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두 번 다시는 이런 짓 안한다. 산행이란 즐거운 것이어야 하거늘 우째되가 완전 격투나 전쟁을 치룬 것 같다. 얼마전 대구 무작정님이 이 구간에서 폭우를 만나서 안개속에서 무려 16시간 동안이나 사투를 벌인 내용을 보면서 미쳤다 싶었다.
그런데, 구름나그네시키엉아와 같이 대간졸업을 하라는 밤도깨비님 성님의 지령?(와?-종주기념 현수막까지 만들어 뒀단다)을 받고 어쩔수 없이 이틀로 계획되었던 한계령-진부령을 당일로 해치우기로 작정한다.
정상적인 날씨면 14시간이면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무식(?)했던 지난 구간을 돌이켜 본다. 6월의 지리산 당일종주 17시간! 7월중순 버리미기재-이화령구간의 장때비속의 각개전투 16시간! 7월말 酷暑기때 5일간, 정상적으로 12시간 거리를 16시간씩이나 소요한 5일간, 66시간의 더위와의 死鬪!
무식했던 구간들을 다시 한번 되 집어보고 한계령-미시령구간 14시간을 대간을 졸업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고, 이 참에 지리산 천왕봉부터 진부령 670km구간을 30구간으로 마친다는 각오로 진짜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미쳐(?)보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혹시나 이 글을 읽으시고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을 먹는 사람이 있다면 절대로 말리고 싶다. 앞서 지나온 무작정님도 결코 이 구간은 하루로 해치울 코스가 아니라고 회술하였다. "그란데 왜 안 말렸는능교 했더니---"웃고 만다.
결과는 완전 예상을 뒤 엎어 버렸다. 초반 한계령 暴雨에서 옷이 다 젖어버리고 서북능선에서 大雪로 바뀌니 젖은옷이 갑옷이 되고 (갑옷=젖은 옷이 꽁꽁얼면 뻐덕뻐덕 해지고 걸을때마다 덜거덕 거리니) 갑옷속에 갖힌 몸은 동태가 되었다. 18시간 동안 줄기차게 걸었고, 아니, 걸었다기 보다는 차라리 기어 다녔다고 해야 옳ㅋ다. "조난","119구조대","하느님"를 머리에 떠 올릴만큼 긴박함의 연속이었다.
눈 덮인 서북능선을 러셀하며 야간에 지나야 했고 눈 덮힌 공룡능선을 기어서 넘어야 했고, 눈 덮인 황철봉 너덜지대는 그야 말로 온몸으로 통과했다. 미시령 휴게소 불 빛이 발 아래 보이건만 와 그리도 멀고도 추운지 지금도 애태우며 지나던 그 순간들을 생각하면 입에 춤이 마르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알고는 절대로 덤비지 못할 그런 구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평시처럼 산행기 쓴다고 이것저것 적을 마음의 여유가 없고, 다만, 목적지까지만 어떻하든 무사히 가자는 강박관념 밖에 없었다. 더구나 초반 폭우에 옷이 흠뻑 젖어버려 메모장까지 젖어 붙어 버렸다.
여담으로 평소에 구름나그네시키엉아는 산행을 하면서 소설을 쓴다고, 또, 얼마전의 무작정님 보고도 산행기를 안쓰고 소설을 쓰고 있다고 놀려 댔는데 그 소설을 내가 쓰게 되었으니.... 남의 말 함부로 쉽게 하는 거 아니라고 다시 한번 깨닫는다.
★백두대간 제29구간★
1.산행구간 :한계령∼설악산∼미시령 2.산행거리: 22km 3.산행시간: 18시간(식사2끼, 휴식시간포함) 4.참가자 : 최중교, 권경연(=돼지처남) 5.산행일자 : 2002. 10/26(토요일) 6.날씨 : 소나기-눈(雪)-맑음
7.산행코스별 고도 한계령(935m)-서북능삼거리(1380m)-끝청봉(1604m)-중청봉(1676m) 대청봉(1708m)-소청봉(1550m)-희운각대피소/무너미고개(1020m) -공룡능선-마등령(1240m)-1326.8봉-1249.5봉-저항령- 황철봉(1381m)-1318.8봉-미시령(770m)
8.코스별 거리 및 시간(한계령-마등령구간은 이정표 기준임) 한계령(44번국도)-(7.7km/4시간45분)-중청/끝청갈림길 -(7.0km/4시간40분)-마등령-(3.0km/3시간)-저항령 -(5.0km/4시간45분)-미시령(56번지방도) ☞산행거리: 22km ☞산행시간:18시간(식사,휴식시간 포함)
9.구간별 산행시각
한계령(02:45)-한계령0.5km/중청7.2km(03:00)-한계령1.0km(03:25)- 긴급구조09-03(03:55)-한계령2.1km(04:04)-서북릉삼거리/긴급구조09-05(04:20) -긴급구조09-06(04:45)-긴급구조09-07(05:11)-긴급구조09-08/한계령4.1km(05:42) -한계령5.1km(06:15)-끝청이정표-중청철조망-끝청갈림길 이정표(07:30) -소청(07:44)-희운각대피소(08:35)/식사(09:00)-1275봉/마등령2.1km(10:55) /휴식(11:05)-마등령1240m(12:40)-마등령정상/비선대갈림길(12:50)- 1326.7봉(13:05)--식사(20분)--1249.5봉-너덜지대-저항령(15:50)- 황철남봉(16:40)-(휴식10분)-황철봉-황철북봉/1318.8봉(17:55)-미시령(20:40)
10.산행기(격투기가 맞나?)
벌건 대낮에 설치는 밤도깨비!
금요일 낮에 한통의 전화를 받는다. "나그네가 오늘(10/25) 오후1시에 한계령 붙어가 중청가서 자고 내일 새벽 대청에서 일출보고 미시령으로 간단다. 나그네가 중교 니한테 전화 해 줄끼다. 둘이 잘 한번 맞차봐라!"
이번 무식한(?) 계획의 원흉(?)이신 밤도깨비성님의 목소리다.
최근에 자주 등장 하시더니 중교를 이리저리 굴려 미친넘 만드신 분이다. 최후의 지령이 떨어진 것이다. 우리보고 야간에 한계령 붙어가 일출전에 설악산 대청봉 올라가서 나그네하고 같이 일출보고 미시령으로 동행하라는 압력이다.
피~~ 설악산 대청 올라가는게 뭐 뉘집 아 이름인줄 아나? 공룡넘는거는 뭐고 황철봉 너덜은 또 뭐고? 내 혼자 맘 같으머 대청하루,공룡하루,황철너덜 하루 이렇게 사흘은 자바야 속 시원하게 지나가겠다. 그거를 자꾸 한꺼번에 잡아 무그라고 이리 놀리고 저리 굴리고 ^^;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지만 밤에만 나타난다는 밤도깨비님이 최근, 낮에 자주 중교한테 접근한 일 하며 비를 몰고 다닌다는 구나 시키엉아하고 같은 날 같은 코스를 잡은 것 보면, 내가 눈치가 조금만 있는 넘이었으면 버~~~ㄹ 써 눈치를 팍 챘어야 되는긴데--- 밤도깨비의 출현에 구름나그네까지 엎쳤으니 더 이상 뭔 말이 필요하겠노?????
시작도 하기전에 가슴을 억누른다 10/25일 금요일 오후 5시무렵 손 전화가 울린다. 입학식날은 달라도 같은날 졸업하기로 맞춰진 구나시키엉아 목소리다. 지금 설악산 중청대피소인데 눈이 억수로 많이 온단다.
안 그래도 속초,인제방면 일기예보를 살펴보고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비올 확률이 70%가 넘는다기에 비오면 어쩌나하고 은근히 걱정하고 있는데 가장 불행한(?) 눈 온다는 비보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 앉는다. 돼지처남한테 급히 연락한다. 아이젠도 챙기고, 겨울잠바도 챙기고, 동계장비 챙기라고...
눈이 많이 쌓이면 오늘밤 야간산행에 서북능 등산로는 찾아가지겠나, 눈이 얼면 공룡능선을 우째 빠져나가고, 악명 높은 황철봉 너덜지대는 또 우째 빠져나가노... 설마 10월말인데 그런사태까지야 가지겠나. 혼자 쫄았다가 위로했다가 맘이 갈팡질팡이다.
거기다가 퇴근중에 밤도깨비님이 또 등장하신다. "나그네가 그러던데.. 설악산 눈 온단다, 보온에 신경쓰라!"
퇴근하자마자 밥부터 챙겨 먹는다. 평시 같으면 두 공기 정도는 후딱 해치우는데 입맛이 별로다. 내 얼굴을 보시던 어머님이 뭔 걱정거리 있냐구 물으신다.
금요일 밤 8시45분에 포항을 출발한다. 새벽 2,3시에 한계령에 붙을 생각이다. 옛날 설악산 구조대에 근무한 적이 있다는 양양택시(두어번 이용함)에 미리 전화를 해둔다. "양양시외버스 밤1시 도착,한계령 한바리,한계령감시초소통과방법"
포항을 출발할 때만 해도 하늘은 맑고 달까지 사늘하게 밝았는데 양양이 가까워지면서 빗줄기가 많아진다. 양양시외버스 터미널 앞에서 갤로퍼에 앉아 식은밥으로 영양을 보충한다. 그래 이래 묵는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택시를 타고 한계령으로 올라가는데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짙은 안개로 차가 달리지를 못한다.
한계령 구조대 초소 어떻게 통과하노!
한계령 고갯마루에 도착하니 가장 불행한(?) 조건이다. 억수같이 내리는 비에다가 한치앞도 안 보이는 짙은안개,강한바람..... 거기다가 들머리엔 감시병 두 사람이 택시를 내리는 우릴 째려보고 있다. 지금 우리앞에, 며칠전 무작정성아의 폭우사투가 재판되려는가보다.
우째저째, 지금 좀 들어가자 했더니.......
안면이고 최면이고 다 나발이란다. 밤잠 안자고 네명이서 교대로 뭣 하러 서 있겠는냐고 반문한다. 설령 자기가 보내줘도 위쪽 국립공원 매표소에서 택도 없단다. 4시 이후에만 넣어 준단다. 무조건 안된단다.
그래, 너거는 무조건 안되고 우리도 무조건 가야한다. 어떻하던 오늘중으로 미시령까지 가야한다. 담치기라도 해야되고 벌금을 내도 가야된다. 大幹하면서 말 그래로 大肝됐다. 그래도 눈이 안오니 한편으론 천망다행이내 싶은 안도감도 든다.
새벽 2시45분 드디어 1차관문인 한계령 108계단에 첫발을 들여 놓는다. 그래, 사람이 하는일에 안 되는게 어딘노. "안되면 되게하라!" 누가 한 말인지 참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평시 같으면 108계단이 맞는지 안 맞는지 세어보는데 2차 관문인 한계령 매표소 통과방법 때문에 그럴 여유가 없다.
설악루에서 잠시 비를 피하며 숨결을 고른다. 저 만치 한계령 매표소 건물이 보이고 바로 우측으로 철문이 열려있다. 가로등 불빛에 빗줄기가 하얀선을 그리며 내리 긋는다. 숨소리도 죽이고 발자국 소리도 죽이고 매표소 앞을 지난다.
철문을 통과한다.
하얀줄로 막아놓은 곳을 지난다.
현수막으로 가려놓은 곳도 지난다.
철계단도 오른다. 다행히 고무를 깔아 소리가 안난다. 가슴은 두근거리고 숨이 턱밑까지 차 오른다. 드디어 2차 관문도 무사히 통과한다.
잠시 후 바위턱이 있어 잠시 비를 피하며 본격적인 등산채비를 갖춘다. 벌써부터 젖은 옷이 다리에 휘감긴다. 멀고 긴 졸업논문(?)이 시작된다
서북능 삼거리를 향하여
언제 그칠지도 모르는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고도가 높아지고 숨결은 빨라진다. 비탈 오름길에 "한계령휴게소0.5km/중청대피소7.2km"이정표를 지나고(03:00) "한계령휴게소1.0km/중청6.7km"이정표가 세워진 무명봉에 올라선다(03:25). 비가 하늘에서 내리는지 옆에서 날아오는지 분간이 안된다. 안경에 낀 성애 때문에 앞을 구분을 못 하겠다. "돼지야! 내 바로 앞에서 걸어라, 니 발보고 따라가게..."
내려간다. 자꾸만 내려간다. 내림길에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 능선으로 진행해야 할지 왼쪽 계곡으로 떨어지는듯한 내림길로 갈건지 잠시 망설인다. 외길이라 하더니....
어느 산악회단체에서 후미들을 위한 안내메모지가 우측 능선으로 붙으라는 종이를 돌로 눌러 두었다. 일단 넓은 길로 가자! 왼쪽 비탈길을 택해 내려서니 조그만 암벽구간이 나오고 로프가 걸려있다. 로프에 매달려 내려간다. 언제부턴가 진눈깨비가 내린다.
평평한 흙길이 나타난다. 눈이 제법 쌓였다.
긴급구조09-03 표지목을 지나고(03:55), "한계령2.1km"이정표를 지나 오른쪽 골짜기로 올라가다하니 나뭇가지가 자꾸 몸에 걸리적 거린다. 가만히 살펴보니 등산로가 아닌 것 같다. 눈이 하얗게 쌓였으니 무조건 하얗고 넓은 공간만 찾아 들어가다 보니 길을 잘못 들어간 것이다. 다시 "한계령2.1km"이정표로 돌아와 살펴보니 좌측으로 길이 보인다.
바위구간 오름길이 나타나고 가이드 파이프가 등장한다. 바위는 미끄럽고 파이프위에는 눈이 소복이 쌓였다. 목장갑이 축축해진다. 점점 가파름이 심해지더니 능선마루에 올라선 것 같다. 대간길은 오른쪽으로 휘어져 오르고 곧이어 윙윙거리는 바람소리가 요란한 갈림길 안내판에 닿는다.
온천지가 눈으로 휘날리니 안경에도 눈이 달라 붙는다. 눈으로 도배된 안내판을 ?씨咀릿? 이곳이 서북릉 삼거리다(04:20). "해발1380m"표기와 대승령(좌)대청봉(우) 갈림길,현위치등의 개요판이 세워져 있다. "긴급구조09-05"표지목도 세워져 있다. 한계령서 1시간35분 걸렸다. 계획된 시간에 맞춘 것 같다.
바람에 귀가 시리다.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자형요! 장갑 그것밖에 없는교?" "아이다! 겨울용 장갑 있다, 더 추워지면 낄라고..."
서북릉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붙어 올라간다. 등산로가 눈으로 덮였지만 판단은 가능하다.
바위봉을 지나 "긴급구조09-06" 표지목을 지나고(04:45), 너덜지대를 지나 "긴급구조09-07" 표지목을 지난다(05:11). 키 만한 바위들을 타고 넘을때는 길을 잘못 들었나 싶어 "09-07"까지 다시 내려와서 다른길이 없음을 확인하고 우왕자왕 하기도 한다. 어디서 읽었는지 서북릉 삼거리에서 대청봉까지는 고속도로라 카던데?...... 내림길 바위구간에 로프를 만나니 길이 맞는가 싶기도 하다. 자꾸 남쪽으로 진행하는 것 같다. "경연아! 나침반 한번 팅가봐라!" "남동쪽인데요?"
한참동안 이정표가 없으니 자꾸 긴가민가 싶다. 휘날리는 눈보라에 한치앞도 못보고 발디딜곳만 보고 간다. 리본들은 눈이 붙은 상태에서 얼어 버렸으니 리본인지 나뭇잎인지 만져봐야 알 수 있다. 대간리본인가 싶어 만져보면 나뭇잎이고 또 리본인가 싶어 만져보면 진짜 대간리본이다. 누군가가 주렁주렁 달린 리본들이 경관을 해친다고 뜯어내고 한다던데 지금 우리같은 상태에서는 생명의 표지기다.
암봉을 하나 지나온 것 같다.
한참 만에야 완만한 봉우리에서 반가운 이정표를 하나 만난다(05:42). 돼지처남이 빨리 적으라고 얼어붙은 눈(雪)을 긁어내고 읽어준다. "한계령4.1km/중청3.6km...현위치가 표시 안됐내요!" "긴급구조09-08" 표지목도 보인다. 이제사 길이 맞구나 싶어 마음이 놓인다.
다시 올라간다. 바위가 없으니 걷기도 좋고 길 찾기도 좋다. "한계령5.1km/중청대피소2.6km"이정표가 세워진 봉우리에 도착한다(06:15). 드디어 이름이 익은 봉우리에 올라선다. 끝청임을 알리는 내용과 개략도가 그려져 있다. 중청의 철조망 직전에 우측으로 돌아가니 저 만치 중청대피소가 눈보라속에 희미하게 모습을 나타낸다.
그 뒤에 보여야 할 대청봉은 눈보라속에 꼭꼭 숨었내.
"끝청갈림길(H:1600m)/한계령7.7km..."의 안내판이 세워진 끝청갈림길에 도착하니 아침 7시30분! 한번도 쉬지 못하고 4시간45분을 눈보라에 속에 달려온 것이다. 소청에 도착하니 눈보라는 극에 달한다(07:44). 몇몇 사람들이 소청까지 왔다가 되돌아간다. 젖었던 옷이 금방 뻣뻣한 갑옷으로 변한다. 바지 가랭이에 덜거덕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돼지야! 오늘 날씨가 계속 이상태면 미시령까지 몬 가겠다!" "이상태라면 눈이 얼어 뿌겠다!"
(눈발이 휘 날리는 소청봉에서)
(중청에서 소청으로 내려가는 중)
희운각 대피소로 달리듯 내려간다. 여러사람이 지나간 듯 급사면 내림길은 상당히 미끄럽다. 4-5번 뒤로 벌렁 벌렁 자빠진다. 희운각 대피소에 내려서니 라면과 삶은 계란이 기다린다(08:30). 식사를 하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미시령도착은 무리다. 일단 공룡능선을 4시간이내에 넘지 못하고 눈이 계속내리면 비선대로 하산한다.
돼지처남은 서둘러 출발한다(09:00). 죽어도 미시령 가겠다는 각오다.
참으로 무서븐 넘이다.
언제부터 저렇게 달라졌는지 모리겠다.
지캉내캉 처음 산행시작할때 8시간은 절대 넘기기마라카디....
"무너미고개정상-해발1020m" 이정표를 지나 "위험탐방로"팻말에 도착하니 구름나그네시키엉아 리본이 팔락거린다. 중교야 나 공룡잡으러 들어간다 하고 손짓 하는 듯 하다. 그래! 나도 공룡 잡으러 들어간다요.
공룡능선으로 진입한다. 곧바로 갈림길이 나타나고 이미 3-4사람이 좌측으로 지나간 발자국이 많다.
발자국만 보고 따라 걷는다. 신선대는 우회하는군! 눈발은 점점 약해지고 짙은 안개만 자욱하다.
마치 계곡처럼 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1275봉을 올라간다. 10시50분! 1시간 50분이 걸린 것이다. "1275봉/ 마등령 2.1km"/희운각 3.0km"임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다. 부산세관에서 오셨다는 두 분을 만나 간단히 인사하는사이 구시키엉아 소식을 접한다. 어제 저녁 같이 중청대피소서 자고, 오늘 새벽 5시30분에 출발했단다.
암벽부위를 통과할때마다 바위를 부둥켜 안고 돌고 돈다. 간간이 속초시와 동해바다가 보이기 시작하고 눈 덮인 나한봉 너덜지대를 엉덩이로 내려오니 마침내 "마등령(해발1240m)/오세암1.4km/희운각대피소5.1km/비선대3.7km"의 안내판이 세워진 마등령에 도착한다(12:40).
마등령에 도착하니 햇님이 등장하신다. 아! 선계가 따로없다. 선계에 둘러쌓인 나는 무엇인고! 한 순간에 10시간의 고통이 사라진다. 저거이 대청봉이요, 저거이 화채능선이고 저거이 공룡이고,범봉이고....
(마등령에서 바라본 속소와 동해바다 그리고 세존봉)
(마등령에서 바라본 화채능선)
곧이어 마등령정상에 올라서고(12:50) 황철봉을 향한다. 공룡을 생각보다 조금 일찍 통과했고, 햇님이 등장하시니 미시령까지 가기로 작정한다.
잠시후 1326.7봉에 올라선다(13:05). 하얀 모자를 쓴 듯한 황철봉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오고, 뒤 돌아보니 대청봉과 공룡능선이 차례로 등장하고 지나온 서북능선이 웅장하다.
(1326.7봉에서 바라본 설악산 대청봉과 공룡능선, 용아능선)
(1326.7봉에서 바라본 황철봉 능선)
"황철봉 능선 처다보이 별거아이네! 빨리가자!!" "오늘 6시전에 미시령 도착하겄다!" 가벼운(?) 마음으로 황철봉을 해치우러 간다. 1326.7봉에서 황철봉길은 정상에서 몇걸음 되돌아 내려오면 오른쪽 너덜지대로 내려간다. 바람이 날아갈 듯이 세차게 몰아친다.
1326.7봉 내림길 너덜지대는 별것도 아니네.
잠시 너덜지대를 지나면 등산로는 숲속으로 들어간다. 앞선 두 사람이 라면을 끓여 식사를 하고 있다. 서울서 온 사람으로 비선대-마등령-미시령 구간종주 중이란다. 동행이 있으니 반갑다고 인사를 나눈다.
우리도 눈 바람을 피해 점심식사를 하는데 춥고 떨리고 밥이 안 들어간다. 보온도시락이 성능이 떨어졌나? 아까 그 사람들하고 같이 식사할걸 싶다. 그랬으면 라면 국물이라도 얻어 먹을수 있었을건데..
1249.5암봉을 우회하기 위한 눈 쌓인 너덜길은 빠쁜 걸음을 한없이 붙잡는다. 한번 넘고 두 번 넘고 마지막 봉이겠지 마지막 봉이겠지를 몇번이나 되풀이하여 오르고 내리고 마지막 암봉을 타고 넘어니 예상시간은 훨 넘어간다.
바람이 금방이라도 날려 보낼 듯이 불어 닥치고 너덜지대가 펼쳐진다. 지도에 없는 너덜지대다. 저항령도 저 아래 보이고 바위가 울툭불툭하게 솟은 황철봉 남봉이 우뚝하다.
앞서간 두 사람이 너덜지대를 내려가고 있다. 금방 내려갈 것 같던 너덜지대에서 바위 바위마다 기어오르고 미끄러져 내려가기를 수없이 되풀이 하니 올라 가야할 황철봉은 점점 높아만 가고........ 기면서, 앉아서 엉덩이로 미기적거리며, 미끄러지면서 갖은자세가 다 해가며 저항령에 도착한다.
오후 3시50분! 1429.5봉 통과시간을 2시간으로 예상했는데 1시간이나 지체된다. 공룡을 넘는 것 보다 너덜지대를 통과 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줄 몰랐다. 아이젠도 통하질 않는다. 눈 덮인 너덜지대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것이 그야말로 참담한 실패다. 해는 늬엿늬엿 서산으로 자꾸만 내려안고 마음은 한없이 바쁘다. 앞으로 남은 진짜배기 황철봉 너덜지대를 통과할 것을 생각하니 암담하다. 해가 빠지고 얼어 붙으면 우리는 어떻하노.
1429.5봉 통과 시간이 1.5배로 늘어났으니 앞으로 남은 황철봉 통과시간도 4-5시간으로 늘어날 것이고 그러면 미시령 도착예정 시간이 밤 8시를 넘기겠다. 너덜이 가장길고 구멍틈새도 커다는 1318.8봉 너덜지대를 야간에 눈 때문에 어떻게 통과하노.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다.
황철봉 오르막 초입 흙 비탈길을 부지런히 올라간다. 곧 숲지대가 끝나고 황철남봉 너덜지대가 시작된다. 바위들은 팔뚝만한 고드름을 주렁주렁 달고있고 바위마다 껴안고 사정하며 올라간다. 눈물을 머금고 젖은 장갑에 손 시러운줄도 모르고........... 마침내 너덜암봉인 황청남봉에 올라선다(04:40). 그 와중에도 뒤돌아보니 대청봉이 갈 가라고 손짓한다.
(황철남봉에서 바라본 대청봉과 오늘 지나온 1249.5봉 능선)
황철남봉 정상에서 황철북봉 직전까지는 다행이 너덜지대가 없었다.
황철남봉을 내려서니 앞선 두 사람이 쉬고 있다. 너무 춥다고 커피한잔 끓여먹고 가잔다(04:45). 아니! 지금 그럴여유가 어딘냐고 반문했더니, 두명중 한사람이 이곳을 가본적이 있다며 어둡기전에만 너덜지대를 통과하면 7시경 미시령 도착가능 하단다.
일단 동행이 생겼고 지나가본적이 있다니 조금은 안심이 되는 듯 하더니 담배한대 피워물고 잠시 기다리다면서 생각하니 이 사람들이 뭔가 착각하고 있다 싶다 벌써 다섯시가 다 되었고, 다섯시 반이면 해 빠질테고, 해 빠지면 금방 어두워질텐데....... 황철북봉(1318.8봉)까지는 지도상 45분 거린대????
마음도 바쁘고, 우리는 한계령서 출발해서 체력이 많이 떨어져서 먼저 출발한다고 커피도 안 마시고 일어난다(04:55).
부지런히 걷는다. 해가 금방이라고 능선너머로 사라질 것 같다. 5시20분! 마침내 우려하던 해는 산속으로 사라진다.
황철봉은 어딘지도 모르고 지나고 바위들이 등장하고 몇 개를 타넘어가니 마침내 삼각점이 박힌 황철북봉(1318.8)에 올라선다(06:00). 두 사람도 뒤 따라 도착한다. 벌써 어두워진다.
정상에서 좌측으로 너덜지대가 열리고 리본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한번 가본 경험자가 앞장을 선다. 스틱으로 집고 손으로 받치고 다리를 걸치면서 한 개, 두 개 통과한다. 키보다 큰 돌도 있고 틈새도 정말 넓다. 널찍한 바위는 좀 쉽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 눈이 얼지 않았다.
20여분만에 숲속으로 들어선다. 아니? 벌써 너덜지대가 끝났나? 너덜지대가 끝이 아니라는건 금방 알수 있다.
더 큰 바위들이 우뚝 우뚝 솟았고 눈 덮인 바위위를 걸을수가 없어 측면으로 붙거나 끌어안고 통사정해서 올라타고 미끄러져 내려가서 구멍속에 발을 넣어보고 안 꺼지면 딛고......
휴~~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끝나는구나 7시 다 되 간다. 숲속까지도 잠시 너덜이 이어지더니 아니다! 진짜배기로 하얗게 넓고 끝이 안보이는 너덜이 펼쳐진다.
아니? 20-30분이면 통과한다던 너덜을 아무리 기어와도 그렇지 1시간이나 내려왔는데? "여! 보소! 길 잘못든거 아닝교?" 기어서 누워서 내려가다보니 중간 중간에 제법 높게 쌓아올린 돌탑이 간혹 스친다. 길은 맞는갑다.
얼마를 내려왔는지 모른다. 모자가 바람에 날라가면서 헤트란탄을 바위사이 틈새로 집어 넣는다. 바위틈새를 억지로 비집고 내려가 란탄을 ?B어 머리에 꽉 묵는다. 바지 자락은 완전이 갑옷이 된지 오래다. 손가락은 감각이 없다. 콧물은 주체할수도 없이 흘러내린다. 시계보는것도 귀찮다.
마침내 숲이 눈앞에 나타난다.
앞선 두 사람이 멈추란다. 길을 잘못 들었단다. 아무 생각도 없다. 그냥 가만히 서 있는다. 되돌아 올라간다. 왔다갔다해보니 바로 옆에 리본을 못 보고 지나친 것이다. 저녁 8시다. 그러고 보니 참 많이도 기어서 내려왔다. 2시간을 기어서 내려온것이나 마찬가지다.
황철봉 너덜지대!! 내가 산을 다니는한은 아니 살아 있는한은 잊지 못할 것이다. 너덜이 끝나고 숲길로 들어섰지만 고만 고만한 너덜은 수시로 나타난다. 마침내 편안한 낙엽길이 나타나더니 곧내 다시 치달아 올린다.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마침내 미시령 휴게소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 다 왔구나 빤히 보이는 불빛이 와 이리도 머노? 내림길에 퍼질러 앉아 쵸코렛을 두 개나 먹는다. 물도 마신다. 휴대폰이 울린다. 8시 20분이다. 마눌전화다. 통화가 올키 안된다.
구나시키엉아 오늘 고생했구나 싶다. 밤도깨비 형님이 걱정하지 싶다.
아무리 빨리 걸어도 미시령휴게소는 와 계속 그 자리에 있노? 휘청거릴정도로 불어 닥치는 바람에 귀와 뽈따구는 따가와 지고 바지가랑이 거렁거리는 소리에 누가 따라 오나 싶어 뒤 돌아본다.
미시령 휴게소에 들어선다.
안경에 성애가 끼어 앞이 안 보인다. 저기서 누가 다가온다. 아! 누가시키엉아구나, 내가 살아서 온기구나! 부둥켜 안고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다.
밤도깨비 형님께 도착을 알리니 내 보다 더 기뻐 하신다.
구시키엉아가 중청서 미시령 오는데 13시간 걸렸다는 연락을 받고는
아고! 한계령서 출발한 우리 중교하고 돼지처남은
오늘 내가 주기게 생겼구나고 무척 걱정하셨단다.
"형님! 최중교 아즉 실만하지요???"
오늘 우리와 같이 동행한 한 사람이 내일 진부령까지 동행하고 싶단다. 속초로 나간다. 여관방을 2개 정하고 샤워를 마치니 벌써 10시다. 야식집에 닭도리탕과 소주를 배달 시킨다. 소주에 고생담 안주삼아 밤 12시가 지나간다.
2002년 10월 29일 졸업여행기는 작성중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