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4대강과 원전의 닮은 꼴
― 이젠 원전해체시장으로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들어가며
10여 년 전 4대강 사업을 돌아본다. 정부는 강을 살린다고 선전했지만 실상은 거대 건설자본에 수조 원을 쏟아붓는 정책이었다. 감사원은 당시 국토부가 대통령실의 운하 재추진 대비 지시에 따라 사업 마스터플랜을 세웠다고 밝혔다.1 경부운하 컨소시엄에 참여했던 대형 건설사들이 그대로 4대강 사업에 뛰어들어 담합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8개사에 과징금 1,115억 원을 부과했다.2 낙찰률은 평소의 두 배에 가까웠고 22조 원의 예산이 건설사로 흘러들었다.
강살리기라는 구호 아래 정치와 자본이 서로를 먹여 살리는 구조가 작동했다. 그리고 지금,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이 그 망령을 되살리고 있다.
이 장은 두 가지를 말한다. 하나는 지금의 원전 증설이 4대강과 같은 구조를 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원자력 산업에 길이 있다면 그것은 짓는 쪽이 아니라 뜯는 쪽이라는 것이다.
1절. 송전망이 말해주는 것
가장 눈에 띄는 현실은 송전망 포화다.
2024년 제도 개편 이후 인천에 신청된 24개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모두 전력망 여유 부족을 이유로 불허됐다. 동해안의 송전망 적정용량은 11기가와트 수준인데, 신한울 2호기 가동 전에도 이미 13.6기가와트의 발전설비가 얹혀 과포화 상태였다.3
2025년 상반기에는 전국에서 약 160기가와트시의 전력이 송전 제약으로 유실됐다. 수도권으로 향하는 남서부 송전선로도 포화되어 호남 지역의 태양광 설비는 거꾸로 감발 조치를 받는다. 정부는 70조 원 규모의 송변전 설비 확충을 예고했지만 주요 사업 절반 이상이 아직 착공조차 못 했다.
이미 지어진 원전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건설 중인 새울 3·4호기가 송전망 건설이 뒤따르지 않아 현행 전력계통 안정운영기준인 신뢰도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며, 이 문제가 국정감사에서 지적됐음에도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있다.4
이 상황에서 원전 2기가 더해지면 어떻게 되는가. 가동 시점보다 공사비 집행 시점이 더 중요한 구조가 된다. 송전망 완비 전에 준공되는 원전은 돌리기 위한 시설이 아니라 짓기 위한 사업이 된다. 4대강을 떠올리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기를 만들지 못해도 사업은 성립한다. 오히려 만들지 못하는 편이 자본의 회수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22조 원이 강바닥으로 들어갔을 때도 그랬다.
2절. 짓는 산업에서 뜯는 산업으로
종교계가 먼저 말했다
때는 2013년 초.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직후이자 후쿠시마 원전사고 2년 뒤, 불교계와 원불교계는 원전정책의 획기적 변화를 새 정부 인수위원회에 요구했다. 안전 분야와 해체 분야를 특별히 강화하라는 주문이었다. 안전은 예전부터 강조되어온 바이지만, 해체는 그 이전 정부에는 없던 개념이었다.
종교계의 염원은 단순했다. 낡거나 위험한 원전은 수명을 연장하지 말고 해체하라는 것, 그리고 그 해체 기술을 연마해 세계시장으로 나가라는 것이었다. 그해 3월 프레스센터에서 해체기술과 해체시장을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이 열렸고, 독일·미국·일본의 전문가와 산업자원부 담당관이 함께 토론했다. 원자력업계 종사자 수백 명이 참가했다.
해체는 안전과 경제를 동시에 추구하는 일이다. 이 발상이 종교계에서 먼저 나왔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시장은 이미 열려 있다
회계법인 딜로이트는 2015년 예측에서, 전 세계 588개 원전 중 영구정지된 것이 150기이고 그중 19기만 해체가 완료됐으며, 2020년대에 183기, 2030년대 이후 216기로 크게 늘어난다고 보았다. 유럽연합 40퍼센트, 미국·캐나다 25퍼센트, 일본 9퍼센트 등 선진국에 4분의 3이 몰려 있고, 해체 비용은 총 440조 원 수준으로 추산했다.5
국제원자력기구에 따르면 2021년 9월 기준 전 세계에서 203기가 영구정지 상태로 해체를 기다리고 있다. 2022년 11월 기준 운영 중인 423기 가운데 65퍼센트 이상이 설계수명이 다했는데, 완전히 해체된 원전은 21기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컨설팅업체 베이츠화이트는 세계 원전해체 시장 규모를 549조 원으로 추산한다.6
지금 이 시장을 이끄는 곳은 미국 에너지솔루션스, 영국 아멕, 프랑스 오라노 등 초기 원전 도입국의 10여 개 기업이다. 그러나 시장의 크기에 견주면 이제 시작이다.
왜 한국이 유리한가
2022년 3월, 원전 시공 경험이 축적된 현대건설이 미국의 노후원전 해체 사업을 수주했다. 발주처는 미국 홀텍사다.
미국은 이미 16기를 해체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경험을 가진 나라다. 그런 홀텍이 자국 기업이 아닌 현대건설을 파트너로 고른 것은 뜻밖이다. 이유로 짐작되는 것은 셋이다. 원전 시공 경험이 풍부하고, 방사성 오염토양 복원 기술을 보유했으며, 현대그룹이 인공지능 로봇 스팟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 항목이 핵심이다. 방사능이 가득한 해체 현장은 원격조종 작업이 필수적이고, 강한 방사선을 견디는 소재로 만든 로봇이 정밀하게 계측하며 작업해야 한다. 인공지능 시뮬레이션이 원활해지면 난이도 높은 공정이 훨씬 수월해진다. 기술이 올라가야 고준위폐기물의 부피를 줄이고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정보기술이 융합된 해체기술이 요구되는 것이다.
해체 현장은 보통 40년간 이어진다. 2021년 원전해체비즈니스포럼에 참여한 이탈리아 엔지니어 마리오 라체리는 1999년부터 해체를 시작한 현장에서 오랜 기간 혁명적 기술진화의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탈리아는 일찍이 원전 가동 중단을 선언한 해체기술의 선구자다. 그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나라는 몇 되지 않는다.
원전 원천기술에서 미국에 뒤진 한국이지만, 해체 분야만큼은 다를 수 있다. 서범경 한국원자력연구원 해체기술연구부장이 꼽은 중점 개발 기술 아홉 가지 — 작업 안전성, 환경 위해도 저감, 인공지능과 디지털 트윈, 고방사성 대상 방사선학적 특성 평가, 원격 절단공정 모니터링, 레이저 절단 안전특성 강화, 가연성 폐기물 감용, 삼중수소 분리 소재, 레이저 기반 동위원소 분리 — 를 보면 알 수 있다.7 기존 원자력공학이 아니라 기계공학과 신소재공학에 정보기술이 접목되는 영역이다.
독일이 가르쳐준 것
필자는 2014년 가을 독일 칼스루에 공대와 기술감리기관 TÜV-NORD를 방문해 원전해체 부문을 견학했다. 그때 얻은 교훈은 이것이다. 원전을 만드는 일과 해체하는 일은 원자력공학을 공통 기반으로 삼지만 실제로는 다른 기술영역이다.
칼스루에 공대 원전해체 분야 주임교수 사샤 겐테스는 원전 전공자가 아니라 안전기술 전문가였다. 그는 자신이 대만 고속철도 공사에서 내진설계와 시공 책임자였다고 말했다. 앞의 일이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라면, 뒤의 일은 고준위 방사능의 부피를 줄이는 안전한 공정을 짜는 것이다.
3절. 가르칠 사람이 없다
독일에서 돌아온 뒤 필자는 칼럼에 이렇게 썼다. 해체는 경험이 중요한데 지금 우리는 가르칠 사람이 없다. 산학연으로 전개하되 대학에서 인재를 길러내는 시스템을 갖춰야 적은 돈으로 효과를 거두고 장기적 대응이 가능하다. 그런데 국내 원자력 관련 학과는 해체 부문이 미약하다.
문제는 그 뒤로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2023년에 서울대·카이스트·한양대·경희대·조선대 다섯 곳의 원자력 관련 학과 학부와 대학원 커리큘럼을 조사했다. 학부에서 해체를 가르치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전공교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학원은 서울대와 카이스트에 해체 관련 과목이 아예 없고, 한양대 2과목, 경희대 1과목이 선택과목으로 있을 뿐이었다. 조선대는 세 과목이 개설되어 있으나 전임교원 중 해체를 전공한 교수가 없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2026년에 해체전문 인력 1,500명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 2026년이 바로 올해다. 인력은 어디에 있는가.
길은 두 가지다. 모든 학교에 해체 전문가를 교수로 초빙해 육성하거나, 해체 전공을 신설하도록 유도하거나. 어느 쪽이든 국가가 지원한다. 학문적 업적을 쌓은 학자보다 실무를 가르칠 기술자를 초청해 산학연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면 된다. 이것이 국가가 할 일이다.
매년 원자력공학과에서 300여 명이 졸업한다. 관점을 바꾸면 소중한 자산이다. 이 학과 교수들은 제자들에게 새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4절. 수명연장이 아니라, 만료 즉시 해체로
기존 원전 분야는 이미 시장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RE100 체제에서 원전을 끼워 넣은 한국형 CF100은 세계시장에 통용되지 않는다. 태양광이 늘어난 계통에서 원전을 지금처럼 돌리면 무리가 간다. 고립된 전력계통을 가진 한국에서 태양광과 원전은 상극이다.8
그렇다면 발상을 바꿔야 한다.
폐로가 결정된 월성 1호기와 같은 중수로형 원전의 선행 해체 경험은 캐나다에 앞서 세계시장을 주도할 기회가 된다. 고리 2호기도 마찬가지다. 수명연장이 아니라 수명만료 즉시 해체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9
이 전환은 안전에도 이롭다. 해체하면 구조의 결함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가동 중에는 의심이 있어도 열어보지 못했던 내부의 문제점이 정확히 파악된다. 안보에도 유효하다.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같은 사태는 한반도 남쪽에서도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
무엇보다 이것은 일자리와 산업을 없애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옮기자는 이야기다. 짓는 산업에서 뜯는 산업으로. 40년짜리 일감이 세계에 널려 있고, 그 시장의 승부처는 우리가 강한 분야다.
5절. 남는 난제
솔직히 말해야 할 것이 있다. 사용후핵연료의 저장 문제다.
화장실 없는 아파트를 지어온 것이 원자력 산업의 오랜 모순이다. 처분장 입지를 거론조차 못 하는 현실에서, 발전소 마당에 임시저장시설을 갖추는 것조차 될지 안 될지 모른다. 한국에 온 독일 TÜV-NORD 기술자가 가장 우려하던 대목이 바로 이것이었다.
해체 시스템을 갖추고 비전을 세운다 해도, 그 어려움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수용의 필요성을 설득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10
그러나 이 난제가 있다고 해서 해체를 미룰 이유는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원전을 더 지으면 화장실 없는 방이 늘어날 뿐이다.
맺으며
4대강의 망령이 신규 원전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나지 않게 하려면, 사업 논리를 손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결정의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 그 이야기는 이 부의 마지막 장에서 이어간다.
다만 이 장에서 분명히 해둘 것이 하나 있다. 원전을 그만 짓자는 말이 원자력을 그만두자는 말은 아니다. 지어놓은 것을 안전하게 뜯어내는 일에만도 앞으로 수십 년이 걸린다. 그 일에 사람과 돈과 기술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그 일을 준비하는 대신, 뜯어야 할 것을 더 짓는 일이다.
주
1. 감사원 감사결과 보고서(4대강 살리기 사업 관련).
2. 공정거래위원회, 4대강 살리기 사업 입찰담합 제재, 8개 건설사 과징금 1,115억 원.
3. 인천 데이터센터 불허 및 동해안 송전망 과포화에 관한 보도(2024~2025).
4. 전력계통 전문가의 지적. 〔확인 예정 — 인용 출처와 실명 표기 여부〕
5. Deloitte, 원전해체 시장 전망, 2015.
6. IAEA 자료(2021.9, 2022.11 기준) 및 Bates White, 세계 원전해체 시장 규모 추산. 〔확인 예정 — 549조 원의 기준 연도〕
7. 서범경 한국원자력연구원 해체기술연구부장이 제시한 중점 개발기술.
8. 고립계통에서 원전과 태양광이 서로의 출력을 깎는 문제는 이 책 4장(이정윤)에서 자세히 다룬다.
9. 원전의 수명을 누가 어떤 근거로 연장하는지에 관하여는 이 책 6장(김해창) 참조.
10. 사용후핵연료의 저장과 처분 문제는 이 책 8장(이정윤)에서 다룬다.
11. 원전이 배출하는 온배수와 열오염 문제는 이 책 10장에서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