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다리를 한 스핑크스: 실버 킹덤 하우스
홍대 앞 정확히 이야기해서 서교동, 지금은 편집사무실과 설계사무소에 세 주고 파주로 이사간 도서출판 열림원의 옛 사옥 6층 옥탑방에서 문 훈 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열림원 건물은 권문성 소장이 설계했는데, 원래의 건물에 새 건물을 붙이면서 표피는 베이스 패널이라는 회색의 무덤덤한 합성체로 묶고 상부는 나무로 된 다리를 비녀 꽂듯이 꽂아놓았다. 우리는 그 탑의 꼭대기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5월 13일 오후 7시 30분 두 개의 옥탑을 연결하는 다리를 넘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꽃 모양 단추가 달리고 까만 솔기가 끄트머리에 촘촘히 미싱질 된 빨간 와이셔츠에 까만 건빵바지를 입은 그가 지하철 때문이라며 30분 늦게 들어왔다. 서로 서먹해 하며 악수를 나누었고 재빨리 밖으로 빠져 나왔다.
홍대 앞은 당연히 늘 복잡하고 그 복잡함이 이제는 좁은 이면도로까지 파고 들어와 있었다.
암세포가 전신 곳곳에 퍼져 이제는 달리 손쓸 수가 없군요. 의사가 근엄하게 내려다보며 답답한 소리를 한다. 마치 뼈에 사무친 듯한 그 복잡함은 이 동네의 자랑이고 이 동네를 찾는 사람들의 기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게 싫다. 예전에 대학로가 그렇게 변해가더라. 아무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절이 떠나랴…총총… 그곳을 떠났다.
그놈의 복잡함은 가만히 고여있지 않으며 이리저리 흥청거린다.
서교동 교회를 끼고 내리막길을 조금 내려와 길을 향해 활짝 내부를 열어놓은 횟집을 하나 찾아 들어갔다. 정식으로 문 훈 소장을 만난 것은 그게 처음이지만, 한창 상상사진관이 지어지던 무렵,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머리띠를 하고 반바지를 입은 채 서있거나 앉아있는 수상한 남자를 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튼 그날의 만남은 인터뷰를 빙자한 술자리였다. 집 얘기는 드문드문 한 것 같고, 그냥 건축 하며 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흥겨워 했던 것 같다. 그날은 문 훈 소장의 첫 작품인 묵동 다세대 주택 이야기를 많이 했다.
몇 년 전 그가 독립해서 처음 한 일이라고 했다. 그리 길지 않은 건축 수련기를 거쳐 너무나도 당연히 일이 없었던 초창기에 <FDBS>라고 땅은 있으나 개발능력이 없는 건축주와 설계는 할 줄 아는데 수주능력이 없는 두 개의 ‘외로운 행성’을 만나게 해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얻어 걸린 일이었다고 한다.
묵동에 잘려나간 땅을 가지고 계시는 할머니와 세상으로 잘려서 나온 문 훈 소장이 그렇게 만나게 된 것이다. 원래의 집은 비포장 도로 끝에 있었고 계획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땅이 15평 자투리와 25평 자투리로 나뉘었는데, 굳이 개념, 혹은 떠오른 생각을 말하자면 바로 잘려나간면(Sectioned)을 그대로 드러내는 집을 계획해 보자는 게 시작이었다.
바짝 말라 생기가 전혀 없는 회를 먹으며 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건축주가 많이 양보하고 도움도 많이 주었다고 한다. 가끔씩 집착하는 그에게 “문 훈 소장 집 해라, 문 훈 소장이 사라 사” 하면서 말이다. 문 훈 소장을 만나기 전까지 집 주인은 여기 저기서 계획안(이른바 가설계)을 받아 봤다. 건축주의 관심은 건축의 미학적인 어떤 부분은 아니었고 주로 면적과 그에 따른 건축물의 경제성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정작 문 훈 소장은 어떤 사무실보다 면적을 많이 뽑아냈고 자연스럽게 이 일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이빠이즘………….
그의 전략은 땅이 생긴 대로 입체를 올리는 것이었고, 어떠한 건축적인 조작이나 미련도 없었다. 결국 삐뚤어진 땅에 삐뚤어진 집이 앉게 되었는데.. 땅과 법규 잘려진 25평 자투리는 생김새조차도 조금 살진 칼날과 같고 사방이 예리한 각이라 그 자체의 형상을 따르면 최대한의 면적과 동시에 형태에 대한 고민도 자연스레 사라진다. 일조권이라는 보이지 않는 칼날이 수직의 형태를 좌우한다. 땅과 법규가 형태를 낳았다. 거기에 문 훈 소장은 그가 즐겨 스타킹이라고 부르는 익스펜디드 메탈을 뒤집어 씌웠다.
속내야 어떻든 그렇게 모양이 만들어지고 면적이 뽑아져 나왔다. 땅과 건축주와 건축가는 아주 흔쾌히 합의했으며 일은 시작되었다. 시공은 건축공사는 처음인 토목공사를 주로 하던 분이 맡았다. 건축가도, 건축주도, 시공자까지도 모두 ‘초짜’였던 셈이다. 문 훈 소장은 건축주가 이렇게 매일 나오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할 정도로 현장에서 살았다.
다음 이야기는 현장에서 만나 하기로 했지만, 어쩌다 보니 묵동이 아닌 반포동 다세대주택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2003년 봄에 지은 집인데, 건축주와는 집 지으며 가까워져서 10여 년 넘는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다. <SILVER KINGDOM HOUSE>. 건축주 이왕국 씨의 이름을 딴 이 집은 200평 한도를 꽉 채운 메가 다세대다.
이번엔 두꺼운 세로줄무늬 셔츠에 헐렁한 반바지 차림인 문 훈 소장을 두 번째로 만난 건 강남 교보문고에서다. 사진가 김재경 씨의 차를 함께 타고 복잡한 강남 한복판의 이면도로를 뚫고 다세대들로 가득한 반포동 언덕을 거의 꼭대기까지 따라 올라갔다.
앞 건물이 떡하니 가리고 있어서 정작 집은 왼쪽은 반, 오른쪽은 한 오분의 일, 이런 식으로 보일 뿐이다. 웅크린 듯 한눈에 알 수 없는 전모가, 문 훈 소장의 말처럼 얇은 다리를 한 스핑크스 같다. 얇은 다리라는 건 1층 전체를 주차장으로 쓰려고 노출시킨 기둥들이다.
2, 3층은 원룸이고 4층은 3룸, 주인까지 모두 13세대가 사는 집이다. 대지는 원래 맹지였지만 이미 이십 년 넘게 살던 주택을 드나들던 통행로가 있었기 때문에 허가가 가능했고, 오히려 이 집이 독점할 수 있는 골목길이 되었다. 그 골목길 한쪽을 주인이 열심히 나무를 심고 가꾸어 제법 운치가 있다. 밖에서 둘러보는 사이 외출했던 안주인이 마침 차를 몰고 들어오기에 수인사를 나누고, 집이 다 안보여 아쉽다고 하자 앞집 주인을 어느새 설득해 그 집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요령이 좋은 분이다.
그사이 이왕국 씨도 내려왔다. 컨디션이 썩 좋지는 않아 보였는데 근래 수술을 받고 회복중인 터에 갑자기 집을 촬영한다는 소리를 듣고 집에 새로 칠을 하려고 어제 페인트를 사러 나갔단다. 그런데 그만 친구를 만나는 바람에 늦게까지 술을 먹느라 아무 준비도 못했다며 쑥스러워한다. 그는 수학을 전공하고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하다 요즘엔 보석감정도 하는 괴짜다. 문 훈 소장은 이왕국 씨의 고등학교 동창의 후배다.
건축가와 건축주의 관계란 것이 건축가는 작가정신 때문에 의도한 대로 하고 싶고 건축주는 실용을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누가 더 목소리가 큰가, 목소리 큰 사람의 패턴을 따라가게 돼 있는 것 이라 여기서는 건축주 목소리가 더 컸던 것 같다며 이왕국 씨가 스스로 실토한다. 집이란 판타지를 충족하든가 기능을 충족하든가 해야 하기에, 사는 사람의 생활을 반영해야 하는 게 맞는 얘기라고 문 훈 소장도 맞장구를 친다.
그래도 남들이 하지 않는 방식으로 하고 싶다는 부분에서는, 서로 마음이 잘 맞았다. 인생의 성공방식이 보편적 구조 속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은 닮은 꼴이다. 집을 통해 둘이 좋은 친구가 된 것이 가장 좋은 경험이었다고, 요즘도 어디선가 술 먹다가 불러내면 바로 달려가는 사이라고 한다. 심지어 안주인은 둘이 사귀는 줄 알았다고 농을 한다.
2002년 1월에 만나 4월 중순까지 설계를 했고, 공사는 2002년 6월에 시작해 2003년 4월에 끝났다. 집이 지어지는 동안 문 훈 소장은 거의 매일 현장에 나오고 매일 주인과 만났다. 새벽 여섯 시에 만나 함께 청계산 등산까지 갔다니 오죽한 일인가. 그때 갑자기 문 훈 소장이 달려나가기에 이왕국 씨가 지지 않으려고 따라 달리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무릎 연골이 나가서 다시는 등산하지 말라는 의사의 선고를 받고 말았다. 문 훈 소장처럼 건축을 놀이로 생각하고 즐기는 사람이니까 가능한 얘기다. 본전 생각 나면 절대 못할 일이다.
원래 있었던 집은 낡고 추운 것도 문제였지만, 주변이 온통 다세대주택으로 둘러싸이면서 11시에 잠깐 해가 떴다가 2시면 해가 지는 상황에 처해버린 것이 가장 괴로웠다. 잔디가 죽어버리고 나무도 시들해지고, 이런 동네에서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을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일조에 대한 욕심으로 새 집은 무조건 창문이 많았으면 해서 처음엔 거실도 기둥을 두고 모서리까지 유리로 두르려 했다. 결국 벽으로 바꾸긴 했지만.
문 훈 소장은 처음엔 소박하게 비가 안 새는 것이 가장 뿌듯하다더니, 이야기할수록 새록새록 설계를 많이 했던 것이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다세대주택에서 흔히 사용하는 벽돌, 돌, 드라이비트 말고 다른 재료로 하고 싶어서, 문 훈 소장은 처음에 담파롱을 추천했다. 실현되었다면 아마도 국내 최초였겠지만, 이왕국 씨가 라이터를 들이대자 확 불이 붙어버려 더 이상 밀 수가 없었다.
그 다음엔 유리 커튼월로 갈까 했는데 햇빛이 반사되는 문제, 민원 소지, 건축법상 허가 문제 등이 다 걸렸다. 갈바륨 가로접기, 샌드 스톤, 라임스톤 같은 재료들도 모두 함께 청담동 가서 구경했다. 묵동 다세대주택에 썼던 익스펜디드 메탈은 감옥 같아서 안되겠다고 퇴짜맞고 결국 낙찰된 재료는 알루미늄 패널.
이 계획안들은 각 마감재 버전별로 1/50 스케일의 모형사진으로 남아있다. (모형은 어느 날 사무실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생각에 부셔버렸다.) 외벽에 모니터를 여러 개 달아서 백남준 아트 같은 효과를 내고도 싶었는데 그것도 관리의 문제 때문에 접고. 달았다면 무슨 축구경기 있을 때마다 동네에서 유용하게 썼을 텐데 말이다. 그나마 5층에서 툭 튀어나온 사랑방은 못 이룬 모니터에 대한 오마주가 아닐지?
이 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대형 바처럼 꾸며진 거실이다. 형형색색의 조명은 언제든지 갈아 낄 수 있도록 수납공간엔 전구가 가득 상비되어 있다. 주방이자 식당이자 이왕국 씨의 작업공간인 거실은 면적만 20평에 층고가 3미터다. 천장 마감한 것 빼면 3.6미터이고(집 전체가 40평 정도 된다). 찾아오는 손님마다 뭔가 한판 놀아 보고픈 욕심이 나게 만드는 공간인데, 처음엔 창 밖으로 바로 고속도로가 내다보여서 교통방송이 따로 없을 정도로 전망이 좋았었다.
아깝게도 작년 6월 3층짜리 옆집 두 집을 합해 지은 아파트가 올라와 다 가려버렸다. 억울해서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도 내봤지만 기각되었다. 서울에서 조망권이란(한강 조망권 외에는) 의미가 없다나 뭐라나. 주변이 4개 지하철역이 연결되는 곳이다 보내 재개발 움직임이 있는 것도 요즘의 고민이다. 그래도 주차가 많고(12대) 조용해서 동네 부동산에서도 동급 최강으로 인정하는 터라 다른 집보다 20% 정도 세가 비싼 집이다.
문 훈 소장은 이제 와서 보니 현관이 빈약한 것이 아쉽다고 하는데, 들어오면 중정이 바로 보여 좁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다만 중정을 사이에 두고 튀어나간 사랑방을 서재보다는 안주인에게 양보해서 다실 같은 용도로 사용하면 어떨까 싶다.
집은 현관에서 오른쪽은 거실, 왼쪽은 방과 화장실들이 있는 주거공간으로 나뉘고, 손님을 위한 화장실도 따로 분리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문 훈 소장은 억지로 돌려서 공간을 만들지 않는다. 단도직입적이고 적나라하다. 그것이 조미료 치지 않은 음식같이 담백하다. 건축가를 닮아 거침 없는 보이는 그대로의 건축, 의뭉스럽지 않은 건축, 그의 요즘 놀이터는 전주에 짓고 있는 ‘진짜’ 동물원이다.