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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절
<단락 1> 성경에 나오는 여호와의 절기는 예슈아의 초림과 재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절기 중 봄 절기는 예슈아의 초림을 통하여 성취되어졌고, 여호와의 절기 중 가을 절기는 예슈아의 재림을 통하여 성최되어질 것입니다. 즉, 여호와의 절기는 하나님이 정하신 예언적 스케줄이며,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의 방향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리면, 혼란과 무질서가 따르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절기 중 장막절은 하나님께서 계획해 놓으신 우리의 구원을 완성시키는 절기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최고의 축복의 은혜를 주시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장막절 7일간의 기간에 4가지 식물을 취하여 구원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 앞에 즐거워해야 합니다 (레 23:40). 참고로 4가지 식물은 예슈아께서 예루샬라임 성전에 들어갈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료나무를 흔들며 예슈아를 찬양했던 그 식물들입니다. 4가지의 식물 중에 첫째는 종료나무 가지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둘째는 무성한 가지입니다. 이는 남을 도와주는 선행의 모습은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사람을 뜻합니다. 셋째는 버드나무 가지의 특징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도 모르고, 순종도 하지 않는 사람을 뜻합니다. 넷째는 좋은 나무 열매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지혜가 풍부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데 장막절에는 이 4가지의 식물을 하나의 다발로 묶어 함께 흔들게 됩니다. 이는 다양한 지체가 모인 교회 공동체가 왕이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 안에는 믿음이 좋은 사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좋으신 사람이 믿음이 연약한 사람을 보완해 주며, 서로 연합해야 합니다 (고전 12:12). 교회 안에서 하나됨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가능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며, 우리의 자아가 십자가에 죽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종종 연합의 상태가 아니라 혼합의 상태 가운데 있을 때가 있습니다. 혼합은 각자의 자아가 살아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은 알고 있지만, 하기 싫은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장막절 기간에는 스가랴 말씀과 전도서 말씀을 묵상합니다.
1. 슥 14:1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
여호와의 날의 히브리어는 ’아하릭 하야밈‘ 이며, 그 뜻은 ’모든 날들의 끝 (End of Day)‘ 입니다. 이 날에 예슈아께서 왕으로 오셔서 이 땅을 통치하시고 다스릴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마지막 때에 예슈아께서 다시 오셔서 이 땅을 심판하는 것을 부정적인 견해로 보는 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슈아께서 이 땅에 왕으로 다시 오시는 이유는 세상을 파괴하거나 멸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죄인인 인간이 주인 노릇하던 시대를 끝내고,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통해 온 땅을 다스리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끊임없는 전쟁과 불의한 권력과 물질주의와 이기심으로 가득합니다. 세상은 문명이 발전하고 기술이 고도화되어도 여전히 불의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을까요?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지금까지 인간이 스스로 왕 노릇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에 불의한 사람의 통치는 완벽히 종식되고,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와 정의가 온 땅을 다스리게 되며, 모든 이들은 자유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슈아의 재림 전에 유대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스가랴 14장 1절 ’1. ... 그 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어 네 가운데에서 나누이리라 2. ...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당하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말씀합니다. 마지막 때에 유대인들은 2/3가 멸망하고, 1/3은 불 가운데 던져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고난은 유대인들의 불순종으로 인해 시작된 것이며, 하나님은 이 시간을 통하여 그들이 예슈아께로 돌아오길 원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종종 우리의 삶 가운데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미가 7장 8절 ’나의 대적이여 ...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캄캄한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고난이 왔을 때에 먼저 세상의 방법 (뇌물, 타협, 우상 숭배 등등)으로 피하거나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고난을 돌파할 때에 기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1) 슥 14:2 내가 이방 나라들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
예슈아의 재림 직전에 이방 나라들이 모여 예루샬라임 성전을 공격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이방 나라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함입니다 (마 13:47-50, 계 20:10).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그리고 이 나라들 뒤에서 무기와 돈을 지원하고 있는 터키와 이란과 사우디 아라비아와 싸우고 있는 전쟁이 아마겟돈 전쟁의 서막이라면, 앞으로 이스라엘 더 많은 아랍 민족에 의해 공격당하고 수치를 겪게 될 것입니다. 이 전쟁에 대해 요한계시록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요한계시록 12장 7절에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 말씀합니다.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 땅에서 일어나게 되는 아마겟돈 전쟁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의 혈육의 싸움이 아니라 하늘의 전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 군대로 이 전쟁에 참여하여, 우리의 찬양과 기도는 하늘 군대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일상 생활속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두고 불평하는 대신, 그 문제를 하나님의 발등상 아래 두고 주님의 왕 되심을 찬양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을 우리는 그들과 함께 유업으로 얻게 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히 11:40).
(1) 슥 14:3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이방 나라들을 치시되 이 왕의 전쟁 날에 싸운 것 같이 하시리라 4.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 ... 8.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
예슈아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전쟁의 용사로 나타나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슈아의 발이 예루샬라임 성전 앞 곧 동쪽 감람 산 (해가 뜨는 방향)에 서실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마지막 때가 되면 세상 이들은 무엇이 정의인지, 무엇이 길인지, 무엇이 생명인지 혼돈과 어둠 가운데 살 것인데, 예슈아께서 세상의 빛으로 오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때, 예루샬라임에는 큰 지진이 일어나 땅이 동서로 갈려져 큰 골짜기가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땅에서부터 생수가 흘러나오게 되며 죽어있던 사해가 생물이 살 수 있는 바다로 변하게 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사야 51장 3절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말씀합니다. 예슈아의 재림을 통하여 예루샬라임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의 강으로 인해 죽어있던 광야는 에덴동산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인류의 시작이 에덴 동산에서부터 시작되어져서 회복되어진 에덴 동산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는 것을 소망해야 합니다. 비록, 지금은 예루샬라임 성전에 왕의 임재가 없지만 왕이신 예슈아께서 예루샬라임 성전에 다시 오실 때에 그 분의 영광으로 가득찰 것입니다.
(2) 슥 14:16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17. ...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예슈아의 재림 이후에 땅의 있는 모든 족속들은 초막절을 지키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떠한 민족들이 예슈아를 경배하러 예루샬라임 성전에 올라오지 않는다면, 그 땅에는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을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먹고 살아가는 이 땅의 양식은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을 믿기로 거부하는 자들에게 비의 열쇠를 잠그심으로 사람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초막절에 나뭇가지를 이어 만든 초막 (Sukkah)에 거하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애굽에서 생활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튼튼한 돌집과 성벽 안에 거할 때에 이것이 자신을 지켜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고, 반석에서 샘물이 터져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얇은 나뭇가지로 지은 초막에 들어갈 때에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를 막아주는 것이 집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물론, 우리는 세상에서 최선을 다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내 방법과 세상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3) 슥 14:9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 10. ... 예루살렘이 높이 들려 그 본처에 있으리니 ... 11. 사람이 그 가운데에 살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평안히 서리로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면, 모든 우상들은 무너지고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나라의 이름과 왕은 사라지게 되며, 예슈아께서 천하의 왕으로 등극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릴 미혹하는 수 많은 현대의 우상들 (돈, 명예, 권력)은 헛된 연기와 같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산들이 평평하게 되어지며, 예루샬라임은 주변 모든 땅과 산 위에 높이 들려져 열방에 빛을 발하는 도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샬라임 성전은 그 이름대로 샬롬의 도시가 되어 영원한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스스로 높아지려는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겸손히 주를 기다리는 자를 높일 것입니다. 다음은 전도서 말씀의 핵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단락 2> 2. 전 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를 지은 솔로몬 왕은 세상 좋은 것(돈, 권력, 이성 등등)을 다 경험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멀어지고 육체의 욕망의 길을 걸었을 때에 그가 도달한 결론은 허무였습니다. 허무함의 히브리어는 ‘헤벨’이며, 그 뜻은 ‘연기’ 입니다. 사람이 연기를 잡으려고 손을 뻗게 되면, 연기는 다 빠져나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이처럼 세상이 말하는 성공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 얼마나 높은 위치에 올랐는가’ 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성공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순간부터 허무가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쌓아 올린 공든 탑은 언젠가는 무너지기 떄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부터 영원한 성공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 것입니다.
1) 전 1: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사람이 태어난 이후 모든 이들은 죽게 되지만, 이 땅은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땅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예수님 믿고 죽으면 이 땅을 떠나 저 멀리 구름 너머의 천국으로 떠나는 것이 끝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최종 구원의 완성은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이 땅위에 임하는 것입니다. 예슈아는 주기도문에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말씀하시며, 요한계시록 21장에 ‘새 예루샬라임 성전이 이 땅으로 내려온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처음 이 땅을 창조하셨던 목적대로 이 땅을 에덴동산처럼 완벽하게 회복시키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이 땅 위에 세우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서의 삶은 하나님 나라의 연습장과 같은 곳입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삶의 현장에서 겪는 문제와 시련은 지나가는 헛된 고통이 아닙니다. 이 땅에 임할 왕이신 주님의 다스림을 내 삶에서 먼저 경험하는 거룩한 훈련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전도서 3장 11절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 ’ 말씀합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은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다른 것으로 채우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오래가지 못하고 우리를 더욱 목마르게 하며, 우리의 영과 혼과 육체를 망가지게 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날마다 심령이 가난한 자로 서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 오실 길을 준비하길 원한다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우고, 하나님보다 높아져 있었던 생각과 뜻을 낮추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1) 전 3:15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수천 년 전에 지나간 이스라엘의 역사가, 오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이스라엘의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자,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일을 미리 보여주는 선명한 예언적 그림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1절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말씀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과 우상숭배와 불순종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왜 저렇게 미련했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는 타인의 실패담이 아니라 나 자신의 연약함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읽으며 깨어있지 않는다면, 그들이 걸었던 실패의 길을 우리는 그대로 답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고 돌이킨다면, 우리는 승리의 길로 나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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