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한국사람은 무엇일까? 고려사람과 조선사람의 차이는?
법률방송 2024. 05. 22
[2회] 고려 사람과 조선 사람은 어떻게 달랐을까? /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 YouTube
[2회] 고려사람과 조선사람은 어떻게 달랐을까? / 송나라 문화 도입
<결혼 풍속의 차이>
- 통일신라, 삼국시대, 고려시대는 불교국가 (천년 불교 국가)
- 고려시대: 결혼 시 남자가 여자의 집에 간다 (장가를 간다). 여자 집에서 경제적인 준비를 한다 (노비, 의복 등). 여자가 경제권을 가진다.
- 조선시대: 결혼 시 여자가 남자의 집에 간다 (시집을 간다. 친영을 하다). 노비, 의복, 기명을 딸이 가져간다 (혼수, 지참금).
- 세종실록에서 세종 이복 여동생 숙신옹주를 윤평에게 최초로 시집을 보낸다. 유교의 대혁명 (시집만 가는 나라). 수전년 이어온 전통의 개혁.
- 하지만 16세기 중기 이울곡의 아버지는 어머니 신사임당에게 장가를 간다. 신사인당까지는 고려의 여성이고 자주 친영을 했다. 조금씩 변화. .후대의 100년 후의 조선의 여성과는 완전 다르다. 이후 종법제도에 의해 시집을 가고 아무것도 못배우고 묻힌다. (큰 변화)
- 송나라 사신 서금의 고려도경(1124년)에 고려 생활상
'남녀간의 혼인에서도 가볍게 합치고 쉽게 헤어지니 전례를 본받지 않으니 참으로 웃을만한 일이다. 부유한 집안에서는 아내(남편?)를 3~4인 맞이하는데 마음이 맞지 조금만 맞지 않아도 헤어진다,"
"그들은 항상 중국인이 때가 많은 것을 비웃는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목욕을 하러 집을 나서며 여름에는 하루에 두 번씩 목욕을 한다. 흐르는 시냇물에 많이 모여 남녀 구별없이 모두 의관을 언덕에 놓고 물굽이 따라 속옷을 드러내는 것을 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현재의 일본의 관습과 동일.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는 일본과 같은 문명권)
- 고려시대 부모 봉양은 딸이 한다. 원나라에 바치는 조공녀을 멈추게 해달라.
<송나라 문물의 도입>
- 조선시대에 중국의 종법제도를 받아 들여 결혼제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러면 왜 중국의 종법제도를 받아 들였나?
- 중국은 송-원-명-청으로 이어진다. 중국은 송나라(고려사대) 때 엄청만 산업발전이 이루어진다. 조선은 송나라의 대 산업혁명을 따라 하려고 한다.
- 거란과 여진에 밀려 중국문명이 쪽으로 내려간다. 장강 주변이 엄청 비옥함. 새로운 토목기술로 장강 하류의 바닷물을 빼고 비옥한 농토를 만든다. 그리고 이양법이라는 새로운 모내기법이 개발되어 쌀이 주식이 된다. 경제적 여유로 상업이 크게 발달한다. 석탄 화로 개발로 철을 생산, 도자기 생산. 상업 발전로 세계 최초 지폐 발행. 인구도 1억 돌파.
- 원나라 수도 연경에 간 고려 왕자들이 원의 부마가 되고 풍요로운 송과 원의 발전을 배우고 고려에서 개혁을 하려고 함 (공민왕).
- 이탈리아의 마르코폴로도 놀람
- 흥부전 (다리 다친 제비를 고쳐 만리 강남에 평안히 잘가거라. 중국의 양자강 유역. 온갖 보물이 나온다. 부의 상징). 친구따라 강남간다. 강남의 풍요.
- 고려의 공민왕이 시도하다 실패하고 유교 쿠데타를 일으켜 조선을 세운 사람들이 강남농법을 배움 (측우기, 해시계 개발). 과학기술(장영실) 발전.
- 사회제도와 가족제도는 중국 것. 강남 농법과 남송의 주자 성리학을 도입한고 조선이 중국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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