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같은 작곡가
이 예 원
2007년 가을, 그룹 음악여행을 떠났다. 10일이 지나 독일 음악가들의 생가를 둘러 본 후, 오스트리아 린츠에 도착했다. 이 시에서 약 18km 정도 떨어진 성 플로리안 수도원에 들러서 구경했다.
안톤 요제프 브루크너(Anton Josef Bruckner 1824-1896)가 태어나고 이곳에서 오르간 주자로 일했고 그의 묘도 오르간 곁에 안치되었다. 이 성당은 장식이 거의 없는 소박한 외관과는 달리 내부에 들어서면 화려한 분홍빛 대리석과 천장의 프레스코화가 볼만하다. 우리 일행이 도착하여 안치된 비석 앞에서 준비해온 들꽃 한다발을 증정하게 된 나는 더욱 인상 깊은 곳이다.
그는 안스펠덴 출생으로 오르가니스트인 아버지에게 음악교육을 처음 받았다. 1855년 콩쿠르에 통과하여 3년간 린츠성당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그가 태어난 집과 성장했던 곳, 안스펠덴에는 그가 살았고 다녔던 학교와 성당이 남아 많은 관광객들이 찾았다. 그의 사진으로 본 외모나 살아온 그의 일생으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 있자니 성직자처럼 살아 온 사람이었다.
그는 교향곡과 종교곡, 모데트로 유명하다. 생전에 이미 오르가니스트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특히 즉흥 연주로 능했다. 데 더움(Te Deum)은 “주님, 우리는 당신을 찬양합니다.”라는 의미로 라틴어 가사로 시작하는 찬양곡이다.
더 데움은 e단조 미사곡(1866)은 교양악과 합창의 조합이 인상적이다. 2009년 10월 11일, 내가 다니는 C교회 창립 124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처음 듣게 되었다. 교회 안 강대상 아래에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전문적인 합창단 규모를 갖춘 성가대는 어느 음악회에서도 관람 할 수 없었던 완벽함을 보여 주었다.
브루크너음악의 심오한 표현과 함께 곡 전체가 하나의 주제로 통일되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곡은 합창, 오르간, 대규모 관현악을 사용한 웅장한 스케일의 5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주님, 우리는 당신을 찬양합니다. 2.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니 3.당신의 거룩한 성도와 4.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5.주님, 당신 안에서 믿습니다. 이 모든 악장을 부르는데 약 25분이 흐른다.
독창자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테너, 베이스, 4명과 함께 찬양대 69명의 합창은 훌륭하게 소화할 뿐만 아니라 가사 모두 악보 없이 성가대원들은 란틴어로 화음을 이루어냈다. 종교음악의 대가 브루크너 작품을 한국의 대가인 k심포니의 지휘자로서 현재 성가대 지휘자를 맡고 있는 P씨의 솜씨였다.
전문적인 음악공간이 아닌 교회에서 브루크너의 곡은 모든 사람의 숨을 죽이고 오직 성령의 열기에 빠져 벅찬 감정만이 가득했다. 이곡은 라틴어 가사로 시작하여 찬양곡으로서 대관식, 사제의 서품식, 축제일등에 부르는 기쁨의 노래, 감사의 찬양이다.
웨버의 작곡 ‘내주여 뜻대로’ 생생의 심포니 No.3 C minor op. 78 '오르간 심포니' 약 45 분 연주는 보기 드문 공연이었다.
브루크너에게 있어 작곡은 종교의식을 위한 예술로서 중요성을 가졌다. 그는 신을 두려워하는 사제들이 종교의식을 주관하는 것과 같은 열의로 작곡에 임했다. 그리고 그는 종교음악의 대표 작가로 자주 거론 된다. 교향곡 작곡가이기 이전에 브루크너는 합창곡 작곡가였다.
브루크너의 모든 삶을 알아 볼 수 있는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하루 밤은 인상적이었다. 해가 지고 어두워서야 도착한 린츠 중심지에 있는 나이키 호텔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자 잠시 밖으로 나가 다리 쪽을 향해 걸었다.
중심을 가로 지르는 도나후 강에 놓여있는 리벨룽겐 다리에서 중심지인 광장과 크고 아름다운 린츠성당도 보였다. 브루크너는 1856년 린츠성당의 오르간 연주자가 되었다. 린츠에서 보낸 12년 동안 그는 행복과 실망을 다 경험한 곳이다.
행복은 작곡에 능숙해지고 그의 초기 작품들이 탄생한 계기가 된다. 불행은 린츠에 있는 동안 결혼 할 나이에 상대를 찾지 못했다. 그의 구혼은 매번 거절당했다. 그는 성직자처럼 깊은 종교성에 뿌리를 박은 것이다. 브루크너에게 있어 작곡은 종교의식을 위한 예술로서 중요성을 가졌다.
그는 72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성직자보다 더 자신이 신의 도구임을 절실하게 나타낸 신부님 같은 작곡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