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강이 흐르던 삼전도 나루터이다.
도시개발을 내세워 송파강 명승지 나루터를 천지개벽을 해 콘크리트 구조물로 들러쌓인 나루터 경승지이다.
강을 메우고 섬을 깍아내 세계 최대의 베드타운으로 조성한 잠실은 자랑스런 역사를 아예 콘크리트 속에 묻어버렸다.
무지막지하게 추진한 잠실개발에 밀려 끝내 사라진 '잠실의 전설'을 기리는 표석이 공원 한 구석에 있다.
그 부군당(府君堂) 표석이다. 부군당 표석은 다음과 같은 사연을 안고 있는 전설을 이야기하고 있다.
조선 인조 때 경기도 광주 유수 이서는 남한산성의 축성공사를 둘로 나누어 남쪽을 부하 이회에게,
북쪽을 중(僧) 벽암에게 각각 분담시켰다. 이회는 그날부터 낮과 밤, 일심단성으로 오로지 충성에만 노력하여
돌 하나, 흙 한줌에도 정성을 들여 침식을 잊다시피 몰두하였다. 축성자금이 부족해서 자기 사재까지 전부 투입했다.
그래도 공사를 준공하기에는 자금이 부족하여 하루 이틀 공사는 늦어만 가고 있었다.
그 반면 벽암의 공사는 착착 진행되어서 기일안에 준공하였다. 관가에서 받은 공사비 중 남는 금액까지도 관가에 반납하였다.
"이회가 사리사욕을 탐하고 주색에 빠져서 공사를 게을리 한다"
정직하게 공사를 추진한 이회는 점점 의심을 받게되었다. 그는 터무니없는 모함으로 이회를 서장대에서 참수형을 시켰다.
"신이 죽기는 합니다만 죽은 순간 한 마리의 매가 날아올 것이나 매가 날아오지 않으면 신의 죄는 죽어 마땅하되 매가 날아오면
죄가 없는 줄 아십시오" 그는 형을 집행하기 전에 조금도 슬픈 기색이 없이 말을 하였다.
윗자리에 앉은 이서는 이 말을 들은 척도 않고 빨리 처형하라고 명을 내렸다. 이회의 목은 땅에 떨어졌다.
그때 피흐르는 목위로 한 마리의 매가 날아 와서 이회의 시체를 맴돌고 수어장대 근처 바위 위에 앉아 무서운 눈초리로
군중을 흘겨보고 있다가 갑자기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것을 본 군중들은 이상히 여겨 그 매가 앉아있던 바위를 쫓아가 보니
매는 없고 다만 발자국만 남아 있었다. 이 뒤부터 이 바위를 매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 관가에서는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실지 조사를 해본 결과 벽암이 쌓은 성은 한 곳도 정성들인 곳이 없이 허술하였으나
이회가 쌓은 성은 금성철벽같이 견고하였다고 한다. 이를 알게된 관가에서는 많은 돈을 하사하여 서장대 근처에 사당을 세워
청량당이라 하고 그의 영혼을 위로하였다.
한편 이회의 부인 송씨는 남편이 축성비가 부족해서 고심하는 것을 보고 하루는 그가 남편에게
"제가 돌아다니며 기부금을 받아 축성비에 보태겠습니다"며 집을 나간지 여러 달만에 많은 양의 쌀을 기부로 얻어서 배에 싣고
세밭나루(三田渡)에 도착하였다. 뜻밖에도 남편이 참형을 당했다는 슬픈 소식을 듣자 통분하여 싣고 온 쌀을 모두 강물에
던져버리고 자신도 한강에 몸을 던져 남편의 뒤를 따랐다. 이 뒤부터 이 강을 쌀섬여울(米石灘)이라 불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송씨가 강에 뛰어들어 죽은 뒤부터 안개가 낀 날이나 어둑컴컴해질 무렵에
배를 타고 이 쌀여울을 지날때는 머리를 풀어헤친 여인의 모습과 곡성이 들리곤 하였다.
사공들이 여인의 모습에 홀려 배를 몰다보면 삼성동앞 어린애같이 생긴 무동도에 부딪혀 파선하여 익사하곤 하였다.
그래서 삼전리 사람들은 이같은 불행한 일이 자주 발생하는 것은 송씨 부인의 원혼 때문이라고 판단하여
상의끝에 쌀섬여울에서 100m 동쪽 강변에 부군당을 세워놓고 송씨부인을 제사 지내기로 하였다.
그 뒤부터 배가 파선되는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관가에서는 그 부인의 충의를 가상히 여겨 강가 언덕위에 사당(하주당)을 세워 영을 위로하였다고 한다.
독일에는 그 유명한 로렐라이 언덕이 있다. 우리는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을 잘 안다.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더 잘 안다.
바로 스토리텔링의 마력 때문이다. 132m의 큰 바위 하나에 이야기를 붙이고, 상상력을 키워 명작을 탄생시킨 독일인이다.
그리고 그 스토리에 노래를 만들었더니,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학창 시절 음악 교과서에 로렐라이는 나온다.
유람선이 언덕 앞을 지날 때 “이곳이 로렐라이입니다”라는 설명과 로렐라이 멜로디가 나오지 않는다면 “설마 이곳일까”
싶을 정도로 별다른 특징이 없다. 실제 가 보면 생각보다 지극히 평범하여 크게 실망한다는 말을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듣는다.
그래도 로렐라이 언덕을 모두 가보고 싶어 하며, 지금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 간다고 한다.
한국 서울 잠실에 '로렐라이의 전설'보다 더 감동적인 쌀섬여울(米石灘)이야기가 있다.
정작 서울 특히 잠실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 쌀섬여울 부군당 전설이 있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