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용등(龍藤)을 보며
김형섭
경주 현곡 오류에 [용등]이라 불리는 나무가 있다. 천연기념물 89호로 지정된 이 나무의 전설은 참으로 애처롭다.
옛날 이곳에 용림(龍林)이라는 못이 있었고 부근에 마음씨 착한 두 자매가 살고 있었다. 그 옆집에는 늠름하고 씩씩한 청년이 하나 살고 있었는데 두 자매는 마음 속 깊이 그 청년을 사모하고 있었다. 서로의 심정을 한번도 터놓고 말해 보지도 못하고 지내던 어느 날, 청년은 변방에 전쟁이 일어나 갑자기 떠나 버렸다. 두 자매는 청년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청년이 전사했다는 풍문이 두 자매의 귀에 들려왔다.
청년의 전사 소식도 소식이려니와 두 자매는 서로가 모르게 한 청년을 같이 사랑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그 슬픔을 이기지 못했다. 결국 두 자매는 못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때부터 이상하게도 못 가에 전에 없던 등나무 두 그루가 자라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렀다. 동네 사람들이 두 자매의 슬픈 사연을 차츰 잊어갈 즈음에, 죽었다던 그 청년은 훌륭한 화랑이 되어 마을로 돌아왔다. 두 자매의 애처로운 죽음을 알게된 청년은 내내 괴로워했다. 애처로움이 가슴 깊이 차 올랐을까. 청년도 어느 날, 밝은 달빛아래 무심히 서 있는 두 그루의 등나무를 바라보다 그만 못에 풍덩 뛰어들었다.
다음 해, 등나무 옆에 낯선 나무 한 그루가 올라왔다. 바로 팽나무였다. 그 동안 두 그루의 등나무가 마땅히 타고 올라 갈 나무를 찾지 못하여 바람에 흔들리기만 했었는데, 이젠 쑥쑥 자라는 팽나무를 의지하여 잘 자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동네 사람들은 신기하게 여겼다. 인간사 심한 변화 속에 흔들리지 말고, 젊은이들의 사랑도 저렇게 얽혀 어울렸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그때부터 사람들은 용림에서 자란 등나무라고 [용등]이라 불렀다. 지금도 이 용등이 서로 엉켜 있는 범위가 사방 21미터, 높이는 17미터나 된다.
얼마 전, 산행을 하다가 아름드리 소나무가 말라죽은 것을 발견했다. 원인을 살펴보니 소나무를 타고 올라간 등나무 때문이었다. 소나무가 죽지 않으려고 얼마나 몸이 달았을까?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서로 다툼이 생겨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흔히 갈등(葛藤)이 생겼다고 한다. 갈은 칡이고, 등은 등나무다. 자라면서 어쩌다 한 곳에서 만나면 서로 얽혀버린다.
생김새는 둘이 전혀 다르나 살아가는 방식은 비슷하다. 주위의 다른 나무들과 경쟁을 하여 살아가는 공간을 확보하려는 것보다, 손쉽게 다른 나무의 등걸을 감거나 타고 올라가, 그 나무가 어렵게 확보해 놓은 광합성의 공간을 혼자 점령해 버리는 횡포를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선의의 경쟁에 길들여져 있는 숲의 질서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어디 나무뿐이랴. 예나 지금이나 사람도 이런 부류가 눈에 많이 뜨인다.
조선 중종32년(서기1537년)에 홍문관 김광진이 올린 상소문에 “대체로 소인들은 등나무 덩굴과 같아서 다른 물건에 의지해야만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하였고, 두 해 후에 전주 부윤 이언적의 상소문에도 “군자는 소나무와 같아서 홀로 우뚝 서서 남에게 의지하지 아니 하지만, 간사한 사람은 등나무 같아서 다른 물체에 붙지 않고는 스스로 일어나지 못합니다.”고 하여 가장 멸시하던 소인배와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갈등을 빚는 나무이던 소인배의 나무이던 관념적인 비유일 뿐이다. 요즘에 와서는 등나무도 잘 관리하면 유용한 나무로 생각하고 등나무교실을 여는 학교가 많다.
대학의 동아리와 기업에서도 등나무 캠프를 여는 곳을 더러 볼 수 있다. 그것은 등나무와 사람들의 조화로움 때문이다.
등나무는 사람들이 모여 쉬며 얘기하는 곳마다 조성되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등나무의 성질을 잘 알기에 지주를 세워 그늘을 활용한다. 삶의 여정이란 것이 사실 하잘것없는 존재가 되어 가는 과정일 수도 있지만, 등나무처럼 서로 모여 우정을 돈독히 하고, 줄기가 되고 넝쿨로 어울려 커다란 나무로 성장하려 는 것일 게 다.
5월이 되면 등나무는 연한 보라 빛 꽃을 주렁주렁 매달아 꽃나무로도 제 몫을 톡톡히 한다. 등나무의 꽃말이 환영에 취하고 사랑에 취한다는 말이 당연한 것 같다.
마냥 아래로 아래로만 향해있는 모습 또한 내려다보고 살라는 말인 양 느껴진다.
보드라운 털로 덮인 열매는 콩 꼬투리 모양으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어린잎과 꽃, 씨앗은 식용으로도 사용하고 덩굴은 바구니를 만드는 곳에도 쓰인다. 또, 뿌리와 가지는 약용으로도 쓰이고, 껍질은 매우 억세고 질겨서 새끼를 꼬는 곳이나 키를 만드는 곳에도 쓰인다.
큰 도시에서는 등가구 전시회도 종종 열린다. 등나무란 이름에 걸맞게 예술 가구로서의 가치를 추구하고, 신 공간창조를 한다. 곡선의 아름다움과 자연 색의 따스함을 최고의 기술인 수작업으로 한다. 우아함과 조화로움의 극치를 이룬다.
이처럼 등나무는 가구는 물론이고, 우리네 삶과도 조화를 이룬다. 등나무가 비록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서로 다투거나 일이 까다롭게 얽힐 때를 상징한다하더라도, 또 소나무 같은 선비를 감아 죽게 한다 할지라도, 끝내는 우리네 삶 속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림의 등나무 [용등].
용등은 곁에 감고 있는 팽나무를 나름대로 뻗어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간을 준다.
팽나무를 살려야 자기도 산다는 것을 알고 그럴까? 오랜 세월 서로 엉켜 잘 자라고 있다. 천년의 사랑이 휘감겨 있는 원만한 조화로움이다. 부부간의 갈등도 용등을 보면 해법을 찾을 것이다. 용등을 만나는 날이면 난 언제나 팽나무처럼 우두커니 서 있게 된다.
내 따뜻한 가슴으로 용등를 보듬어 주고 싶어서 다. 만날 수도 없는 옛사랑을 그리워하는 팽나무인 양, 그렇게 마냥 서 있고 싶다.
(끝)
-- 약력 --
1947년 경주 동방 출생
경주대학교 경영학부 졸업
남경주 새마을금고 이사장 역임
“ 수필과 비평” 신인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현, 학교법인 문화학원 이사장
- 이메일 주소 : ollchangey@hanmail.net
첫댓글 토함산 김형섭 선생님, 좋은 수필을 올려 주셨군요. 곧 등나무 그늘이 시원스레 드리워 지고, 연보라색 등꽃에서는 아른한 향기가 나겠지요. 언제 애절한 전설이 깃든 용등을 한번 보고 싶군요.
다음에 오시면 잘 안내를 하겠습니다.
여고시절, 등나무 그늘아래 벤치에 모여 앉아 재잘거리던 친구들이 생각나네요. 내 추억속에선 아름답기만 한데..그런 아픔을 간직한 등나무도 있군요. 경주 가게되면 꼭 찾아가 볼께요. (선생님! 할배라 하셔서 7,80되신줄 알았잖아요. 담부턴 그러지 마셔요 ^^*)
외손자,외손녀를 보았으니 할배지요.
삶의 지혜를 시사한 글, 감명깊게 잘읽었습니다.
오늘 저도 윤모촌선생님의 수필 3편 읽었어요.
그 용등나무 보구싶어요~ 사진으로 먼저 보여주심 안되나요~ 그리고 글이 참 깊이가있고 좋네요^*^ 실례, 무례인감요???? 경주 참 좋은 동네예요ㅡ 전설이 곳곳처처에 무궁무진허구, 파주는 경순왕릉뵈는 임진강적벽엔 돌단풍이 한창이옵니다. 황포돗배 타고 보러오시면~
작년에 경순왕릉에 다녀왔어요. 그리고 황포강이 흐르는 상하이에도 가보니 퓨동지구 강가의 야경이 홍콩보다도 더 좋던데요.적벽의 돌단풍도 보고싶네요.
부부간의 갈등을 겪고나면 미운정, 고운정들게 마련인가요.용림 연못가에 팽나무와 등나무처럼 서로 의지하며, 조화로운 삶을 사는 지혜를 배우고 갑니다.
부부간에도 서로의 공간을 두어야 서로 살지요.팽나무가 죽으면 등나무도 기댈 곳이 없지요.
조금 있으면 등꽃이 화사하게 피어나겠지요. 믿음직스런 종부의 웃음같다고나 할까. 용등의 전설을 듣고 보니, 보고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지네요. 비오는 토요일 오전, '조화로운 삶' 되뇌이고 갑니다.
용등 보고싶지요? 등나무가 소나무를 감아 죽이면서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도 보여드리고 싶은데,,,
등나무는 집안에 심는 나무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습니다.그런 슬픈 전설이 깃든 나무라서 였을까요. 그 용등나무가 보고 싶어지는군요. 삶의 지혜를 깨닫게 하는 선생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라일락과 등나무꽃이 좀 비슷한 점이 있지요.용등을 보고싶은 분들이 많으네요. 한번 모아 오시면 우리학교 영빈관에서 숙박하면 공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