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과 <분노의 포도>
김용만
버스가 샐리나스 시내에 진입하자 네거리 도로변에 깔끔한 2층 저택이 나타난다. 식당과 기념품 매장으로 활용되는 <스타인벡 하우스 STEINBECK HOUSE>다. 전시실 입구를 둘러보고 서재, 침실, 유품전시실을 차례로 관람한 다음 영상실로 들어갔다. 영화 세트장처럼 꾸며진 영상실에서는 <에덴의 동쪽>이 방영되고 있는데 제임스 딘의 전설적인 연기 장면이 스크린에 뜨는 순간 일시에 내 몸이 긴장한다. 수십 년 전에 본 영화인데도 제임스 딘의 ‘이유없는 반항’은 아직도 내 의식 속에 살아있었던 모양이다.
존 스타인벡이 남북전쟁에서 제1차세계대전까지를 시대배경으로 설정하고 원죄로부터의 해방을 중심주제로 다룬 소설 <에덴의 동쪽>은 소설보다는 오히려 영화를 통해 더 잘 알려진 작품이다. 영화감독 엘리아 카잔이 예각적으로 선별하여 스스로 각색까지 맡은 영화 <에덴의 동쪽>은 구약성서의 카인과 아벨 형제의 이야기를 원형으로 삼았다. 인간의 영원한 사랑욕구를 주제로 설정한 이 영화는 배우 제임스 딘의 ‘우수 어린 반항적 인간상’을 부각시킴으로써 그를 일약 신화적인 스타로 키운 기반이 된다.
제임스 딘의 우수 어린 반항은 만천하 여성들의 모성애를 자극하여 그를 구애(求愛)의 심볼로 만들었던 것이다. 제임스 딘이 교통사고로 죽자 세계 곳곳에서 애도의 물결이 일었다. 이탈리아에서는 그의 죽음을 비관한 여자들이 집단 가출해 거리의 여자로 전락하는 웃지못할 사태가 발생했고, 그의 무덤에는 그의 죽음을 의심하는 팬들의 편지가 답지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제임스 딘은 농장을 경영하는 아담의 두 쌍둥이 아들 중 작은아들 칼 역을 맡았는데, 큰아들 아론(리차드 타바로스 분)은 고분고분한 성격인데다 공부를 잘해서 아버지의 애정을 독차지하지만 칼은 반항아적인 기질이어서 아버지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아버지가 형 아론을 편애할수록 칼의 성격은 점점 더 거칠어질 수밖에 없고, 드디어 아버지는 칼의 몸에 에미의 부정한 피가 흐를지 모른다고 의심하기에 이른다. 아론과 칼의 생모인 캐시는 처녀시절 가출을 시도했다가 아버지에게 꾸중을 듣자 집에 불을 질러 부모를 죽게 했고, 두 아들 아론과 칼을 낳고도 환락생활에 빠지고 싶어 가정을 파괴했으며, 가출을 막는 남편 에게 총상을 입히면서까지 집을 나와 창녀가 된 악마의 화신이다.
어느 날 칼은 죽은 줄만 알았던 어머니 캐시가 청루(靑樓)의 마담 노릇을 하며 몸을 판다는 풍문을 듣고 아버지 몰래 찾아갔다가 생모의 타락한 생활을 보게 된다. 칼은 아버지의 편애를 받아온 형을 괴롭히려고 일부러 함께 어머니를 찾아간다. 그동안 정숙한 어머니상을 간직해온 아론은 어머니의 타락한 모습을 보고 자포자기에 빠져 군에 입대했다가 전사하게 된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큰아들의 전사로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뇌졸증으로 쓰러지고, 죄의식을 느낀 칼은 아버지에게 용서를 빌지만 아버지의 마음이 좀처럼 풀어지지 않자 더욱 고뇌에 빠진다. 칼의 그런 찢겨진 영혼을 형 아론의 애인 에이브라가 감싸주는데 격정적이면서도 인간성이 고운 칼에게 마음이 끌린 에이브라는 아버지에게 칼의 효심을 이해하라고 간청한다.
“그를 받아주세요. 당신의 아들은 죄의식에 사로잡혀 제정신이 아닙니다. 그를 망가뜨려선 안 됩니다. 그를 자유롭게 해주세요.”
그제야 병석에 누워 있던 아버지는 칼에게 꺼져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간호원 대신 네가 간호해주렴.”
길 잃은 세대(Lost Generation)인 훼밍웨이보다 한발 늦게 등단한 존 스타인벡은 새로운 세기가 열리는 1902년 2월 27일 캘리포니아주의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샐리나스에서 태어났다. 맞벌이 부부인 부모를 도와 고교시절부터 농장일을 맡아오면서도 밀튼, 도스토예프스키, 엘리어트, 토마스 하디의 작품을 탐독한 스타인벡은 스탠포드대학에 입학하여 영문학을 선택했지만 학위를 받지 못한 채 대학을 중퇴한다. 그해 스타인벡은 도시를 선호하는 빅붐(Big Boom)이 일자 사람들이 모여드는 뉴욕에서 문필생활로 자립할 계획을 세운다.
미국의 대공항(大恐慌)이 불러온 자본주의 경제체제 붕괴는 민주주의의 패배를 의미한 반면 파시즘의 흥륭을 예고했다. 미국 노동인구중 3분의 1인 천망명이 실직하여 굶주리게 되자 1932년 대통령에 취임한 루즈벨트는 경제부흥과 사회보장증진을 최우선시한 뉴딜정책을 발표한다. 하지만 불황과 생활난은 일반대중에게 사회의식을 눈뜨게 했고, 자연주의적 색체를 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모더니즘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작가가 존 스타인벡이다.
그의 문체는 박력 있는 역동성으로 독자를 긴장시켜 읽히는 힘을 준다. 대표작인 <분노의 포도>가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도 생동하는 인물들이 독자로 하여금 현실감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며, 비정할 정도로 자기감정과의 거리유지에 철저했던 그의 문체가 작품의 극적효과를 증폭시키는 데에 기여했음은 당연하다.
<분노의 포도>는 마가레트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다음으로 기록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40년에는 퓨리처상을 받았고 영화로도 성공하여 유럽 각국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스타인벡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데에도 기여한 이 작품은 그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사회 하층민의 삶을 그리고 있는데 1937년 극심한 가뭄으로 농토를 떠나야 했던 오크라호마 소작인들, 소위 오키즈(OKiES)의 삶을 다루고 있다.
<분노의 포도>가 발표되자 그 제재와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성 묘사를 그대로 허용해도 좋을지 그 문제를 둘러싸고 문학관계자는 물론 저널리스트, 종교인, 정치가, 교사를 중심으로 논의가 분분했다. 물론 작품을 비난하는 소리가 더 컸으며, 불결한 책이라고 낙인을 찍은 도서관이 많았고, 특히 오크라호마주와 캘리포니아주의 지방신문에서는 작품 공격이 더 심했다. 오크라호마 출신 상원의원은 의회에까지 이 문제를 들고나와 논란을 일으키고 목소리를 높여 매도했다.
대공항의 절정기에 출간된 <분노의 포도>는 구약성서의 <출애굽기>를 원형으로 삼았으며 애급을 오크라호마로, 약속의 땅 가나안을 캘리포니아로 대입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젊은 톰 조드의 모습은 바로 모세의 상징적 모습이랄 수 있겠는데 조드 일가의 이야기도 다른 각도로 확대해석하면 미국 전체의 비극을 상징한 셈이 된다.
스타인벡은 66년의 길지 않은 생을 살았으면서도 사망할 때까지 집필생활을 계속하여 문학인생을 성실히 경영해왔다. 1968년 12월 20일 뉴욕 자택에서 눈을 감은지 6년만인 1974년,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샐리나스에는 72회 생일을 맞아 훌륭한 기념관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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