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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 황홀한 역사: 수의 탄생에서 현대 수학 이론까지
토비아스 단치히, 심재관(옮긴이), 정경훈(감수), 지식의숲(넥서스), 2016-10-05, 456쪽
단찌히(Tobias Dantzig, 1884–1956) 라트비아 출신 미국 수학자. 반짜르 운동으로 파리 망명 때 쁘왕까레(Poincaré, 1854–1912)에게 배웠고, 1910년 미국으로, 미국에서 1917년 인디아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원제 : NUMBER, The Language of Science (A critical survey written for the cultured non-mathematician) (1930),(1954년 4판)
벩송을 이해하기 위해, 1982년도쯤 인가, 박선생님은 우선 수학책을, 그리고 물리학책을 보아야 한다고 하셨다. 창조적 진화를 녹음할 때는 생물학과 심리학을 보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나중에(1996?) 회프딩이 쓴 베르그송에 관한 책을 보았을 때, 이런 이야기를 읽었다. 즉 덴마크 철학자이며 벩송의 철학(1916)을 쓴 회프딩(Harald Høffding, 1843-1931)이 막 출판된 창조적 진화(1907)을 덴마크 언어로 번역하겠다고 벩송에게 편지를 했을 때, 벩송은 이 번역자에게 수학자, 물리학자, 생물학자, 심리학자들과 함께 번역하기를 권했다는 내용이 있다.
1980년 초, 당시에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마땅한 수학책이 없었다. 그러다가 전파과학신서에서 김용운의 “수학의 약점”과 “공간의 역사”가 나왔다. 이 작은 문고본을 열심히 읽고서, 나중에 강사로서 철학사를 가르치는 곳마다, 리포트로 이 책을 읽고 요약하라고 했던 추억이 있다. 여러 번 읽으면서도 당시에는 수의 역사와 개념화 작업 사이에 연결성을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다른 수학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그 중에서 나중에 고대 수학을 알고 싶었을 때 안재구(1933-2020)의 “수학문화사 1”(1990)에서 수학의 경험적 기원과 근거에 대한 것을 읽고나서, 인간이 오랜 경험적 과정의 귀납을 거쳐서 일반화로 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날 갑자기 수와 체계가 있어서 연역적 계산과 논리가 나온 것이 아닐 것이다.
인간에게 사유 방식들 중에서 언제쯤에서 연역이 도래한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연역과 추상의 도래로부터 설정되기 시작한 이데아 또는 개념은, 인류가 대상을 주조(거푸집)할 수 있는 자부심을 가져야 동일한 제품을 동일하게 재현할 때, 가능했으리라. 즉 정치경제학적으로 철기문화의 초기 도래에서 가능했을 것이며, 그 시기에 문화적 발달은 지중해의 그리스 문화에서 였을 것이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이 때쯤에서야 동일한 대상의 반복, 그것이 숫자에서 경험을 넘어서 추상적 대상으로서 수로 개념화가 가능했으리라. 이것이 언어의 개념작용과 기하학의 공간적 체계화가, 참말로 이상하게도 세계사 속에서,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시기에 정립되었다는 것이다. - 어쩌면 인간이 자연에 대해 자신감을 갖는 시기일 것이다. 이 자신감이 오만에 빠지면 제국(참조)와 인민의 억압으로 바뀔 것이다.
산술학 또는 계산학(연산학)과 달리 기하학이 중세에서 논리학과 더불어 교육과 학습훈련에 지대한 영양을 미쳤다. 산술학이 대수학의 발달과 더불어 정수론으로 발전하면서 다시 언어와 논리의 결합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라이프니츠를 거쳐서 프레게(1848-1925)에 이르렀을 때이다. - 잠시 다른 길로 가보면, 10여년이 지난 이 시기에 독일과 프랑스 두 유대인 철학자, 후설(1859-1938)과 벩송(1859-1941)이 왜 서로 다른 길로 갔으며, 철학사뿐만이 아니라 세계사에서 후설의 현상학이 주류(majorité)를 이루고 벩송이 비주류(minorité)로 되었을까? 자본주의 발달과 새로운 경제적 식민지 사회를 만드는 것이 프레게-후설 계보가 아닐까? 맑스의 정치경제학이 영미 논리실증주의와 독일 인식론의 흐름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했다고 하면, 이제 규소의 시대에 다시 성찰해야 할 것이다. 칸토어는 1883년에 ‘선형집합에 관하여’란 논문이 최초로 실재 무한을 수학적 대상물로 다루었다.산술(정수)이든 논리계산이든, 다른 세계를 연 무한 관념이 등장하였다. 벩송은 박사학위논문을 쓰고(1889발표) 나서야, 무한에 관한 최신 논문을 보았다고 주에 달아놓았다. 후설이 1887년에 “수의 개념에 관하여: 심리적 분석”에 썼다는 것과 비교해보면, 벩송의 박사학위 논문 제2장에 수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하였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관심을 가질 수 있다. - 각설하고, 개념과 관념의 계열과 직관과 공감의 계열 사이에 다른 가지치기를 이루었다고 여기는 것은 프랑스 철학계가 1960년대를 거치면서 구조가 아닌 위상 또는 다양체의 있다는 것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다른 세상에 대한 논의는 지구상의 인류가 문명의 우위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터전에서 여러 문화들, 다양체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유의 발상으로 숫적으로 소수인 다수자 집단에 대해 숫적으로 소수자 다양체의 삶을 철학적 사유의 평면으로 삼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에 다수자는 규소의 시대에 인공지능으로 대체하고자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양체의 삶이 다수자에게 대처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법과 과정을 걷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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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사의 독서는, 나로서는, 우선 김용운의 두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클라인의 수확의 확실성을 만났다. 그러다가 여러 글들을 참조하다가, 수학의 역사를 수론(산술학이든 정수론이든)을 가지고 쓰는 쪽이 흥미롭다는 것은 끄세쥬문고의 ‘수학의 역사’를 읽었을 때이다. 수론으로도 수학전체, 즉 행렬과 무한까지도 설명할 수 있구나였다. 이번에 이 책을 접하면서 클라인의 수확의 확실성을 생각해 본다. 이 책의 원제는 “수학의 상실”이다. 즉 수학을 계속하다가 보면 확실성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 이 원저 제목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수학의 논리를 계속 전개하다가 보면, 어느 것이 맞는지 또는 어느 것이 대상을 제대로 서술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여러 갈래 길이 있어서, 확실성이 아니라 개연성(확률성)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 후로도 수학의 개연성이 영혼의 개연성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이번 수의 황홀한 역사를 만나면서 또 다른 생각이 든다. - 참조: 무한 개념의 성립은 1844년 리우빌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 의 어느 수학자의 말인지 생각나지 않지만, 칸토르가 무한을 열고 난 뒤에 수학자들은 무한 속에서 이리 저리 갈래를 가다보니, 이 수학자와 저 수학자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더 나아가 서로가 무엇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각자는 각자의 영역에서 놀이(재미)에 빠져서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들뢰즈는 미래를 통하는 문의 지도리가 빠져 마냥 열려있다고 하였는데, 카프카의 주인공(카프카 자신)들은 그 속에 들어가지 않고 현존에서 살려고 하였고, 그런데 무한을 다루는 수학자들은 그 문안으로 빨려 들어가 황홀경(extase, 무아경)에 빠졌던지 몰아경(entase)에 몰입했던지 간에 나가거나 되돌아올 방식을 찾기보다 어디까지 가지는지를 탐구중인 것 같다.
수학만이 무한에서 무아경(자아를 잃어버림)에 빠진 것이 아닌 것 같다. 이진법의 무한히 연결하는 마지막 수는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겠지만, 이진법을 이용한 인공두뇌의 학문은 마치 마지막 수(무한의 끝)나 공간의 무한이 잡힐 것 같은 착각에 빠져서 모든 것을 다 표현하게 되면, 인간의 두뇌 이상의 인공두뇌를 만들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러셀이 파라독스를 알기 전인가? 러셀은 자연수의 집합과 소수들(0.1, 0.01 ...)의 집합이 같다고 무한집합을 설명하면서, 무한히 산다(?)고 하면, 인간 삶의 모든 것을 집합처럼 대응시킬 수 있다고 했단다. 내가 이와 비슷한 글을 읽었을 때, 만약이라는 가설이 주어진다면, 전 우주를 막걸리 호로병 속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어느 술좌석에선가, 우주의 모든 것이 한 알의 씨앗 속에 있다고 하면서 가정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기철학자를 만나면서도, 수학의 논의가 일상에도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공(空) 즉 색(色)이라고, 빈 것은 빈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모든 것이 있다는 이런 방식의 논의에서는 파라독스나 난문제(아포리)의 문제가 아니라 신념(믿음)의 문제이며, 이것이 수의 신비학(수비학)을 낳았구나, 그리고 그 신비를 벗기기 위해 연산학(산술학)이 아니라 정수론이 정립되는 것이리라.
수론에서는 공간에 대한 논의가 없을 수 없는데, 시간에 대한 논의가 있는지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수론이 시간을 무시하지 않았다는 것을 저자의 책 속에서 읽을 수 있다. 수와 수 사이에 관계에서 둘 사이에 간격이 있을까 없을까 에서 계속성과 연속성은 다른 문제임을 깨달으면, 수에서도 공간이 연속성과 연관을 갖는다. 그리고 연속성의 직관은 공간의 문제와 맞물려 시간의 문제가 내재해 있다. 공간 논의에서 연속성을 흐름으로 바꾸어 보게 되면 시간관념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는데, 저자는 형이상학에 관계되는 문제는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한다. 여러 부분에서 저자 자신의 영역이 아닌 부분은, 자신의 실력으로 들어갈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마지막 12장의 실재(또는 실재성)의 문제는 거의 형이상학적 관점인데, 그 관점에서 위상학적이라는 관점을 끌어들여 설명하는 것은 저자 본인도 뿌앙까레를 인용하지만, 수학에서 직관의 인식은 설명할 수 없지만 없어서 안 될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실재성에 대한 직관의 이중적인 의미를 알아차린 것 같다. 이점에 그는 벩송을 알았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는 벩송에 관해서 엘레아학파의 제논 설명에서 단 한번 언급했지만, 형식론자인 러셀을 언급하면서, 다른 두 가지 다른 길이 있다는 설명에서 벩송과 러셀 사이의 차이를 알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55WKD,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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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이상하게도 생물학에서 스티븐 골드와 물리학에서 파인만을 떠올린다. 단찌히는 이 책을 미국에서 썼지만, 그 내용 상으로는 프랑스 사유에 상당히 깊이 젖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 벩송은 결과를 원인에 적용하는 것이 오류라고 한다. 러셀을 빌리지 않더라도 자기를 제외한 전칭긍정명제는 파라독스이다. 나로서는 결과를 원인에 적용하는 것도 원인이 훨씬 더 다양함에도 하나의 통로 또는 퉁일성을 맞추는 것은 인간의 지성(이성, 오성)의 착오와 오만이라 여긴다. 선승의 개구즉착(開口卽錯)도, 완성된 모습을 미완성의 대중에게 적용하는 오류를 지적한 것이라 여긴다. 인공지능(AI)에 관한한, 현실에서 결과물을 인간 두뇌 안에서 그 위치를 찾을 수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전도된 사고로 보인다. 말하자면 인간의 풍부한 사유에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개념의 정립이 부분으로서 성립하는 것인데도, 그 성립을 거꾸로 두뇌의 한부분에 찾으려 하면서, 두뇌의 지도를 그리면 현실을 행동을 그릴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어디서 오는 사고일까? 이 사고의 저의(l‘arrière-pensée)에는 2천5백 년 동안에 주지주의의 계열의 체계에 대한 복종 또는 자발적 예속으로 보인다. 인간 종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경험적 과정의 축적이 있었고, 그 축적에는 지성만이 아니라 직관(감성 포함)의 공감과 교감에 의한 삶이 있어왔다. 바둑판에서 알파제로의 승리가 인간 종의 삶에서 AI승리와 뉴런학문의 승리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데, 축구장에 현재 피파 축구 선수 11명과 AI지닌 완벽한 인간 모습의 대결이라고 할 때, AI가 이길 것이라고 가정하는 학자는, 내가 생각하기에, 미래에도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지성의 범위는 한정된 것 위에서이고, 인간의 사유는 비결정으로 열려져 있으면서 지성과 직관을 포함하는 능력(권능)으로 창안하고 발명해 나갈 것이다.
전도된 사고의 기원과 과정이 인간의 이기심을 부추기지 않았는지를 반성하는 것도 정치경제학과 인류학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전통의 철학인 형이상학, 요즘 표현으로 형이심(深)학이 다루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자연의 섭리에 대한 기원과 과정에 대한 이해를 깊고 넓게 하기에는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벩송의 표현으로 설탕물이 녹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자치, 자주, 자유를 실현하는데, 열려진 미래에서 함께 사는 상부상조, 상호침투의 방식으로 심포니처럼 구상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55WLA)
***목차
*4판 서문
*초판 서문
01장 손가락이 남긴 자국
02장 빈 칸
03장 수와 신비주의
04장 마지막 수
05장 기호
06장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것
07장 흐르는 세계
08장 수열 [다른 번역에서, _생성의 예술]
09장 틈 메우기
10장 복소수 [_수 집합]
11장 무한의 해부 [_무한에 관한 분석]
12장 두 가지 실재 [_두 가지 현실]
부록 1 수의 기록에 관하여
부록 2 정수에 관한 문제
부록 3 제곱근과 거듭제곱근에 관하여
부록 4 원리와 논증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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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의 황홀한 역사, 단찌히(Tobias Dantzig 1884–1956)
01장 손가락이 남긴 자국 12-35
예컨대 상당수의 새들도 수 감각(number sense)을 지니고 있다. 만약 네 개의 알이 있는 둥지에서 하나를 빼내면 어미 새는 아무 눈치도 못채지만 두 개를 빼내면 새는 둥지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14) [내가 들은 옛 어른의 말: 올빼미 둥지에서 하나를 빼면 짝수를 맞추어 채워놓지만 둘을 빼면 그대로 라고 한다.]
게누스 메우네무스(Genus Eumenus)라는 말벌 변종이 있다. 이 말벌은 수컷이 암컷보다 훨씬 작다. 이 말벌의 암컷은 알이 수컷인지 암컷인지를 안다. 그래서 그에 맞게 양을 정한다. 수컷이 나올 알에는 먹이의 양을 다섯 마리 넣어두고, 암컷이 나올 알에는 열 마리를 넣어둔다. (14-15) [벩송이 추정하려는 것은, 물론 벩송이 파브르 곤충기에 한 말벌종에 대한 이야기에서, 본능이 어떻게 이런 일반화의 개념작용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다. 생명체에는 성질사 같은 것을 오랜 삶의 과정에서 축적된 선험적 인식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첫째 반론은 수 감각을 지닌 동물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으면, 그런 능력은 포유류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심지어 원숭이도 수 감각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반론은 알려진 모든 경우를 보면 동물들이 지닌 수 감각의 폭은 매우 제한되어 무시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16)
첫째 반론에 대해 귀를 기울일 만하다. 수를 인지하는 능력이 일부 곤충과 조류, 그리고 인간에게만 국한되어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개와 말을 비롯하여 여러 동물을 대상으로 관찰과 실험을 해왔지만, 이들이 수 감각을 지녔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16)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크기”라는 “성질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꼭히 수량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 반론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지닌 수 감각의 폭 역시 매우 제한되어 있다. .. 문명인의 시각적 수 감각은 좀처럼 4를 넘지 않으며 촉각에 의한 수 감각은 그보다 더 제한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16-17)
[수감각; 양-질의 일반화(무리 떼, 동아리, 패거리, 송이, 다발, [덩어리. 더미]); 대응적 수로서 세기(헤아리기, 기수); 다음을 추론할 수 있는 순서로서 수인 서수; 연산으로서 계산하는 규칙을 부여하는 체계화의 수(수론) - 5진법, 10진법, 20진법 – 그리고 2진법; 정해지지 않은 어떤 것을 대신하는 수로서 대수(x, y, z, 그리고 t), ... 산술의 경험은 시각보다 촉각(손가락)과 연관이 크다. 시각의 영향은 하늘에 있고 60진법과 더불어 삶에서 12진법을 가져다 줄 것이다. (55WKB)]
첫째 경우에는 손가락을 기수 모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고, 둘째 경우에는 서수 체계모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셈이 이런 식으로 시작되었다는 흔적은 모든 원시 언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 (24)
[대응적 수: 수를 센다는 것이 시간을 재는(세는) 것에 적용되는 시기는, 인간이 사회화에서 공동의 요소들(농사, 어업, 물물교환) 등에서 일반화의 요구일 것이다. 제도에서 규칙과 위계는 셈법(산술학)의 체계화를 정립했을 것이다. .. 순서와 규칙에 따른 위계질서 또는 조직기구는 산술이 편할 것이다. 그러면 60진법은 왜 위계와는 다른 일반화를 요구했을까? 농업과 목축의 생산물에 대한 소유와 달리, 재배와 기르기는 하늘의 운행에 의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집트 나일강변의 토지의 측량은 하늘의 운행(책력)이 토지의 재배(생장) 원인이라는 점을 생각했으리라.]
02장 빈 칸 36-56
숫자는 아마도 사유재산제도만큼이나 오래되었을 것이다.자신의 가축과 재물을 기록하려는 생각에서 숫자가 생겨났으리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 숫자는 최소한 글자만큼 오래되었고, 또 글자보다 먼저 생겼다는 증거도 있다. 아마도 숫자 기록이 먼저 있었고 여기에서 음성기록을 생각해 낸 듯하다. (39)
이런 점에 비춰볼 때, 기원 후 1세기경에 자리 표기법 원리를 발견해낸 이름 모를 인도 사람의 업적은 세계사적 사건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49)
매우 이상스러운 점은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수학자들이 자리 표기법을 생각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자녀 교육을 노예에게 맡길 정도로 응용과학을 유난히 혐오한 그리스인들의 특성 때문일까? 그러나 만일 그렇다고 해도 기하학을 만들어내는 높은 수준까지 발전시킨 사람들이 어떻게 기초적 대수학조차 만들어내지 않은 것일까? 현대 수학의 초석이라고 할 대수학이 인도에서 생겨났다는 사실, 그리고 자리 표기법이 생겨난 기시와 같은 시기에 생겨났다는 사실도 역시 이상하지 않은가? (49-50) [일반적으로 대수학의 발전은 8세기 경이라 하는데...]
무(無)를 표시하는 기호, 즉 영(0, 零)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어떤 발전도 불가능했다. 현실적인 고대 그리스인들은 기호를 부여하는 것은 고사하고 공(空)을 수로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 그리고 영을 만들어낸 이름 모를 인도 사람도 영에서 무의 기호를 보지 못했다. 영에 해당하는 인도 말은 수냐이며, 이 말은 ‘비어 있음’을 뚯하지만 ‘공’이나 ‘무’의 의미를 갖고 있지 않았다. (51)
03장 수와 신비주의 57-86
실용주의 관점에서 문명사를 보는 사람들은 산술이 정수론보다 앞서 나왔다고 결론지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이다. 정수에 대한 이론은 가장 오래된 수학분야인 반면, 현대 산술은 4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 이런 사실은 단어의 유래에서도 드러난다. 그리스 말 arithmos는 수를 의미한다. 그리고 arithmetica는 17세기까지도 정수론을 뜻했다. 오늘날 산술은 그리스 시대에는 로지스티카(logistica)라고 불렸고, 앞에서 보았지만 중세 시대에는 알고리즘으로 불렸다. (58-59) [정수론이 신비주의 또는 수비(數秘)학에 연관이 많다.- 점성술에서 천문학이, 연금술에서 화학이 나오듯이, 수비학에서 정수론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
6[창세기], 7, 40[모세40년, 광야 40년]은 히브리인들에게는 예언적 의미를 지닌 수였고, 그리스트교의 신학은 이 가운데 7을 물려받았다. (60)
가장 허무맹랑하면서도 또 가장 널리 퍼져있는 수비학이 이른바 게마트리아(Gematria)이다. 히브리글자나 그리스 글자에는 음가뿐만이 아니라 수치도 부여되었다. (61)구상(具象)이 항상 추상보다 앞서 나온다. 바로 그 때문에 정수론이 산술학보다 먼저 나왔다. 그리고 구체성은 과학의 발전을 정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 이는 별 하나하나에 대한 관심이 과학적 천문학의 출현을 늦추었던 사정과 같다. (86) [의학과 심리학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수의 신비주의는 정수론을 발달시켰다. 연산에 의한 방식은 산술학이다. 서양의 비의학이 있듯이 동양에는 명리학이 있다. 명리학의 사주풀이던 이름풀이든 정수에 대한 신비 또는 숭배에서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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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 페르마(Pierre de Fermat 1601-1665) 프랑스의 수학자. 근대 정수론의 창시자라고도 불린다.
1810 에두아르트 쿠머(Ernst Eduard Kummer, 1810–1893) 독일 수학자, 이상수(ideal number)이론 연구. 레오폴트 크로네커는 쿠머에게 감명을 받아 수학자가 되었다.
04장 마지막 수 87
면밀히 분석해보면 수학적 과정은 두 가지 개념에 의지하고 있다. 수와 함수가 그것이다. 함수 자체는 궁극적으로 수로 환원된다. 다시 수의 일반개념은 자연수의 속성으로 귀결된다. (88) [담론은 단어와 문장으로 이루어지고 문장은 단어로 환원되며, 단어의 일반화는 두 가지 속성, 실체사와 성질사로 분해된다. 여기까지는 언어학이다. 의식은 3가지 속성, 실상, 형용사, 동사이다. 각각은 음절과 음소로 분해된다. (55WKB)]
모든 수! 짧지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말 ‘모든’에 문제의 핵심이 놓여 있다. ‘모든’이란 말을 유한 개수의 대상물에 적용할 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93) [논리학의 전칭긍정명제는 선전제 미해결의 문제이다. 논리상 ‘모든’을 말하는 순간 개구즉착에 빠진다. 러셀은 파라독스라고 했다.]
수의 집합을 정렬된 집합으로 보면 첫째 원소, 즉 1이 존재한다. 하지만 마지막 원소는 어떠한가? / 물론 마지막 원소는 존재하지 않는다!(93) [마지막 원소는 논리적으로 비규정적이기에, 다른 말이 없어서, 무한일 수 있고, 형이상학적으로 열려있기에 아페이론이다. 아페이로은 무도 아니고 결함도 아니며, 시간상으로 보아 아직 도달하지 못한 열려진 미래이다. 그 미래의 무한성을 신이라고하든 보살이라고 하든, 페라스로된 이데아들의 상위 류개념으로 선의 이데아도 아니다. (55WKB)]
그런 언어의 혼란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무한과 관련하여 제논의 논증에서부터 칸트와 칸토어의 모순에 이르기까지 온갖 역설이 수학에서 생겼다. .. 자연수의 성질[을 규정하기 위해] .. 수학이 논리학으로 환원하거나 ... 수학이 논리학이외 무언가, 즉 인간의 직관의 대상으로 하는 경우이다. (97-98) [수는 논리학도 직관의 대상도 아니다. - 규정화작업에 따른 실용적인 한 도구이다. 다른 도구로서 입말도 있고, 행동과 행위도 있다. ]
산술명제 증명에 사용되는 원리는 수학적 귀납법, 완전 귀납법, 반복적 추론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 가운데서 반복적 추론이 합당한 이름이고 나머지는 모두 잘못된 명치이다. (102) [동일반복을 실행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증명일 것이다. 이는 재현이 가능하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수학이 과학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그 자체가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이다. ... / 반복적 추론 규칙은 모순율로 환원되지 않는다. 또 경험으로부터도 도출되지 않는다. .../ 유한한 대상에 대한 문제라면 모순율로도 충분하다. .. / 끝으로 수학적 귀납법은 동일한 연산이 무한정 반복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런 이유에서 체스는 결코 과학이 될 수 없다. 체스 경기에서는 연이어지는 수(手)들은 서로 상이하기 때문이다.”, 뿌앙까레, 「수학적 추론의 본성에 관하여」(1984)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원리는 실험과학의 발전에 따라 생겨난 결과물도 아니다. 왜냐하면 최근에 나온 증거들에서 우주는 유한하다는 결론을 얻으며, 또 원자구조에 대한 최근의 발견에 비추어보았을 때 물질을 무한히 나눌 수 있다는 생각이 망상이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 논리로도 또 경험으로도 얻어지지 않지만 무한 개념은 필수적 수학 개념이다. (113) [프랑스와즈 발리바르는 물질이란 개념이 분석도 단위도 설정할 수 없지만, 물질이라는 개념이 있기에 물리학은 그 영역을 확대하고 발전해 나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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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 푸앙카레(Jules-Henri Poincaré, 1854-1912) 프랑스의 수학자․이론천문학자․과학철학자. 우주진화론, 상대성이론, 그리고 위상수학에 영향을 미쳤고 일반대중에게 과학을 해석해주는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 « Sur la nature du raisonnement mathématique », Revue de métaphysique et de morale, II (1894), 371-384. .
05장 기호 114-143. [참조: Table de symboles mathématiques]
오늘날 사용하는 넓은 의미에서 대수학은 기호들의 연산을 다룬다. 대수학은 모든 분야에 스며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형식논리학과 심지어 형이상학에까지 뻗어나가 있다. (114) [어쩌면 로고스 중심의 형이상학은 대수학과 같은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둘은 거의 나란히 가면서 한쪽은 부정기호(정해지지 않은 상징)로 다른 한쪽은 언어의 항들로 유사성을 서로 의존하고 있는 것 같다. 양자에서 기호이든 항들이든 실재성과 연관없이 놀이할 수 있는 연산규칙을 창안하여 만들고 따른다. 이에 비해 형이심학은 실재성의 일반화의 길을 가고 있으며, 여전히 지속의 변화성과 운동성에서 불가분적 일반성을 구상하려 한다.]
어느 나라에서든 대수학은 일반적으로 세 단계의 발전과정을 거쳤다. 즉 수사단계, 생략단계, 기호단계이다. (117)
수사적 대수학에서는 기호가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단어 자체가 기호의 역할을 한다. 예로서 덧셈은 항의 순서와 무관하다. (117)
생략형 대수학의 대표적 예가 이집트 대수학이다. 이는 수사적 대수학이 발전된 것이다. 흔히 사용되는 단어들이 점차로 생략된 형태를 취한다. (117) [상형문자 독수리가 A로 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편리와 간소화는 같은 길이다.]
그리스의 쇠퇴 ...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에서 두 학자 파푸스(Pappus d'Alexandrie 기원후 300년경 활동)와 디오판토스(Diophantos, Diophante d'Alexandrie (env. 200/214 - env. 284/298)가 있다. (120)
인도인들은 그리스 과학의 성과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그리스의 예리한 비판 정신을 계승하지 못했다. 바보는 앞뒤를 재지 않고 마구 덤벼드는 법이다. 인도인들은 엄밀성에 구애받지 않았으며 창조적 상상의 비상에 제동을 걸 소피스트들도 그들에게는 없었다.그들은 여러 단어들과 더불어 자연수, 분수, 영, 무한 등을 거리낌없이 사용했다. 예컨대 수냐는 영을 의미했지만 미지수로도 사용되었다. (120-121)
야코비(Jacobi, 1804-1851)가 데카르트에 대한 강연에서 .. “... 치마부에는 사라졌던 회화를 복원했고, 단테는 시를 복원했다. 아벨라르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같은 대담한 인물들은 카톨릭 신학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의 개념을 도입했고 이로써 스콜라 철학의 기틀을 마련했다. / 그러나 교회가 과학을 자신의 지배하에 놓자, 교회는 과학을 향해 교회 법률처럼 그 권위에 무조건적으로 순명할 것을 요구했다. 스콜라철학은 인간 영혼을 해방하기는커녕 수백 년 동안 단단한 족쇄로 얽어매 놓았고, 자유로운 과학 연구의 가능성조차 회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새벽은 밝아왔다. 인류는 독자적 사고에 기초하여 자연에 관한 지식을 얻어내기로 결의했다. 이 역사의 여명을 르네상스 또는 문예부흥이라 한다.” (124-125)
피보나치(Fibonacci, 1175-1240) - 비에뜨(François Viète, 1540-1603), -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 아라비아 수학에서 문자 표시법의 사용으로
대수학의 역사와 산술의 역사 사이에 두드러진 유사점이 있다. .. 산술에서 영의 발견이고 대수학에서 문자기호를 사용하면서 기호체계로 발전... (128) [데카르트 체계의 a+b=b+a는 정수체계인데 비해, x2+2x+5는 대수체계로서 산술학에 연관이 있다.]
우선, 문자를 사용함으로써 대수학은 말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문자 기호가 없다면 일반 진술은 모호함과 오해의 가능성을 지닌 장황한 표현이 된다는 점만을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 / 둘째로, 문자를 사용함으로써 한 표현식에서 다른 표현식으로 변형이 자유로워졌고, 따라서 한 가지 진술을 여러 가지 형태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129)
위에서 초기 대수학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특히 일반화된 수의 개념을 이끌어낸 상황에 대해 언급했다. (131) [수의 일반화(a+b)와 수의 부정화(x)]
정수, 양의 분수와 음의 분수, 그리고 영은 유리수체를 구성한다. 자연수 산술의 적용범위는 이제 유리수체로 대체된다. 사칙연산은 정수에서만 적용되었으나 이제 유추를 통해보다 일반화된 이들 수로 확장된다. (134)
이들 방정식을 다루는데 유리수체가 적합할까? 다음 당에서 보겠지만 유리수체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수를 더욱 복잡한 형태로 확장할 필요성이 생긴다. 그러나 이러한 확장은 제멋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반화를 하는 방식 자체에 방향을 제시해주고 통합해주는 원리가 숨어 있다. (135)
ax+b=c
위의 방정식을 선형 방정식이라고 부른다. 이 방정식은 모든 방정식 가운데 가장 간단한 형태이다. 선형방정식 다음으로 2차방정식, 3차, 4차, 5차 방정식등이 나오는데 n차.... / 그러나 이 방정식만으로는 무한한 종류의 방정식을 포괄하지 못한다. 그 외에도 지수방정식, 삼각방정식, 로그방정식, 원 방정식, 타원방정식 등이 있으며 이들은 초월방정식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된다. / 이들 방정식을 다루는 데 유리수체가 적합할까? 다음 장에서 보겠지만 유리수체로는 불충분하다. 수를 더욱 복잡한 형태로 확장할 필요성이 생긴다. 그러나 이러한 확장은 제멋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반화를 하는 방식자체에 방향을 제시해주고 통합해주는 원리가 숨어 있다. / 그 원리는 불변의 원리란 이름으로 불린다. 이 원리는 1867년 독일 수학자 헤르만 한켈(Hermann Hankel, 1839-1873)에 의해 최초로 정식화되었지만 그 근본 아이디어는 19세기를 통털어 가장 독창적이었고 가장 왕성한 활동을 했던 윌리엄 로언 해밀턴(William Rowan Hamilton 1805-1865)의 저작에 이미 담겨 있었다. (135-136)
무한한 수의 기호로 이루어진 집합을 수체로, 그리고 거기에 속하는 원소를 수라고 부른다. / 제1단계: 집합의 원소 가운데 자연수 집합을 이루는 원소들이 있는지 확인한다. / 제2단계: 원소 사이에 대소 관계를 결정하는 기준을 세우되 자연수에 국한하면 보통 사용되는 대소관계가 되는지 살펴본다. / 제3단계: 교환법칙, 결합법칙, 배분법칙을 만족하는 덧셈 및 곱셈을 정의하되 자연수에 국한했을 때 보통 사용되는 연산이 되는지를 살펴본다. (136)
형식주의자들은 후자, 즉 직관적 개념이 수학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용의주도하게 단어를 골라낸다고 해도 이들 단어 배후에 숨어 있는 의미가 우리들의 추론에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사용하는 단어의 문제점은 그 안에 내용이 들어있다는 것인데, 수학의 목적은 순수한 형태의 사고를 구성해내는 것이다. / 그러나 어떻게 인간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답은 바로 기호[symbole]라는 단어에서 찾을 수 있다. 공간, 시간, 연속 등의 모호한 관념은 직관에 기원을 두고 있으면서 순수 이성[지성]의 눈을 흐리게 하는 경향이 있다. (140)
형식주의 학파는 이탈리아 수학자 페아노(Peano 1858-1932)에 의해 세워졌으며, 이를 대표하는 근래의 인물로 러셀(Russell, 1872-1970)과 화이트헤드(Whitehead 1861-1947)가 있다. (141)
“수학원리”는 엄청난 노력과 훌륭한 의도를 증언하는 기념비로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과연 두 저자는 순수이성 위에 인간의 직관에 더렵혀지지 않은 구조를 성공적으로 세웠는가? 세권으로 된 그들의 책을 모두 읽은 수학자를 지금까지 만나본 일이 없기 때문에 나로서는 이에 답할 능력이 없다. 수학계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사람은 오직 두 사람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 두 사람을 포함시키고 한 이야기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141)
하지만 편견이 있다고 해도 나는 수학에서 기호체계의 역할을 평가절하가지는 않는다. 기호의 중요성은 인간의 사고에서 직관을 추방하려는 쓸모없는 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직관을 도와새로운 형태의 사상을 만들어내는 그 강력한 힘에 있다. (142)
일상 언어로 명료한 진술을 할 수 있다면 일상 언어도 기호체계이며 훌륭한 수사적 대수이다. 명사와 어구[술어]는 대상물들을 나타내는 기호이고, 동사는 관계를 표상[재현]하며, 문장[명제]은 이들 대상물들을 서로 연결지어준다. 하지만 단어는 집합의 추상적 기호[symbole, idea]이면서도, 그 집합에 속하는 전형적인 원소의 구체적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142)
자연수의 이러한 기호적 속성을 인식하고 나면 자연수는 절대적 성질을 상실한다. 자연수는 핵으로서 좀더 넓은 개념의 수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점이 명백해진다. 동시에 수 개념을 계속 확장하는 일은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작업이 아니라 자연적 진화의 필연적 발전 과정이 된다. (143) [수와 개념의 발전은 지성의 진화일 진대, 두뇌의 확장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렇다고 생명체로서 의식(영혼)의 확장은 다른 생명체들과 연관 속에서 확장될 것 같다.]
06장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것 [초월수]
피타고라스학파는 수가 우주를 규율한다고 보았다. 여기서 수는 지금 사용되는 듯과 다르다. 우주를 지배한다는 수는 자연수였다. (144)
정사각형에서 그 대각선과 변은 통약불가능하다는 사실, 즉 서로 정수비로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 그러나 누가 발견하였던 간에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는 점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통약불가능한 양을 알로곤(Alogon), 즉 입밖으로 낼 수 없는 것‘이라 ... (147)
무리수의 출현은 자연철학으로서 피타고라스 철학에 쇠퇴를 가져왔다. 산술적인 것과 기하학적인 것 사이에 완전한 일치가 있다는 피타고라스학파의 주장은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 / 수로 자연을 설명하려는 첫째 시도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148)
따라서 이번에도[제곱근 삼제곱근] 수 개념을 확대할 필요성에 직면한 것이다. 유리수 개념에서 벗어나 수 집합을 더욱 넓혀야 한다. 왜냐하면 간단한 2차 방정식의 해를 찾기에도 유리수로는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55)
아벨(Abel, 1802-1829)과 갈루아(Galois, 1811-1832)는 성격이나 외모가 천양지차였는데 이런 사람들이 같은 문제에 흥미를 느꼈고 또 비슷한 방법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 했다는 점은 매우 희귀한 일이다. .. 거듭제곱근에 대해 아벨은 열여덟, 갈루아는 열여섯이었다. 둘 다 그러한 해를 찾아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류를 발견하고 새로운 방법을 써서 문제를 공략했다. (159)
이런 방향으로 수 개념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힘을 얻기 훨씬 전에 아벨과 갈루아의 발견보다도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건이 일어난다. 1844년 에꼴 노르말의 교수이자 저명한 수학 저널(Journal de mathématiques pures et appliquées)을 창간한 프랑스 수학자 조제프 리우빌(Joseph Liouville, 1809-1882)이 파리 과학원(Académie des sciences)에서 논문을 발표했다. 나중에 이 논문은 수학 저널에 ‘대수적 수도 아니며 대수적 무리수로도 환원되지 않는 수들의 집합에 관하여’란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획기적인 이 논문에서 리우빌은 대수적 방정식의 근이 될 수 없는 수들[초월수]을 제시했다. 일찍이 1794년에 르장드르(Legendre, 1752-1833)는 그 존재성을 추정했는데 이로써 그의 추측이 입증되었다. (161)
칸토어(Cantor, 1845-1918)는 리우빌 정리에 대해여 새로운 증명을 내놓으면서 단단한 기초 위에서 초월수 이론을 전개했다. 초월수란 대수적 수가 아닌 수를 일컫는 말이다. (161-162)
그 문제란 다음 세 가지, 곧 정육면체를 두 배로 늘리는 문제, 각을 삼등분하는 문제, 그리고 원을 정사각형으로 만드는 문제였다. (163)
이렇게 수로 자연을 설명하려는 둘째 시도는 막을 내렸다. 초월수의 발견, 그리고 초월수가 그 수효나 다양성에서 훨씬 더 풍부하다는 사실, 바로 그러한 사실들이 확립되면서 2,000년 전의 초보적 유리수 산술과 마찬가지로 대수학이라는 강력한 도구 역시 무기력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두 가지 모두 실패한 것은 같은 이유에서였다. 즉 유리수 산술이나 대수학이나 모두 유한 과정만 다루기 때문이다. (170) [자연이 수로 표현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초월수는 자연에 생산이라기보다, 인간 지성의 놀이의 창안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이 놀이는 헤라클레이토스와 니체의 놀이와는 전혀 다른 계열일 것이다. 지성의 놀이는 재현이며, 상징계(symbolique)에 속할 것이고, 후자에서 삶의 놀이는 상상계(imaginaire)에 속할 것이다.]
07장 흐르는 세계 [연속문제]
자연과 물질에서 얻게 되는 최소의 인상은 바로 연속성이다. 우리는 쇠붙이가 되었던 액체가 되었던 어떤 물질이라도 무한히 잘게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무리 작게 나누어도 본래 지니고 있던 성질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생각한다. - 다비트 힐베르트(David Hilbert 1862-1943)
수학에서는 모든 길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로 통한다. 이 장에서는 무한소(無限小) 개념의 진화과정을 개관하고자 한다. (172)
러셀은 이렇게 쓰고 있다. “엘레아의 제논이 내세웠던 주장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왔던 공간과 시간의 모든 이론에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그러나 제논(Ζήνων 전490경-전430경)의 주장이 논쟁과정에서 전개되어 나온 것인지 아니면 책의 형태로 나온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마도 두 가지 모두 일 것이다. (173)
예컨대 역사학자 딴네리(Paul Tannery, 1843-1904)와 같은 사람들은 제논에게 그런 의도는 없었고, 오히려 부정할 수 없는 운동의 실재성을 이용하여 공간, 시간, 연속성에 대한 우리들의 개념 속에 볼썽사나운 모순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려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견해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 앙리 베르그송(Bergson, 1859-1941)의 견해이다. / 벩송은 “엘레아학파가 지적한 모순은 운동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 마음에 의해 작위적으로 조직해 놓은 운동 개념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벩송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제논의 주장이 갖는 가치는 인간 지식 영역에서 수학이 차지하는 자리를 명백히 해두었다는데 있다. .. 제논의 제기한 문제는 순수 수학자들에게 경종을 울릴 만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제논의 주장은 어떤 논리적 모순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다만 언어의 모호함을 드러내고 있을 따름이다. 수학자들은 이러한 모호함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데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기호의 세계는 인간 감각이 지어놓은 세계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만 하면 된다. (176-177)
제논의 주장이 지니는 역사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선 이로 인해 그리스인들은 시간개념에 대해 새로운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178-179)
고대 그리스의 긍정적 상황은 오늘날에도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러나 그리스 수학은 디오판토스(Diophantos, 200/214-284/298)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수학이 발달하지 못했고, 아폴로니오스(Apollonios, 전262경-190경)가 있었음에도 분석기하학이 발달하지 못했으며,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전287-212)가 있었음에도 무한소 해석학이 발달하지 못했다. 적절한 기호 체계의 미비가 그리스 수학의 성장에 장애가 되었다는 사실은 앞서 지적했다. 그와 못지않게 무한에 대한 두려움역시 발전에 큰 장애를 가져왔다. (184) [무한에 대한 두려움일까? 영혼이 무한에 대한 열망(욕망)으로 투사하여 불멸성을 추구한 것은 아닐까?]
르네상스 수학은 전적으로 그리스 수학에 의지했으나 무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그리스 특유의 비판적 엄밀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케플러와 카발리에리에 의해 시작된 임시방편식의 조악한 방법은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는데, 다만 뉴턴과 라이프니츠, 무한 기호를 만들어낸 월리스(John Wallis 1616-1703), 베르누이 가문의 네 사람, 오일러, 달랑베르 등에 의해 겉모습만 그럴싸하게 꾸며졌다. (186)
케플러는 성직자가 되기를 희망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어쩔 수 없이 천문학자의 길을 걸었다. 파스칼은 수학을 버리고 종교에 귀의하는 길을 택했다. 데카르트는 교회의 권위에 대한 믿음 때문에 갈릴레이에 전적으로 동조하지 못했다. 뉴턴은 위대한 업적을 내놓는 사시사이에 신학논문을 집필했다. 라이프니츠는 그리스도교를 옹호하는 방편으로 수에 관한 철학을 구성해내고자 했다. 성체와 대속, 삼위일체와 성육신, 이런 문제에 천착하는 사람들로서는 무한 과정의 타당성은 작은 문제일 따름이다. (187) [저자는 철학자들의 생활에서 일탈을 우스게로 만들고 있다.]
뉴턴의 ‘유율(fluxion)’과 라이프니츠의 ‘차분(difference)’을 오늘날에는 도함수와 미분으로 부른다. (188)
‘전진하라, 그러면 믿음이 따라올 것이다’라는 마치 달랑베르의 말을 마음 속에 깊이 새겨놓기라도 한 듯, 수학자들은 무한 과정의 타당성에 대해 맹목적 믿음을 앞세우고 돌진해갔다. / 그리고 마침내 [무한과정의 타당성에 대해] 비판의 시대가 찾아왔다. 아벨(Abel, 1802-1829)(27살)과 야코비(Jacobi, 1804-1851), 가우스(Gauss, 1777-1855)와 코시(Cauchy, 1789-1857)와 바어어슈트라스(Weierstrass 1815-1897), 그리고 데데킨트(Dedekind, 1831-1916)와 칸토어(Cantor, 1845-1918)가 출현해 수학의 전체 구조를 면밀하게 살피면서 모호하고 애매한 것들을 제거해 냈다. 이러한 재건이 가져온 결과는 무엇인가? 선구자들의 허술한 논리는 배격되었지만 그들의 믿음은 올바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195)
08장 수열 [다른 번역에서, _생성의 예술] 08 수열 [무한 문제]
우리에게 더 이상 허구는 필요 없다. 우리는 정확하게 계산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계산능력을 갖추기 위해서 먼저 허구를 만들어내야 했다. - 니체
유리수 산술을 기하학 문제에 적용하려는 과정에서 수학 역사상 첫째 위기가 생겨났다. (198) [참조 148쪽]
점을 크기를 지니지 않은 기하학적 존재로 보는 일반적 개념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허구를 분석해보면 그 배후에는 세 가지 생각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우리는 점의 일종의 생성 원소로 파악한다. 즉 점은 운동을 하면서 직선을 궤적으로 그려낸다. (199) .../
둘째로 점은 두 직선이 겹쳐지는[만나는] 부분으로 생각할 수 있다. 즉 한 직선이 다른 직선 위에 남겨 놓은 표식으로 보는 것이다. (200) .../
끝으로 점을 선분에 무한 과정을 적용하여 얻는 극한 위치로 간주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리스 이분법이 대표적 예라는 점만을 언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산술에서 무한 과정에 해당하는 것이 무한 수열이다. 게오르크 칸토어는 그의 유명한 무리수 이론을 전개하는 수단으로 바로 유리수 무한 수열을 사용했고 그 내용을 1884년에 최초로 출간했다.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이 개념이 바로 이 장에서 다룰 주제이다. (201)
앞의 장에서 다룬 해석학[분석학]의 경우에도 그랬지만 이런 오랜 기간의 암중모색에서 연구자들을 이끌던 동력은 무한의 절대적 속성[실재성]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었다. 이 믿음은 촤고의 표현물로 대미를 장식하는데, 그 표현물이란 연속체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다. 이제 연속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한다. (228)
09장 틈 메우기 230- [수로 자연 표시 방법 2 시기(고대 피타고라스-상식, 근대 대수학-양식), 다음으로 자연에서 벗어나, 연속성 찾기 – 무한의 다양한 위상들]
1048 오마르 카얌/하이얌(Omar Khayyam, 1048-1131) 이란태생, 페르샤 수학자, 천문학자, 시인, 이항정리를 증명했다. / 1048 오마르 카이암(Omar Khayyam, 1048-1131) 페스샤 시인, 수학자. 1079년에 역서(曆書)를 개혁. 가장 훌륭한 친구가 회교 암살 비밀결사의 창설자로서, 그 전설이 유명한 “산속의 노인”(Old Man of the Moutain)이었다. / 루바이야트(Les Rubaïyat, en Rubaiyat)– 프랑스 동방학 연구자(James Darmesteter (1849-1894), 영국 번역 에드워드 피츠제럴드(Edward FitzGerald, 1809-1883)
칸토어(Cantor, 1845-1918)나 데데킨트(Dedekind, 1831-1916)가 직관적 시간 개념의 사슬에서 연속을 해방하지 못했음에도 연속성의 개념과 과학적 수 개념사이의 오래된 투쟁은 결국 후자의 결정적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런 승리가 가능했던 것은 페르마와 데카르트 시대 이후로 분석학[분석기하학]에서 필수 불가결한 도구 역할을 했던 기법에 정당성을 부여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었다. 이 기법이란 분석기하학이며 그에 대한 역사가 다음 장의 내용 가운데 일부분을 이룬다. (247) [수학이 기호화에서 추상화의 극한으로 나감에서 무한에서 자율적 영역을 확보하였다고 하더라도, 삶에서 시간-지속과는 별개라는 점에서 시간의 실재성을 해결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속의 불가역성은 부분이든 전체든 동일반복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 달리 말하면 지성의 한부분이 무한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을 정초하였다고 해서 삶에서도 그 정초된 학문이 학적 기반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한 현실[실재성]을 모상으로 하여 산술을 만들어내려는 오랜 노력은 그 현실의 모호함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다. 따라서 산술은 자기 자신의 모상에 따라 새로운 현실을 창출해냈다. 유리수는 실패한 곳이었으나 무한과정은 성공을 거두었다. / 순수한 수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Numeri mundum regnant). (249) [실재성은 아페이론과 닮아서 자연수나 유리수로 한정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실재성에는 무한과정이 내포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두가지 측면에서, 즉 어제측면과 아제측면이다.
10장 복소수 [허수=복소수와 동일한 연구]
[교과서로 배우면 수학의 발전사가 인간 지성의 발전사의 단계를 순차적으로 거쳐온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수학 역사를 살펴보면 그러한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다. 수학은 의외의 사건과 우연한 발견에 좌우되었고 종잡을 수 없는 방식으로 발전해왔으며 또 그러한 발전 과정에서 인간의 직관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252) [수학사에서도 역사에서도 선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선형은 나중에 교육적 측면으로 재현한 것이고, 실재로는 발산과 수렴의 우여곡절을 겪은 과정이다. 그 불완전한 덩어리가 의식 상태이다. 어제를 이제 속에 아제에 연결하는 선은 전자기서과 비슷할지도 모르다. 그럼에도 생명의 흐름은 연속적이고 지속적이다 언제 단절될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 언제를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천당에 가는 것을 미리 걱정할 필요도 없다.]
18세기에도 이미 복소수는 순수한 대수적 속성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드무아브르(de Moivre, 1667-1754)가 발견한 유명한 공식은 삼각함수와 관련되어 있고, 오일러(Euler, 1707-1783)는 초월수 e를 포함하는 공식으로 드무아브르 공식을 발전시켰다. 내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부분이지만 내용의 완벽을 기하기 위해 오일러 공식을 언급하기로 하자. / eiπ+ 1 = 0 / 형이상학적 경향을 지닌 당시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이를 신비로운 식으로 여기며 경외감까지 가졌다. 실제로 이 식에는 현대수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쓰이는 기호들이 등장한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산술을 대표하는 0과1, 대수학을 대표하는 기호i, 기하학을 대표하는 π, 해석학[분석학]을 대표하는 초월수 e등이 두루 등장하여 서로 신비롭게 결합되어 있는 모습으로 비쳤다. (258-259)
1770년에 오일러(Euler, 1707-1783)의 대수학(1770)이 등장했다. ../ 1831년에 가우스(Gauss, 1777-1855)는 이렇게 썼다. “... 여러 해 동안 필자는 다른 시각에서 허수를 바라보았다. 음수와 마찬가지로허수에도 객관적 존재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이러한 필자의 생각을 발표할 기회를 미처 갖지 못했다.” (264-265)
데카르트의 기하학과 페르마의 궤적 개론은 동일한 유전자의 쌍둥이 임, ... 데자르그와 파스칼은 사영기하학을 발견했다. 파스칼과 페르마에 의해 확률이론의 원리가 확립되었다. .. 18세기에는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따로 미적분학을, 19세기에는 바셀, 아르강, 가우스가 거의 같은 시기에 복소수에 대해 동일한 해석을을 가했다. 로바체프스키, 보야이, 가우스는 동시에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생각해냈다. 19세기 말에 칸토어와 데데킨트가 연속체를 구성해냈다. (271-272)
서로 직교하는 두 개의 축을 택하고 각 축에 양의 방향과 음의 방향을 정한다. ../ 이 방식은 너무나 단순하고 자연스럽기 때문이 이를 발견하기 까지 3,000년이나 소요되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이는 자리 표기법의 경우만큼이나 우리의 이목을 끄는 특이한 현상이다. 자리 표기법은 수를 기술하는 언어 구조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었으나 그것을 발견하기까지는 무려 5,000년이란 시간이 소요 되었다. (276)
이로써 우리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허구란 적절히 해석되기를 기다리는 하나의 형상이다. (283) - [벩송에서 아페이론에서 위상을 갖는 성질사가 표기법을 갖추고 일반화의 과정을 걷는 것은 성질사가 또 다른 하나의 이데아라는 것이다. ]
11장 무한의 해부 284- [_무한에 관한 분석]
자유가 바로 수학의 본질이다. - 게오르크 칸토어
[창안이 자유의 본질이다. 수학은 새로운 창안으로 발견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있는 학문이다. - 물체들에서 조합에 의해 새로운 발명품을 만드는 것도 또 다른 학문의 영역이다. 이런 영역의 곱태성과 같은 계열들의 발산이 인간이 스스로 행하는 자유일 것이다. 교감과 공감을 통한 공동체도 새로이 만들 수 있다.]
첫 장에서 보았지만[24쪽], 개수의 개념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본래 지니고 있던 것이 아니다. 자연수의 기원, 더 정확하게 기수의 기원은 짝을 짓는 능력을 으로 거술러 올라간다. 짝을 짓는 능력 덕분에 집합 사이의 대응을 세울 수 있다. 대소 개념이 수 개념보다 앞서 생겨난다. 우리는 셈을 배우기 전에 비교하는 것을 먼저 배운다. 산술은 수와 더불어 시작되지 않는다. 산술은 판단 기준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대소 기준을 적용하는 방법을 먼저 습득했고, 그 다음으로 각각의 복수 유형에 대한 모델을 만들어 냈다. (286)
대응[짝짓기]의 원리가 정수 생성해냈고, 정수를 통해 대응의 원리는 산술의 지배적 원리가 되었다. 무한집합의 개수를 측정할 수 있으려면 먼저 무한집합들을 서로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287)
무한 집합의 원소 개수를 셈한다는 것은 처음에는 얼토당토하지 않은 이야기로 들린다. 하지만 수학을 웬만큼 아는 사람이라면 무한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거시다. 자연수에 대해 사용하는 무한이라는 말과 직선 위에 점들에 대해 사용하는 무한이라는 말은 서로 본질적으로 다르다. / 무한 집합의 ‘크기’라는 모호한 개념은 그물로 비유해 설명할 수 있다. 그물코의 간격이 1인 그물을 던지면 자연수만을 걷어 올리고 나머지 수는 모두 빠져나간다. 둘째는 그물코의 간격이 10분의 1인 그물을 던지고, 또 셋째는 간격이 100분의 1인 그물을 던진다. (284-285) [크기가 성질사일 경우를 생각해보자.]
1820년에 볼차노(Bolzano 1781-1848)는 무한의 역설이라는 자그만 책자를 출간했다. .../.. 집합의 역량(power)이라는 중요한 개념을 생각해낸 공은 마땅히 볼차노에게 돌려야 한다. (291) [윤리학에서 권능을 자연 속에 부여한 스피노자를 생각하게 한다.]
현대 집합 이론은 게오르크 칸토어에 의해 시작되었다. .. 1883년에 ‘선형집합에 관하여’란 논문은 최초로 실재 무한을 수학적 대상물로 다루었다. (291) ...
칸토어 시대의 사람들이 실제 무한에 대해 일반적으로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가우스가 슈마허(Schumacher 1780-1850)에게 보낸 편지를 인용해 본다. 이 편지는 1831년에 쓰였지만 이후 반세기 동안 수학계의 기조를 결정했다. “... 유한한 인간이 무한을 고정된 대상으로 오해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무한을 유한한 대상으로 여기는 버릇에 휘둘리지만 않는다면 모순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네.” (292)
칸토어는 갈릴레이가 논의를 멈춘 지점에서 시작한다. 맞다! 한 집합이 다른 집합의 부분집합이라고 해도 두 집합 사이에 대응이 있을 수 있다. 두 집합이 무한이든 유한이든 원소들을 서로 짝지을 수 있다면 두 집합은 동일한 역량을 갖는다고 말한다. (293) [어쩌면 소우주와 대우주 사이의 연대성도 대응설로 풀수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부분도 전체와 동일한 역량을 지닐 수 있다.’ 이 문장은 수학명제라기보다 차라리 신학명제로 들린다. .. 예컨대 바스카라(Bhaskara, 1114-1185)는 1/0의 속성에 대해 논의하면서 ... (295) [형이상학에 총체적 사유의 직관은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자연수에서 원소를 솎아내도 초월수는 작아지지 않는다면 거꾸로 원소를 채워 넣는 방식으로 역량을 더 크게 만들 수 있을까? 유리수는 조밀하고 자연수는 띄엄띄엄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유리수의 역량이 자연수의 역량보다 크다고 여져진다. 하지만 이번에도 직관은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있다. 칸토어가 유리 집합이 가부번 집합임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려면 유리수 집합을 수열로 나열한 다음에 각 유리수마다 번호를 매겨놓으면 된다. (297) [계산학이 함수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수열로 나열에 있을 것 같다.]
여기서 우리는 두 종류의 동치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대응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두 집합의 원들을 서로 짝지을 수 있을 때 두 집합은 동치가 된다. 순서의 관점에서 동치가 되기 위해서는 두 집합 사이에 대응이 있어야 함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완벽한 동치가 되려면, 즉 두 집합이 닮은꼴[합동]이 되려면 짝짓기 과정이 순서를 흩트려 놓아서는 안된다. (299) [대응은 병치가 가능하다는 전제가 있는데 비해, 과정은 순서를 바꿀 없기에 완변한 합동은 둘이 과정이 같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과정이 같은 것은 생성과 생명에서는 있을 수 없다. 우주에 동일한 지구는 없을 것이다.]
실수를 수열처럼 나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칸토어는 1874년에 알았다. 하지만 증명은 1883년에 가서야 나왔다. .. 모든 실수에 번호를 부여했다고 가정하고 나서 이른바 대각선 방법이란 것을 적용하면 나열되어 있는 실수들과 다른 새로운 실수를 찾아낼 수 있다. (303)
이 증명은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리우빌이 초월수를 발견했다는 것은 앞서 말했다. 연속체의 모든 원소들에 번호를 매길 수 없다는 칸토어의 증명으로 인해 리우빌의 초월수의 존재정리는 다시금 확인받기에 이른다. 대수적 수들의 집합과 초월수들의 집합에 대한 리우빌의 논의는 다소 모호했지만 칸토어는 이를 엄밀하게 정식화했다. (303) [수의 나열을 다른 양상의 수(초월수)가 있다는 것은 논리적 체계화와 다른 양상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 초한수[초월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별 문제 없는 명제로 들리지만 그 안에는 전체 이론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만한 폭발물이 들어있었다. 초기 반대자들의 논박을 물리치고 나자 칸토어로서는 자신의 이론이 완숭을 거두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거의 동시에 무언가 잘 못되었다는 이상 징후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징후는 그 성격이 서로 달랐다. 이탈리아인 부랄리포르티(Burali-Forti 1861-1931), 영국인 버트런드 러셀(Russell, 1872-1970), 독일인 쾨니히, 그리고 프랑스인 시샤르(Richard 1862-1956)는 각자의 모순과 역설을 들고 나왔다. (308)
이러한 역설들이 제기된 이후로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났다. (309)
‘형식주의자’ 측에서는 힐베르트, 러셀, 체르멜로(Zermelo, 1871-1953)가 있다. 칸토어를 옹호하는 그들은 칸토어의 최소화 프로그램을 지켜내려고 한다는 점에서 ‘멘세비키’라고 할 수 있다. (310)
직관주의자들의 계보는 크로네커(Kronecker 1823-1891)를 필두로 하여 뿌앙까레(Poincaré 1854-1912)라는 대표적 인물로 이어진다. 오늘날 활약하고 있는 사람 가운데 네델란드의 브라우어/브로우베르(Brouwer, 1881-1966), 독일의 바일(Weyl 1885-1955), 프랑스의 보렐(Borel 1871-1956) 등을 들 수 있다. (310-311)
직관주의자들이 보기에는 문제는 집합론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어떤 개념이 수학 영역으로 편입되려면 그 개념은 ‘잘 정의되어야’할 뿐만 아니라 구성도 가능해야 한다. 개념은 명목상으로만 준재해서은 안되고, 그 개념이 표상하는 대상물을 결정할 수 있도록 구체적 구성방식도 주어져야 한다. 구성에서는 오직 유한과정과, 유한한 개수의 규칙을 적용하여 유한과정으로 환원되는 무한과정만이 허용된다. (311) - [유한과정을 허용하는 것이 지성의 역할이고 이를 넘어서도 사유하는 것이 직관일 것이다. 벩송은 이런 의미에서 직관이 지성(오성)보다 넓어서 다곱체를 다룰 수 있다고 보았을 것이다. 벩송은 보렐을 알았다.]
12장 두 가지 실재314 [_두 가지 현실]
[저자 단찌히는 12장에서 거의 철학적 논의를 하는데, 푸앙카레의 영향으로 보인다.]
따라서 측정 도구가 아무리 단해 보여도 실수 산술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그 안에 들어있다. 어떤 과학적 도구에도 산술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산술없이는 어떤 도구도 사용이 불가능하다. / 바로 그것이 해결하기 어려운 난점이다. 만일 과학적 도구를 통해 얻어낸 데이터로 객관적 세계를 구성하고 이 세계를 기준으로 실수의 실재성을 판단하려 한다면 이는 순환논법에 빠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도구는 미리 실수의 실재성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332) [벩송이 EC 3장에서 자연에 대한 인식에서 주지주의자들의 두 가지 순환논법에 빠짐을 잘 지적하고 있다.]
언어를 박탈당하고 다른 이들과 감각 인상 교환의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은 수에 관한 과학을 구성해내지 못한다. 그의 지각 세계에서 산술은 어떤 실재성도 어떤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 한편 사고력을 갖춘 한 사람의 객관적 세계는 다른 대다수 사람들과 공유하는 감각인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에게는 ‘수에 어떤 실재를 부여해야 하느냐’란 질문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공간이나 시간 없이 어떤 실재도 있을 수 없듯이, 수 없이는 어떤 실재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333-334) [벩송은 수로서 실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삶의 많은 부분을 빼버린 것이며, 수로 개념작용하는 것은 흐름의 실재성을 표면위로 끌어올려 건조화시켜서 원자처럼 가루를 내서 배치하면서 다루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수는 대상화로서 기계적 작업에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삶은 역동적이며 상호침투하는 직관을 통한 삶의 확장과 강도의 노력이 있다.]
니체...“우리는 허위라는 이유를 들어 어떤 판단을 배격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그 개념이 과연 인류의 삶을 얼마만큼 보존하고 증진시키느냐이다. ... 수 라는 도구호 우주라는 허상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인간은 삶을 지속할 수 없다. 잘못된 판단을 배격하는 것은 삶을 배격하는 것이고 삶을 부정하는 것이다.” (336-337)
실험 증거와 논리적 필연만이 실재라는 이름의 객관적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관찰과 실험을 인도하는 수학적 필연도 있다. 논리적 필연은 수학적 필연의 일면일 따름이다. 또 다른 일면은 불명료하고 모호한 것으로 어떤 규정도 불가능한데 우리는 그것을 직관이라고 부른다. 무한 개념은 실험적 필연도 아니고 논리적 필연도 아니다. / 무한 개념은 바로 수학적 필연이다. 한번 행한 것은 항상 다시 반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허구[fiction]일지 모른다. 하지만 편리한 허구이며 따라서 필요한 허구이다. 이 개념 덕분에 특수한 경우를 일일이 점검하는 수고를 덜어진다. 또 그 덕분에 우리가 주장하는 명제에 일반성이라는 옷을 걸칠 수 있는데, 그러한 일반성 없이는 어떤 과학도 가능하지 않다. (338)
[개연성의 과학, 확률성의 과학은 어쩌면 가우스 곡선의 중심부와 같은 일반성일 것이고, 와 같은 일반성을 벩송은 강도라고 부른다. 기억과 생명은 강도의 일반성을 바탕으로 표현될 것이다.]
그러나 무한이란 진리 탐구 과정에서 택할 수 있는 여러 우회로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단순성, 동일성, 균질성, 불변성, 인과성 등과 같이 수학적 직관이 내놓은 또 다른 우회로들이 있다. 절대 진리라는 신기루를 좇게 만들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인류의 지적 유산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것이 바로 수학적 직관이다. 하지만 신기루를 지나치게 좇아 지적 유산을 위태롭게 할 때에 그 무모함을 제지하는 것도 역시 수학적 직관이다. 이 때 수학적 직관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속삭인다. “추구하는 대상과 추구하는 자가 서로 닮아 있으니 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339)
그러면 현명한 자는 어떨까? 현자는 내일에는 실재가 될지 모를 허구를 오늘 잣는다. 그리고 개념의 원천이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저 아득한 봉우리를 바라보며 위대한 스승의 말을 읊조린다. “어디서 발원하는지는 몰라도 냇물은 계속 흘러간다.” (339)
(lu, 18:06, 55WKF) (21:11, 55W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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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디오판토스(Diophantos, Diophante d'Alexandrie (env. 200/214 - env. 284/298) 그리스 수학자. 대수학의 아버지(père de l'algèbre)라 불린다.
260k 파푸스(Pappus d'Alexandrie 기원후 300년경 활동) 알렉산드리아 태생, 고대 그리스의 중요한 수학자. 작품으로 시나고게(Synagoge)(340년경)가 있다.
1048 오마르 하이얌(Omar Khayyam, 1048-1131)은 페르시아의 수학자, 천문학자, 철학자, 작가, 시인이다. 이항정리를 증명하였다. 그가 만든 달력은 16세기에 나온 그레고리 달력보다 더 정확하였으며, 3차 방정식의 기하학적 해결을 연구하였다. 시집 《루바이야트(Rubaiyat)》(1859년 영역) 에드워드 피츠제럴드(Edward FitzGerald, 1809-1883)가 영어로 번역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1114 인도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바스카라(Bhaskara, 1114-1185) 1/0가 무한이라고 계산하였다. “릴라바티”는 8세기에 씌어진 일반 신학 서적이라 한다.
1175 레오나르도 피보나치Leonardo Fibonacci (v. 1175 à Pise - v. 1250) Leonardo Pisano Bigollo 1170년 이탈리아 피사, 이탈리아 수학자, 이탈리아의 수학자로 피보나치 수에 대한 연구로 유명하다. 또한 유럽에 아라비아 수 체계를 소개하기도 했다. 주판서
1540 비에뜨(François Viète, en latin Franciscus Vieta, 1540-1603) 프랑스 수학자.
1596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수학자 의학자 철학자이다. 그는 새로운 철학의 방법을 제시하고, 당시 카톨릭의 비판을 피하여 네델란드에서 지냈다. 기하학(1637)
1667 드 무와브르(Abraham de Moivre, 1667-1754) 프랑스 출신의 영국 수학자. 위그노교도였기 때문에 1685년 낭트 칙령의 폐지에 따라서 프랑스를 떠나 영국으로 건너가. 복소수에 관한 '드무아브르의 정리', 확률론에 관한 '드무아브르ㆍ라플라스(de Moivre-La place)의 정리' 따위로 유명하다.
1707 레온하르트 오일러(Leonhard Euler, 1707-1783)(76살) 스위스의 수학자, 물리학자. 페테스부르그에서 죽었다. 수학․천문학․물리학뿐만 아니라, 의학․식물학․화학 등 많은 분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연구하였다. 수학분야에서 미적분학을 발전시키고, 변분학을 창시하였으며, 대수학․정수론․기하학 등 여러 방면에 걸쳐 큰 업적을 남겼다. 주요저서 미분학 원리(1755), 독일 왕녀에게 보내는 편지, 대수학 완전 입문(1770)
1780 슈마허(Heinrich Christian Schumacher 1780-1850) 천문학자. 가우스의 친구..
1804 야코비(Carl Gustav Jacobi, 1804-1851) 독일 수학자. 타원형(elliptique)의 함수 연구
1805 윌리엄 로언 해밀턴(William Rowan Hamilton 1805-1865) 아일랜드 물리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 나블라[nabla], 해밀토니안(Hamiltonian)은 입자나 장(場)의 계의 에너지를 공간 좌표와 운동량 좌표로 표현한 것 또는 양자역학에서 이 값을 양자화한 연산자를 말한다. 후자는 해밀턴 연산자(演算子)라고도 한다.
1809 조제프 리우빌(Joseph Liouville, 1809-1882) 프랑스의 수학자. 1844년 초월수(les nombres transcendants)의 존재 증명과 미분, 적분 및 해밀턴의 정준운동(正準運動) 방정식의 풀이했다.
1823 크로네커(Leopold Kronecker 1823-1891)(68살) 독일의 수학자. 방정식과 고차대수학론 연구에 크게 기여했다. 칸토어를 사기꾼으로 몰았다...
1839 한켈(Hermann Hankel, 1839-1873) 독일 수학자.
1845 칸토어(Georg Cantor 1845-1918)(73살) 유태인 독일 수학자. 집합론 창시자. 「Über unendliche lineare Punktmannigfaltigkeiten, 1883」, 「De la puissance des ensembles parfaits de points: Extrait d’une lettre adressée à l’éditeur」, Acta Mathematica volume 4, pages381–392 (1884)
1861 체사레 부랄리-포르티(Cesare Burali-Forti 1861-1931) 이탈리아 수학자. 파라독스
1862 리샤르(Jules Richard 1862-1956) 프랑스 수학자. 파라독스
1872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1872-1970) 영국의 철학자․수학자․사회 평론가. 수리 철학, 기호 논리학을 집대성하여 분석 철학의 기초를 쌓았다. 평화주의자로 제일차세계대전과 나치스에 반대하였으며, 원폭 금지 운동․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에 앞장섰다.
1881 루이첸 브로우베르(Luitzen Egbertus Jan Brouwer, 1881-1966) 네델란드 수학자. 논리적 직관주의자
1885 바일(Hermann Weyl 1885-1955) 독일 태생 미국의 수학자. 수학에 대한 다방면의 연구로 순수수학을 이론물리, 특히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으로 연결짓는 데 공헌했다.
1871 에른스트 체르멜로(Ernst Friedrich Ferdinand Zermelo, 1871-1953) 독일 수학자이며 철학자이다.
1871 보렐(Félix-Edouard-Justin-)Emile Borel 1871-1956) 프랑스의 수학자. 점들의 집합에 대한 효율적인 측도론을 최초로 고안했고 프랑스의 르네 베르, 앙리 르베그와 함께 현대 실변수 함수론을 시작했다.
(22:35, 55WLA)
# 참조: 아래 세 권의 책은 동일한 책의 번역이다.
*
수의 황홀한 역사 - 수의 탄생에서 현대 수학 이론까지 | 지식의숲 K
토비아스 단치히, 심재관(옮긴이), 정경훈(감수), 지식의숲(넥서스) 2016-10-05, 456쪽
원제 : NUMBER, The Language of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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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언어 수: 원시 셈법에서 최신 정수론까지, 수의 황홀산 역사
토비아스 단치히, 심재관(옮긴이), 지식의숲(넥서스) 2007, 4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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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과학의 언어: 아인슈타인이 극찬한 책
토비아스 단치히 저 | 한승 | 2008년 01월 10일, 469쪽
단찌히(Tobias Dantzig 1884–1956) 라트비아 출신 미국 수학자. 파리 망명 때 쁘왕까레에게 배웠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조지 단찌히(George Dantzig, 1914-2005)의 아버지이다. Number: The Language of Science(A critical survey written for the cultured non-mathematician) (1930)(54년 4판), Aspects of Science, 1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