 이루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아들은 거듭났고, 그전까지 마귀를 위해 전속력으로 질주했던 것과 똑같이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 전속력으로 질주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조용기 목사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한 여인이 그에게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를 도와주세요! 제 딸이 가족 전체를 병들게 하고 있어요. 그 애는 아주 제멋대로이고, 악한 죄인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해왔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조 목사님이 꾸짖었습니다.
“성도님, 당신 딸보다 당신이 훨씬 문제가 크군요! 당신은 단 한 순간이라도 아름답고 성공적이고 정직하고 단정한 딸을 볼 수 없습니까?”
그녀가 말했습니다.
“오, 아닙니다. 목사님, 목사님이 제 딸을 몰라서 그래요. 그 애는 제멋대로에요. 우리가 대화하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 호텔에서 남자와 있겠죠. 우리 모두는 괴로움을 당하고 있어요. 우리는 그 애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조 목사님이 그녀를 다시 꾸짖었습니다.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조 목사님이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자, 당신이 당신 딸을 그렇게 보는 한, 당신 딸은 계속해서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딸이 집으로 돌아와서 거듭나고 성령 충만을 받고 놀라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보기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오, 그렇게 되면 참 좋겠네요.”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조 목사님은 그녀가 그것을 보기 시작할 때까지는 기도해주지 않을 것이라 말하면서, 그녀에게 다음의 내용을 받아적고 매일같이 선언하라고 했습니다.
“나의 딸은 거듭난다! 나의 딸은 성령 충만을 받는다! 나의 딸은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다! 나의 딸은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서 그 말씀으로 충만해질 때까지 그 고백을 스스로에게 큰 소리로 읽어주기를 매일같이 반복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드디어 그것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몇 주 후, 그녀는 조 목사님께 다시 찾아와서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목사님, 제 딸은 훌륭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 애는 구원받고 성령 충만하고요. 집으로 돌아오고 있어요. 오, 나는 고대하고 있어요. 주님, 감사합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진정시키기 힘들 정도로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조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녀와 합심하는 간단한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며칠 후, 밤늦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녀가 문을 열자 거기에는 딸이 서 있었습니다! 딸이 말하기를, 호텔 방에서 자기에게 뭔지 모르는 무언가가 엄습해왔고, 남자에게서 벗어나서 곧장 집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심령으로 예수님을 원했습니다.
그녀는 그날 밤 거듭났고,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그렇게는 역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당신의 미래를 예언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입에 당신의 미래가 있습니다!
(크리스 오야킬로메 『예언: 당신의 미래를 다스리는 능력을 이해하기』 Paula Kim 옮김. 용인: 믿음의 말씀사, 2011. pp. 37-40.)
넷째로 우리들의 말이 삶을 지배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이 전임 사역에 뛰어들기 전, 십대 시절에 힘든 상황이나 위기를 만났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합니다.
“나는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의 분량을 가졌습니다.”
때로는 상황이 힘들고 환경이 나를 압박하였습니다.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때로는 내가 패배를 당한 것처럼 보였고, 그러한 실패가 문 앞에 다가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저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가지신 믿음의 분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태초에 세계를 창조하신 그러한 믿음의 분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한 후에는 그런 환경들이 작아지고 하찮은 것처럼 보였으므로 나는 그 모든 것들의 꼭대기에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나의 믿음이 나의 고백의 수준으로 올라갔던 것입니다!
다섯째로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게 말하는 법을 배워가야 합니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게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들이 바라는 것들을 약속해주는 성경 말씀을 계속 거듭거듭 고백할 때 그 말씀들이 우리의 영에 새겨질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바로 내가 고백하는 말의 수준까지 올라갈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들은 모든 환경들에서 승리를 맛볼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역사하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이 고백 선포기도를 할 때 제일 마음에 걸리는 게 있을 것입니다.
병들고 가난하게 살면서 나는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다고 계속 고백하고 말하자니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대부분 여기서 실패하거나 그만두거나 넘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원리 즉 하나님의 시제를 알고 이해하면 해결이 가능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말할 때 동사의 시제는 항상 현재 아니면 과거시제입니다.
치유를 예로 들면,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we are healed)”(사 53:5) 라는 말씀에서 동사의 시제가 현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 미래에 받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베드로전서 2:24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you were healed 혹은 you have been healed).”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기 때문에 과거나 현재나 현재완료 시제로 말한 것입니다. 미래에 되어질 일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졌다는 말입니다. 지금 치유를 받은 거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has given us)”(벧후1:3)라고 현재 완료형으로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이미 다 공급해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어법 즉 “이미 이루어졌다, 공급해놓았다”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는 나을 줄 믿습니다”라고 미래로 말하면 하나님과 맞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어법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라면 자신의 몸이 아플 때 “나는 다 나았습니다”라고 말하려니 어색하고 위선적인 것 같아서 몇 번 하다가 포기하고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마귀가 이런 생각을 주입할 것입니다.
‘너는 위선자야, 너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우리는 영적인 사람이고 하나님의 사람이므로 믿음으로 행하고 보이는 것으로 행하지 않는다(고후 5:7)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서 나는 치료받았다. 나는 공급을 받았다. 나는 변화가 되었다. 라고 선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얼마 있지 아니하여 믿음대로 변화되는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말을 하여 변화를 경험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찰스 캡스 목사님은 그의 책 『믿음과 고백』에서 자신이 믿음의 고백으로 치료받은 과정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읽어드리겠습니다.
몇 년 전 제가 이러한 진리를 알게 되자, 즉시 고백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모든 저주로부터 속량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노라. 어떤 질병도 내 몸에 생기는 것을 금하노라.”
그때 저는 위궤양을 앓고 있었는데 매우 심해서 일주일에 이틀 또는 사흘 동안은 드러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으며, 위궤양 증세를 완화시키는 약을 병째 들이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 병과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을 고백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석 달쯤 지나서 말씀이 제 영에 각인되자 위궤양은 떠나갔습니다. 그 뒤로 몇 번 더 위궤양이 다시 찾아오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고백했습니다.
“안 되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는 치유 받았음을 선포하노라.”
저는 완전히 치료받았고 질병의 저주에서 구원받았습니다. 그 뒤로도 계속해서 마귀를 대항하듯 질병에 대항했습니다.
저는 시행착오를 통해 질병에서 자유하게 되는 원리를 배웠습니다. 많은 실패를 경험했지요. 그러나 중단하지 않고 저주로부터 속량받게 되었음을 고백했습니다.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포이즌 아이비(식물과 접촉해서 발생하는 피부병, 우리나라의 옻 같은 질병, 역자 주)로부터 속량받았다.”
그런데 포이즌 아이비가 피부에 닿을 때마다 저는 그 피부병을 앓곤 했습니다. 사슴사냥을 갈 때마다 포이즌 아이비로 어려움을 겪었지요.
그러자 어떤 분이 “당신의 고백은 아무런 효과가 없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효과가 있답니다. 믿음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역사하고 있다니까요.”
저는 이렇게 말하면서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고백을 계속했습니다. 어떻게 되었냐고요? 포이즌 아이비에 다시 감염되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집에 와서 포이즌 아이비증상 완화제인 칼라마인 연고를 발랐고 상처가 말랐습니다. 그러고도 고백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결과가 나타나기까지 이 일은 서너 차례 반복되었습니다. 말씀이 마음에 품어지고 열매가 맺혀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을 주며, 말씀이 품어지면 그 약속의 열매를 보게 됩니다.
저는 거의 일 년 동안 고백을 계속했는데, 드디어 어느 날 포이즌, 아이비가 더 이상 저에게 아무런 증상도 일으키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가 포이즌 아이비로부터 속량되었음을 믿으면서 했던 믿음에 상응하는 행동은 이것입니다. 저의 주변 상황이 제가 포이즌 아이비로부터 속량 받지 못했음을 말할 때마다 고백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한 것이지요. 제 고백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 그리고 신명기 28장 61절에 따르면, 나는 모든 질병의 저주로부터 속량되었다.”
(찰스 캡스 『믿음과 고백』 신현호 옮김. 용인: 믿음의 말씀사, 2010, pp. 282-283.)
(신 28:61, 개정) 또 이 율법책에 기록하지 아니한 모든 질병과 모든 재앙을 네가 멸망하기까지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실 것이니
(갈 3:13, 개정)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믿음으로 하는 말에는 큰 힘이 있습니다. 이 말에 대하여 야고보는 3장에서 우리의 말이 우리의 삶을 제어한다고 말하였습니다. 큰 배와 관련하여 말을 할 때는 우리들이 하는 말이 큰 배의 방향을 이끌어 가는 배의 키와 같다고도 하였습니다.
이런 말의 중요성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캐네스 해긴 목사님에게도, 찰스 캡스에게도 나타나셔서 믿음의 말에 대하여 가르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만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말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말하는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말을 할 줄도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말하는 것의 중요성도 알지를 못하는 처지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이런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말의 중요성을 이해하여 말을 잘하도록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은 승리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들은 정복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는 사명이 주어졌던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부여해주신 놀라운 특권을 행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해 들어갔듯이 그래서 고되고 힘들었던 노예 생활을 멈추고, 압제 받는 생활을 멈추고 평안의 생활을 누렸던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억압의 생활이 아니라, 평안의 생활이 되도록, 만족하고 기쁨이 넘치는 생활이 되도록 우리들의 말을 잘 활용함으로 우리들의 삶을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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