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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교동대교 [喬桐大橋]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강화대교와 교동대교를 연결하는 48번 신도로
교동도와 교동대교
48번 국도를따라 계속 진행...
예쁜 카페가...
교동도와 교동대교
들국화... 지나가는되 국화 향기에 취해 한컷...
무태돈대 입구
◇무태돈대
** 무태돈대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무태돈대는 조선시대의 돈대이다.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지역에 쌓은 소규모 관측, 방어시설이다. 강화도는 예부터 해안 방어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1679년(숙종 5) 당시 병조판서 김석주에게 강화도를 돌아보게 한 뒤에 48개의 돈대를 쌓게 했는데, 무태돈대도 이때 만들어졌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인화돈대, 광암돈대, 귀등돈대, 작성돈대와 함께 무태돈대는 인화보의 관리 아래 감시소와 방어진지로서 역할을 했다. 직사각형 형태인 무태돈대는 둘레 210m 성곽 폭은 2m이며 해안을 향해 포좌 4문을 설치했으나 동쪽과 서쪽의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있으나 남쪽 성벽은 하부만 남아있어 최근 새로 상부를 쌓았다.
10시01분...창후항...서해랑길102코스 종점 및 103시점 ...12.5키로미터 지점...
창후항.. 공사중
징후항 어시장
창후리종점(창후항) 버스 승하차장
강화 파출소10.5키로미터..창후항0.5키로미터 이정목
삼거리에서 우측 국화길쪽으로...
해안 뚝방길을 따라서...
멋진..해안 뚝방길...
길양쪽에 억새들이...
별립산... 2시간을 병립산을 보면서 돌았내요
해안 뚝방길에 산죽이...
강화나들길 16코스 시점이내요...서해 황금들녁길...
여기가 황금 들녁.. 추수후 쓸쓸함만....
기장섬
교동도
해당화.. 피었내요
좌측은 석모도...우측은 기장섬
***석모도 개요***
석모도는 강화군 외포항에서 서쪽으로 1.2㎞ 떨어진 섬으로 수도권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한 관광지이다. 강화대교와 초지대교가 있어 찾는 이들이 많다. 석모도는 면적 42.841㎢, 해안선 길이 41.8㎞이고 최고점은 상봉산이다. 해명산, 낙가산, 상봉산 등 높은 산이 연결되어 있으며 1,138 가구 2,216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곳이다. 백사장 길이가 1㎞에 달하는 민머루수욕장에서 갯벌체험과 캠핑이 가능하며 인근 항구에서 배를 타고 바다낚시도 즐길 수 있다. 관음성지로 유명한 보문사에는 눈썹바위에 새겨진 마애관음좌상이 유명하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일품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석모도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멋진 해안 뚝방길...
석모도
** 망월돈대[ 望月墩臺 ]
1995년 3월 2일 인천광역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강화도는 예부터 외적의 침입이 잦았고 개성, 한양 등 중부 내륙지방을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로 해안방어에 각별히 힘써 왔던 곳이다. 이런 이유로 조선시대 숙종은 이곳에 6진(鎭), 7보(堡), 9포대(砲臺), 53돈대(墩臺)를 축조하였다.
1679년(숙종 5)에 병조판서였던 김석주(金錫胄)에게 강화도의 지형을 돌아보게 한 뒤 어영군 4,000명과 함경도·강원도·황해도에서 뽑은 승병(僧兵) 8,000명을 동원해 49개의 돈대를 축조하였다. 망월돈대도 이때 축조된 것이다.
망월돈대는 40~120cm의 돌을 가로 38m, 세로 18m, 높이 2.5m의 직사각형 모양으로 쌓았고 윗부분에는 성가퀴(몸을 숨기고 적을 공격하기 위해 성 위에 덧쌓은 낮은 담으로 여장 또는 성첩이라고 함.)의 흔적이 남아 있다. 또 돈대의 중간중간에는 사람이 드나드는 문과 총구멍이 있다.
당시 함께 축조된 돈대로는 택지·삼암·분오리돈대(인천광역시 유형문화유산)와 장곶·계룡·망양·건평·굴암·미루지·북일곶등대(인천광역시 기념물), 선수·화도·무태등대(인천광역시 문화유산자료) 등이 있다. 특히 해안에 위치한 강화군 화도면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장성(長城)은 고려 때 강화로 천도하면서 해안방어를 위한 외성(外城)으로 축조한 것으로 길이 7m, 너비 1.5m, 누문(樓門) 6개, 수문(水門) 7개의 규모이다. 1618년(광해군 10) 관찰사 심돈(沈惇)에 의해 개축되었고, 1745년(영조 21) 유수 김시환(金始煥)에 의해 개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만리장성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현재는 제방(堤方)으로 사용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망월돈대 [望月墩臺]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망월돈대
해안 뚝방길을 따라 계속 진행
11시00분..창후항3.8키로 강화파출소7.2키로 이정목...15.3키로미터 지점
망월리와 별립산
망월리 들판
철새 천국
교동대교
민들레꽃과 홀씨
석모도
멋진 억새길
해안 뚝방길과 서해 그리고 석모도
정말 멋진 해안뚝방길...
철새의 비상...
계룡돈대
**계룡돈대 ; [ 鷄龍墩臺 ]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구조물. 1995년 3월 2일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995년 3월 2일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옛날에는 규모가 큰 군사시설을 진이라 하고 작은 것은 돈대라 하였는데,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돈대를 설치해 적군의 침입을 감시하고 직접 싸우기도 했으므로 오늘날의 초소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강화도에는 53개소의 돈대가 남아 있는데, 1679년(숙종 5)에 설치된 것이다.
계룡돈대는 경상도 군위(軍威)의 어영군사(御營軍士)들이 축조한 돈대로, 강화 53돈대 중 유일하게 축조연대가 표시되어 있다. 30m×20m의 직사각형 모양이며, 한 면은 석축 높이 2m 정도에 길이가 30m이고, 3면은 석축(石築)되어 해변을 향해 정면으로 외적을 볼 수 있다.
망월(望月)돈대와 함께 직접 영문(營門)에서 관할했다.
석축 하단에 ‘강희18년 군위어영 축조(康熙十八年軍威禦營築造)’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다. 강희 18년은 1679년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창후항7키로미터... 강화파출소4키로미터 이정목
황청2리 마을 회관
국촌 버스 승하차장
멋진 펜센들...
바다 전망대
석모대교 교차로
** 석모도
면적은 42.841㎢, 해안선길이 41.8km이다. 1999년 12월 말 현재 898세대에 2,41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강화도 외포항에서 서쪽으로 1.5㎞ 해상에 위치한다. 고려시대 말엽까지는 석모도·송가도(松家島)·어류정도 사이에 조수(潮水)가 드나들어 선박이 왕래하였는데, 주로 예성강(禮成江)과 한강을 드나드는 화물을 수급하였다. 1895년 행정구역 개편 때 교동군에 속하였다가 1910년 강화군에 편입되었다.
남동쪽 끝의 해명산(海明山:327m)과 중앙의 상봉산(316m)으로 인해 중부와 남부는 산지를 이루고, 북부와 서부의 간척지는 평지를 이룬다. 평지에서는 서해안으로 작은 시내가 흐르는데, 그 유역의 토지가 기름져 경작지 또는 취락으로 이용된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한다. 주요 농산물로 쌀·보리·콩·감자 등이 생산되며, 근해에서는 병어·새우류·숭어·꽃게 등이 잡힌다. 넓은 간석지를 이용한 굴양식이 활발하며, 삼량염전에서 소금을 생산한다. 지역 특산물로 섬쌀·순무·밴댕이젓갈·새우젓·천일염 등이 유명하다.
섬 중앙부의 낙가산(洛伽山) 기슭에 자리잡은 보문사(普門寺)에는 지방유형문화유산 제27호인 보문사 석실(普門寺石室)과 제29호인 보문사 마애석불좌상(普門寺磨崖石佛坐像), 기념물 제17호인 보문사 향나무, 민속자료 제1호인 보문사 맷돌이 있다. 섬에서 유일한 민머루해수욕장은 썰물 때면 개펄이 드러나 자연학습장으로도 이용된다. 섬에 드나들기 위해서는 강화도 외포항에서 석모도 석포항 사이를 운항하는 배편을 이용해야 했으나, 2017년 6월 강화도와 석모도를 잇는 석모대교가 개통하면서 육지 접근이 가능해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석모도 [席毛島]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석모대교 교차로와 강화해누리 공원
석모대교
석모대교
석모대교 버스 승하차장
강화 해누리공원
멋진 석모대교
삼암돈대
**삼암돈대
1999년 3월 29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 축조한 강화 54돈대 중의 하나이다. 강화도의 서쪽 해안 중앙, 석모도(席毛島)를 마주한 곳에 설치하였다.
돈대는 외적의 침입이나 척후 활동을 사전에 방어하고 관찰할 목적으로 접경 지역이나 해안 지역에 흙이나 돌로 쌓은 소규모의 방어 시설이다. 강화돈대는 조선 숙종 5년(1676) 청성부원군 김석주(金錫胄:1634~1684)의 건의를 받아들여 축조하였다 한다. 실제로 축성을 지휘한 것은 당시의 강화유수(江華留守)였던 윤이제(尹以濟)이다. 강화돈대는 종래 53돈대로 알려졌으나, 1999년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의 발굴조사 결과 54돈대로 확인되었다.
삼암돈은 외포리 아래의 건평돈, 동으로 1.3㎞ 떨어진 망양돈, 북쪽으로 3㎞ 떨어진 석각돈과 함께 정포보(井浦堡:정포진)의 관할하에 있던 곳이다. 지형은 전면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그 안쪽으로 약간 후퇴한 넓은 대지에 터를 잡고, 후면으로는 나지막한 산을 등지고 있다. 대략 40~120㎝ 정도의 모난돌로 축조된 석벽에는 4문의 포좌와 55개소의 치첩(雉堞)이 있었다. 포좌 내부에는 포탄 등을 보관할 수 있는 이방(耳房)을 설치하였다.
기록에 보면 축성 당시의 둘레는 91보라 했으나, 지금은 가로 22.5m, 세로 23m의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북으로 출입구가 나 있으며, 외벽은 높고 내벽은 낮은 것이 특징이다. 석벽의 폭은 4m 정도이고, 내부에 방형(方形)의 화약고터가 남아 있다. 석벽은 전체적인 지형에 따라 횡줄눈의 높이를 맞추어 쌓았으며, 석재 사이에는 그랭이질을 하여 맞닿은 면을 빈틈없이 하려고 하였다. 상부로 올라가면서 안쪽으로 후퇴시킨 퇴물림 방식을 사용하였다. 출입구로부터 우측 40m 지점에 석조를 만들어 물을 배수시키고 토압(土壓)을 완화하려 하였다.
지금은 부분적으로 보수하여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삼암돈대 [三岩墩臺]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와포리포구 맞은편 석모도 선착장
방랑식객 산방
와포항 젓갈수산물 직판장
**외포항
외포항은 1971년 12월에 국가 어항으로 지정돼 현재 해양수산부에서 관리하는 항구로, 폭 0.8km, 내해 수심 8m, 외해 수심 22m에 이르는 곳이다. 인근 어촌으로는 대계마을, 소계마을이 있다.이곳은 전국 대구 물량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국내 제일의 대구 집산지로, 오전 10시가 되면 외포리 어판장에서 경매인의 큰 목소리와 함께 활기찬 경매가 시작된다. 이곳은 신선한 대구가 가득한 곳으로 원기 회복에 좋은 대구탕을 맛있게 즐길 수 있다.이 항구는 동쪽으로는 대금산을 서쪽으로는 망월산을 두고 있는 산지에 둘러싸여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2005년부터는 매년 ‘거제 외포항 대구 축제’가 열리고 있어 축제 시기마다 더욱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외포항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외포2리 마을회관
서해랑102코스 시점및 101코스종점
12시52분... 강화 파출소...22..61키로미터
이곳에서 오늘 답사를 완료후 외포터미널에서 강화터미널로 이동후 집으로 복귀
외포리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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