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강 체면 차릴 때가 아닙니다. 살고 싶다면 부르짖으십시오
본문 | 예레미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해방 직후 전쟁의 상처와 깊은 가난으로 절망하던 이 땅에 다시 기도의 불을 지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성봉 목사이다. 그는 새벽마다 종을 치며 사람들을 깨웠고, 성도들은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성전에 모여 한목소리로 "주여!"를 외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 간절한 기도는 수많은 사람을 회개하게 했고, 절망뿐이던 시대에 다시 소망의 불씨를 일으켰다.
오늘 우리의 기도는 어떠한가.
우리는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니 조용히 기도해도 다 들으신다."라고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나님은 작은 신음까지도 들으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어느새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이 식어 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삶의 기반이 흔들리고 인생의 성벽이 무너질 때에도 사람은 마지막까지 체면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물에 빠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체면이 아니라 구조를 요청하는 외침이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는 체면보다 간절한 부르짖음이 먼저여야 한다.
그렇다면 부르짖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부르짖음은 단지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이 아니다. 내 힘으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만이 나의 유일한 소망이심을 고백하는 외침이다.
예레미야 33장은 바로 그런 부르짖음을 보여 준다. 이 말씀은 나라가 평안할 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 감옥에 갇혀 있었고, 예루살렘은 멸망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전쟁과 굶주림, 절망뿐인 현실 속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하나님은 상황이 나아진 뒤에 기도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아무 희망도 보이지 않는 그 자리에서 먼저 하나님을 찾으라고 하셨다. 절망의 자리야말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할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지 못할까. 아직도 내 힘을 더 의지하고, 하나님보다 사람을 먼저 찾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에게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것은 우리의 계산과 경험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나 역시 그 약속을 삶 속에서 경험했다.
수원의 작은 반지하에서 1년만 살 생각으로 들어갔지만 결국 8년을 지내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곰팡이 냄새와 바퀴벌레 속에서도 날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주님, 교회를 세워 주십시오.”
오랫동안 부르짖어 기도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돌아보니 하나님은 침묵하신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하나님은 이미 크고 은밀한 일을 준비하고 계셨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길을 통해 교회를 세우게 하셨고, 내가 구한 것보다 더 큰 계획을 이루어 주셨다.
요셉도 감옥에 있을 때는 그것이 총리가 되는 길인 줄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감옥에서도 자신의 계획을 멈추지 않으셨다.
우리에게도 기도의 응답이 보이지 않는 시간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다. 우리가 알지 못할 뿐, 하나님은 지금도 가장 선한 뜻을 이루어 가신다.
사람 앞에서는 눈물을 감출 수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오늘도 부르짖는 자의 소리를 들으시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이루어 가신다. 지금은 체면을 차릴 때가 아니다. 살고 싶다면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송파물댄동산교회
(부설: 주야로기도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