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세례를 받기 위하여
세례는 물에 들어가서 나오는 의식을 행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 5절에서『예수님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물은 죄를 씻는 개념이 아니라 죄의 몸이 죽었다는 것을 상징한다. 즉 물에 들어가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연합하여 죽는 것이다. 로마서 6장 4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그 다음에 물에서 나오는 것은 부활을 상징한다. 로마서 6장 5절에서『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부활과 연합되는 것을 성령세례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세례받은 자들이 부활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도 못하고 현재적 부활을 믿지 못하므로, 사실상 성령세례를 받은 적이 없는 것이다.
물세례 따로 있고 성령세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지만, 부활에 대해서 모르므로, 물세례 따로 성령세례 따로가 된 것이다. 말하자면, 오늘날 대부분 신도들은 부활에 대해서 모르므로 물세례만 받았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성령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마치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40년간 돌다가 죽는 그런 사람들과 같은 모양이다.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야 하는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않으므로 하나님이 분노하셔서 그들을 광야에서 다 죽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부활생명을 주셔서 하나님 나라로 복귀시키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에만 매달리고 있으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가나안에 들어간 자는 여호수아와 갈렙, 출애굽 당시 19세 이하의 아이들,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들만 들어간 것이다.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정탐꾼을 보내자고 모세에게 요구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지파별로 차출하여 열두 정탐꾼을 들여 보냈는데, 여호수아와 갈렙만 제외하고 모두 들어가면 죽는다 라고 모세에게 보고한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백성들은 밤새도록 통곡하며 울었다고 한다.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너는 것은 물세례를 상징한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그런데, 성령세례를 받는 것은 요단강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이 지나서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 바로 성령세례를 상징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다. 성령세례를 받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 전이었으므로 물에 들어가는 것은 죽음의 예표이지만, 나올 때는 성령세례를 받으신 것이다. 마태복음 3장 16-17절에서『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예수님은 마리아의 태속에 성령으로 잉태되었지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분의 정체성도 인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성령이 임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πνεῦμα [τοῦ] θεοῦ καταβαῖνον ὡσεὶ περιστερὰν [καὶ] ἐρχόμενον ἐπ’ αὐτόν· 성령을 비둘기(카타바이논)로 묘사했다. 번역자들은 요나서를 근거로 비둘기가 히브리어로 요나인데, 카타바이논을 요나로 할 것인가 비둘기로 할 것인가 고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맥상으로는 요나로 번역했어야 했다.『성령이 요나와 같이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간 있었다. 이는 십자가의 죽음과 삼일 후에 부활할 것을 예표한다. 그리고 자기 위에 성령이 임한다는 것은 아직 성령이 예수님의 심령 속으로 들어가지 않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성령이 사탄에게 예수를 이끌어 시험 속으로 들어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시험받은 내용은 세가지이다. 첫째는 돌을 떡덩이로 만들라는 것이다. 율법의 말씀을 생명의 말씀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죽어야 할 육체(율법의 지배)를 부활생명(성령의 법의 지배)으로 바꾸라는 말이다. 율법과 복음을 섞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경에서 적어놓은 글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호로고스 부활생명)으로 살아라는 것이다. 복음을 받아드리는 신도들 중에는 여전히 율법 속에서 사는 자들이 있다.
두번째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천사가 받을 것이라고 사탄이미혹한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것이다. 신도들은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았다고 생각하는데, 고통과 어려움이 오면 하나님을 불평하는 신자들이 있을 것이다. 세상은 감옥과 같은 곳이지만, 낙원처럼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 세상을 하나님 보다 사랑한다면 시험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세번째는 사탄이 예수에게 자신에게 절하라는 것이다. 절하면 모든 것을 다시 돌려주겠다고 했다. 누가복음 4장 6-7절『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예수를 은근 슬쩍 하나님 자리에 앉게 만드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에게만 경배하라고 했다. 이게 세가지 시험이다.
세례를 받은 성도는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하였음을 믿는 의식을 했지만, 실제로 그런지는 세가지 사탄의 시험을 받는다. 그리고 사탄의 시험을 통과하더라도 하나님의 인증을 받는 성령의 임함은 언제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아들도 모르고 천사도 모른다고 말한다.
성령이 임할 때의 모습을 마태복음 24장 41-42절『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고린도전서 15장 51-52절에서 말하고 있다.『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서도 말한다.『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물세례 밖에 모르는 자들은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 성령세례를 모르는 자들이 성령세례를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경우 하나님으로 부터 직접 받을 수 밖에 없게 된다. 목사나 성도로부터 성령세례를 받을 경우, 비록 성령세례를 받는 것은 의식이지만 마음으로 믿는 것이다. 자신이 예수와 함께 죄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임을 선언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현재적으로 부활한 자임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 고백과 믿음에 따라 어떤 사람은 즉시 성령이 임하겠지만, 어떤 사람은 늦어질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사탄의 시험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성령이 임하면, 위의 사례처럼 신비한 체험들이 있을 수 있지만, 조심해야만 하는 것이다. 복음을 위해 나타난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 가짜인 것이다. 신비한 체험을 자기의 영광을 위해 내세우거나 돈을 받는 행위들은 모두 가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