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직장 동료가 감을 사지 않겠느냐고 물어왔습니다.
아내의 친정인 전남 영광에 감 풍년이 들었지만, 정작 사려는 사람이 없어
고스란히 버리게 되었다는 거였습니다.
원한다면 자신이 직접 처가에 가서 감을 따다 주겠다구요.
그렇게 집으로 배달되어온 감은 한 박스 50개쯤 되었는데
하나만 먹어도 든든할 만큼 큼지막한 [ 대봉 ] 이었습니다.
가격은 2만 원 - 한 개 400원 꼴,
서울에서 그만한 대봉 한 개 사려면 적어도 1,000∼1,500원은 주어야 한다는 걸
잘 아는 터인지라, 택배삯도 받지 않고 부쳐온 감 상자를 열어보곤, 값을 더 치르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 한동안 고민이 될 정도였습니다.
그 감을 이리저리 생색내며 맛나게 나눠 먹은 후였는데
이번에는 경북 상주에 사는 오랜 지인(知人)이 또 감을 부쳐왔습니다.
배 과수원을 하는 그 집에서 만든 배즙이 너무 맛나고 싸기에, 주위의 주문을 고작 한두 건
받아주었을 뿐인데, 배보다 배꼽이 크게시리 고맙다는 표시로 감을 부쳐온 것이었지요.
[ 경녀님 꺼 ] 라고 이름표를 야물게 붙인 상자를 열자
이리저리 차곡차곡 돌려 넣은 감이 와락 눈 속으로 달려 들어왔습니다.
그 상자 속에는 한 개라도 더 넣어 보내고 싶어 애 썼을 지인의 따스한 마음이
상기도 식지 않은 채 꼭꼭 담겨 있는 듯해서, 그만 콧등이 시큰해지며
주책없이 눈물이 비집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예부터 [ 곶감 ] 으로 유명한 상주지방이라 감나무가 많고 감 역시 남아돌아 보냈노라고
말은 그렇게 해도, 그저 달랑 우표 한 장 사 붙여 보내는 일이 어려워 몇 날 며칠
제 가방 속에서 뒹굴며 네 귀가 닳다가 끝내 버려지곤 하던 엽서와 편지들을 생각하면,
고르고 포장해서 탁송하는 일까지 - 그 감이 제 앞에 당도하기까지 보통 정성이 배어있는 게
아니란 것을, 무심하고 게으른 제 자신이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작년 가을은 서울 도심에 묻혀 있던 제게도 풍성한 감 풍년이 들었고,
특별히 좋지도 싫지도 않아 평범하던 감이 특별한 의미의 과일이 되어
제 가슴 한쪽을 풍요로운 주홍색 감빛으로 물들였었답니다.
* * * * * 감나무는 중국·일본 그리고 우리나라가 원산지입니다.
12세기 초 고려 인종 때는 고욤을 재배했다는 기록이,
13세기 중반 고려 원종 때 [ 농상집요 ] 에는 감나무 재배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만,
얼마 전 서울 근교 일산 신도시 토탄층에서도 감나무 화석이 발견됨으로써
적어도 3∼4천 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과 함께 해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조선 세종 때 간행된 [ 향약집성방 ] 에는 오래 살고, 나뭇잎이 무성하여 그늘이 좋고,
새가 집을 짓지 않고, 벌레가 생기지 않으며, 단풍이 아름답고, 열매가 맛나며,
낙엽은 거름이 된다는 일곱 장점을 들고 이것을 [ 감나무의 칠절(七絶) ] 이라 했습니다.
또 감잎은 넓어 종이 대신 쓸 수 있으므로 문(文)이 있고
재질이 단단하여 화살촉으로 쓰였으므로 무(武)가 있고,
과일의 겉과 속이 똑같이 붉어서 충(忠)이 있으며,
이가 없는 노인도 즐겨 먹을 수 있어 효(孝)가 있고,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까지 달려 있어 절(節)이 있으므로
이것을 [ 감나무의 오상(五常) ] 이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열매가 붉고(赤), 잎은 푸르며(靑), 꽃은 노랗고(黃), 목질은 검고(黑),
곶감엔 흰 가루(枾霜-白)가 생기므로 이것을 [ 감나무의 오색(五色) ] 이라고도 했지요.
이렇게 나무 한 그루도 그저 예사롭게 보아 넘기지 않고
[ 까치밥 ] 이라며 새들의 겨울 식량을 남겨 놓았던 조상들의 여유와 인정...
어떻게 그처럼 아름다운 마음의 눈을 가졌을까 새록새록 경이로운 생각이 들 뿐입니다.
농본사회였던 우리 나라는 계절의 변화에 민감해야 했으므로
피고 지는 잎과 꽃과 열매를 보고 풍흉과 날씨, 시간을 짐작했습니다.
감나무도 대표적 기상예보의 지표목이었는데
감나무 헛꽃이 많으면 그 해는 비가 많고, 잎을 빨리 떨구면 눈도 빨리 올 것이라 했으며,
뒤집혀 떨어진 잎이 많으면 눈도 많을 것이라고 했고, 감이 일찍 물들면 첫눈이 빨리 오고
풍년이 들 것이라 믿었지요.
또 감 풍년이 들면 태풍이 오고 벼농사가 신통찮을 것이라 했고, 감이 적게 열린 해는
눈도 적으며, 감씨가 많이 들면 추위가 심하고 눈이 적을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어렸을 적 시골 큰아버지 댁 마당 우물가에는 석류나무 한 그루가,
또 헛간 앞에는 아주 커다란 감나무가 한 그루 떡 버티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담배와 땀냄새에 절은 이부자리에 코를 묻고 밤잠을 설치다가
장짓문이 어슴푸레 푸른빛에 젖어들 때쯤, 눈꼽도 덜 떨어진 눈을 비벼가며
감나무 아래를 빙빙 - 밤새 떨어진 감꽃이나 애기감을 주웠더랬습니다.
큰집 사촌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던 것들이어서 아무 탐낼 사람도 없건만
밤새 누군가 모두 주워 가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에 부지런을 떨었지요.
감꽃이 피는 철엔 사촌 언니가 목걸이를 만들어 주었는데, 나무에 달려 있을 때보다는
떨어졌을 때 오히려 더 향긋한 냄새와 꽃잎의 그 도톰한 질감은 참 신기했었습니다.
감꽃을 [ 감또개 ] 라 부르고, 자손 없는 여인네들이 아들을 바라며 만들어 걸던
주술적 의미의 목걸이였단 건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입니다.
또 애기감이 떨어지는 철에는 들일 밭일에 돼지까지 치시는 큰엄마를 졸라
조그만 단지에 애기감을 넣고 소금물(?)을 부어 정지 한구석에 며칠 두면,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아주 묘한 맛의 군입거리가 되었더랬습니다.
그때는 제가 작았는지 감나무가 컸는지 나무에 오른다는 건 꿈도 안 꿨는데
할아버지께선 걸핏하면 긴 담뱃대로 감나무를 탁탁 치며 올라가면 안 된다고,
떨어지면 죽는다고 거듭 오금을 박으셨었지요.
늘 나무와 숲과 함께 하고 싶던 마음을 실천에 옮기려고 얼마 전부터서야 배우고 있는
단편적인 지식들은, 해묵은 궁금증으로 남은 이런 기억에까지 하나씩 이론적 근거와
타당성을 부여해주기도 하는데, 갈수록 참으로 흥미롭고 새로운 세상과 조우하는 듯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감나무에서 떨어지면 죽는다는 할아버지의 말씀도 그저 일상적 경고로만 짐작했는데,
감나무 재질은 강하고 탄력 있어 쓰임새는 많아도 가지가 유난히 잘 부러진다는
사실을 배우고 나니, 왜 그런 금기가 생겼는지 쉽게 수긍이 되더군요.
감나무에 대한 또 다른 금기 - 감나무를 태우면 7대가 가난할 거라는 다소 끔찍하고
저주에 가까운 말이지만, 유실수로 약재로, 목재로 쓸모 많으니 그만큼 아끼고
소중히 가꾸라는 좀 강도 센 권고쯤으로 풀이해도 되지 않을는지요...
감나무와 유사한 돌감나무와 고욤나무는 열매가 메추리알 정도 크기이고
씨앗만 잔뜩 들어서 먹지 않고 접붙이용 밑나무로 이용하는데, 감 씨앗을 심으면
고욤나무가 되므로 3∼5년쯤 지나 그 고욤나무에 감나무 가지를 잘라 접붙여야
그 다음 해부터 감이 열리게 된답니다.
감나무 접붙이기는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에 지식과 도덕과 규율 등
모듬살이에 필요한 덕목들을 접붙여야 비로소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는 의미를
지닌 듯해서, 마음 속에 한번 더 짚고 넘어가게 되는 부분입니다.
또한 감은 단순한 과일이라기 보다 약재라고 하는 게 맞다 싶을 만큼 부위별로
그 쓰임새나 효과가 다양하여 하다 못해 감꼭지까지 딸꾹질·구토·야뇨증 등에
특효라 하여 달여 먹습니다.
변비 심한 사람은 감을 무서워(?) 정도로 설사에 직효이고 배탈에도 좋은데,
떫은 맛을 내는 탄닌성분은 모세혈관을 튼튼히 해주는 데다 강한 수렴(收斂)작용으로
장 점막을 수축시켜 설사를 멈추게 해주지요.
식이섬유는 사과의 두 배, 비타민C는 귤의 두 배를 가지고 있으며
나트륨·칼륨·마그네슘·칼슘·철과 망간 성분도 풍부하여, 중간 크기 감을
하루 한 개씩 먹으면 동맥경화증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답니다.
홍시는 풍부한 과당·비타민C 등이 알코올 분해를 도와 숙취제거에 그만이고,
[ 꼬챙이에 꽂아서 말린 감 ] 이란 의미의 곶감은 해소·토혈·이질 등에 좋을 뿐 아니라
정액 생성을 활발히 해주고 폐열을 낮추어 준다고 합니다.
곶감의 하얀 가루를 시상(枾霜)이라 하는데,
조선시대에는 그것만 따로 모아 감미료로 쓰기도 했다는군요.
枾霜... 감서리... 서리 내린 감... 참 예쁜 이름이지요...?
또한 감은 천연염료로서, 제주도에서는 무명에 감물을 들여 만든 옷을
[ 갈중이 ] 혹은 [ 갈옷 ] 이라 부르는데, 감물이 방부제 역할을 하여
땀 냄새도 안 나고 그냥 두어도 썩지 않으며, 통기성이 좋아 여름에 시원할 뿐 아니라,
물이나 오물이 쉽게 묻지 않아 위생적이기도 하답니다.
* * * * * 올봄, 멀리 남도에 사는 또 다른 지인으로부터 아주 귀한 선물 -
그가 손수 만들었다는 감잎차와 함께 황토로 염색을 한 런닝셔츠를 받았습니다.
책을 찾아보니, 감나무 새순을 정성스레 따 모아 먼지 등을 깨끗이 닦아낸 후 가늘게 채 썰어
김 오른 솥에서 1분 30초쯤 쪄 식힌 후 다시 찌기를 적어도 7∼9번 반복하며,
그렇게 쪄낸 차는 통풍 잘 되는 그늘에서 말려야 한다는군요.
감잎차는 녹차와 달리 약산성인 데다 카페인 성분이 전혀 없어
불면증 등 부작용이 없으며, 고혈압·동맥경화증·당뇨병 등의 합병증을 다스리고
비타민C가 풍부하여 혈액순환을 도우므로 비만방지·감기·미용에도 효과가 매우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단 변비 있는 사람은 금물이랍니다.
그런데 그렇게 품 들고, 공 들고, 시간까지 엄청스레 잡아먹었을 귀한 감잎차를
고이 보내준 정성이 어찌나 고맙던지요.
무언가 해주긴커녕 안부조차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지내는데, 주위에
좋은 이들이 이리 많은 걸 보면, 제가 전생에 무지 착한(?) 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착각이 들 때도 솔직히 종종 있답니다~. ^^;;
이 글을 마치면, 지인의 정성을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향 한 촉 피워올리고 감잎차 한 잔 마주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