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미션,신라왕자 김지장스님의 구화산
김지장법사(696~794)는 신라의 왕자 출신으로 중국불교 민중 신앙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중생 제도의 큰 뜻을 품고, 속세의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지 1500년후, 신라 왕자의 몸을 빌려 태어났다. 그리하여 만리 타국인 당나라로 구법의 길을 찾아 떠났으니 신라 성덕왕 7년 (서기 719년) 당나라 현종(玄宗) 개원(開元) 7년 이었다. 선청이라는 흰개 한마리를 데리고 배를 탄후 중국 동청양현(東靑陽縣)의 청양고을 구화산(九華山)을 찾아 고행 정진하게 되었다.
(신라왕자 김지장스님)
구화산은 당나라때 유명한 시인 이 백(李白)이 친구들과 함께 이 산을 구경하고, 그 지세가 웅장하고 아홉마리의 용이 하늘을 향해 나는 듯한 형상임을 보고 구자산(九子山)이라는 명칭을 구화산으로 바꿔 불렀다. 그 후로 구자산은 구화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신라의 왕자 김 교각 스님이 구화산에 첫 발을 디딘것은 그의 나이 24살이되던 719년 이었다.
(구화성지,지장보살성지현판)
김교각스님이 여기서 수행을 하였고 입적후에는 살아있는 육신보살로 많은 민중들에게 존경을 받게 되었으며 그후 중생구제를 서원으로 내세우며 육신보살이 되겠다는 많은 수행자가 나타난 후 구화산은 지장보살 성지로 더욱 유명해 지게 되었다.
중국대륙은 전국토가 불교문화의 광대한 영향권에 있으며
이후 대표적인 중국불교4대 성지로 산서성오대산 문수보살성지
(지혜상징), 사천성 아미산 보현보살(선정과 실천상징), 절강성 보타산 관음보살(자비상징) 안휘성 구화산 지장보살(지옥중생구제 )의 성지로 지정하고특히 구화산은 신라 김교각 스님의 입적지이자 육신보살로 중국인에게 널리 알려져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그동안 중국은 연구하고 배우는 가운데 너무나 많은 지명과
인물 사건 등으로 어려움이 많았으며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중국 대륙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스스로 학습의
범위를 제한할 필요가 생겼으며 오늘날 중국학의 연구방향이
나 정보가 상당히 많은 부분이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구화산 사찰전경)
사실 우리는 상당한 부분의 중국문화에 대하여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문화나 역사 자체가 중국의 영향을 받았
다고 학습되었고 고구려,백제,신라의 역사 자체가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 국가의 생존 자체가 결정되는 사례를 많이 보았다.
최근에는 일본과 미국의 영향 속에서 우리의 생존이 좌우
되고 있다.
자칭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직업화 하지 않는 사람은
가볍게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대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무엇이든지 취미로 했을때 한계효용이 극대화 되기 때문이다.
일단 쉽게 중국 학습하는 것은 중국의 명산인 오악을 기준으로 중국의 지리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다. 하남성의 숭산을 기준으로 북쪽의 오대산(산서성),동쪽의 태산(산동성),서쪽의 화산(섬서성) 남쪽의 형산(호남성)등이 중국인민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는 신령스러운 산이고 중국 역대 황제등이 대대로 그들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봉선의식을 올리던 신성한 곳이다. 역대 황제들은 이곳을 통하여 그들의 권위와 신성을 부여받았으며 스스로의 힘을 확신하였다.
(지장스님이 수행을 했던 천대로 오르는길)
그리고 이들 지역은 중원을 중심으로 적절하게 배치되어
5,000년 중국 역사의 중심지역으로 많은 작용을 해왔다.
중국의 5악을 중심으로 대륙을 이해하는 것이 중국 전체을 쉽게
이해하는 지름길이 되리라 생각된다.
그다음은 도교나 불교 유교를 통하여 중국을 이해하는 것이다.
물론 요즈음 가장 많은 관심을 끄는 것이 삼국지를 통하여
중국을 이해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도
스토리가 있고 친숙한 소재들이라 중국을 이해하는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 생각을 한다. 그러나 소설과 역사는 다른 것이다.
역사는 민중들의 삶과 직결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의 생존의 기록 인 것이다.
여기서는 직지찾기와 관게가 있는 불교4대성지에 대하여 이야기
하겠다. 중국대륙에는 4대 불교성지가 있다. 산서성 오대산
(문수보살)성지,절강성 보타산성지(관음보살),사천성 아미산
성지(보현보살),안휘성 구화산 성지(지장보살)등이다.
공교롭게 하남성 숭산이 빠져있지만 북쪽의 오대산남쪽의
보타산,구화산,서쪽의 아미산으로 구성이 되었다.중국은 사람도
많지만 절도 많다. 우리 문화재가 사찰문화재를 중심으로70%이상으로 구성되어 있듯이 중국의 문화재도 사찰로 70%이상이 구성되어있고 지금도 관광수입과 종교문제 등으로 본격적으로 불교사원을 복원하고 있다.
불과 1960대 문화대혁명 당시만 해도 유교사원과 도교사원 불교사원은 인민들의 정신을 좀먹는 악의 소굴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없애고 다시 시작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중국대륙이 모택동이나 공산당의 나라만은 아닐 것이다.
불교4대 성지를 통해서도 중국의 인문지리적인 특성이나
중국 문화를 접근하는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요즈음 중국을 이해하는 창구는 북경과 상해이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의 변화를 상전벽해라고 한다. 하루가 다르게 중국이 변하고 있으며 언젠가 우리의 영역까지 손쉽게 삼켜버릴 것이라고 염려 를 하고 있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앞으로 시간을 누구 편에 설지는 모른다. 우리가 좀더 중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준비를 한다면 미래는 우리의 편일 수도 있다. 오는 2008년 북경올림픽과 2010년 세계박람회를 향하여 중국 정부는 올인을 하고 있다. 우리가 과거에 올림픽과 월드컵을 위하여 올인을 했던 것처럼...
그러나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의 쇼윈도우인 북경과 상해를
통해서만 중국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방식은 좀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농촌의 희생을 통하여 도시를 건설하려는 기본적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도시지역과 내륙지방과의 빈부격차는 중국정부의 커다란 숙제이며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다. 좀더 효과적이고 시간을 줄이고 그 넓고 넓은 중국을 이해하는 첩경은 중원지역을 통한 중국대륙의 이해라고 생각한다.
요즈음 중국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다. 지난1992년 한중수교이후
많은 중소기업들이 돈벌이를 위하여 중국을 드나들었지만 지금
은 어느정도 윤곽이 들어났고 돈벌기에 그다지 매력적인 곳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후 많은 전문가들에 의하여 중국여행 이라는 대대적인 붐이 불기 시작하였다.
안휘성 황산 ,호남성장가계 원가계등 시골 계모임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의 여행객들의 발길이 대규모로 중국대륙에 몰리고 있고 태국지역의 손쉬운 관광처럼 손쉽게 중국을 이해하고 여행을 하고있으며 지난 2005년엔 일본 관광객을 앞질러 한국인이 중구대륙을 방문한 가장 많은 외국인으로 집계되었다. 무려 360만명이 중국을 방문하였다. 1일 1만명씩 365일동안 중국을 방문한 것으로 엄청난 사람과 돈이 중국 쪽으로 넘어 간 것이다.
그리고 1997년 IMF이후 저렴한 인건비와 토지비용등으로 중소기업들이 중국으로 이동하여 한국에서 20만개이상의 일자리가 줄어들었으며 상대적으로1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생겼다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중국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가 중국을 좀더 잘 알게 된 것은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중국지도집이 없는 형편이다.
여행안내서의 지도와 중국전도가 전부인 셈이다. 중국은 하루가 무섭게 우리를 압박하는데 우리는 그들을 옳게 이해할 수 있는 정보가 전무한 편이다.
중국을 올바르게 이해는 방법중에 하나는 중원지역을 이해하는
것이다. 섬서성의 서안지역과 하남성의 낙양지역,정주지역,개봉
지역에 대한 이해가 5000년 중국의변천사와 중국 근대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첩경이다. 이들 지역은 북경이나 상해지역보다 먼저 학습하고 이해되어야할 중국 대륙의 비밀 창고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이해를 갖는 것이 중국대륙에서 직지를 찾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어느 세월에 1만Km가 넘는 중국 땅에서 직지를 찾을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첫댓글 한국도 지장신앙이 성행합니다 김교각스님 사후 시신을 방부처리 하여 금물 입혀 탁자 위에 모시고 섬기는 이야기 가 재미 있는데 그얘기 가 누락되어서 아쉽습니다 김동리 소설 등신불에 나오는 것 처럼 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